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296번째 줄: |
296번째 줄: |
| |} | | |} |
| {{-}} | | {{-}} |
| ==각주==
| |
| {{글 숨김 끝}}
| |
|
| |
| =KSP=
| |
| {{글 숨김}}
| |
| {{개화 배너}}
| |
| [[분류:개화]][[분류:개화/정치]][[분류:사회주의 정당]]
| |
| {| class="wikitable" style="font-size:10pt; color:#000; max-width:420px; float:right; border:2px solid #B80000;"
| |
| |-
| |
| | colspan="2" align=center style="background-color: transparent ; width:420px; height:85px;" | [[파일:한인사회당 (개화) 로고.png|400px]]
| |
| |-
| |
| ! colspan="2" style="background-color:#B80000 ; color:#fff;" | {{large|한인사회당}}
| |
| |-
| |
| ! width=30% style="color:#B80000;" | 한문명
| |
| | 韓人社會黨
| |
| |-
| |
| ! style="color:#B80000;" | 영문명
| |
| | Korean Socialist Party (KSP)
| |
| |-
| |
| ! style="color:#B80000;" | 창당일
| |
| | [[1917년]] [[5월 11일]]
| |
| |-
| |
| ! width=30% style="color:#B80000;" | 전신
| |
| | [[노동자협회 (개화)|노동자협회]]
| |
| |-
| |
| ! style="color:#B80000" | 분리된 정당
| |
| | {{사회민주당 (개화)}} <sub>/ 1935년 분당</sub>
| |
| |-
| |
| ! style="color:#B80000;" | 해산일
| |
| | [[1938년]] [[9월 5일]]
| |
| |-
| |
| ! style="color:#B80000" | 후신
| |
| | {{대한공산당 (개화)}} (주류)<br>{{국민사회당 (개화)}}<br>{{자주인연맹 (개화)}}
| |
| |-
| |
| ! style="color:#B80000;" | 역대 총리
| |
| | [[양기탁 (개화)|양기탁]] <sub>/ 제13대 • 1930~1934</sub><br>[[이동휘 (개화)|이동휘]] <sub>/ 제14대 • 1934~1935</sub><br>[[유동열 (개화)|유동열]] <sub>/ 제15대 • 1935</sub>
| |
| |-
| |
| ! style="color:#B80000;" | 의장
| |
| | [[이동휘 (개화)|이동휘]] <sub>/ 초대</sub><br>[[박헌영 (개화)|박헌영]] <sub>/ 말대</sub>
| |
| |-
| |
| ! style="color:#B80000;" | 이념
| |
| | '''• 1917-1935'''<br>'''[[사회주의]]'''<br>[[사회민주주의|베른슈타인주의]], [[구조개혁주의]]<sup> (사회당 우파)</sup><br>[[혁명적 사회주의]], [[좌익민족주의]]<sup> (사회당 좌파)</sup>{{구분선}}'''• 1935-1938'''<br>'''[[혁명적 사회주의]]'''<br>[[마르크스-레닌주의]]<sup> (박헌영계)</sup><br>[[좌익민족주의]]<sup> (유동열계)</sup>
| |
| |-
| |
| ! style="color:#B80000;" | 스펙트럼
| |
| | '''• 1917~1935'''<br>좌파 빅텐트 (중도~극좌){{구분선}}'''• 1935~1938'''<br>좌익 ~ 극좌
| |
| |-
| |
| ! style="color:#B80000;" | 국민의원
| |
| | style="background: linear-gradient(to right, #B80000 11.67%, #aaa 11.67%); color:#fff;" | '''35석 / 300석 (11.7%)'''<ref>해산 당시 기준</ref>
| |
| |-
| |
| ! rowspan="1" style="color:#B80000;" | 당색
| |
| | <div style="display: inline; padding: 1.5px 3px; border-radius: 3.5px; color: #fff; background-color:#B80000; font-size: 0.95em; max-width=70px;">'''적색''' {{글씨 크기|9|(#B80000)}}'''</div>
| |
| |-
| |
| ! Rowspan="2"; style="color:#B80000;" | 국제조직
| |
| |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개화)}} (1919~1935)
| |
| |-
| |
| |{{코민테른 (개화)}} (1935~1938)
| |
| |-
| |
| |}
| |
| {{목차}}
| |
| {{-}}
| |
| ==개요==
| |
| 1917년부터 1938년까지 존재했던 [[대한민국 (개화)|대한민국]]의 사회주의 정당. 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정당이었다.
| |
|
| |
| ==역사==
| |
| ===창당===
| |
| 20세기 초, 사회주의 성향의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 당선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대한민국 중추원 (개화)|중추원]]에서 [[노동자협회 (개화)|노동자협회]]라는 이름의 교섭단체를 만들어 활동했는데, 노동자의 처우 개선, 근로기준법 제정, 노조 활동 방해 금지 등을 요구하였다. 노동자협회는 [[제1차 세계대전 (개화)|1차 세계대전]] 당시 반전운동을 벌였으나 별 파장을 일으키지는 못했다.
| |
|
| |
| 이에 노동자협회 지도부와 회원들은 조직화된 정당의 필요성을 느꼈고 1917년 한인사회당을 창당했다. 초대 의장으로는 노동자협회 회원 중 대중인지도가 가장 높은 [[이동휘 (개화)|이동휘]]가 추대되었다.
| |
|
| |
| ===성장과 집권===
| |
| 급속도로 진행되는 산업화에 도시 노동자들의 수 역시 급속도로 늘었고, 사회당은 이들을 기반으로 계속 성장했다. 1927년, 공장 관리진 측의 부당한 대우에 원산 노동자연합회가 전면적 파업을 일으킨 [[원산 총파업 (개화)|원산 총파업]] 당시 당 지도부가 총출동하여 파업을 지원하며 그 세력이 급속도로 불었다.
| |
|
| |
| 1929년 이후 [[세계대공황 (개화)|세계대공황]]의 여파로 한국의 경제가 깊은 침체에 빠지자 지지율이 급격히 상승했다. 이후 [[12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30년 총선]]에서 과반의 집권여당이었던 [[자유당 (개화)|자유당]]이 제3당으로 굴어떨어지고 한인사회당이 [[대한국민회]]를 제치고 [[대한민국 중추원 (개화)|중추원]]에서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서 집권에 성공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사회주의 정당이 민주적으로 집권한 첫 사례였다.<ref>아시아 최초의 사회주의 집권정당은 1924년 집권한 몽골 인민혁명당. 다만 민주적인 방법으로 집권하지 않았다.</ref>
| |
|
| |
| 총리로 선출된 이는 사회당 온건파의 거두 [[양기탁 (개화)|양기탁]]이었다. 양기탁 내각은 최저임금제도를 도입하고 노조의 대표성을 강화하는 등 여러 정책으로 노동자들의 호응을 얻어냈다. 하지만 양기탁 내각은 농촌 문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ref>한인사회당의 주 지지기반이 도시 노동자였기 때문에 대부분의 한인사회당 인사들은 농촌문제에는 무지했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ref> 경제 정책 역시 이전 수권 정당들에 비해 상당히 투박했다. 이런 상황에서 [[유동열 (개화)|유동열]], [[김안산 (개화)|김안산]]<ref>러시아어 이름은 김알렉산드라.</ref>, [[박한영 (개화)|박헌영]] 등 사회당 급진파는 더 급진적인 사회주의 정책을 요구했고 [[대한국민회 (개화)|대한국민회]]와 [[대한민주당 (개화)|대한민주당]], 그리고 [[자유당 (개화)|자유당]]은 한인사회당이 소련 공산당으로부터 집권 축하 편지를 받은 것을 문제삼아 사회당을 소련의 프락치 정당이라는 주장을 하며 파상공세를 가했다.
| |
|
| |
| 안팎의 압박에 결국 양기탁은 총리직에서 사퇴했고 온건파와 급진파의 대립을 중재하던 [[이동휘 (개화)|이동휘]]가 당 의장에 추대되어 총리직에 취임했다.
| |
|
| |
| ===분열과 쇠퇴===
| |
| {| class="wikitable" style="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font-size:10pt; border: 3px solid #B80000; float: left;"
| |
| | colspan="1" style="background-color:#B80000; border:1px solid #fff; text-align: center;" | <div style="margin: -4px -9px">[[파일:한인사회당 지도부.jpg|600px]]</div>
| |
| |-
| |
| | colspan="1" style="color:#fff; background-color:#B80000; text-align: center; width: 400px; font-size: 10pt;" | '''이동휘와 한인사회당 9기 지도부'''<ref>검은바지 콧수염이 이동휘. 앞줄 맨 오른쪽이 부의장 [[김립 (개화)|김립]]</ref>
| |
| |-
| |
| |}
| |
| [[이동휘 (개화)|이동휘]]는 당내외의 걱정을 뒤엎고 상당히 안정적으로 국정을 운영하였고 1934년에 치루어진 [[제13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13회 총선]]에서 한인사회당은 원내 1당 지위를 유지하였다. 한인사회당은 과반에 조금 못 미치는 의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극우 [[민족단결연맹 (개화)|민족단결연맹]]의 약진으로 국민회, 민주당, 자유당이 연립하여도 한인사회당의 의석수보다 적었기에 한인사회당은 내각구성권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사회당만의 단독 소수내각을 꾸리기에는 국정운영의 차질이 불가피해 보였기에 이동휘는 안정적인 국정운영을 위해 자유당과의 연정을 시도하였고 교섭 끝에 연정이 성사되었다.
| |
|
| |
| 하지만 이듬해인 1935년 이동휘가 급사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급진파와 온건파 양측의 인정을 받던 이동휘가 사라지면서 한인사회당은 극심한 내분에 휩싸였다. 총리 대행을 맡았던 [[신채호 (개화)|신채호]]와 당 부의장 [[김립 (개화)|김립]]이 사태를 수습해야 했었지만, 신채호는 무정부주의자로 급진파와 온건파 양쪽 모두로부터 불호를 받았기에, 김립은 [[코민테른 (개화)|국제공산당]]으로부터 [[국제공산당 자금사건 (개화)|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으로 인해 당 내에서 큰 힘을 쓸 수 없었고 결국 온건파와 급진파를 중재하는 데에 실패했다.
| |
|
| |
| 유일한 중재자가 사라지면서, 급진파와 온건파는 외나무다리 위에서 맞붙게 되었다. 양측은 차기 의장을 뽑을 전당대회에 사활을 걸었는데, 1935년 3월에서 4월에 걸쳐 치루어진 임시 전당대회에서 급진파의 지지를 받은 [[유동열 (개화)|유동열]]이 온건파의 지지를 받은 [[조용은 (개화)|조용은]]을 아주 근소한 차이로 누르고 의장에 선출되면서 국무총리에 취임했다. 취임 직후 유동열이 사회당의 [[코민테른 (개화)|코민테른]] 가입 추진을 선언하자 이에 [[자유당 (개화)|자유당]]이 반발해 연정 탈퇴를 선언하였다.
| |
|
| |
| 총리 선출 직후 [[민족단결연맹 (개화)|민족단결연맹]]에 의해 발의된 내각불신임안이 민단련, 국민회, 민주당, 자유당에 의해 통과되었다. 이에 사회당 온건파는 시국선언문을 발표해 총리 [[유동열 (개화)|유동열]]에게 코민테른 가입 추진 선언을 철회해 타 정당들을 안심시킬 것을 요구하며 그렇지 않을 시에는 탈당하겠다고 급진파를 압박했으나 사회당 급진파는 시국선언문을 낭독한 [[조용은 (개화)|조용은]], [[안공근 (개화)|안공근]] 등 온건파 인사들을 해당행위를 이유로 제명했고 이에 반발한 온건파는 집단 탈당 후 [[사회민주당 (개화)|사회민주당]]을 창당했다.
| |
| {{-}}
| |
|
| |
| ===몰락===
| |
| {{인용문|[[구조개혁주의|그동안 대한에서의 사회주의 운동]]은 지나치게 온건하고 현실안주적이었다. 이제 대한 인민은 [[대한공산당 (개화)|진정한 사회주의가 무엇인지]]를 [[대한인민공화국|두 눈으로 똑똑히 보게 될 것이다.]]|[[박헌영 (개화)|박헌영]], 제11대 의장 취임사 중}}
| |
|
| |
| 유동열은 국무총리 사퇴를 거부하고 의회를 해산, 총선거를 실시했다. 이렇게 하여 치러진 선거가 [[제14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1935년 제14회 총선]]이다. 14회 총선에서 [[대한국민회 (개화)|국민회]]와 [[대한민주당 (개화)|민주당]]은 선거연대를 꾸려 집권에 성공한 반면 사회주의 진영은 지지율도 낮아진 상황에서 한인사회당과 사회민주당으로 분열된 상태였던지라 표가 분산되어 한인사회당은 의석을 절반 이상 잃으며 실권했다.
| |
|
| |
| [[제14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 (개화)|14회 총선]]에서의 참패 이후 의장 [[유동열 (개화)|유동열]]의 리더십이 흔들렸다. 이미 온건파는 탈당해 [[사회민주당 (개화)|다른 살림]]을 꾸린 상태였고 마르크스-레닌주의 성향의 [[박헌영 (개화)|박헌영]]계가 민족주의적 사회주의 성향인 유동열계에 도전해왔다. 결국 유동열은 박헌영계의 압박에 총선 패배와 분열의 책임을 지고 1935년 11월 의장직을 내려놓았다.
| |
|
| |
| 이후 또다시 열린 임시전당대회에서 박헌영이 의장에 당선되면서 당은 더욱 좌경화되었다. 박헌영은 당명을 [[대함공산당 (개화)|대한공산당]]으로 바꾸고 더욱 좌경화된 당 강령과 노선을 제정하였다.
| |
|
| |
| {{본문|대한공산당 (개화)}}
| |
|
| |
| ==성향==
| |
| ===초중기===
| |
| {{인용문|사실은 나도 우리 당에 존재하는 정파가 정확히 몇 개인지 모른다. 나 외에도 아무도 모를 것이다.|[[양기탁 (개화)|양기탁]] 당시 국무총리겸 당의장, 1931년}}
| |
| 초기에서 중기까지의 한인사회당은 극좌 레닌주의자부터 중도에 가까운 개혁주의자까지 아주 넓은 스펙트럼의 인사들이 모인 정당이었다.
| |
|
| |
| * '''온건파:''' [[양기탁 (개화)|양기탁]], [[이동녕 (개화)|이동녕]] 등의 온건파는 독일의 온건좌파 정치사상가 [[베른슈타인]]의 영향을 받아 시대에 따른 자본주의의 변화에 주목하였고, 이에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조화를 통한 민주적 복지국가 건설을 목표로 하였다. 이들은 폭력혁명을 부정하였으며 자본주의의 다음 발전단계가 사회주의라는 마르크스의 전제에도 의문을 제시했다.
| |
|
| |
| * '''급진파:''' [[유동열 (개화)|유동열]], [[김안산 (개화)|김안산]], [[박헌영 (개화)|박헌영]] 등의 급진파는 세계 자본주의가 수십 년 내로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고 예측하였고, 사회주의 혁명을 통핸 프롤레타리아 국가의 수립을 목표로 하였다. 다만 이들은 의회민주주의에는 회의적이었으나 한국의 견고한 의회민주주의 체제 하에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의회 진출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 |
|
| |
| * '''중립파:''' [[이동휘 (개화)|이동휘]], [[김립 (개화)|김립]] 등의 민족주의적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서 사회주의로의 이행이 필연이라고 보았으나 급진파와는 달리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에서의 사회주의 체제 수립 과정이 민주적이고 평화적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이들은 의회민주주의에도 긍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 |
|
| |
| 위에 나온 3대 정파 외에도 수많은 군소정파들이 사회당 내에 존재했다. 이렇게 지나치게 넓은 스펙트럼은 사회당 분당과 쇠퇴의 단초가 되었다.
| |
|
| |
| ===말기===
| |
| 유동열이 의장으로 선출된 이후, 구조개혁주의를 주장하던 당내 온건파가 사회민주당으로 떨어져 나가면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만 남은 한인사회당은 급격히 좌경화되었다. 그 상황에서 사회당 내에는 다시 두 가지 정파가 대두되었다. 하나는 유동열로 대표되는 좌익민족주의 계열이었도 또다른 하나는 박헌영으로 대표되는 친소 마르크스-레닌주의 계열이었다.
| |
|
| |
| 유동열이 의장이었던 시기에는 좌익민족주의 계열이 주도하고 레닌주의 계열이 그들을 견제하는 모양새였지만 박헌영이 당권을 잡은 후에는 레닌주의 계열이 당을 완벽하게 장악했다.
| |
|
| |
| ==당가==
| |
| {| class="wikitable" style="margin-left:auto; margin-right:auto; max-width:400px; text-align:center; border:2px solid #B80000;"
| |
| |-
| |
| ! colspan="2" style="margin: -5px -10px; padding: 5px 10px; background:#B80000; color:#fff;" | 한인사회당 당가<br>{{글씨 크기|14|인터내셔널가}}<br>''The Internationale''
| |
| |-
| |
| | <div style="margin: -5.0px -9.0px">{{youtube|5UOWiiPEKaE|650px}}</div><div style="margin: -11.5px 0px"></div>
| |
| |}
| |
| {{인용문|깨어라, 노동자의 연대 굴레를 벗어 던져라<br>
| |
| 정의는 분화구의 불길처럼 힘차게 타온다<br>
| |
| 대지의 저주받은 땅에 새 세계를 펼칠 때<br>
| |
| 어떠한 낡은 쇠사슬도 우리를 막지 못 해
| |
|
| |
| 들어라 최후 결전 투쟁의 외침을<br>
| |
| 민중이여 해방의 깃발 아래 서자<br>
| |
| 역사의 참된 주인 승리를 위하여<br>
| |
| 참 자유 평등 그 길로 힘차게 나가자!
| |
|
| |
| 인터내셔널 깃발 아래 전진 또 전진!|한인사회당 당가 <인터내셔널가>}}
| |
| 창당과 함께 채택된 당가. 인터내셔널가를 한국어로 개사해 사용하였다.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인 [[김안산 (개화)|김안산]]이 개사하였다. 사회당 온건파는 가사가 너무 급진적이라고 불만이었다고 하는데, [[이동휘 (개화)|이동휘]], [[신채호 (개화)|신채호]] 등 당 내 중립적인 인사들이 그냥 쓰자(...)고 해서<ref>실제로는 가사가 뭐 어때서 그러냐고 했다고 한다.</ref> 채택되었다고 한다.
| |
|
| |
| 인터내셔널가는 한인사회당의 후신인 [[대한공산당 (개화)|대한공산당]], [[국민사회당 (개화)|국민사회당]], [[자주인연맹 (개화)|자주인연맹]] 등에서 사용되었으나 인터내셔널가를 불호하던 사회당 온건파가 창당한 [[사회민주당 (개화)|사회민주당]]은 독자적인 당가를 작곡해 쓴다.
| |
|
| |
| ==역대 지도부==
| |
| {{역대 한인사회당 (개화) 의장}}
| |
| 한인사회당은 의장이 당의 대표였다. 의장의 임기는 2년으로, 중임이 가능했다. 의장은 2년에 한 번 치러지는 전당대회에서 선출되었는데, 1차 투표에서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상위 후보 4명을 뽑아 2차 투표를, 2차 투표에서도 과반수 득표자가 없으면 그중애서 상위 후보 2명을 뽑아 3차 투표를 치러 선출하였다.
| |
|
| |
| ==역대 선거 결과==
| |
| {| class="wikitable" style="margin-left: auto; margin-right: auto; text-align: center; border:2px solid #B80000;"
| |
| |-
| |
|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B80000;" | 연도
| |
|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B80000;" | 지도자
| |
| ! colspan="1" style="width: 30%; 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B80000;" | 의석수 (의석율)
| |
|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B80000;" | 의석증감
| |
| ! colspan="1" style="font-size: 10pt; color: #fff; background: #B80000;" | 지위
| |
| |-
| |
| | [[제8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18]]
| |
| | rowspan="2"| [[이동휘 (개화)|이동휘]]
| |
| | {{정당 정보/의석|9|200|#B80000|per=2|width=100%}}
| |
| | {{증가}} 2석<br><small>{{증가 소}} 1%</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FDE3E2;" | 제2야당
| |
| |-
| |
| | [[제9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19]]
| |
| | {{정당 정보/의석|17|250|#B80000|per=2|width=100%}}
| |
| | {{증가}} 8석<br>{{증가 소}}<small> 2.3%</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FDE3E2;" | 제2야당
| |
| |-
| |
| | [[제10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23]]
| |
| | rowspan="1"| [[이동녕 (개화)|이동녕]]
| |
| | {{정당 정보/의석|39|250|#B80000|per=2|width=100%}}
| |
| | {{증가}} 22석<br>{{증가 소}}<small> 8.8%</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FDE3E2;" | 제2야당
| |
| |-
| |
| | [[제11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26]]
| |
| | rowspan="1"| [[홍범도 (개화)|홍범도]]
| |
| | {{정당 정보/의석|37|250|#B80000|per=2|width=100%}}
| |
| | {{감소}} 2석<br>{{감소 소}}<small> 0.8%</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FDE3E2;" | 제2야당
| |
| |-
| |
| | [[제12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30]]
| |
| | rowspan="1"| [[양기탁 (개화)|양기탁]]
| |
| | {{정당 정보/의석|124|250|#B80000|per=2|width=100%}}
| |
| | {{증가}} 87석<br><small>{{증가 소}} 34.8%</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eeffee;" | '''여당'''
| |
| |-
| |
| | [[제13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34]]
| |
| | rowspan="1"| [[이동휘 (개화)|이동휘]]
| |
| | {{정당 정보/의석|115|250|#B80000|per=2|width=100%}}
| |
| | {{감소}} 9석<br><small>{{감소 소}} 3.6%</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eeffee;" | '''여당'''
| |
| |-
| |
| | [[제14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35]]
| |
| | rowspan="1"| [[유동열 (개화)|유동열]]
| |
| | {{정당 정보/의석|43|300|#B80000|per=2|width=100%}}
| |
| | {{감소}} 72석<br>{{감소 소}}<small> 31.7%</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FDE3E2;" | 제1야당
| |
| |-
| |
| | [[제15회 대한민국 중추원 의원 선거|1938]]
| |
| | rowspan="1"| [[박헌영 (개화)|박헌영]]
| |
| | {{정당 정보/의석|35|300|#B80000|per=2|width=100%}}
| |
| | {{감소}} 9석<br>{{감소 소}}<small> 3%</small>
| |
| | rowspan="1"; style="background:#FDE3E2;" | 제2야당
| |
| |-
| |
| |}
| |
|
| |
| ==각주== | | ==각주== |
| {{글 숨김 끝}} | | {{글 숨김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