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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2월 22일 (수) 12:50 판
총리
고증 無
hanin
gaewha
| 개화당 | |
|---|---|
| 한문명 | 開化黨 |
| 영문명 | Reform Party (RP) |
| 창당일 | 1884년 12월 4일 |
| 전신 | 급진개화파 |
| 분리된 정당 | / 1918년 분당 |
| 해산일 | 1920년 7월 10일 |
| 후신 | 섬네일을 만드는 중 오류 발생: 대상 경로에 섬네일을 저장할 수 없습니다. |
| 역대 총리 | 김옥균 / 제1대 • 1884~1896 이완용 / 제2대 • 1896~1899 박영효 / 제5대 • 1906~1912 유길준 / 제6대 • 1912~1914 서재필 / 제7대 • 1914~1918 |
| 총재 | 김옥균 / 초대 서재필 / 말대 |
| 이념 | 자유민주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급진개화 입헌주의 |
|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좌파 |
| 국민의원 | n석 / n석 (n%)[11] |
| 당색 | 하늘색 (#00C5FF)
|
개요
1884년부터 1920년까지 존재했던 조선, 대한국, 그리고 대한민국의 자유주의 정당.
당 강령
개혁개화선언 (改革開放宣言)
현재 대한은 크나큰 위기를 직면하고 있다. 국제 열강들은 호시탐탐 이 대한을 종속하려 하고 있으며 내부로는 탐관오리의 부패와 오랜 쇄국정책으로 썩어들어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대한의 4천년 독립의 불꽃이 결국 꺼져버릴 것이 자명하다.
이에 우리 급진개화파는 조국의 독립과 개혁, 개화의 선봉에 서 위기에 빠진 조국을 구출하고자 바야흐로 대한 전국의 개혁•개방 세력의 총연합체이자 총본산인 개화당을 창당한다. 우리 개화당은 헌법의 지배 아래 만민의 권리가 보호받는 대한을 건설할 것을 맹세하며, 이를 위해 개혁, 개방의 정책을 추진할 것이다.
개화당은 자유로운 선거를 통한 의회민주주의를 추구하며, 이를 통한 국민의 적극적인 정치참여가 보장되고 장려되는 국가를 만등 것이다. 또한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와 평등의 원칙 하에 만민이 공평한 권리와 기회를 보장받는 국가를 만들 것이다.
개화당은 외국의 문물을 빠르게 흡수하여 조국의 현대화를 위해 노력할 곳이며, 옛시대에는 천시받았던 상공업과 신학문을 장려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산업과 학문 역시 소외받지 않도록 할 것이다.
개화당은 침략적 제국주의와 배타적 국수주의를 거부하며, 만국공법의 준수와 상호호혜의 실현으로 이루어질 세계 평화를 절대 지지한다. 개화당은 각 민족이 각자의 운명을 선택할 권리가 있음을 믿으며, 민족의 자결이 보장되는 동시에 이웃 민족간의 화합 역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일천만 국민이여! 지금 대한은 중대한 기로에 서있는 것이다. 과거로의 퇴보냐, 미래로의 진보냐의 문제에서 오직 개화당만이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 개화당은 신시대를 열 준비가 되어있다!
모여라, 개화당의 깃발 아래!
역사
역사
성향
역대 지도부
역대 선거 결과
| 연도 | 지도자 | 의석수 (의석율) | 의석증감 | 지위 |
|---|---|---|---|---|
| 1893 | 김옥균 | 56 / 100 (56%)
|
- | 여당 |
| 1896 | 이완용 | 58 / 100 (58%)
|
여당 | |
| 1899 | 53 / 120 (44%)
|
제1야당 | ||
| 1902 | 서광범 | 58 / 120 (48%)
|
제1야당 | |
| 1906 | 박영효 | 77 / 120 (64%)
|
여당 | |
| 1902 | 65 / 120 (54%)
|
여당 |
각주
juksan
대한민국 국무총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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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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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제18대 국무총리 조봉암 曺奉岩 | Cho Bong-am | |
| 출생 | 1898년 9월 25일 |
| 경기도 강화군 | |
| 사망 | 1975년 3월 18일 (향년 76세) |
|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 |
| 임기 | 제18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 1951년 8월 11일 ~ 1957년 2월 10일 | |
|
[ 펼치기 · 접기 ] | |
개요
대한민국의 제18대 국무총리.
생애
국무총리
1951년, 여운형이 본인의 개인비서가 소련의 스파이로 체포된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사퇴하자 사민당에서는 차기 대표, 즉 국무총리가 누가 될 것인지를 결정할 임시 전당대회가 치루어졌다.
전당대회에 참가한 조봉암에게 도전장을 내민 이는 현직 수석부총리인 조용은이었다. 64세의 조용은은 민족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한 반면 53세의 조봉암은 비교적 자유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였다. 두 사람 다 조씨였기에 언론에서는 그 전당대회를 '양조대전'이라고 불렀다. 당시 전당대회는 여운형의 개인비서가 소련의 스파이로 체포된 것의 여파로 치러진 전당대회였기 때문에 당원들은 조용은보다 반공주의 성향이 짙은 조봉암을 더 선호했고 결선투표에서 57%를 득표한 조봉암이 사민당 대표에 선출되어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어록
| …또 박헌영을 중심으로 하는 대한공산당은 조국을 완전히 쏘련의 괴뢰화하여 민족의 이익을 무시하고 자칭 인민공화국을 선포하며 쏘련의 신탁통치를 주장하는 등 맹동을 하고 있습니다.[12] 1941년, 태평양전쟁 중 라디오 연설 |
| '국가에 의한 자유'란 무엇인가. 각 개인이 자신의 정당한 꿈을 펼치는 데에 있어 국가가 걸림돌이 아닌 디딤돌이 되어주는 것이 진정한 '국가에 의한 자유'입니다. 1950년, 국민원 원내총무 기조 연설 |
| 우리들 자신이 더욱 민주주의 이념에 철저하고 민주주의 체제를 더욱 공고하게 함으로써 공산주의가 스며들 여지를 주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한 일입니다. 1953년, 전승절 8주년 기념 연설 |
| 인간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일을 없애고 모든 사람의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고 모든 사람이 착취당하는 것 없이 응분의 노력과 사회적 보장에 의해서 다 같이 평화롭고 행복스럽게 잘살 수 있는 세상, 이것을 가리켜서 한국의 사민주의라 해도 좋을 것입니다. 1957년, 퇴임 연설 |
김구 피살
| 김창암 피살 사건 金昌巖被殺事件 Assassination of Kim Chang-am | |
|---|---|
| ▲ 당시 조선일보 기사[13] | |
| 발생일시 | 1944년 11월 20일 시 분 경 |
| 유형 | 살인, 적색테러 |
| 발생 위치 | 서울특별시 종로구 |
| 피의자 | 김천호 (金天浩, 26세) |
| 동기 | 대한공산당 잔여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기도 |
| 피해자 | 김창암 (제15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
개요
1944년 11웡 20일, 태평양전쟁 도중 대한민국의 제18대 국무총리인 김창암이 대한청년적위대 단원 김천호에게 살해된 사건.
전개
배후
영향
각주
- ↑ 전시 (제1차 세계대전)
- ↑ 전임 국무총리 이동휘의 임기 중 사망으로 인한 국무총리 대행
- ↑ 전시 (제2차 세계대전 - 태평양전쟁)
- ↑ 국무총리대행: 1944년 11월 20일 ~ 1945 1월 21일
- ↑ 해산 당시 기준
- ↑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집권정당은 1924년 집권한 몽골 인민혁명당. 다만 민주적인 방법으로 집권하지 않았다.
- ↑ 한인사회당의 주 지지기반이 도시 노동자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인사회당 인사들은 농촌문제에는 무지했다.
- ↑ 러시아 이름은 김알렉산드라.
- ↑ 검은바지 콧수염이 이동휘. 앞줄 맨 오른쪽이 부의장 김립
- ↑ 실제로는 가사가 뭐 어때서 그러냐고 했다고 한다.
- ↑ 해산 당시 기준
- ↑ 출처
- ↑ 기사 제목은 '김총리 급서에 각계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