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위 서울제105땅크사단 (당신들의 조선)

Rainbow (토론 | 기여)님의 2024년 11월 29일 (금) 04:04 판 (→전쟁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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벨지엄 박영환 얏슈 핫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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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에헤 에야차! 에야차!
로동당기발 따라 나가자!
에헤 에야차! 에야차!
로동당기발 따라 나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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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위 서울제105땅크사단
近衛서울第105땅크師團
105th Guards Seoul Armored Division
창설일 1948년 8월 20일 (제15교도땅크련대, 76주년)
소속 조선인민군 륙군
상급부대 제1군단
규모 사단
역할 서울시 일대 방위
사단장 소장 박영환 (륙군군관학교 N기)
참전 조선전쟁
위치 경기도 가평군 조종리

지도를 불러오는 중...

개요

노도로 질풍쳐 단숨에 서울에 공화국기발을 날린 무쇠철마로 소문난 근위 105땅크사단
근위부대자랑가

조선인민군 륙군의 기갑사단.

조선인민군 최초의 기갑사단이자 최초의 근위대이며 조선전쟁 당시 서울시에 최초로 입성한 부대인 조선인민군의 초엘리트 부대 중 하나로써 조선인민군 륙군을 넘어, 조선인민군 전체에서도 남다른 위상과 상징성을 자랑하고 있는 정예 사단 중 하나이다. 사단사령부는 경기도 가평군 조종리에 위치하고 있다.

역사

1947년에서 1948년 사이 김일성은 T-34와 SU-76M와 같은 전차를 필두로 한 각종 기계화무기들을 소련에게 지원받으며 병력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당시 조선인민군 제2사단 제4연대장을 지내고 있던 류경수는 소련인들에게 술과 고기를 대접하면서까지 전차에 관한 것을 배웠을 정도로 전차에 관심이 상당히 많던 인물이었다. 김일성은 이런 류경수를 향후 설립할 전차부대의 적임자로 내세운다. 이렇게 1948년 8월 20일 류경수의 지휘 하에 조선인민군 최초의 전차부대인 제15교도땅크련대가 창설되었다. 류경수는 해당 부대의 연대장으로 올라간다.

제15교도땅크련대는 당시 소련군이 남기고 간 T-34-85 전차로 대표되는 중화기를 기초로 하여 소련군 교관을 초빙해 평양 사동 호랑이골에서 전차전술을 학습하였다. 이 시기 조선인민군의 첫 전차 승무원이 배출되었다. 이후 제15교도땅크련대는 1948년 조선 건국 이후 진행된 첫 전차열병식을 시작할 무렵 '교도'라는 칭호를 제거, 제9땅크려단으로 개칭하여 본격적인 전차부대로 탈바꿈한다.

조선전쟁 당시에는 산하에 있던 1땅크련대, 2땅크련대, 3땅크련대, 65기계화보병련대를 각각 조선인민군 제1군단 산하의 1사단, 3사단, 4사단, 6사단에 배속시켜 각 사단의 진격을 지원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이 중에서 1땅크련대와 2땅크련대는 1사단, 3사단의 진격축선을 따라 대한민국 국군의 7사단을 섬멸, 미아리 방어선을 돌파하여 서울시에 가장 먼저 입성, 중앙청 꼭대기에 깃발을 꼽게 된다.[1]

1950년 7월 5일에는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 명령 7호에 따라 여단에서 사단으로 승격되고 '서울' 칭호를 수여받게 되어 제9땅크려단의 단대호에서 따온 서울제105땅크사단으로 개칭하였으며 같은 달 27일에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54호에 따라 '근위' 칭호를 수여받게 되어 근위 서울제105땅크사단으로 개칭한다. 이것이 조선인민군 역사상 최초의 근위 칭호를 수여받은 사례이다.

이들은 서울 입성 이후 오산에서 미군을 격파하였으며 금강, 대전, 낙동강을 따라 진격했다. 이 당시 대한민국 국군은 T-34-85를 격파할 만한 무기가 없어서 곡사포로 직접 사격하여 전차를 격파하는 방법, 전차 궤도를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방법에 폭탄을 온 몸에 매달고 맨 몸으로 전차에 돌격하는 자살 공격까지 동원하여 전차의 진격을 막아보려 하였으나 이것들은 모두 역부족이었다. 낙동강 방어선에 다다랐을 땐 미 공군의 폭격과 보급 부족과 고장으로 인한 전차 유기 등으로 인해 세력이 줄어들었으나 대구 함락 이후엔 전력을 재정비하여 근위 부산제6보병사단과 함께 낙동강 방어선을 돌파, 부산시에 입성한다.

예하부대

사단 직할대

제1기계화보병려단

제106땅크병려단

제107땅크병려단

제731포병려단

출신 인물

사단장

장교·부사관

특징

근무 환경

훈련

사건·사고

전쟁 범죄

기타


  1. 65기계화보병련대 소속 1대대장이었던 김영 소좌가 중앙청에 깃발을 꽂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