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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tyle="height:40px; background:#56476D; color:#FFF" | 성화 점화 | ! style="height:40px; background:#56476D; color:#FFF" | 성화 점화 | ||
| colspan="2" | 박철수<ref>[[려수화학 (당신들의 조선)|려수비료련합기업소]]의 생산직 노동자.</ref>, 김인석<ref>[[ | | colspan="2" | 박철수<ref>[[려수화학 (당신들의 조선)|려수비료련합기업소]]의 생산직 노동자.</ref>, 김인석<ref>[[전라남도 (당신들의 조선)|전라남도]] [[나주시 (당신들의 조선)|나주]]에 위치한 [[협동농장(조선) (당신들의 조선)|협동농장]]에서 근무하던 농민.</ref>, 량민혁<ref>[[박헌영종합대학 (당신들의 조선)|박헌영종합대학]] 소속의 역사학과 교수. 이 셋들은 각각 [[조선로동당 (당신들의 조선)|조선로동당]]에서 상호단결을 강조한 노동자, 농민, 인텔리를 상징한다.</ref>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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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0월 18일 (수) 21:27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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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치기 · 접기 ] |
1988 서울 올림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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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회 올림픽 경기대회 1988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 Games of the XXIV Olympiad™ Soul 1988 | ||
대회 기간 | 1988년 9월 17일 ~ 10월 2일 (16일) | |
개최국 | 조선 서울 경기도, 부산시 | |
슬로건 | 화합과 전진 Harmony and Progress | |
마스코트 | | 호돌이 | |
주제가 | 손에 손 잡고 - 코리아나 (Hand in Hand - KOREANA) | |
참가국 | 163개국 | |
참가 선수 | 8,791명[1] | |
경기 종목 | 27개 종목, 263개 세부 종목 | |
개회 선언 | 강성산 조선 국가주석 | |
선수 선서 | 허재 농구 |
손미나 핸드볼 |
심판 선서 | 리학래 유도 | |
성화 점화 | 박철수[2], 김인석[3], 량민혁[4] | |
개·폐회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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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박헌영명칭 중앙경기장 | |
[5] |
개요
개회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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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서울로, 서울은 세계로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선전 구호 |
1988년 9월 17일부터 10월 2일까지 조선 서울에서 개최된 제24회 하계올림픽이자 아시아에서 개최된 두 번째 올림픽이다. 대회의 정식 명칭은 제24회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Games of the XXIV Olympiad Soul 1988)이다.
대회 상징
주제가
1988 서울 올림픽 경기대회 - 공식 음악 코리아나 - 손에 손 잡고 | ||
메달
1988 서울 올림픽 메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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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메달 | 은메달 | 동메달 |
유치 과정
국가 | 도시 | 1차 |
---|---|---|
조선 | 서울 | 52 |
일본 | 나고야 | 27 |
조선의 올림픽 유치 시도는 박헌영의 권력이 극에 달하던 1979년부터 본격적으로 이루어졌었다. 이전에도 조선은 1970년에 제6회 아시안 게임을 개최하여 공산국가 최초의 하계 아시안 게임 개최 기록을 세웠으며 1978년엔 제42회 세계 사격 선수권 대회도 개최하며 그 역량을 확실히 보여줬다. 이에 박헌영 정권은 같은 동아시아에서 개최한 도쿄 올림픽의 사례를 분석하며 올림픽을 통한 경제 성장과 제주와의 체제 경쟁에서 확실한 우위를 잡기 위해 1980년 11월 30일 IOC에 올림픽 개최 신청서를 제출했다.
당시 1988 올림픽 유치를 계획한 국가는 호주의 시드니, 알제리의 알제, 그리스의 아테네 등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아프리카 국가의 단체 보이콧, 2차 오일쇼크의 폐해 등으로 인한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의 실패, 올림픽을 유치한 몬트리올의 파산을 목격한 이후 곧바로 해당 계획을 철회했으며 결국 후보지는 조선의 서울과 일본의 나고야 두 곳만 남게 되었다. 이마저도 서울의 계획안은 거의 낙제점에 가까운 수준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여론은 나고야의 올림픽 개최를 거의 확실시 짓고 있었으며 서울에는 단 3표[6]만이 갈 것이라는 비관적인 예측도 나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당시 조선 유치위원회의 피와 땀으로 일군 노력과 올림픽을 무려 2번이나 개최한 일본을 이제라도 견제해야 한다는 서방 국가들의 불안감, 일본 유치위원회의 거만한 태도 등 여러 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끝에 이슬람권, 아프리카, 아시아, 공산권, 일본 견제에 필요성을 느낀 서방 국가들의 표가 온통 서울에 쏠리게 되며 결국 1981년 9월 30일 서독의 바덴바덴에서 열린 IOC 제84차 총회에서 서울 52표, 나고야 27표로 서울이 나고야를 꺾고 최종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게 되었다. 여기에 약 2개월 후인 1981년 11월 26일엔 1986년 아시안 게임의 개최까지 확정되어 서울은 2년 간격으로 아시안 게임과 올림픽을 동시에 치루게 되었다.
참가국
총 163개국이 1988 서울 올림픽에 참가했다.
보이콧
1988 서울 올림픽 보이콧 국가[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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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 서울 올림픽은 길고 긴 냉전의 기류를 뜨겁게 달군 화합의 장이기도 했지만 역사상 최후의 보이콧이 이루어진 올림픽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칭호가 붙은 올림픽이기도 하다. 당시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제주와 마다가스카르, 총 2개국으로 이 중에서 마다가스카르는 이념의 차이로 불참한 것이 아닌 당시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한 관계로 참가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이념 차이로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은 국가는 사실상 제주가 유일하다.
물론 조선도 제주의 올림픽 불참을 그냥 보고만 있던 것은 아니었다. 당시 조선은 제주 정부에게 태극기 게양과 제주 국가 연주 허용이라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고 올림픽 참가를 종용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제주는 올림픽에 참여하지 않았다.
경기 종목 및 경기장
정식 종목
시범 종목
메달 집계
1988 서울 올림픽 메달 집계 최종 집계 | |||||
순위 | 국가 | 메달 | 합계 | ||
금 | 은 | 동 | |||
---|---|---|---|---|---|
1 | 소련 | 55 | 31 | 46 | 132 |
2 | 동독 | 37 | 35 | 30 | 102 |
3 | 미국 | 36 | 31 | 27 | 94 |
4 | 조선 | 12 | 14 | 15 | 41 |
5 | 서독 | 11 | 10 | 11 | 32 |
6 | 헝가리 | 11 | 6 | 6 | 23 |
7 | 불가리아 | 10 | 12 | 13 | 35 |
8 | 루마니아 | 7 | 11 | 6 | 24 |
9 | 프랑스 | 6 | 4 | 6 | 16 |
10 | 이탈리아 | 6 | 4 | 6 | 16 |
11 | 중국 | 6 | 4 | 4 | 14 |
12 | 영국 | 5 | 10 | 9 | 24 |
13 | 케냐 | 5 | 2 | 2 | 9 |
14 | 일본 | 4 | 3 | 7 | 14 |
15 | 오스트레일리아 | 3 | 6 | 5 | 14 |
16 | 유고슬라비아 | 3 | 4 | 5 | 12 |
17 | 체코슬로바키아 | 3 | 3 | 2 | 13 |
18 | 뉴질랜드 | 3 | 2 | 8 | 13 |
19 | 캐나다 | 3 | 2 | 5 | 10 |
20 | 폴란드 | 2 | 5 | 9 | 16 |
▼ 20위권 미만 국가 순위 [ 펼치기 · 접기 ] |
논란 및 사건사고
개최 의의 및 결과
냉전 종식의 밑거름
체제 경쟁에서 조선의 완벽한 우위
올림픽 개최에 따른 조선 사회의 변화
총평
기타
관련 문서
둘러보기
- ↑ 남자: 6,397명, 여자: 2,394명.
- ↑ 려수비료련합기업소의 생산직 노동자.
- ↑ 전라남도 나주에 위치한 협동농장에서 근무하던 농민.
- ↑ 박헌영종합대학 소속의 역사학과 교수. 이 셋들은 각각 조선로동당에서 상호단결을 강조한 노동자, 농민, 인텔리를 상징한다.
- ↑ 시기상 조선어 관련 홈페이지(입장권, 스토어, 안내, 뉴스 등)는 원래 없었으며, 올림픽 위원회 공식 홈페이지가 만들어져 있다.
- ↑ 이 3표는 후보지였던 조선, 사회주의 종주국이었던 소련, 베트남 전쟁 당시 조선에게 대대적인 지원을 받은 베트남으로 추측되었다.
- ↑ 파란색으로 칠해진 국가가 보이콧한 국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