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기 퍼르메티 정부(알바니아어: Përmeti Government II 퍼르메티 고베른멘트 뒤)는 1914년 5월 20일 구성된 알바니아의 세 번째 각료협의회다. 1916년 3월 7일, 왕국 선포와 함께 해산되었다.
배경
제1기 퍼르메티 정부에서 에사드 톱타니는 실세로써 존재했으나, 일련의 과정 끝에 스컨데르베우 2세로부터 신임을 잃고 5월 18일에 해임되게 된다. 그로부터 이틀 후 5월 20일, 에사드 톱타니와 그의 세력을 축출하여 2기 정부가 수립되게 된다.
정부 구성
직책 | 성명 | 재임기간 | 정당 | |
수상 Kryeministër |
투르한 퍼르메티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내무부장관 Ministër i Brendshëm |
아치프 엘바사니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법무부장관 Ministër i Drejtësisë |
무피드 리보호바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전쟁부장관 Ministër i Luftës |
아치프 엘바사니 (임시) | 1914년 5월 20일 ~ 1914년 8월 | 무소속 | |
카라 세이트 | 1914년 8월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외무부장관 Ministër i Jashtëm |
프렌크 비버 도다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재무부장관 Ministër i Financave |
필리프 노가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교육부장관 Ministër i Arsimit |
미할 투르툴리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공공사업체신부장관 Ministër i Punëve Publike dhe i Post-Telegrafit |
미드하트 프라셔리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
농업부장관 Ministër i Agrikulturës |
아브디 톱타니 | 1914년 5월 20일 ~ 1916년 3월 7일 | 무소속 |
활동
개각과 동시에 2기 정부는 알바니아 농민 봉기에 직면한다. 에사드 톱타니의 선동에 영향을 얻은 것으로 제1기 퍼르메티 정부의 무능도 영향을 준 알바니아 농민 봉기는 티라나 등 중부 지역을 장악하고 두러스를 위협하나, 북부 미르디타족의 프렌크 비버 도다, 마티족의 아흐메트 조골리, 코소보의 이사 볼레타니, 엘바산의 아치프 엘바사니 등의 친정부 인사들이 거병하여 농민 봉기의 확산을 저지하고, 2기 정부 또한 두러스의 수비를 성공하면서 공세의 단계로 나아갔다. 8월 이루어진 공세로 봉기군은 주요 거점을 잃고 뿔뿔이 흩어졌으며, 일부가 동부 산악 지대에서 게릴라전을 전개하나 1917년을 마지막으로 토벌당했다.
이전, 그 이전 정부에서도 분쟁을 일으키던 북이피로스 자치 공화국 또한 2기 정부의 문제로 직면했다. 1기 정부는 북이피로스 독립 선언을 무력으로 진압하고자 했으나, 에사드 톱타니의 쿠데타 시도와 알바니아 농민 봉기의 여파로 본격적인 군사 작전은 1915년에서나 가능했다. 그 사이 북이피로스 자치 공화국 측은 점령지의 알바니아인을 학살하는 등 지역 민심의 악화에 영향을 끼쳤고, 국제 헌병대는 이에 호응해 북이피로스 자치 공화국을 멸망시킴으로써 두 차례의 내부에서의 전복 위협은 분쇄된다.
1915년 11월, 동맹국의 공세로 인해 존망의 위기에 선 세르비아 왕국과 몬테네그로 왕국의 군대가 국경을 넘어 퇴각하기 시작한다. 2기 정부는 이들을 공격하는 대신 방치하고 동맹국에게 국경을 개방해 이들을 추격할 수 있도록 했다. 연합군의 퇴각은 북부 부족들의 공격으로 절반의 병력을 잃고 성공적으로 종료되었으며, 이후 동맹국은 알바니아 영토에서 퇴각한다. 이는 협상국과 동맹국 열강이 속해 있는 국제 통제 위원회의 분열로 나타났으며,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해 유명무실해진 국제 통제 위원회가 해체되게 하는 원인이 된다.
해체
2기 정부의 설립 목표는 1914년 헌법에 따른 의회 선거였으나, 수립 직후 맞이한 두 차례의 반란에 연기되었다. 그러다 북이피로스 독립 전쟁의 막바지인 1916년 2월 26일, 마침내 초대 국가의회 선거가 치뤄졌고, 나흘 뒤에 제1대 알바니아 국가의회가 개회한다. 제1차 세계 대전과 국제 통제 위원회의 해체로 인해 알바니아를 향한 열강의 영향력은 축소되었고, 이는 스컨데르베우 2세의 개인적인 욕구와 결합하여 알바니아 공국은 왕국으로 변화한다. 동시에 2기 정부의 해체를 명령하고, 내무부장관인 아치프 엘바사니를 수상으로 하여 엘바사니 정부를 개각한다.
같이 보기
역대 알바니아 각료협의회 |
[ 펼치기 · 접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