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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28일 (목) 07:46 판
| 박헌영주의 선전물 | |
| 언어별 명칭 | |
| 조선말 | 박헌영주의 |
| 한국어 | |
| 영어 | Pakhonyongism |
| 중국어 | |
| 일본어 | |
개요
| 동지 여러분, 삶이 좋아졌습니다. 삶이 더 행복해졌습니다. 그리고 인생이 즐거울 때 일도 좋습니다. 우리의 삶이 나쁘고, 보기 흉하고, 불행했다면 지금의 조선이 있었겠습니까? 1955년 최고인민회의 회의 당시 박헌영 전 내각 수상이 한 연설 중[1] |
1953년부터 수십년간 조선을 통치한 박헌영 전 내각 수상의 통치 이념.
조선의 독재 정당인 조선로동당 당규에도 '공산주의 사상과 더불어 당이 따라야 하는 제1의 이념'으로 규정되어 있으며, 조선로동당 일당제 국가로 '조선로동당의 뜻이 곧 국가의 뜻'과 같은 조선에서의 그 위상과 영향력은 상당한 수준이다.
배경
내용
자본주의적 시스템의 시범 도입
박헌영주의는 소련의 경제학자인 에브세이 리베르만(러시아어: Евсей Либерман)이 제기한 사회주의 계획경제 체제의 개혁, 개선과 노동자의 물적 자극, 생산성 증진에 관한 논쟁인 리베르만 논쟁에서 영향을 받아 자본주의적 시스템이 일부 반영된 형태를 띄고 있다.
기존의 공산주의와 계획경제 체제는 생산수단의 공유화와 평등 분배를 중점으로 삼았다. 하지만 평등 분배는 결국 '내가 열심히 일해도 돌아오는 건 똑같은데, 뭣하러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거야?' 라는 의문점을 낳게 되었다. 이에 리베르만 논쟁에서는 노동자들의 물적 자극을 위해 자본주의적 요소인 시장경제를 도입하되, 가격 요소를 사회주의 체제 하에서 투명하게 결정될 수 있도록 하자고 제기하였으며 박헌영주의는 여기서 영향을 받아 실험적인 경제적 탈집중화에 초점을 맞췄다.
권위주의적 철권통치
여담
- 생전 박헌영 본인은 박헌영주의를 박헌영주의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는 박헌영주의를 '인민생활의 질적 향상을 위한 조선식 사회주의'라고 칭했으나 그의 뒤를 이은 강성산이 이를 '박헌영주의'라고 함축하면서 현재는 조선로동당도 이를 박헌영주의라고 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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