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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건국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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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명 | 民主建国会, 民建会 |
만문명 | ᡳᡵᡤᡝᠨ ᠰ᠌ᠠᠶᡠᡯ ᡤᡠᡵᡠᠨ ᡝᡵᡝᡵᡝᠩᡤᡝ ᠰ᠌ᠠᢡᠠᢇ[1] |
영문명 | Democratic Association for National Construction, DANC |
창당일 | 1932년 모월 모일 |
역대 총리 | 정샤오쉬 / 초대 • 1927~1939 |
주석 | 류궈중 |
부주석 | 한창푸[2] |
이념 | 자유주의 (만주) 자유보수주의 경제적 자유주의 진보적 보수주의 신유교주의 |
스펙트럼 | 중도 ~ 중도우파 |
입법의원 | 258석 / 500석 (51.6%) |
성급의회의원 | 281석 / 862석 (32.6%) |
현급의회의원 | 852석 / 2484석 (34.3%) |
당색 | 녹색 (#009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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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색 (#D9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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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원 수 | 13만 6천 명 |
국제조직 | 무소속 |
청년조직 | 민주청년회 |
공식 사이트 | |
SNS | | | |
개요
만주의 우파 자유주의 정당. 1932년 창당된 만주의 최고(最古) 정당이다. 현지에서는 주로 민건회(民建会)라 줄여부른다.
역사
1927년, 만주국이 건국되면서 만주의 첫 수상이 된 정샤오쉬는 총선을 치르고 의회민주주의를 확립하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그가 자신을 따르는 이들과 세운 정당이 바로 민주건국회다.
민건회는 초대 총선에서 승리하며 정샤오쉬를 내각총리대신으로 하여 집권하였고, 정샤오쉬가 죽은 후에도 1940년까지 집권한다. 1940년, 제2차 극동전쟁이 발발하자 전시거국내각이 구성되었다. 이와 동시에 대소 유화론을 펼치던 민건회 소속 수상인 시치아는 사임하였고 군인 출신의 협화회 소속 장징후이가 수상에 취임하면서 민건련은 13년만에 수상직을 상실했다.
이후로는 협화회와 정권을 주고받으며 만주 정치를 양분하여오고 있다.
성향
민주건국회는 보수자유주의 정당으로 받아들여진다. 이외에도 민건회의 이념으로 언급되는 것에는 자유보수주의, 고전적 자유주의, 경제저구자유주의, 사회보수주의, 사회자유주의, 만주 내셔널리즘 등이 있다. 만주 정치의 보혁구도에서 개혁 포지션을 맡고 있다.
민건회는 협화회에 비해 경제적으로는 오른쪽에, 사회적으로는 왼쪽에 위치하여 있다. 복지를 중시하는 협화회와는 달리 민건회는 경제적 자유를 중시하는 친시장, 친기업 성향을 보인다. 자유무역과 작은 정부를 주장하는 것이 그 사례다. 문화적으로는 협화회에 비해 왼쪽에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사회적 자유주의 성향인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국제적인 기준에서는 진보보다 보수에 더 가깝다. 다만 내부에 사회자유주의 성향의 소수계파가 존재하기는 한다.
황정에 대해서는 현상 유지를 원하는 흐름이 주류이다. 비록 만주가 헌법에 군주주권을 명시해놓았지만 실질적으로는 국민주권 의회민주주의로 작동하는 경향이 더 강하기 때문이다. 법률안 개정을 통해 황제의 정치 개입을 지금보다 더 제한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으나[3] 이러한 움직임은 당 내에서도 비주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