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조니 가문

Valdemaro Ligioni (토론 | 기여)님의 2022년 6월 17일 (금) 22:38 판
Famiglia Rigioni
라틴어명 Gens Rigionia
영문명 House of Rigioni
표어 F.F.R.O.S. (1473~)
Fides et fiducia radices nostrae sunt.[1]
건립일 1389. 5. 28
시조 발데마로 리조니(Valdemaro Rigioni)
중시조 파비오 리조니(Fabio Rigioni)
가주 발데마로 데 리조니(Valdemaro De Rigioni)
가문 저택

지도를 불러오는 중...

위대한 파비오 궁전 (grande palazzo fabio)
국가 피렌체 공화국
바티칸 시국
토스카나 대공국
이탈리아 제국
티롤 백국
작위 교황
정의의 곤팔로니에
피렌체 공작
티롤-트리엔트 백작
민족 이탈리아계통 일족
본가 본 가문이 분가들의 뿌리임.
분가
  • 리조니-합스부르크 - 폐가
  • 리조니-가페체 - 폐가
  • 리조노프 가
피렌체의 위대한 파비오 궁전
피렌체의 안드레아 저택

개요

리조니 가문(이탈리아어:Famiglia Rigioni, 라틴어:Gens Rigionia, 영어:House of Rigioni)는 16세기부터 17세기까지 피렌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가문이다. 리조니 가문은 한명의 교황(빅토르 4세)을 배출하였으며 역사상 13명의 추기경, 다수의 피렌체의 통치자를 배출하였다.

그들은 피렌체에서 주로 고위 귀족가문으로서 권력을 행사해 왔다. 15세기부터 파비오 리조니가 가문을 부흥시키자 본격적인 권세가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고 더욱 나아가 당대의 최고 권력가인 판다니 가와 결탁하여 독주체제를 완고히 해 주었다. 이후 다니엘레 판다니가 사망하고 정치적 공백이 생기자 이를 낚아채면서 한세기 안되게 피렌체를 지배해왔다. 이후 파치 음모에 의해 파치 가가 몰락하고 메디치 가는 추락하자 판다니 가문을 지원하면서 실세로서 군림하다 17세기가 되면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 정치에 개입해 사실상 통치하였다.

비록, 그들의 혈통은 고귀한 귀족가문이나 영세가가 아니라 도시의 수공업자(정확히는 대장장이)였으나 길드를 장악하고 사업에 수완이 있었던 파비오 리조니가 가문을 부흥시켜 그의 아들 알레산드로 리조니가 피렌체에 정착시켰고, 안드레아 리조니가 판다니 가문과 우정을 만들어 가문의 안정을 꽤하여 피렌체의 귀족가문으로 공고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리조니 가문의 주된 사업은 은행업, 모직물, 철강업, 갑옷 제조업, 수공업 등이 주된 사업이었다. 리조니 가문은 판다니 가문에서 개발한 복식부기 체제를 단식부기 체제를 버리고 빠르게 변화하여 적용하였으며, 판다니 가문이 창성할 때에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은행으로서 항상 부유하였다. 그들의 가문 문화에서 가장 특징적인 것은 피렌체의 속담에서도 들어나는데, "리조니도 그쯤 하면 내려놓는다."라는 속담과 같이 리조니 가문은 피렌체에서도 유명한 애주가들이 즐비한 가문이었다. 시조인 발데마로 리조니서부터 애주가였고 유명한 리조니인 안드레아 리조니는 특히나 낮술을 즐기고 이탈리아의 유명한 고전 소설을 집필한 작가로 유명하다.

역사

리조니 가문의 근본은 피렌체 외각에서 일하던 도시의 대장장이 가문이었다.

발데마로 리조니

위대한 파비오 리조니

알레산드로 리조니

발데마르 리조니

안드레아 리조니

아드리아노 리조니

알베르토 리조니

파비오 데 리조니

근대

안토니아 리조니

안드레아 데 리조니

발데마로 데 리조니

파브리지오 리조니

작은 파비오 리조니

죠르죠 리조니

현대

아드리아노 데 리조니

세르오지오 리조니

마르첼로 리조니

발데마로 데 리조니

각주

  1. 믿음과 신용이 우리의 뿌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