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대황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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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 제3대 황제 선종 태황제 | 宣宗 太皇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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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
| 출생 | 1891년 6월 13일 | |||||||||||||||||||||||||||||||||||||||||||
| 한성부 내의원 | ||||||||||||||||||||||||||||||||||||||||||||
| 붕어 | 1968년 8월 11일 (향년 77세) | |||||||||||||||||||||||||||||||||||||||||||
| 황성 한성부 창덕궁 양관 | ||||||||||||||||||||||||||||||||||||||||||||
| 재위기간 | 대한제국 황태자 | |||||||||||||||||||||||||||||||||||||||||||
| 1930년 11월 29일 ~ 1930년 12월 12일 (14일) | ||||||||||||||||||||||||||||||||||||||||||||
| 대한제국 제3대 황제 | ||||||||||||||||||||||||||||||||||||||||||||
| 1930년 12월 12일 ~ 1968년 8월 11일 (37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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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종 태황제 어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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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제국 제3대 황제.
삼종지맥의 유일한 후손으로 무관의 길을 걸었으며 서백리 출병을 비롯한 여러 전쟁에서 활약하여 주목을 받았고, 이때의 경험으로 총력전과 군제개혁, 군국주의와 전제군주정을 지향하는 극명회를 조직하여 군내의 실세로 부상하였다. 이후 대공황으로 정치가 혼란스러운 틈을 타 기사혁명으로 정권을 장악하고 목종의 양자로 입적되어 황위를 계승하였다.
즉위 후 황제를 수령으로 하는 전체주의 독재정을 확립하고 민족보위부를 설립하여 정적을 제거하고 언론을 장악하며 한국사를 통틀어 최고의 전제황권을 자랑하는 대한제국의 정체를 확립하였고 팽창주의와 협동조합주의에 기반하여 대한제국을 중화학공업 위주의 공업 국가로 전환시키고 토지개혁과 신분제 폐지를 통해 국가를 개조하였다. 재위 초기에는 대동아전쟁을 통해 일본을 패망시키며 유구와 대마도를 병합하며 군신의 반열에 올랐다.
이후 미소 양국간의 냉전이 심화되는 상황에서 양국과 거리를 두며 한중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제3세계의 주도국으로써 활약하며 대한제국을 세계 3위의 강대국으로 성장시켰으나, 선종 재위 기간 여진족과 러시아인, 몽골족의 저항을 말살하기 위하여 공존정책으로 소수민족을 모두 만주에 황무지에 추방하여 인종분리를 자행하고, 우생학적 신념으로 인해 최소 10만 단위의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되거나 숙청되었으며, 숙청된 사람들은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거나 강제 노역을 하며 장기간의 고통을 받고 학살 당했다. 사후 ‘위대한 수령’으로 숭배되고 있으며 영구적인 맹목적 추앙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생애
묘호
| 참의부(參議府)에서 망단자(望單子)를 서계(書啓)하였다. 대행 황제(大行皇帝)의 묘호(廟號)를 선종(宣宗)와 열종(烈宗), 경종(敬宗)으로 서계하였는데, 수망(首望)대로 하라는 칙지(勅旨)를 내렸다. 백선 37년(화종 즉위년 / 1968) 9월 3일 첫번째 기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