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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1944년 11월 20일, [[태평양전쟁 (개화)|태평양전쟁]] 도중 대한민국의 제18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개화)|국무총리]]인 [[김창암 (개화)|김창암]]이 [[대한청년적위대 (개화)|대한청년적위대]] 단원 [[김천호 (개화)|김천호]] 일당에게 백주대낮에 살해된 사건.


==전개==
1944년 11월 20일,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 (개화)|태평양전쟁]]은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날 역시 김창암 총리는 관저에서 나와 기자들과 짧은 질의응답을 하고 총리부 청사로 출근하기 위해 집 앞에서 대기하던 관용차를 탔다.
차가 이동하던 중 다른 차 한 대가 김참암이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박았다. 다행히도 김칭암 총리와 운전기사가 가벼운 부상을 입은 걸로 끝났고 사고 직후 두 명의 청년이 사고 현장에 모여든 인파 속에서 나와 차로 접근하더니 김창암 총리와 일행이 차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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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그 두 명의 청년은 품 속에서 기관단총을 꺼내 김창암과 김창암의 보좌관인 선우진<ref>성이 선우고 이름이 진이다.</ref>, 운전기사에게 총을 난사했다. 특히 암살범들은 김창암에게만 최소 30여 발을 쏘았다.
사람들이 급작스러운 총격에 놀라 흩어지자 암살범들은 도망쳤다. 보좌관 선우진과 운전기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으나 김창암 총리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김창암을 살해한 범인 2명은 도주하였으나 사건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장경찰들의 총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범인과 배후==
경찰은 사살된 남자들의 지문을 통해 그들이 과거 [[대한공산당 (개화)|대한공산당]] 산하조직인 대한청년전위대에서 활동하다가 수감되었었던 이들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곧 대한공산당을 사건의 배후라고 판단, 수사를 시작하였다.
==영향==
==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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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3월 19일 (일) 12:53 판

김구 피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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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암 총리 피살사건
金昌巖總理被殺事件
Assassination of Prime Minister Kim Chang-am
▲ 당시 조선일보 기사[1]
발생일시 1944년 11월 20일 오전 7시 40분 경
유형 살인, 적색테러
발생 위치 서울특별시 종로구
피의자 김천호 (金天浩, 26세) 등 4인[2]
동기 대한공산당 잔여세력의 대한민국 체제전복 기도
피해자 김창암 (제15대 대한민국 국무총리)

개요

1944년 11월 20일, 태평양전쟁 도중 대한민국의 제18대 국무총리김창암대한청년적위대 단원 김천호 일당에게 백주대낮에 살해된 사건.

전개

1944년 11월 20일,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전쟁은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었다.

그날 역시 김창암 총리는 관저에서 나와 기자들과 짧은 질의응답을 하고 총리부 청사로 출근하기 위해 집 앞에서 대기하던 관용차를 탔다.

차가 이동하던 중 다른 차 한 대가 김참암이 타고 있던 차를 들이박았다. 다행히도 김칭암 총리와 운전기사가 가벼운 부상을 입은 걸로 끝났고 사고 직후 두 명의 청년이 사고 현장에 모여든 인파 속에서 나와 차로 접근하더니 김창암 총리와 일행이 차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고맙네, 자네들.
김창암이 자신을 도와준 청년들에게 한 말.[3] 이 말이 사실상 그의 유언이 되었다.

그 순간, 그 두 명의 청년은 품 속에서 기관단총을 꺼내 김창암과 김창암의 보좌관인 선우진[4], 운전기사에게 총을 난사했다. 특히 암살범들은 김창암에게만 최소 30여 발을 쏘았다.

사람들이 급작스러운 총격에 놀라 흩어지자 암살범들은 도망쳤다. 보좌관 선우진과 운전기사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구했으나 김창암 총리는 현장에서 즉사했다.

김창암을 살해한 범인 2명은 도주하였으나 사건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무장경찰들의 총격을 받고 사살되었다.

범인과 배후

경찰은 사살된 남자들의 지문을 통해 그들이 과거 대한공산당 산하조직인 대한청년전위대에서 활동하다가 수감되었었던 이들이라는 것을 확인했고, 곧 대한공산당을 사건의 배후라고 판단, 수사를 시작하였다.

영향

각주

  1. 기사 제목은 '김총리 급서에 각계애도'
  2. 실제로 암살을 실행한 인원 수. 준비와 계획 과정에 연루된 사람의 수는 더 많다.
  3. 보좌관 선우진과 운전기사의 증언.
  4. 성이 선우고 이름이 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