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大韓民國 / Republic of Korea)은 동북아시아에 위치한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은 1392년에 건국된 조선을 전신으로 하며, 개화와 함께 1889년 대한국으로 국명을 개칭했다가 1895년 아관파천의 여파로 공화정으로 전환되어 현재와 같은 모습인 대한민국이 건국되었다.
1882년 한국 최초의 근대적 조약인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을 앞두고 미국 측이 조약체결을 위해 조선 측도 국기가 필요하다고 요구하자 이에 당시 협상 실무진에 속한 외교관이었던 이응준이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후 약간의 수정을 거쳐 1883년 태극기는 정식으로 국기로 선포되었다.
이후 1895년 입헌군주제를 명시한 대한국 국제(헌법)로 인해 권력이 크게 제약당한 고종이 전제군주제를 복원하기 위해 아관파천 사태를 일으키자 대한국 중추원은 공화국을 선포하였고 이와 함께 태극기를 수정하여 현재와 같은 형태의 태극기가 완성되게 되었다.
대한국 시절에는 국가의 안녕과 황제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대한국 애국가를 국가로 사용했으나 공화제 전환 이후 국가를 대한민국 애국가로 변경하였다. 영국 스코틀랜드의 민요인 올드 랭 사인의 곡조에 애국지사 윤치호가 만든 가사를 붙인 대한민국 애국가는 1896년부터 1937년까지 약 40여 년 간 사용되었다. 하지만 외국 민요를 국가의 곡조로 사용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에 1937년 당시 총리였던 안창호의 요청으로 민족주의 음악가 안익태가 자신이 작곡한 한국환상곡의 곡조 일부에 윤치호가 만든 기존의 가사를 붙여 무궁화 삼천리라는 이름의 새 국가를 만들었고, 이를 중추원이 헌법 개정을 통해 국가로 채택하였다.
저작권자는 대한민국 정부이다. 기존의 저작권자였던 안익태가 국가 채택과 함께 저작권을 정부에 이양했기 때문이다.
중추원은 대한민국 헌법과 법률을 제정, 개정, 폐지할 수 있다. 법률안의 경우 중추원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인원 과반수 동의가 필요하며 헌법의 경우 중추원 의원의 2/3 이상의 동의가 팔요하다. 또 중추원은 국무총리를 선출하거나 불신임할 수 있으며 국무원에 대한 국정조사, 국정감사를 실시할 수 있다.
의원의 임기는 4년이지만 의회 해산이 종종 있으므로 평균 임기는 이보다 짧다. 국무총리에게 중추원 해산권이 있으나 중추원이 재적 의원의 과반 찬성을 통해 자체적으로 해산할 수 있다.
대법원
국무원
국무원은 대한민국의 행정부이다. 국무원의 정책 결정기구는 내각이며 내각의 장은 국무총리이다.
국무총리는 행정각부를 통할하고 부총리, 국무장관, 특임장관, 내각사무처장, 내각원, 헌법재판관 등을 임명, 면직할 수 있으며[13] 중추원을 해산할 수 있으나 중추원이 통과시킨 법률안을 거부할 수는 없다.
국무총리는 새 총선이 있을 때마다 총선 직후 중추원에서의 투표로 선출되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을 경우 1위 득표자와 2위 득표자 간의 결선투표를 실시한다. 중추원 의원의 과반수의 찬상으로 불신임돨 수 있으며, 이 경우 총리는 총리직에서 사퇴하거나, 중추원을 해산하고 새 총선을 치룰 수 있다.
정식 국호는 대한국(재건정부)이었으나 대한민국 정부와 대한인민공화국 정부는 동래정권 혹은 동래괴뢰정권이라고 불렀으며, 현대에 이르러서도 보통 동래정권이라 불린다.
일본이 중국에 세운 괴뢰국인 중화민국 남경국민정부가 왕징웨이 정권이라고 불리는 것과 달리 대한국 재건정부는 윤치호 장권이라 불리지 않는데, 이는 왕징웨이 달리 윤치호는 반강제로 괴뢰정부 수장이 되었고 울며 겨자먹기로 수상직을 슈락한 후에도 일본에 비협조적인 태도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정부가 위치해있던 동래부의 이름을 따 동래정권이라 부른다.
역사
정치
동래정권은 일본과의 동군연합을 기반으로 하는 입한군주제, 의원내각제 국가를 표방하였다. 주한일본군사령부는 대한민국 정부를 불법정부로 규정하고 대란민국 이전에 존재했던 입헌군주국인 대한국을 재건하였다는 의미에서 괴뢰정권의 이름을 '대한국 재건정부'라고 붙였다.
하지만 동래정권은 실제로는 일본의 완벽한 괴뢰국이었다. 일본은 총리와 각 부 장관을 한국인으로 두되 각 부의 실권 고문에 일본인을 임명해 한국인 장관은 사실상 권력이 전혀 없었다. 정부 운영 경비는 대부분 일본이 제공했으며 치안 역시 일본군이 담당하였다.
각료 임용사
일본은 각부 장관에 한국인을 임명해 독립국의 구색을 맞추어 명목상으로나마 동래정권을 한반도 유일의 합법정부라고 선전했으나 일본이 장관으로 점찍은 인물들은 한결같이 장관직을 거부했다. 총리의 경우 지역원로 윤치호를 임명하려 했으나 윤치호는 괴뢰정부의 총리직을 맡을 생각이 전혀 없었고 일본군의 협박에 마지못해 총리직을 받아들였다. 다른 장관들도 사정은 마찬가지였기에 괴뢰정부의 주요 인사들은 전후에도 괴뢰정부에서의 의도적인 태업이 인정되어 처벌받지는 않았다.
군사
동래정권은 보안군이라는 이름으로 군대를 운용하였다. 총병력은 10만 명으로 계획되었으나 지원자가 없어 최대 병력은 4천 명에 불과했으며 훈련도도 낮아 실전 투입은 되지 못했다. 국군은 보통 괴뢰군이리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