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 Український Вільний Університет Ukrainian Free University | |||||
---|---|---|---|---|---|
상징 | 슬로건 | 자유 우크라이나의 지혜여 영원하라 | |||
교색 | 파랑색 | ||||
수호천사 | 미하일 | ||||
국가 | 녹우크라이나 | ||||
지역 | 한국 파일:한성부 문장 (개화).svg 한성부 (1946-1996) → 녹우크라이나 스보보디우스카 주 스보보디우 자치시 (1996-현재) | ||||
분류 | 국립대학, 4년제 종합대학 | ||||
개교 | 1953년 3월 1일 | ||||
소속 | 녹우크라이나 교육부 | ||||
총장 | |||||
운영위원장 | |||||
재학생 | 학부 | 5,623명 (2023년) | |||
대학원 | 2,345명 (2023년) | ||||
교직원 | 874명 (2023년) | ||||
웹사이트 | |||||
소셜 미디어 | | | | | | ||||
[ 펼치기 · 접기 ]
|
개요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Ukrainian Free University, UFU)는 녹우크라이나 스보보디우 자치시에 위치한 4년제 국립종합대학교이다. 1946년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에 의해 한국 한성에서 설립되었으며 녹우크라이나의 독립 이후인 1996년 개교 40년만에 현재의 스보보디우 캠퍼스로 이전하였다.
볼로디스히드 작할시에 위치한 성 일라리온 대학교, 하바리우스크 직할시에 위치한 주립 하바리우스크 대학교와 함께 녹우크라이나의 3대 대학교로 꼽힌다.
상징
문장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 문장 |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의 문장은 1946년 개교와 함께 디자인되었다. 대천사 미하일(미카엘)이 두 손에 검을 들고 있는 모습을 중심으로 한 문장인데, 미하일은 (독립을 향한) 힘을 의미한다. 문장의 전반적인 방패 형상은 우크라이나와 민족의 자유와 독립을 수호한다는 의미이다. 문장의 푸른 색상은 구소련과 공산주의의 붉은 색에 맞섬을 의미한다.
자유대학교의 문장은 본토 우크라이나의 정치인이자 외교관이었던 뱌체슬라우 리핀스키가 생전에 디자인한 우크라이나의 국장 제안안을 기반으로 당시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의 각료였던 이반 파슬라우스키가 디자인했다.
교가
역사
1942년 앵커리지 조약으로 녹우크라이나 제1공화국은 멸망하였고 녹우크라이나의 영토는 구소련에 병합당하였다. 대한민국으로 피신한 녹우크라이나 정부는 한국의 수도 한성에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를 세웠는데, 이와 함께 많은 녹우크라이나인들이 한국에 망명했다. 하지만 이 망명객들을 위한 전문 고등교육기관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인 대학생들은 임시로 한국의 대학교들에서 공부하였지만 한계가 있었다. 이에 전직 문화부흥부 장관이었던 파슬라우스키와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던 나란말사미가 대통령이었던 흐레샤티츠키의 승인을 받아 망명 우크라이나인들을 위한 대학의 수립을 주도하였고, 이들이 1946년 한성에 세운 대학교가 바로 녹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다. 초대 총장은 파슬라우스키가 맡았다.
1991년 녹우크라이나가 구소련으로뷰터 독립하면서 망명정부가 귀국하였고, 자유대학교 역시 귀국 계획을 세우게 됐다. 기존의 계획은 당연히도 새로 녹우크라이나의 수도로 지정된 볼로디스히드로 이전하는 것이었지만 북부 지역, 특히 제2의 도시인 하바리우스크 지역에서 주요 대학교가 남쪽에만 몰려있다며 반발했다. 이에 당국은 하바리우스크 이전 계획을 검토했으나 이번에는 볼로디스히드 지역에서 반발이 나왔다. 그러자 당국은 볼로디스히드도 하바리우스크도 아닌 스보보디우로 이전을 결정했고, 학사 공사 끝에 개교 40주년인 1996년 오늘날의 스보보디우로 이전이 완료되었다.
학부
성 일라리온 대학교, 하바리우스크 대학교와 함께 녹우크라이나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만큼 웬만한 학부, 학과가 다 있다.
시설
- 흐레샤티츠키 홀: 대학교 본관. 자유대학교에서 가장 큰 건물이며, 대학교 정문으로 입장시 가장 먼저 중앙에 보이는 고풍스러운 건축양식의 트레이드마크이기도 하다. 인터넷에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를 검색하면 가장 많은 이미지가 뜨는 건물. 대학본부로 사용되며, 1층에는 이디야 커피숍과 대학교 역사관이, 2층 이상에는 여러 행정부서가 존재한다. 대학교 건립 당시 녹우크라이나 망명정부의 대통령이었던 보리스 흐레샤티츠키의 이름에서 따왔다. 우크라이나어로는 “Зал Хрещатицького”(“잘 흐레샤티츠코호”)라고 부른다.
- 자유대학교 역사관: 흐레샤티츠키 홀 1층에 있는 시설로, 자유대학교의 역사를 보여주는 여러 자료가 전시되어 있다. 자유대학교 최초의 교기나 초대 총장 파슬라우스키의 사진, 루덴코-데스냐크가 썼던 학사모, 스보보디우 캠퍼스 이전 공표문 등이 있다.
- 파슬라우스키 홀: 대학교 정문의 좌측 정면에 위치한 건물. 반대편에 있는 나란말사미 홀과 대칭을 이룬다. 원래 이 자리에는 대학교 창립자 중 한 명인 이반 파슬라우스키의 무덤이 있었으나 대학교 내에, 그것도 아주 잘 보이는 곳에 무덤이 있다는 사실에 꺼림직해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거기에다가 밤마다 자유분방한 대학생들의 애정행각이 벌어지던 탓에[1] 무덤을 이장했다. 이후 2015년에 반대편의 나란말사미 홀과 대칭되는 형태의 파슬라우스키 홀이 건립되었다. 현재는 여러 사무실과 강의실이 홀 내부에 존재한다.
- 나란말사미 홀: 대학교 정문의 우측 정면에 위치한 건물. 반대편에 있는 파슬라우스키 홀과 대칭을 이룬다. 자유대학교 창립을 주도하였던 당시 교육부 장관인 보흐단 나란말사미의 이름을 따 홀의 명칭이 지어졌다. 1층 로비에 흐레샤티츠키, 파슬라우스키, 나란말사미의 흉상이 있다. 나란말사미 홀이 지어진 시점은 파슬라우스키 홀의 건립 시점보다 한참 앞선, 자유대학교의 스보보디우 이전 당시인 1996년이다.
- 자유의 광장: 대학교 정문을 들어가자마자 나오는 광장. 정면에는 흐레샤티츠키 홀이, 좌우에는 각각 파슬라우스키 홀과 나란말사미 홀이 자유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저녁이 되면 광장 여기저기서 여럿이 모여 돗자리를 깔아두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술을 마시는 대학생들과 커플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광장 중앙에는 "자유의 대천사"라는 이름의 동상이 있다.
- 자유의 대천사: 자유의 광장 중앙에 있는 동상으로, 대학교의 문장에도 들어가 있는 대천사 미하일의 모습을 하고 있다. 오른손에는 자유의 횃불을 들고 있으며, 왼손에는 녹우크라이나의 소형 국장이 양각으로 새겨진 방패를 들고 있다.
- 셰우첸코 도서관: 자유대학교의 중앙 도서관으로, 우크라이나의 문인이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 운동가인 타라스 셰우첸코의 이름을 따 지어졌다. 총 4층짜리 건물로, 다양한 종류의 수많은 책을 보관중이다. 한때 1층에는 컴퓨터실이 있었는데, 누군가가 컴퓨터에 스타크래프트를 깔아서 컴퓨터실이 PC방처럼 변했었다고 한다. 그 컴퓨터실은 현재는 북카페로 리모델링되었다.
학풍
성 일라리온 대학교가 보수주의의 대학교라는 별칭이 있고 하바리우스크 대학교가 진보주의의 대학교라는 별칭이 있듯이 자유대학교는 자유주의의 대학교라는 별칭이 있다. 자유대학교는 망명정부 시기 망명정부 산하의 유일한 대학교였고 이로 인해 자유대학교에는 굉장히 다양한 범주의 학생들이 모였다. 대학에서 다양한 의견과 인간군상이 공존해오면서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자유주의적 학풍이 자리잡았다.
성 일라리온대나 하바리우스크대 이외에도 타 대학교들에 비해 학생들이 자유분방한 편이다. 또 이런 학풍의 영향인지 학생 수 당 스타트업 창업 비율이 현격하게 높다. 자유대학교 당국에서도 이 사실을 꽤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다만 지나치게 자유로운 모습이 보수적인 녹우크라이나 사회에서 안 좋게 비춰질 수도 있는지라 학교 당국에서도 선을 넘는(…) 일부 학생들은 지도를 하는 모양.
출신 인물
- 레오니드 하이다이: 녹우크라이나의 망명 영화감독
- 이반 바흐랴니: 녹우크라이나의 제7대 대통령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2]
- 이호르 탐: 러시아계 과학자이자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3][2][4]
- 올렉산드르 루덴코-데스냐크: 녹우크라이나의 제10대 대통령
- 발레리 조르킨: 녹우크라이나의 대법원장
- 세르히 푸르할: 녹우크라이나의 제16대 대통령
- 바실 오를렌코: 녹우크라이나의 정치인
- 볼로디미르 젤렌코: 녹우크라이나의 정치인
- 유힘 젤마노우: 녹우크라이나의 수학자이자 필즈상 수상자
여담
- 개교 당시 자유대학교가 세워진 자리는 오늘날의 한성부 구로구로, 당시까지만 해도 한성 외곽의 개발 덜 된 동네였다. 이곳에 우크라이나 자유대학교가 세워지면서 많은 우크라이나인들이 이곳에 모여들었고, 우크라이나 국민당 내 혁신 그룹이었던 구로 그룹도 이 지역에서 회동을 많아 하였다고 하여 구로 그룹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과거 자유대학교가 있었던 부지에는 오늘날 오극란거리와 오극란 문화원이 있으며 매년 문화 교류 행사가 열린다.
- 성 일라리온 대학교나 하버리우스크 대학교의 학생들은 자유대학교를 비하하는 의미를 담아 “날라리 대학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와 반대로 자유대학교 학생들은 일라리온대를 ”꼰대 대학교“로, 하바리우스크대를 ”빨갱이 대학교“로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