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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7년(쇼와 2년) 3월 14일, 재무대신 카타오카 나오하루가 모종의 이유로 중의원 예산위원회 참여가 늦어지면서 '쇼와금융공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과 시데하라 기주로의 협조 외교 방침도 유지된다. 이로 인해 산동파병은 발생하지 않고, 장제스-와카쓰키 회담으로 일본과 국민당의 이해관계 조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 |||
그러나 국민당의 북벌과 정부의 온건한 대응에 군부, 특히 관동군은 불만이 많았고, 자칫했다가는 만주까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 결국 1928년(쇼와 3년) 6월 4일, 봉천군벌의 수장인 장쭤린이 탄 열차를 폭파시키며 그를 암살시킨다.(황고둔 사건) 관동군은 장쭤린의 뒤를 이은 어린 장쉐량이 일본에 순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국민당에 복종을 선언해버린다. | |||
황고둔 사건으로 만주가 국민당의 손에 넘어가자 일본은 전국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이에 시데하라 내각은 천황의 재가 하에 "황고둔사건 해결문서"를 공개, 사건의 모든 책임을 군부에게 돌리며 군부의 힘을 크게 축소시킨다. 이후 1930년(쇼와 5년) 4월 22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면서 군부는 다시 한 번 분노하였지만, 1932년(쇼와 7년), 혈맹단 사건 조사 도중 쿠데타 준비가 발각되면서 5.15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1936년(쇼와 11년), 2.26사건 또한 천황의 반대와 내각의 강경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 |||
결국 1947년, 총리가 된 시데하라 기주로에 의해 '군부대신 현역무관제'가 폐지되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 시도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냉전 시기 동안 핵개발과 경제개혁 등으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된 일본 제국은 1989년(헤이세이 원년) 10월 29일,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 |||
=국가= | =국가= | ||
2023년 10월 3일 (화) 13:54 판
| 민본 民本 | |
|---|---|
| 國民が選擧し、國民を代表し、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이 선거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 |
| 장르 | 대체역사, 동아시아사 |
| 제작자 | 제리코 |
| 시작일 | 2023년 9월 28일 (시작일로부터 +802일, 2주년) |
| 상징 색 | 빨간색 (#ad3f4c) |
| 저작권 | CC-0 |
개요
| 떠오르는 태양의 나라 |
| 國民が選擧し、國民を代表し、國民的勢力を中心とし 국민이 선거하고, 국민을 대표하고, 국민적 세력을 중심으로 사이토 다카오, 1940년 2월 2일 제국의회에서 행한 연설 중 |
제리코의 장편 대체역사 세계관이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의 과정을 거치며 민주주의 국가가 된 일본 제국과 동아시아를 다루고 있다.
세계관 제목인 민본(民本)은 다이쇼 데모크라시 시기에 도쿄제국대학 교수인 요시노 사쿠조(吉野作造)가 democracy를 '민본주의(民本主義)'로 해석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상세
| 민주주의와 자유주의에 대한 열망은 일본을 근본적으로 바꾸었습니다. 양당 정치는 제국의회에 뿌리를 내렸고 군부의 불온한 시도는 모두 실패하였습니다. 비록 대부분의 식민지를 상실하였지만 부국강병한 제국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습니다. |
1927년(쇼와 2년) 3월 14일, 재무대신 카타오카 나오하루가 모종의 이유로 중의원 예산위원회 참여가 늦어지면서 '쇼와금융공황'이 발생하지 않는다. 그 덕분에 와카쓰키 레이지로 내각과 시데하라 기주로의 협조 외교 방침도 유지된다. 이로 인해 산동파병은 발생하지 않고, 장제스-와카쓰키 회담으로 일본과 국민당의 이해관계 조정도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국민당의 북벌과 정부의 온건한 대응에 군부, 특히 관동군은 불만이 많았고, 자칫했다가는 만주까지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 생기게 된다. 결국 1928년(쇼와 3년) 6월 4일, 봉천군벌의 수장인 장쭤린이 탄 열차를 폭파시키며 그를 암살시킨다.(황고둔 사건) 관동군은 장쭤린의 뒤를 이은 어린 장쉐량이 일본에 순종적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예상과 다르게 국민당에 복종을 선언해버린다.
황고둔 사건으로 만주가 국민당의 손에 넘어가자 일본은 전국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다. 이에 시데하라 내각은 천황의 재가 하에 "황고둔사건 해결문서"를 공개, 사건의 모든 책임을 군부에게 돌리며 군부의 힘을 크게 축소시킨다. 이후 1930년(쇼와 5년) 4월 22일, 런던 해군 군축조약이 체결되면서 군부는 다시 한 번 분노하였지만, 1932년(쇼와 7년), 혈맹단 사건 조사 도중 쿠데타 준비가 발각되면서 5.15사건은 일어나지 않고, 1936년(쇼와 11년), 2.26사건 또한 천황의 반대와 내각의 강경진압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결국 1947년, 총리가 된 시데하라 기주로에 의해 '군부대신 현역무관제'가 폐지되면서 군부의 정치 개입 시도는 완전히 막을 내리게 된다. 이후, 냉전 시기 동안 핵개발과 경제개혁 등으로 세계적인 강대국이 된 일본 제국은 1989년(헤이세이 원년) 10월 29일, '신헌법'을 제정하면서 영국식 입헌군주제로 전환한다.
국가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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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五箇條の御誓文 5개조의 서약문 |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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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弘益人間 홍익인간 |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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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民族, 民權, 民生 민족, 민권, 민생 |
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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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爲國民服務 국민을 위해 봉사한다 |
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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