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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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미국)|민주당]]에서는 캘리포니아주지사 [[제리 브라운]], 사우스 다코다주 연방 상원의원인 [[조지 맥거번]]과 [[콜로라도주]] 연방상원의원 [[게리 하트]], [[매사추세츠주]] 연방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등이 부각을 보였으며, 케네디 의원과 하트 의원이 각축을 벌였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일시적으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으나 [[1969년]] 있었던 [[채퍼퀴딕 스캔들]]의 영향을 받아 예상보다 큰 차이로 하트에 밀려 대통령에 지명되지 못했다. 선거 결과 서부 지역과 젊은 세대에서 높은 득표를 얻은 [[게리 하트]] 상원의원이 49.5%를 얻어 28.3%를 얻은 [[에드워드 케네디]]와 11.2%를 얻은 [[조지 맥거번]], 5.5%를 얻은 [[제리 브라운]], 4.7%를 얻은 [[제시 잭슨]]을 재치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민주당 (미국)|민주당]]에서는 캘리포니아주지사 [[제리 브라운]], 사우스 다코다주 연방 상원의원인 [[조지 맥거번]]과 [[콜로라도주]] 연방상원의원 [[게리 하트]], [[매사추세츠주]] 연방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등이 부각을 보였으며, 케네디 의원과 하트 의원이 각축을 벌였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일시적으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으나 [[1969년]] 있었던 [[채퍼퀴딕 스캔들]]의 영향을 받아 예상보다 큰 차이로 하트에 밀려 대통령에 지명되지 못했다. 선거 결과 서부 지역과 젊은 세대에서 높은 득표를 얻은 [[게리 하트]] 상원의원이 49.5%를 얻어 28.3%를 얻은 [[에드워드 케네디]]와 11.2%를 얻은 [[조지 맥거번]], 5.5%를 얻은 [[제리 브라운]], 4.7%를 얻은 [[제시 잭슨]]을 재치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게리 하트]] 대통령 후보자는 2위 후보 [[에드워드 케네디]]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 당을 통합하려 하였다. 비록 [[에드워드 케네디]]의 스캔들이 논란이 되기는 하였으나, [[케네디 가문]]의 일원으로서 대중에게 높은 지지를 얻었다.

2022년 10월 22일 (토) 18:02 판

1984년 미국 대통령 선거
1984 United States presidential election

레이건 127인 (23.6%)
(69.6%) 374인 하트
1984년 11월 6일
1984년 대선
선거일시 11월 6일 5시 ~ 11월 7일 7시 (UTC)
투표율 53.3%
선거 결과
정당 공화당 민주당
후보

러닝메이트 밥 돌 에드워드 케네디
선거인단
127인 374인
전국득표
37.53%
34,772,758
45.91%
42,537,099
대통령 당선인 부통령 당선인
민주당
게리 하트 에드워드 케네디

개요

1988년 치뤄진 미국의 대통령 선거. 선거 결과 민주당게리 하트 후보가 당선되었다.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고립주의 정책에 반발한 중도보수 무소속 존 B. 앤더슨 후보의 독자 출마, 에드먼드 머스키 행정부 시절 이뤄진 이란 공습의 여파인 석유 파동, 폴 볼커 연준 의장의 무리한 금리 인상 등으로 로널드 레이건의 재선 가능성은 높지 않았으며 콜로라도주 상원 의원인 게리 하트가 젊은 이미지를 무기로 레이건을 매섭게 추격했다. 선거 결과, 존 B. 앤더슨이 15% 가량을 득표하며 보수의 표를 분열시켜, 레이건 대통령은 에드먼드 머스키 이후 다시 재선에 실패한 대통령이 되는 불명예를 얻었다.

경선

민주당

1984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
대통령 후보자 지명
후보 득표수 득표율
게리 하트 2,092 (62.43%)
에드워드 케네디 947 (28.71%)
조지 맥거번 188 (5.70%)
제리 브라운 50 (1.52%)
제시 잭슨 17 (0.51%)
토머스 이글턴 3 (<0.10%)
조 바이든 2 (<0.10%)
합계 3,298

민주당에서는 캘리포니아주지사 제리 브라운, 사우스 다코다주 연방 상원의원인 조지 맥거번콜로라도주 연방상원의원 게리 하트, 매사추세츠주 연방상원의원 에드워드 케네디, 흑인 민권운동가 제시 잭슨 등이 부각을 보였으며, 케네디 의원과 하트 의원이 각축을 벌였다. 에드워드 케네디는 일시적으로 여론조사에서 선두를 달렸으나 1969년 있었던 채퍼퀴딕 스캔들의 영향을 받아 예상보다 큰 차이로 하트에 밀려 대통령에 지명되지 못했다. 선거 결과 서부 지역과 젊은 세대에서 높은 득표를 얻은 게리 하트 상원의원이 49.5%를 얻어 28.3%를 얻은 에드워드 케네디와 11.2%를 얻은 조지 맥거번, 5.5%를 얻은 제리 브라운, 4.7%를 얻은 제시 잭슨을 재치고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다.

게리 하트 대통령 후보자는 2위 후보 에드워드 케네디를 부통령 후보로 지명, 당을 통합하려 하였다. 비록 에드워드 케네디의 스캔들이 논란이 되기는 하였으나, 케네디 가문의 일원으로서 대중에게 높은 지지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