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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듬해인 1935년 이동휘가 급사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급진파와 온건파 양측의 인정을 받던 이동휘가 사라지면서 한인사회당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다. 총리 대행을 맡았던 [[신채호 (개화)|신채호]]와 당 부의장 [[김립 (개화)|김립]]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었지만,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로 급진파와 온건파 양쪽 모두로부터 불호를 받았기에, 김립은 [[코민테른 (개화)|국제공산당]]으로부터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개화)|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인해 당 내에서 큰 힘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온건파와 급진파를 중재하는 데에 실패했다. | 하지만 이듬해인 1935년 이동휘가 급사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급진파와 온건파 양측의 인정을 받던 이동휘가 사라지면서 한인사회당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다. 총리 대행을 맡았던 [[신채호 (개화)|신채호]]와 당 부의장 [[김립 (개화)|김립]]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었지만,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로 급진파와 온건파 양쪽 모두로부터 불호를 받았기에, 김립은 [[코민테른 (개화)|국제공산당]]으로부터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개화)|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인해 당 내에서 큰 힘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온건파와 급진파를 중재하는 데에 실패했다. | ||
유일한 중재자가 사라지면서, 급진파와 온건파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맞붙게 되었다. 양측은 차기 의장을 뽑을 전당대회에 사활을 걸었는데, 1935년 3월에서 4월에 걸쳐 치루어진 임시 전당대회에서 급진파의 지지를 받은 [[유동열 (개화)|유동열]]이 온건파의 지지를 받은 [[조용은 (개화)|조용은]]을 아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의장에 선출되면서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유동열이 사회당의 [[코민테른 (개화)|코민테른]] | 유일한 중재자가 사라지면서, 급진파와 온건파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맞붙게 되었다. 양측은 차기 의장을 뽑을 전당대회에 사활을 걸었는데, 1935년 3월에서 4월에 걸쳐 치루어진 임시 전당대회에서 급진파의 지지를 받은 [[유동열 (개화)|유동열]]이 온건파의 지지를 받은 [[조용은 (개화)|조용은]]을 아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의장에 선출되면서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유동열이 사회당의 [[코민테른 (개화)|코민테른]] 가입 추진을 선언하자 이에 [[자유당 (개화)|자유당]]이 반발해 연정 탈퇴를 선언하였다. | ||
총리 선출 직후 [[민족단결연맹 (개화)|민족단결연맹]]에 의해 발의된 내각불신임안이 민단련, 국민회, 민주당, 자유당에 의해 통과되었다. 이에 사회당 온건파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총리 [[유동열 (개화)|유동열]]에게 타 정당들을 | 총리 선출 직후 [[민족단결연맹 (개화)|민족단결연맹]]에 의해 발의된 내각불신임안이 민단련, 국민회, 민주당, 자유당에 의해 통과되었다. 이에 사회당 온건파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총리 [[유동열 (개화)|유동열]]에게 코민테른 가입 추진 선언을 철회해 타 정당들을 안심시킬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시에는 탈당하겠다고 급진파를 압박했으나 사회당 급진파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조용은 (개화)|조용은]], [[안공근 (개화)|안공근]] 등 온건파 인사들을 해당행위를 이유로 제명했고 이에 반발한 온건파는 집단 탈당 후 [[사회민주당 (개화)|사회민주당]]을 창당했다. | ||
===몰락=== | ===몰락=== | ||
2023년 2월 22일 (수) 17:16 판
총리
고증 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