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시대의 시발점으로 불리는 1964년 한성올림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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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개요
이 기쁨과 보람은 결코 기적이 아니요, 모두가 국민여러분의 고귀한 땀과 불굴의 집념이 낳은 값진 결과입니다. 박정희 의정총리대신 |
한 나라만을 위한 벨 에포크, 다시 돌아갈수 있다면야. 이기복 |
아름다운 시대는 한국사의 시대 구분 중 하나로, 보통 1964년 한성올림픽부터 1985년 대만 독립 이후까지 한국이 평화를 누리며 정치, 경제, 문화가 급속하게 발전한 태평성대를 뜻한다. 비슷한 시기로, 유종 성황제의 재위 시기인 1940년 이후부터 1976년 성황제의 붕어 시기까지 아울러 '영진태평(永振太平)'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
2.시작과 끝
2.1.1964년 한성올림픽
2.2.제2·3차 자유투쟁
2.3.제2차 국제 반포
2.4.유종 성황제 붕어
2.5.대만 독립
현재 개표가 거의 완료되었습니다만, 현재 개표 상황을 보았을때 대만의 독립은 피할수가 없어보입니다. 분노에 차 말씀드립니다. 대만은 우리를 배신했습니다. 당시 TBC 9시 뉴스앵커였던 최동호 앵커의 발언. 이 발언으로 인해 그는 해직되었으나, 얼마지나지 않아 복직되었다. |
당연히 잔류가 에상되었던 대만 독립 투표에서 51.9%의 유권자가 독립에 투표함에 따라, 결과적으로 대만의 독립이 확정되었다. 당시 세간에서는 60%가 넘는 득표율로 대만이 잔류를 택할것으로 예상되었고, 김대중 의정부에서도 이를 예상하고 대만의 본토편입을 준비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예상이 완전히 빗나감에 따라 김대중 의정부의 정책들이 대거 수정되었고, 독립 투표 다음날 주식시장이 대대적으로 하락하는 등 경제적인 여파 또한 만만치 않았다. 이에 민정당을 비롯한 야당에서는 김대중 의정부가 선거를 앞두고 진보세가 강했던 대만을 본토로 편입하기 위해 무리수를 저질렀다가 대참사를 일으켰다며 비난하였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을 되돌릴수는 없었고, 결국 몇달뒤 대만총독부에 태극기가 내려옴에 따라 대만은 대만공화국으로 완전히 독립하였다. 그렇게 천천히 동아의 천자를 자처했던 대한제국의 아름다운 시대는 황혼기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2.6.황혼기
아름다운 시대의 황혼기를 요약한 영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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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독립 이후 대한제국은 극심한 사회 문제에 골머리를 앓기 시작했다. 오렌지족의 본격화로 인한 세대갈등이 대두되기 시작하였으며, 1986년 아웅산 묘소 테러로 인한 북중국과의 외교적 관계도 악화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만 독립과 함께 구주의 군정이 종료됨에 따라 일본에서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들었고, 남중국이 비슷한 시기 본격적인 경제성장을 이룩하면서 성장의 속도가 70년대에 비해 늦춰진 대한제국은 점차 성장의 동력을 잃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집권한 김종필 의정부는 <안전조국, 선진대한>을 슬로건으로 북중국에 대한 대규모 제재와 군사적 경계를 강화하였고, 이는 곧 사회의 경직화로 이어졌다. 이후 소련이 붕괴되었고, 소련의 붕괴와 동시에 전세계 최고의 패권국이 된 미국과 이에 명실상부 대한제국은 제2강국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미국을 따라잡는것은 시간문제라던 1980년대 초반에 비하면 사회·경제적으로 경직되어버린 대한제국의 아름다운 시대는 끝난것과 다름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