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의 중도 정당. 1927년 창당된 만주의 최고(最古) 정당이다. 현지에서는 주로 민건회(民建会)라 줄여부른다.
역사
1927년,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만주의 첫 수상이 된 정샤오쉬는 총선을 치르고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가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세운 정당이 바로 민주건국회다.
민건회는 초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전샤오쉬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집권하였고, 정샤오쉬가 죽은 후에도 1940년까지 집권한다. 1940년, 제2차 극동전쟁이 발발하자 전시거국내각이 구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소 유화론을 펼치던 민건회 소속 수상인 시치아는 사임하였고 군인 출신의 협화회 소속 장징후이가 수상에 취임하면서 민건련은 13년만에 수상직을 상실했다.
성향
중도 - 중도좌파 정당으로, 만주 정치에서 개혁파 포지션을 담당하고 있다. 보통 사회적으로는 중도, 경제적으로는 중도좌파라고 평가받는다.
사회적으로는 보수 성향의 사회보수주의자와 진보 성향의 사회자유주의자가 당내에 혼재되어있어 정확한 성향을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다. 이로 인해 만주의 급진좌파 진영은 민건련을 사이비 진보정당, 혹은 심지어는 보수정당이라고까지 부른다.
경제적으로는 당원과 지도부 대부분이 수정자본주의를 지지한다. 복지 확대와 부자 증세, 국가 주도의 일자리 창출 등에 긍정적이다. 다만 사회주의(내지 사회민주주의)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만주군은 스스로의 전신을 청나라군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질적인 전신은 장징후이 등의 군벌 부대이다. 만주국이 건국된지 일주일 후인 1927년 모월모일에 강덕제를 통수권자로, 장하이펑을 총참모장으로 하여 창건되었다.
훈련중인 만주군 기관총부대 (1936)
초기에는 만주 내의 반만주국 군벌들을 토벌하기 위해 상당한 구모의 병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만주국에 대항하던 장쭤린, 마잔산 군벌이 와해된 이후에는 만주가 국방을 사실상 한국에 의존하여 만주군은 소규모 부대를 중심으로만 편제되었었지만 1936년 이웃한 녹우크라이나에서 치올코우스키 전투로 안보 위협이 가중되자 징병제를 급히 도입하고 군비를 대폭 증강하였다. 1940년 기준 민주군은 23만 명의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전차, 야포 등 중장비가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대전차포 등 대전차 무기가 부족하였다.
결국 제3차 극동전쟁 당시 소련군에게 탈탈 털렸고 모든 영토를 상실하여 1차 대전 당시의 벨기에 꼴이 되고 말았다. 이후 압록강에서 한국군과 함께 최후의 저항을 하다가 독소전쟁 발발로 소련이 곤경에 처해 미국의 중재로 평화협정이 체결되자 국토를 수복하였다.
냉전 당시 만주는 명목상으로는 중립국이었지만 실질적으로는 냉전의 최전선에 있는 상태였기에, 3차 극동전의 트라우마로 인해 만주는 아주 비대한 규모의 군대를 운용했다. 1970년에는 상비군이 100만 명에 이를 정도였다. 이후 데탕트를 거치며 군비 지출 등가속도가 감소하기 시작되었고 시작했고, 1980년대 중반 잠시 상승하였가다 소련의 붕괴 후 다시 감소했다. 이 추세는 200년대까지 이어져 2000년대의 연 군비증가율은 1% 내외였으며 병력은 40만 명까지 줄어들었다. 군축과 동시에 이라크, 아프가니스탄에 수천 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하기도 했다.
2010년댜에 들어서면서, 강력해진 중국이 과거 중국 영토였던 국가들에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대만, 티베트, 몽골은 물론 만주 역시 그 대상에 포함됐다. 이는 만주인들이 70년 전의 악몽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트라우마가 재발한 만주는 GDP 대비 국방비를 3.5%까지 늘리는 것을 목표로 빠른 속도로 군비 증강에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