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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역의 정당 공화당은 남북전쟁 직후 바로 와해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공화당 정치 세력의 전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휘그당 소속으로 대통령을 지냈던 [[밀러드 필모어 (남부)|밀러드 필모어]]는 노예제도에 소극적으로 반대하지만 북부의 독립에도 반대했던 정치인들을 규합해 1850년대 후반 노예제 논쟁으로 붕괴되었던 [[휘그당(미국) (남부)|휘그당]]을 재건했다. [[스카일러 콜팩스 (남부)|스카일러 콜팩스]]는 휘그당 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콜팩스는 막대한 자금 및 계파 정치를 통해 휘그당을 민주당과 경쟁할 수 있을만큼 큰 정당으로 복구시켰다. 비록 콜팩스는 막대한 부정부패와 악명높은 계파정치, 찍어내리기 등으로 정치계에서 퇴장하지만, 그의 유산은 살아남았고 1880년 [[로스코 콩클링 (남부)|로스코 콩클링]]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승리하기에 이른다.
1880년대 이후, 휘그당이 수권정당이 되자 휘그당 역시 계파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휘그당의 가장 큰 논쟁은 북부 금융 재벌과의 유착 관계, 그리고 이에 따른 막대한 부정부패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냐는 것이었다. 휘그당은 정치적 현실주의를 내세워 계파정치를 옹호한 엽관제 옹호파와 계파정치와 부정부패 척결을 지지한 개혁파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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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문|Obeying instructions I should never dare to disregard, expressing, also, my own firm conviction, I rise in behalf of the State of New York to propose a nomination with which the country and the Whig party can grandly win. <br> '''저는 결코 이 선거를 감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계시에 따라 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표명하면서, 뉴욕주를 대표하여 국가와 휘그당이 대승을 거둘 수 있는 지명을 제안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로스코 콩클링 (남부)|로스코 콩클링]] 하원의원}}
{{인용문|Obeying instructions I should never dare to disregard, expressing, also, my own firm conviction, I rise in behalf of the State of New York to propose a nomination with which the country and the Whig party can grandly win. <br> '''저는 결코 이 선거를 감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계시에 따라 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표명하면서, 뉴욕주를 대표하여 국가와 휘그당이 대승을 거둘 수 있는 지명을 제안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로스코 콩클링 (남부)|로스코 콩클링]] 하원의원}}

2023년 10월 8일 (일) 21:57 판

틀:남부의 유산

남부의 유산
Heritage of the South
파일:남부의 유산 로고.svg
장르 대체역사
작가 공산1968
구상일 2023년 10월 5일
(구상일로부터 +397일, 1주년)
시작일 2023년 11월 17일 (예정)
(시작일로부터 +354일, 2주년)
세계관 시점 1896년[1]
저작권 CC-0

개요


Lynyrd Skynyrd - Sweet Home Alabama
Segregation Now... Segregation Tomorrow... and Segregation Forever!
인종분리는 오늘도... 내일도... 그리고 영원히!

조지 월리스 앨라배마 주지사, 1963년 주지사 취임식 연설 中

공산1968의 세계관. 남북전쟁 이후 개변된 미국사를 다루는 대체 역사 세계관으로, 남부 대신 북부가 연방을 탈퇴하고 남부가 남북전쟁에서 승리해 노예제도가 유지된다는 설정이다.

설정 개요

1856년, 민주당의 지도자 중 하나인 제임스 뷰캐넌(James Buchanan)이 말에 떨어져서 반신불수가 된다. 제임스 뷰캐넌은 민주당의 대선 후보로 가장 유력한 인물이었으나 그의 반신불수로 민주당은 혼란에 빠졌고, 혼란 속에서 민주당은 북부의 상원의원이자 온건한 노예제 폐지파인 스티븐 A. 더글러스(Stephen A. Douglas)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다. 스티븐 A. 더글러스의 출마에 반발한 남부 민주당 조직은 존 C. 브레킨리지(John C. Breckinridge)를 대선 후보로 내세운다.

민주당이 분열된 가운데 1856년 대선에서 승리한 것은 존 C. 프리몬트(John C. Fremont) 캘리포니아 주 상원의원이었다. 프리몬트 대통령은 공화당 소속의 최초의 대통령으로 급진적인 노예 폐지 공약을 바탕으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의 무효화 및 신규 주 노예제 원천 금지의 원칙 확립을 시도한다. 그러나 급진적 노예 폐지안에 반발한 에이브러햄 링컨 등의 공화당 온건파가 극도의 반발을 드러냈으며 프리몬트 대통령은 낮은 지지율 속에서 1860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한다.

1860년 대선은 노예제 폐지를 지지한 공화당 소속 현직 대통령 존 C. 프리몬트 대, 노예제 존속을 지지한 민주당 소속 제퍼슨 데이비스(Jefferson Davis)의 대결이었다. 제퍼슨 데이비스는 프리몬트를 제압하고 미국의 제1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제퍼슨 데이비스는 주의 권리(State's right)을 내세우며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을 유지한다. 격분한 공화당 지지 북부 주들은 연방 탈퇴를 선언, 찰스 섬너(Charles Sumner) 상원의원을 대통령으로 하는 북부맹방(Confederate State of America)을 건국한다. 그렇게 1861년 4월 12일 데이비스 대통령 취임 한달만에 남북전쟁이 발발한다.

남북전쟁에서 초기에 승기를 잡았던 것은 우수한 공업력과 명장 율리시스 S. 그랜트(Ulysses S. Grant) 장군을 내세운 북부 반란파였으나, 1863년 5월 12일 빅스버그 전투에서 그랜트 장군이 전사하며 전황이 반전된다. 존 알렉산더 매클리넌드(John Alexander McClernand)가 이끄는 북부맹방군은 포토맥 전투와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로버트 E. 리(Robert E. Lee) 장군의 연방군에 대참패를 거듭하였으며, 이 대참패로 북부는 혼란에 빠졌다. 필라델피아의 북부맹방 정부는 걷잡을 수 없이 동요하는 북부의 민심을 통제할 수 없었으며, 찰스 섬너 대통령은 영국으로 망명을 떠난다. 대통령의 망명으로 군통수권을 넘겨받은 존 알렉산더 매클리넌드 북부맹방 지휘관은 1865년 4월 9일 로버트 E. 리의 연방군에 항복을 선언, 북부 맹방이 멸망하고 남북전쟁이 남부의 승리로 종결된다.

1864년 대통령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한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은 북부에 대한 "재건 정책"을 실시, 켄터키, 테네시 등의 국경주(Border states)로까지 노예주를 확대하고 일부 공화당원들의 공직 출마를 배제한다. 스카일러 콜팩스(Schuyler Colfax)를 비롯한 일부 공화당 잔존파가 휘그당을 재결성해 북부의 재기를 노리며, 한편 로버트 E. 리는 데이비스를 이어 대통령 출마를 준비한다.

정치 세력

민주당

남북전쟁을 승리로 이끈 민주당은 1869년 제퍼슨 데이비스 대통령의 은퇴 이후, 게티즈버그 전투에서 그랜트 장군이 이끄는 북부 반란군을 진압한 전쟁 영웅 로버트 E. 리를 대통령 후보로 내세웠다. 로버트 리는 1868년 대통령 선거에서 휘그당의 후보인 호레이스 그릴리를 격파하고 대통령으로 당선된다. 그러나 리 대통령은 시대에 맞지 않는 보수주의적 정책을 내세우면서 지지를 잃었고, 비록 휘그당의 혼란과 부정부패상으로 인해 1872년, 1876년 대선에서도 정권에 연장하는데 성공했으나 위상은 남북전쟁 직후와 같지 않았다.

그 결과, 1876년 대선에서 당선된 알렉산더 롱 대통령이 1880년 패배하면서, 민주당과 휘그당의 양당제가 다시 복구되었다. 1880년 대선의 충격적인 패배 이후 민주당의 권력 구도는 주로 북부의 도시파와 남부의 군인파가 대립하는 식으로 전개되었다.

금융 민주당

It is said that it is far more difficult to hold and maintain leadership (liberty) than it is to attain it. Success is a ruthless competitor for it flatters and nourishes our weaknesses and lulls us into complacency. We bask in the sunshine of accomplishment and lose the spirit of humility which helps us visualize all the factors which have contributed to our success.
흔히들 자유를 획득하는 것보다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합니다. 성공은 무자비한 경쟁자입니다. 왜냐하면 성공은 우리의 약점을 키우고 우리를 안일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공에 기쁨을 누릴 때 그 성공을 현실화한 겸손함의 정신을 잃게 됩니다.
새뮤얼 J. 틸던 뉴욕주지사

농본 민주당

Having behind us the producing masses of this nation and the world, supported by the commercial interests, the laboring interests, and the toilers everywhere, we will answer their demand for a gold standard by saying to them: "You shall not press down upon the brow of labor this crown of thorns; you shall not crucify mankind upon a cross of gold."
이 나라와 세계의 생산자 대중을 뒤에 뒤고 상업적 이해 관계, 노동적 이해 관계, 그리고 모든 곳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는 우리는 금 본위제에 대한 요구에 대해 다음과 같이 답할 것입니다. "노동자의 이마에 가시관을 씌울 수 없다! 인류를 십자가에 박을 수도 없다!"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하원의원

휘그당

반역의 정당 공화당은 남북전쟁 직후 바로 와해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공화당 정치 세력의 전멸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휘그당 소속으로 대통령을 지냈던 밀러드 필모어는 노예제도에 소극적으로 반대하지만 북부의 독립에도 반대했던 정치인들을 규합해 1850년대 후반 노예제 논쟁으로 붕괴되었던 휘그당을 재건했다. 스카일러 콜팩스는 휘그당 재건에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콜팩스는 막대한 자금 및 계파 정치를 통해 휘그당을 민주당과 경쟁할 수 있을만큼 큰 정당으로 복구시켰다. 비록 콜팩스는 막대한 부정부패와 악명높은 계파정치, 찍어내리기 등으로 정치계에서 퇴장하지만, 그의 유산은 살아남았고 1880년 로스코 콩클링을 대통령 후보로 내세워 승리하기에 이른다.

1880년대 이후, 휘그당이 수권정당이 되자 휘그당 역시 계파로 분열되기 시작했다. 휘그당의 가장 큰 논쟁은 북부 금융 재벌과의 유착 관계, 그리고 이에 따른 막대한 부정부패를 어떻게 해결해야하냐는 것이었다. 휘그당은 정치적 현실주의를 내세워 계파정치를 옹호한 엽관제 옹호파와 계파정치와 부정부패 척결을 지지한 개혁파로 나뉘었다.

엽관제 휘그당

Obeying instructions I should never dare to disregard, expressing, also, my own firm conviction, I rise in behalf of the State of New York to propose a nomination with which the country and the Whig party can grandly win.
저는 결코 이 선거를 감히 무시해서는 안 된다는 계시에 따라 제 자신의 확고한 신념을 표명하면서, 뉴욕주를 대표하여 국가와 휘그당이 대승을 거둘 수 있는 지명을 제안하기 위해 일어났습니다.
로스코 콩클링 하원의원

개혁 휘그당

The United States is the only country with a known birthday. If there had been no Independence Day, England and America combined would not be so great as each actually is. There is no "Whig," no "Democrat," on the Fourth of July — all are Americans. All feel that their country is greater than party.
미국은 그 탄생일이 알려진 유일한 국가입니다. 독립기념일이 없었다면 영국과 미국을 합쳐도 두 나라의 위대함을 합친만큼 미국이 위대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7월 4일에는 "휘그당"도 없고 "민주당원"도 없습니다. 그 날에는 우리 모두가 미국인입니다. 모두가 자기 나라가 정당보다 위대하다고 생각할 것임은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제임스 G. 블레인 상원의원

급진당

Without knowledge there can be no sure progress. Vice and barbarism are the inseparable companions of ignorance. Nor is it too much to say that, except in rare instances, the highest virtue is attained only through intelligence.
지식이 없으면 발전도 없을 것입니다. 악덕과 야만성은 무지와 뗄래야 뗄 수 없습니다. 극히 일부의 경우를 제외하고 최고의 미덕은 오직 지성을 통해서만 달성됩니다.
찰스 섬너 상원의원

역대 대통령

대수 이름 선거 소속 정당 취임일 퇴임일 출신 주 비고
15 존 C. 프리몬트
John C. Frémont
(1813-1890)
1856 공화당 1857년 3월 4일 1861년 3월 4일 캘리포니아
16 제퍼슨 데이비스
Jefferson Davis
(1808-1889)
1860
1864
민주당 1861년 3월 4일 1869년 3월 4일 미시시피
17 로버트 E. 리
Robert E. Lee
(1807-1880)
1868
1872
민주당 1869년 3월 4일 1877년 3월 4일 버지니아
18 알렉산더 롱
Robert E. Lee
(1816-1886)
1876 민주당 1877년 3월 4일 1881년 3월 4일 오하이오
19 새뮤얼 J. 틸던
Samuel J. Tilden
(1814-1886)
1880 민주당 1881년 3월 4일 1885년 3월 4일 뉴욕
20 로스코 콩클링
Roscoe Conkling
(1829-1900)
1884 휘그당 1885년 3월 4일 1889년 3월 4일 뉴욕
21 토머스 F. 베이어드
Thomas F. Bayard
(1828-1898)
1888 민주당 1889년 3월 4일 1893년 3월 4일 델라웨어
22 벤저민 해리슨
Benjamin Harrison
(1833-1901)
1892 휘그당 1893년 3월 4일 1897년 3월 4일 인디애나
23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
William Jennings Bryan
(1860-1925)
1896
1900
민주당 1897년 3월 4일 1905년 3월 4일 네브래스카
이후 미정

정당

  • 민주당(Democratic Party) - 남북전쟁에서 연방의 보존과 "주의 권리"를 내세운 세력으로, 남북전쟁 승리 후 1861년부터 1885년까지 24년에 걸친 장기집권을 이어나갔다. 1868년 대선에서 남북전쟁의 전쟁 영웅 로버트 리가 당선되며 정당의 위세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리 대통령은 엄격 보수주의 성격의 통치로 인기를 잃었고, 리 대통령의 퇴임 이후 민주당은 새뮤얼 J. 틸던이 이끄는 북부의 재정보수주의자들과 스티븐 도드슨 램저(Stephen Dodson Ramseur)가 이끄는 남부의 노예제 유지파로 분열되었다. 민주당은 1880년대에 들어 기업가의 이익을 수호하고, 연방정부로부터 주의 권익을 지지하는 확고한 고전적 자유주의 우파 정당으로 거듭났다. 민주당은 자유무역을 지지하고 흑인 민권에 반대하였으며 노예제도의 존속을 지지하였다.
  • 휘그당(Whig Party) - 1865년 공화당이 공중분해 된 후 밀러드 필모어(Millard Filmore) 전 대통령을 필두로 한 구 휘그당이 보수 세력이 노예제 온건반대파와 북부 정치인 일부를 모아 재건한 정당으로, 초기 지도자는 스카일러 콜팩스였다. 콜팩스는 노예제 강경 반대파였으나, 입장을 바꾸어 보호무역 지지와 북부 금융재벌 보호로 방향을 튼다. 콜팩스는 엄청난 인맥과 부패한 정치로 휘그당의 세력을 금방 복구해냈다. 그가 은퇴한 후, 휘그당의 유산은 개혁파 제임스 G. 블레인(James G. Blaine)과 보수파 로스코 콩클링(Roscoe Conkling)이 이어받았다. 이들은 보호무역을 일관되게 지지하였고, 북부 지역주의 성격이 있었으며 노예제도를 점진적으로 폐지하는 입장을 취했다.
  • 급진당(Radical Socialist Party) - 영국으로 망명한 찰스 섬너는 영국의 농촌에서 요양하며 태동하던 페이비언 사회주의의 희망을 목격하였다. 그는 런던의 철학자 카를 마르크스와 교류해 친구가 되었고, 그의 유물론적 사회주의를 자신의 자유주의적 입장과 결합하여 자유주의적 사회주의 사상을 개발했다. 섬너는 평생 미국으로 귀국하지 못하고 스코틀랜드에서 요양하다가 조용히 숨을 거두었지만, 섬너의 동지 에이브러햄 링컨이 그의 유지를 이어받았고, "마르크스-링컨주의"를 창안한다. 노예제의 급진적인 폐지와 농민, 노동자 권익 보호 등을 내세운 링컨의 사상을 계승한 이들은 1880년대 급진사회당을 창당하고 서부 농촌 지역을 중심으로 급속하게 세를 늘렸다.

주요 정치가

주요 사건

  • 1873년 공황
  • 1893년 공황
  • 쿠바 침공
  • 미서전쟁

여담

  • 도대체 이쪽이든 저쪽이든 대역하는 사람들은 다 진보당원급 반미파도 아니고 미국 관련 대역을 너무 안쓰고 남북전쟁 대역은 한국에서 찾아보기도 어려울 지경이라 내가 대신 쓰고 있다.
  1. 실제 미국사에서는 제3정당제와 제4정당제가 분기되는 기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