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사혁명 己巳革命 Kisa Revolution | |
중앙청으로 진군하는 혁명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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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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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0년 1월 10일 (96주년) | |
| 장소 | |
| 대한국 황성 한성부 | |
| 원인 | |
| 군 내부의 갈등 대공황으로 인한 경제 악화 및 목종의 실정에 대한 불만 | |
| 교전군 | |
| 진압군 | 혁명군 |
| 윤덕영 내각 대한제국군 |
일치봉공회 |
| 지휘관 | |
| 대원수 목종 헌황제 황태자 부원수 이공 의정대신 윤덕영 육군대신 박중양 해방대신 이진호 참모총장 대장 조성근 경기군관구 사령관 대장 어담 해서군관구 사령관 대장 왕유식 참모본부 참장 김응선 육군헌병사령관 부장 조성근 |
시위혼성사단장 참장 현풍공 제1군단장 부장 홍사익 상무사 부장 지청천 제1독립전차연대장 정령 홍사익 시위혼성사단 참모장 정령 유승렬 제30사단 작전참모 부령 이응준 시위혼성사단 정보과 참령 김석원 경성위수사령부 참령 김홍일 시위혼성사단 제1연대 치중과장 참령 이범석 제1전차대대 중대장 정위 김석원 제1전차대대 중대장 정위 채원개 제30사단 중대장 정위 김관오 |
| 병력 | |
| 원수부 참모본부 총제부 경기군관구 해서군관구 육군헌병사령부 |
경성위수사령부 상무영 시위혼성사단 제30사단 제7보병사단 제1독립전차연대 |
| 피해 | |
| 1명 사망, 10명 부상 | 18명 부상 |
| 결과 | |
| 혁명 성공 중추원, 귀족원, 민의원 해산 혁명군의 행정·입법·사법권 완전 장악 | |
| 영향 | |
| 목종의 몰락과 봉공체제 출범 | |
개요
1930년 1월 10일에 현풍공을 비롯하여 대한국 육군 무관들이 일으킨 군사 혁명. 이 사건으로 인하여 윤덕영 내각이 붕괴되고 목종의 실정이 종결되었으며, 무관들을 주축으로 하는 혁명 내각이 출범함과 동시에 현풍공이 목종의 양자로 입적이 성사되어 봉공체제가 출범했다.
당시 대한국 육군에는 때부터 군의 심각한 부정부패와 비리, 진급적체와 군 상부의 표리부동에 불만을 품고 4.19 혁명 이후 정군 운동을 벌여 미국과 충돌했던 일군의 장교 세력들이 있었다. 육군 소장 박정희[11]와 1961년 2월 강제 예편당한 김종필[12]을 비롯한 일치봉공회 중심으로 한 장교들은 이로 인해 1961년 5월 말 강제 예편이 예정되었고, 이에 비밀리에 쿠데타를 기획하게 된다.
혁명 세력은 예비 사단 병력과 전차부대 등을 동원하여 1930년 1월 10일 새벽 황성을 비롯한 대구시, 부산시 등의 방송국 등 주요 시설을 무력으로 점거하였다. 이들은 경운궁을 장악하여 의정대신 윤덕영을 해임하고 봉기 60여 시간 만에 정권을 완벽하게 장악한다. 결국 혁명 세력이 행정, 입법, 사법 삼권을 탈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