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하자만 (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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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우크라이나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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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극동 공화국 제4대 총리
이반 하자만
Іван Гадзаман
출생 1878년 4월 12일
러시아 제국의 기 러시아 제국 오데사
국적 러시아 제국의 기 러시아 제국
녹우크라이나의 기 녹우크라이나
사망 1941년 (추정)
소비에트 연방의 기 구소련 동시베리아 (추정)
임기 제4대 녹우크라이나 총리
1926년 5월 12일 ~ 1928년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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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녹우크라이나 정교회
의원 선수 3
의원 대수 1, 2, 5
지역구 하바리우스크 지역
소속 위원회 교육위원회
→ 사법위원회
약력 초대 녹우크라이나 교육부 장관
제2대 녹우크라이나 법무부 장관
제4대 녹우크라이나 총리
하바리우스크 대학교 법학교수

개요

녹우크라이나의 교육가, 헌법학자이자 정치가.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의 1918년 헌법과 1923년 헌법 초안을 작성한 헌법의 아버지이다. 모졸레우스키 정부에서 제4대 녹우크라이나 총리를 역임했다.

제3차 극동전쟁으로 인해 본인이 사망했을 걸로 추정될 뿐만 아니라 그가 작성하던 자서전 원고를 포함해 그에 대한 자료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하자만은 1878년 러시아 제국령 오데사에서 태어나 극동 블라디보스토크로 이주하였다. 블라디보스토크의 우크라이나 공동체에서 교사 겸 법 전문가로 활동하던 하자만은 20세기 초의 극동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이후 1918년 헌법 제정을 주도하였고, 1923년 헌법 개정에서도 법무부 장관으로서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모졸레우스키 정부에서 무소속 정치인으로서 약 2년간 총리를 역임했고, 퇴임 후에는 하바이우스크 대학교에서 법학 교수로 재직했다.

제3차 극동전쟁 당시 구소련군에 납치되어 실종됐다. 훗날 불확실한 증언으로 그가 납치 직후 소련 본토로 압송돼 살해당했을 거라고 추정할 뿐이다. 그의 유해는 아직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으며, 독립 이후 녹우크라이나 제2공화국 정부에서 유해 수색을 신소련 측에 요청했으나 거부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