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쿠라 바쿠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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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자 명단
스파르타쿠스의 모임 홍보선전전략총책
사쿠라 바쿠신
佐倉 驀進 | Sakura Bakushin
본명 박신오(朴新伍)[1]
출생 1989년 4월 14일(1989-04-14) (42세)
홋카이도 하야시타정
현직 스파르타쿠스의 모임 홍보선전전략총책
서명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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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사쿠라 유타카
사쿠라 하고로모
학력 조선대학교 (정치경제학부 / 법률학과 / 졸업)
도쿄대학 (법학부 / 학사)
도쿄대학 대학원 (법학부 / 석사)
소속 정당
소속 파벌 스파르타쿠스의 모임 홍보선전전략총책
약력 나가시마 오노 법률사무소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법률사무소

박신! 하는 박신주의 (驀進!する驀進主義)


개요

일본의 정치인.

성향

사쿠라 바쿠신은 어릴적 조선학교의 교육 영향으로 주체사상적인 사회주의를 주장한다. 물론 수령의 존재에 대해선 집단지도체제의 당이 령도하면 수령을 대체할 수 있다 생각한다.

생애

조선적의 3세대로 태어났다. 개명전 이름은 박신오(朴新伍), 오남매중 다섯번째로 태어나 이름에 오(伍)가 붙었다 한다. 어렷을때부터 앞만보고 달리는 성격이었고, 어릴때부터 조선학교를 다녔으며, 조선대학교까지 나오며 조선적으로서 나올 수 있는 모든 학력을 채웠다. 이후 조선대학교에서 도쿄대학으로 신분을 세탁하고, 법학 학사를 정식으로 취득하였으며 법률사무소에서 오랫동안 일하였다가, 통일교 게이트 사태가 터지자 당시 새로운 태양으로 급부상하던 개신당에 가입하기 위해 조선적에서 일본인 신분을 취득하게 되었다.

정계 입문 전

조선적의 3세대로서, 조총련의 영향을 받으며 자랐다. 훗카이도의 조선학교를 다니며 어릴적을 보냈는데, 오남매의 다섯번째로서, 그리고 학번도 맨날 5번이 붙었다 하며 공부를 그다지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고 한다. 초급부 6년과 중급부 3년, 고급부 3년을 끝마치고 이후 조선학교의 마지막 커리어인 조선대학교 (조총련)을 졸업하며 법학을 배웠는데 문제는 조선대학교는 일본에서 문부과학성에서 대학으로 승인해야 대학교의 자격을 지닐 수 있는데, 조선대학교는 법적으로 각종학교라는 점이다.

따라서, 당시 박신오는 대졸이 아니라 고졸이었다. 그녀는 천성적으로 생각보다는 몸이, 또 의지가 앞섯던 성격이었기에 고졸에 있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고, 대학입시센터시험을 치기 위해 입시에 뛰어들게 된다. 부모 또한 이대로 취업하기를 바랬지만 그녀의 의지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식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입시에 한해를 매진하게 되었다. 천성적으로 고급사고와 같은 복잡한 생각에 소질이 없었던지라, 그래도 대학은 가고싶고 시험을 치뤄야겠으니 한 방법이 그냥 모든 문제집을 외운다였다. 그렇게 시험 당일날, 이틀에 걸쳐서 본 시험에서 가채점으로 모든 과목이 모두 90점을 넘었고, 당당하게 도쿄대학에 원서를 접수하였다.

그리고, 도쿄대학의 면접에서 반짝이는 눈과 앞서는 자신감으로 자신을 어필한 박신오는 법학과에 입학하였다. 이후 대학생활을 두번째 하는 박신오는 나름 잘 대학생활을 하였고, 장학생으로 선발되며 대학생활을 하였다. 도쿄대학 대학원에서 법학부 석사까지 취득한 이후 나가시마 오노 법률사무소에 취업하는데 성공하고 일본의 빅포 로펌에서 다니다가, 조총련의 지역대회에 소환되어 부르주아 문화에 찌들었다!라며 생활총화에서 자아비판으로 신날하게 까이게 되었다.

이후, 반강제로 나가시마 오노 법률사무소를 퇴사하였고[3], 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다가 이런 문화에 치욕과 분노를 느꼇고 마침, 아베 신조 암살사건이 일어나고, 통일교 게이트가 대대적으로 알려지며 막 유명해지던 개신당에 가입하기 위하여 일본 국적을 택하게 되었고, 개신당에 가입하게 되었다. 스에히로 아나스타샤수작질 권유에 가장 소규모 파벌인 스파르타쿠스의 모임에 가입하게 되며 험난한 정치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정계 입문 후

정계 입문을 험난하게 시작한 사쿠라 바쿠신은 자신의 고향인 훗카이도에서 스파르타쿠스의 모임의 본거지가 있는 류큐까지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수뇌부로서 홍보선전전략총책을 맡게 되었다. 자신이 로펌에서 일하던 당시 언론의 힘을 크게 느꼇던 그녀는, 언론을 창간하여 이를 프로파간다의 매개체로 삼자는 아이디어를 제시하였다.

이는 이후 여러 꼼수를 통해 적기신문의 설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또한, 적기신문을 매개로 라디오방송까지 송출하여 정치활동을 홍보하고 여러 오락성 방송과 섞어서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방안을 연구하였다.[4] 문화활동에 정치를 깊숙하게 위치시키는 전략은 마치 북쪽의 그 문화가 떠오르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후 특유의 의욕과 쾌활한 성격에 힘입어 연설을 기가막히게 해내며 정치인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사건사고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22 - 정계입문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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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임위원회
상임위원회 회장 스에히로 아나스타샤 상임위원회 부회장 나츠나기 시에스타
서기국
서기국총책 사쿠라 바쿠신
재무총책 아라마키 야쿠모 수석 대변인 야스모리 미노리
언론선전전략총책 히메카이도 하타테 사회문화전략총책 스마모토 나우시카
정책위원회
정책위원장 코하라 암네시아 정책연구소 야스모리 미노리
고문위원회
상임고문 나구모 시노부[5]
정치고문 쿠사나기 모토코 경제고문 고토 키이치
원내기구
중의원 교섭대표자 나츠나기 시에스타 참의원 교섭대표자 공석[6]

◀ 역대 상임위원회 회장

◀ 역대 상임위원회 회장

각주

  1. 공식적으로는 개명하기 전 이름이다.
  2. 붓을 잡을줄 모르지만 자신있게 휘갈겼다.
  3. 이때 상사가 매우 안타깝게 여겼다 한다. 자기 믿고 고소하라고 했지만 부모님을 봐서 그럴 순 없다고 했다고...
  4. 요제프 괴벨스가 쓴 방법과 유사하다.
  5. 제명, 다만 영구등재이므로 명패에 줄을 그어놈.
  6. 참의원 의원이 속해있지 않은 계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