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일본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개신): 두 판 사이의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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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선은 엄청난 박빙이었다. 초반에는 [[스즈미야 하루히]] 재무상의 지지를 얻은 [[타카가키 카에데]]가 우위를 달렸지만, '''디지털 도쿄 구축'''을 핵심 정강으로 내세운 [[키리가야 카즈토]]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였다. 군소 후보로는 [[미카미 엘빙]] [[국가사회주의일본노동자당]] 사무국장이 출마했으나, 네오나치 및 폭력 논란으로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또한 [[시노노메 에나]] 후보는 오사카 기반의 [[레이와 정책연구회]]의 소속이었으므로 지지율이 낮았다.<ref>[[미카미 엘빙]] 후보자 측은 가두 연설을 통해 '''오사카놈이 도쿄에 왔다. [[오사카도 (개신)|오사카]]놈들이 참의원 먹으면 일본은 조센징들에게 넘어간다. [[사토 일레이나|자이니치 레즈년]]이 지배하는 오사카를 파괴하자'''라는 마타도어를 통해 시노노메 후보의 지지율을 크게 떨어트렸다.</ref>
경선은 엄청난 박빙이었다. 초반에는 [[스즈미야 하루히]] 재무상의 지지를 얻은 [[타카가키 카에데]]가 우위를 달렸지만, '''디지털 도쿄 구축'''을 핵심 정강으로 내세운 [[키리가야 카즈토]]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였다. 군소 후보로는 [[미카미 엘빙]] [[국가사회주의일본노동자당]] 사무국장이 출마했으나, 네오나치 및 폭력 논란으로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또한 [[시노노메 에나]] 후보는 오사카 기반의 [[레이와 정책연구회]]의 소속이었으므로 지지율이 낮았다.<ref>[[미카미 엘빙]] 후보자 측은 가두 연설을 통해 '''오사카놈이 도쿄에 왔다. [[오사카도 (개신)|오사카]]놈들이 참의원 먹으면 일본은 조센징들에게 넘어간다. [[사토 일레이나|자이니치 레즈년]]이 지배하는 오사카를 파괴하자'''라는 마타도어를 통해 시노노메 후보의 지지율을 크게 떨어트렸다.</ref>


그러나 선거 막판, 정치적 신인에 가까웠던 [[시모에 코하루]]가 참신한 이미지를 통하여 지지율을 수직으로 상승시켰고,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어내 후보로 지명되었다.<ref>시모에 경선 후보자의 당선은 [[197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의 [[지미 카터]] 지명만큼이나 이변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ref> 시모에 후보는 주로 10대와 20대에서 득표를 얻었으며, 비교적 무파벌이었다는 점이 경선에서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그러나 선거 막판, 정치적 신인에 가까웠던 [[시모에 코하루]]가 참신한 이미지를 통하여 지지율을 수직으로 상승시켰고,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어내 후보로 지명되었다.<ref>시모에 경선 후보자의 당선은 [[1976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경선]]에서의 [[지미 카터]] 지명만큼이나 이변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ref> 시모에 후보는 주로 10대와 20대에서 득표를 얻었으며, 비교적 무파벌이었다는 점이 경선에서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 최종 후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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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5일 (토) 17: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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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상반기 선거 (2024년 4월 13일)

도쿄도 선거구 참의원

전임 야마구치 나쓰오
사유 노환으로 인한 사망
사유발생일 2024년 2월 12일

공명당 소속의 참의원 의원 야마구치 나쓰오가 지병으로 인해 사망하면서 치러진 보궐 선거이다. 야마구치 의원은 2025년 개선 후보였으므로 이 선거에서 당선된 도쿄도 선거구의 참의원은 1년의 임기를 지니게 된다.

선거전

일본 최대의 선거구인 도쿄도 선거구에서 치러지는 참의원 의원 선거이고, 2024년 도쿄도지사 선거의 행방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선거이자, 일본의 미래당 창당 이후 치러지는 첫번째 선거로서 보궐 선거 치고는 유례 없는 전국적인 관심을 끌어 모았다.

개신당의 정치적 근거지중 하나인 도쿄도에서 치러지는 선거인만큼, 개신당의 승리가 사실상 예정되어있어 본선보다 개신당의 경선이 더 주목을 받았다(...). 당초 히구치 마도카 개신당 대표대행의 출마가 유력시되었으나, 맨하탄 카페 간사장이 현직 중의원 출마 금지 조치를 내림에 따라, 원외 인사들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몰리고 그만큼 경선이 흥행한것.

한편 일본의 미래당에서는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가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당 내에서 반발이 튀어나와 무산되었다. 이 외에도 무라야마 도미이치 전 내각총리대신, 모리 요시로 전 내각총리대신 등도 출마 의사를 피력하였으나, 도대체 왜 미래당은 출마 후보군 평균 연령대가 90세인가라는 시민들의 거센 비판 속에서 비교적 젊은 후보를 몰색하기 시작하였다. 이에 따라 타치바나 타카시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 대표가 출마할 예정이었으나 미래당 대표 모리 요시로NHK를 사수해야한다!라고 소리치며[1] 일방적으로 이노세 나오키 참의원을 공천하기로 결정하였다. 타치바나 타카시는 반발하여 독자 출마를 선언하였으나, 2주 후 공금 횡령 혐의로 전격 구속되며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공산당은 시민운동가 우쓰노미야 겐지 무소속 후보를 추천하여, 개신당과 미래당 양당의 심판을 외쳤다.

개신당 후보 경선

개신당 도쿄도 선거구 보궐선거 경선 후보자
후보자 주요 약력 소속 파벌
시모에 코하루
키리가야 카즈토 아인크라드 대표이사 이계를 생각하는 모임
미카미 엘빙 국가사회주의일본노동자당 사무국장 바다를 보는 모임
타카가키 카에데 시부야 린 보좌관 SOS단
시노노메 에나 행동하는음악저작인협회 집행위원 레이와 정책연구회

경선은 엄청난 박빙이었다. 초반에는 스즈미야 하루히 재무상의 지지를 얻은 타카가키 카에데가 우위를 달렸지만, 디지털 도쿄 구축을 핵심 정강으로 내세운 키리가야 카즈토와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못하였다. 군소 후보로는 미카미 엘빙 국가사회주의일본노동자당 사무국장이 출마했으나, 네오나치 및 폭력 논란으로 저조한 지지율을 기록했다. 또한 시노노메 에나 후보는 오사카 기반의 레이와 정책연구회의 소속이었으므로 지지율이 낮았다.[2]

그러나 선거 막판, 정치적 신인에 가까웠던 시모에 코하루가 참신한 이미지를 통하여 지지율을 수직으로 상승시켰고, 최종적으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어내 후보로 지명되었다.[3] 시모에 후보는 주로 10대와 20대에서 득표를 얻었으며, 비교적 무파벌이었다는 점이 경선에서 오히려 유리하게 작용하였다.

최종 후보

참의원 도쿄도 선거구 보궐선거
도쿄도 전역
정당 이름 비고
시모에 코하루
下江 コハル
이노세 나오키
猪瀬直樹
전 도쿄도지사
무소속 우쓰노미야 겐지
宇都宮 健児
지지

개신당은 경선에서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시모에 코하루를 개신당의 후보로 공인하였다.

일본의 미래당은 별도의 공천 없이, 전직 도쿄도지사 겸 현직 비례대표 참의원 의원인 이노세 나오키를 후보로 공천하였다.

일본공산당은 어떠한 후보도 옹립하지 않았으나, 과거 도쿄도지사에 출마한 적이 있고 유명한 시민 운동가이기도 한 무소속의 우쓰노미야 겐지 후보를 지지하기로 하였다.

여론조사

출구조사

투표 집단별 결과

최종 결과

도쿄도 선거구
도쿄도 전역
후보 득표수 비고
정당 득표율 당락
시모에 코하루 5,372,679 1위
62.27% 당선
이노세 나오키 1,661,760 2위
19.26% 낙선
우쓰노미야 겐지 1,593,599 3위
무소속 18.47% 낙선
유권자 수 11,454,822 투표율
75.36%
투표 수 8,628,038
무효표 수 4,316
지역별 결과

반응

  1. 치매의 전조 증상이라는 의심이 있을 정도로 매우 뜬금이 없었던 일이었다.
  2. 미카미 엘빙 후보자 측은 가두 연설을 통해 오사카놈이 도쿄에 왔다. 오사카놈들이 참의원 먹으면 일본은 조센징들에게 넘어간다. 자이니치 레즈년이 지배하는 오사카를 파괴하자라는 마타도어를 통해 시노노메 후보의 지지율을 크게 떨어트렸다.
  3. 시모에 경선 후보자의 당선은 1976년 미국 민주당 대통령 후보자 경선에서의 지미 카터 지명만큼이나 이변이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