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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에 도시 노동자들의 수 역시 급속도로 늘었고, 사회당은 이들을 기반으로 계속 성장했다. 1927년, 공장 관리진 측의 부당한 대우에 원산 노동자연합회가 전면적 파업을 일으킨 [[원산 총파업 (개화)|원산 총파업]] 당시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여 파업을 지원하며 그 세력이 급속도로 불었다. | 급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에 도시 노동자들의 수 역시 급속도로 늘었고, 사회당은 이들을 기반으로 계속 성장했다. 1927년, 공장 관리진 측의 부당한 대우에 원산 노동자연합회가 전면적 파업을 일으킨 [[원산 총파업 (개화)|원산 총파업]] 당시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여 파업을 지원하며 그 세력이 급속도로 불었다. | ||
1929년 이후 [[세계대공황 (개화)|세계대공황]]의 여파로 한국의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자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후 [[12회 대한민국 | 1929년 이후 [[세계대공황 (개화)|세계대공황]]의 여파로 한국의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자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후 [[12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30년 총선]]에서 과반의 집권여당이었던 [[자유당 (개화)|자유당]]이 제3당으로 굴어떨어지고 한인사회당이 [[대한국민회]]를 제치고 [[대한민국 국민원 (개화)|국민원]] 과반을 차지하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사회주의 정당이 민주적으로 집권한 첫 사례였다.<ref>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집권정당은 1924년 집권한 몽골 인민혁명당. 다만 민주적인 방법으로 집권하지 않았다.</ref> | ||
총리로 선출된 이는 사회당 온건파의 거두 [[양기탁 (개화)|양기탁]]이었다. 양기탁 내각은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고 노조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등 여러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하지만 양기탁 내각은 농촌 문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ref>한인사회당의 주 지지기반이 도시 노동자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인사회당 인사들은 농촌문제에는 무지했다.</ref> 경제 정책 역시 이전 수권 정당들에 비해 상당히 투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동열 (개화)|유동열]], [[김안산 (개화)|김안산]]<ref>러시아어 이름은 김알렉산드라.</ref>, [[박한영 (개화)|박헌영]] 등 사회당 급진파는 더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요구했고 [[대한국민회 (개화)|대한국민회]]와 [[대한민주당 (개화)|대한민주당]], 그리고 [[자유당 (개화)|자유당]]은 한인사화당이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집권 축하 편지를 받은 것을 문제삼아 사회당을 소련의 프락치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 총리로 선출된 이는 사회당 온건파의 거두 [[양기탁 (개화)|양기탁]]이었다. 양기탁 내각은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고 노조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등 여러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하지만 양기탁 내각은 농촌 문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ref>한인사회당의 주 지지기반이 도시 노동자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인사회당 인사들은 농촌문제에는 무지했다.</ref> 경제 정책 역시 이전 수권 정당들에 비해 상당히 투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동열 (개화)|유동열]], [[김안산 (개화)|김안산]]<ref>러시아어 이름은 김알렉산드라.</ref>, [[박한영 (개화)|박헌영]] 등 사회당 급진파는 더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요구했고 [[대한국민회 (개화)|대한국민회]]와 [[대한민주당 (개화)|대한민주당]], 그리고 [[자유당 (개화)|자유당]]은 한인사화당이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집권 축하 편지를 받은 것을 문제삼아 사회당을 소련의 프락치 정당이라고 비난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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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휘 (개화)|이동휘]]는 당내외의 걱정을 뒤엎고 상당히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였고 1934년에 치루어진 [[제13회 대한민국 | [[이동휘 (개화)|이동휘]]는 당내외의 걱정을 뒤엎고 상당히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였고 1934년에 치루어진 [[제13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13회 총선]]에서 한인사회당은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하였다. 한인사회당은 과반에 조금 못 미치는 의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극우 [[민족단결연맹 (개화)|민족단결연맹]]의 약진으로 국민회, 민주당, 자유당이 연립하여도 한인사회당의 의석수보다 적었기에 한인사회당은 내각구성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당만의 단독 소수내각을 꾸리기에는 국정운영의 차질이 불가피해 보였기에 이동휘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자유당과의 연정을 시도하였고 교섭 끝에 연정이 성사되었다. | ||
하지만 이듬해인 1935년 이동휘가 급사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급진파와 온건파 양측의 인정을 받던 이동휘가 사라지면서 한인사회당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다. 총리 대행을 맡았던 [[신채호 (개화)|신채호]]와 당 부의장 [[김립 (개화)|김립]]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었지만,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로 급진파와 온건파 양쪽 모두로부터 불호를 받았기에, 김립은 [[코민테른 (개화)|국제공산당]]으로부터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개화)|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인해 당 내에서 큰 힘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온건파와 급진파를 중재하는 데에 실패했다. | 하지만 이듬해인 1935년 이동휘가 급사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급진파와 온건파 양측의 인정을 받던 이동휘가 사라지면서 한인사회당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다. 총리 대행을 맡았던 [[신채호 (개화)|신채호]]와 당 부의장 [[김립 (개화)|김립]]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었지만,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로 급진파와 온건파 양쪽 모두로부터 불호를 받았기에, 김립은 [[코민테른 (개화)|국제공산당]]으로부터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개화)|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인해 당 내에서 큰 힘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온건파와 급진파를 중재하는 데에 실패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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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구조개혁주의|그동안 대한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은 지나치게 온건하고 현실안주적이었다. 이제 대한 인민은 [[대한공산당 (개화)|진정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대한인민공화국|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박헌영 (개화)|박헌영]], 제11대 의장 취임사 중}} | {{인용문|[[구조개혁주의|그동안 대한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은 지나치게 온건하고 현실안주적이었다. 이제 대한 인민은 [[대한공산당 (개화)|진정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대한인민공화국|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박헌영 (개화)|박헌영]], 제11대 의장 취임사 중}} | ||
유동열은 국무총리 사퇴를 거부하고 의회를 해산,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렇게 하여 치러진 선거가 [[제14회 대한민국 | 유동열은 국무총리 사퇴를 거부하고 의회를 해산,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렇게 하여 치러진 선거가 [[제14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1935년 제14회 총선]]이다. 14회 총선에서 [[대한국민회 (개화)|국민회]]와 [[대한민주당 (개화)|민주당]]은 선거연대를 꾸려 집권에 성공한 반면 사회주의 진영은 지지율도 낮아진 상황에서 한인사회당과 사회민주당으로 분열된 상태였던지라 표가 분산되어 한인사회당은 의석을 절반 이상 잃으며 실권했다. | ||
[[제14회 대한민국 | [[제14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14회 총선]]에서의 참패 이후 의장 [[유동열 (개화)|유동열]]의 리더십이 흔들렸다. 이미 온건파는 탈당해 [[사회민주당 (개화)|다른 살림]]을 꾸린 상태였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성향의 [[박헌영 (개화)|박헌영]]계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성향인 유동열계에 도전해왔다. 결국 유동열은 박헌영계의 압박에 총선 패배와 분열의 책임을 지고 1935년 11월 의장직을 내려놓았다. | ||
이후 또다시 열린 임시전당대회에서 박헌영이 의장에 당선되면서 당은 더욱 좌경화되었다. 박헌영은 당명을 [[대함공산당 (개화)|대한공산당]]으로 바꾸고 더욱 좌경화된 당 강령과 노선을 제정하였다. | 이후 또다시 열린 임시전당대회에서 박헌영이 의장에 당선되면서 당은 더욱 좌경화되었다. 박헌영은 당명을 [[대함공산당 (개화)|대한공산당]]으로 바꾸고 더욱 좌경화된 당 강령과 노선을 제정하였다. | ||
2023년 3월 1일 (수) 17:51 판
아쎄이! 이 문서에 들어왔다면 희망을 버려라!!
총리
고증 無
KSP
gaewha
KNA
juksan
run and rhee
김구 피살
재건정부
치올코우스키 전투
- ↑ 당시 명칭으로는 블라디보스토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