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내각총리대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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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임한 지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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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60·61대 일본국 내각총리대신 하야시 게이조 林敬三 | Keizō Hayashi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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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1907년 1월 8일 | |||||||||||||||||||||||||||||
일본 제국 이시카와현 (現 일본국 이시카와현) | ||||||||||||||||||||||||||||||
사망 | 1991년 11월 12일 (향년 84세) | |||||||||||||||||||||||||||||
도쿄도 미나토구 키타사토연구소병원 | ||||||||||||||||||||||||||||||
재임 기간 | 초대 육상막료장 | |||||||||||||||||||||||||||||
1950년 10월 9일 ~ 1952년 6월 30일 | ||||||||||||||||||||||||||||||
초대 통합막료장 | ||||||||||||||||||||||||||||||
1952년 7월 1일 ~ 1960년 12월 16일 | ||||||||||||||||||||||||||||||
제59대 내각총리대신 | ||||||||||||||||||||||||||||||
1960년 12월 17일 ~ 1962년 7월 1일 | ||||||||||||||||||||||||||||||
제60대 내각총리대신 | ||||||||||||||||||||||||||||||
1962년 7월 2일 ~ 1965년 7월 5일 | ||||||||||||||||||||||||||||||
제61대 내각총리대신 | ||||||||||||||||||||||||||||||
1965년 7월 6일 ~ 1966년 8월 30일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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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 초상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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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일본국의 군인이자 정치인. 초대 육상막료장 및 통합막료장, 제59-61대 내각총리대신과 주택공단 총재, 적십자사 사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7년 일본국 헌법 시행 이후 유이한 군인출신 총리이자 비의원 총리이다.
1928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여 교토, 가나가와 등에서 근무하다가 내각에서 일하며 중앙 관료계로 진출하였고 일본의 패전이후 톳도리현 지사로 근무하였다. 전후 남부 일본 내에서 일본공산당의 지원을 받은 좌익계 빨치산의 활동이 거세지자 일본인으로 구성된 군대를 결성하려던 GHQ와 요시다 시게루 총리의 눈에 들어 경찰예비대 총대총감 자리에 올랐고 이후 국방군에서 초대 육상막료장 및 초대 통합막료장을 역임하였다.
1960년의 안보투쟁 이후 실각한 기시 노부스케의 뒤를 이어 총리가 된 스즈키 모사부로 총리가 국회의사당 테러사건으로 인해 대다수의 내각 각료들 및 100여명의 중의원 의원들과 함께 폭사하며 발생한 정국혼란기에 오하라 마사요시 총리대행을 지지해 문민세력의 호감을 샀으며 군내 급진파(쇼와군벌)에 의해 시도된 쿠데타 시도를 저지시키며 범 국민적인 지지를 얻게되었다.
오하라 총리대행에 의해 선포된 국가건안시기 당시 거국내각의 총리로써 의원출신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별볍에 의해 총리로 지명되었으며 5년 9개월 가량 재임하였다. 재임시기에 비핵 3원칙 발표, 경제개발 정책, 반공기조 및 문민통제 강화 등의 업적을 남겼으며 이후 같은 내무군벌 출신의 야마다 마사오를 차기 총리로 지지하며 사임했다.
퇴임 이후에도 내무군벌의 수장으로서 국방군에 일정부분 영향력을 행사하였으며 일본주택공단 총재, 일본적십자사 사장, 자유당 부총재 등을 역임하다 1991년 서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