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제국
新羅帝國
新羅國 | ||||||||||||||||||||||||
국기 | 국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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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업일신 망라사방 德業日新 網羅四方 | ||||||||||||||||||||||||
상징 | ||||||||||||||||||||||||
국가 | 신라가 | |||||||||||||||||||||||
닭 | ||||||||||||||||||||||||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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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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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 ||||||||||||||||||||||||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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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신라 제국(新羅帝國)은 동아시아의 삼한반도와 남만주에 위치한 입헌 군주제 민주공화국이다. 삼한(三韓)이라고도 하며, 영어로는 Shilla 또는 Korea이다.
국가 상징
국호
언어별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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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어 | 신라 제국 | ||||||||||||||||||||||
한문 | 新羅帝國 | ||||||||||||||||||||||
관북어 | 실라 제궉 | ||||||||||||||||||||||
[ 외국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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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臣)들은 생각건대 '신'(新)은 덕(德業)이 날마다 새로와져서, '라'(羅)는 동·서·남·북의 것들을 널리 받아들여 모두 포함한다는 의미이므로, 그것으로 국호(國號)를 삼는 것이 좋을 듯하오며, 또 생각건대 자고로 국가를 가진 이가 다 제왕(帝王)이라 칭하였는데 우리 시조가 건국한 지 지금 제22대에 이르도록 단지 방언(邦言)으로 칭하여 존호(尊號)를 정하지 아니하였으니 지금 군신(群臣)은 한뜻으로 삼가 신라국왕(新羅國王)이란 존호를 올리옵니다"고 하니, 왕이 거기에 좇았다. 臣等以爲, 新者德業日新, 羅者網羅四方之義, 則其爲國號宜矣, 又觀自古有國家者 皆稱帝稱王, 自我始祖立國, 至今二十二世, 但稱方言, 未正尊號, 今群臣一意, 謹上號新羅國王, 王從之". 삼국사기 中 |
국호 "신라" 는 옛 이름 "사로" 의 변형으로 추정되며, "덕이 날마다 새로워져서 사방의 것들을 널리 받아들여 포함한다" 라는 뜻이 부여되어 있다. 구어체에서는 "삼한" 이라는 이름도 사용된다.
외국어 이름은 국가의 위치에 따라 다르다. 중화권과 일본, 근대화 이후에 조우한 국가들은 "신라" 라는 이름 그대로 부른다. 유목민족 국가, 동유럽 국가와 오스만 제국의 지배를 받았던 국가들은 관북인들이 세운 자나라에서 유래한 이름인 "다이자" 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동남아시아와 인도 아대륙, 중동과 동아프리카 국가들은 해상 무역국가 청해진에서 유래한 "청해" 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정식 명칭은 "신라 제국" 이지만, 보통 "신라국" 이라고 지칭되는 편이며 공문서에서도 역시 혼용되어 있다.
국기
초생월기 初生月旗 | |||||||||||||||||||
[ 국기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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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생[2]월기는 두개의 햐양색 띠 사이의 짙은 파랑색 배경에 하양색 초승달이 그려진 모습을 하고 있다. 상징으로써는 촤소 1500년전부터 사용되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삼국시대와 통일시대에는 군기로써 사용되었으며, 이는 군사세력의 정권인 청해진 시대에도 계속되었다. 이후 여진과 몽골, 관북인의 지배를 받던 1200~1500년대에 자취를 감추지만, 임진왜란 이후 신 금씨왕조가 들어서고 신라가 재수립된 후 신라 부활의 명분을 강조하기 위해[3] 다시 상징기로써 정해져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남색 배경은 신라의 유구한 역사, 초승달은 신라의 국체, 두 하얀 띠는 신라의 단결을 의미한다. 최종적인 개정은 1975년 박정희에 의해 이루어졌다.
한편, 대신라제국 시절 사용되었던 국기인 "태극기" 도 존재한다. 하영색 배경에 태극무늬를 사괘가 둘러싼 모양의 국기로, 태극은 삼한제교의 상징이다. 태극기는 국제사회에서 욱일기, 하켄크로이츠와 마찬가지로 전범기 취급을 받는다.[4] 신라 내부에서도 전쟁의 종결 이후 사용이 금지되었으나, 5.16 군사혁명 이후 국가기관이나 군기로써의 사용이 부활하여 현재도 준국기의 위치에 있다.
국장
십육문 초생월장 十六紋 初生月章 | |||||||||||||||
[ 국장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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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색 배경 안에 초승달이 그려진 이 국장의 이름은 "십육문 초생월장"이다. "십육문"은 국장에서의 튀어나온 16개의 모서리를 의미하며 16개의 선은 고려 칸국 시대부터 번영과 부귀영화의 상징으로써 쓰여지고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국장이 게시될 때에는 반드시 배경의 중심에서 조금 위로 올라간 곳에 게시하여야 한다는 것인데, 이는 신라의 국제적인 위상과 국가의 자신감을 상징한다.
역사
본래 진한의 사로국이다. 삼한반도의 동남쪽에서 설립했으며, 백제, 고구려 등과 겨루며 발전하였다. 7세기에는 당나라와 협력하여 백제와 고구려를 멸했으며, 삼한일통을 이루었다.
장보고의 정변으로 상고 김씨왕조가 허수아비로 전락한 이후 , 송나라의 설립 후 활성화된 무역에 힘입어 해상무역 국가로써 전성기를 누렸다. 그러나 요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북쪽 호족의 힘을 빌린 탓에 호족들의 힘이 강해지기 시작하더니, 금나라의 침략으로 청해진 시대는 무너지고 호족들이 난립하였으며, 상고 김씨 왕조는 금나라의 북 김씨왕조와 청해진의 남 김씨왕조로 나뉘었다. 이후 원나라의 지배 하에서 남 김씨 왕조는 멸족당하고 북 김씨 왕조는 대도와 평양에 머물며 명목상의 신라 왕위를 유지하였다.
원의 힘이 약해지자 다시 지방 호족들이 활개를 치기 시작하였으나, 곧이어 금나라 시기 함경도에서 형성된 삼한인과 여진의 혼혈 민족 관북인들이 세운 대자국(자나라)에게 정복당했다. 대자국의 갈성씨 왕조는 북 김씨 왕조의 공주 충한왕을 신라의 왕으로 삼고 이어 결혼하여 신라의 왕위를 가져갔다.
자나라는 원명교체기의 혼란 속에서 순식간에 급성장을 이루었다. 삼한 반도와 남만주에서 착취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만주와 몽골 초원을 정복하고 대칸 자리를 차지했으며, 위구르 지역을 간접 지배했으고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와 최왼관계를 형성했다. 남쪽으로는 명나라와, 서쪽으로는 티무르 제국과 끊임없이 다투었다. 자나라는 16세기 왕권 다툼으로 몽골의 서자, 만주의 동자, 삼한반도의 남자 세 세력으로 분열했다.[5] 남자는 명나라에 조공했으며, 서자는 몽골에게, 동자는 여진과 남자에게 정벌당해 사라졌다. 자나라가 분열한 이후, 삼한인들은 300년에 달하는 북방 민족으로부터의 독립을 꾀하였다. 이 중심에는 호족 난립 시대에 창립된 삼한제교가 중심이 되었다. 삼한 반도의 남부 지역에서는 봉기가 끊이지 않았다.
이 상황에서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삼한 정벌이 개시되었는데, 명장 혼킨 아키츠라(本金 鑑連)가 선봉에 서 순식간에 남경과 평양을 함락시키고 자나라를 만주로 몰아냈다. 혼킨 가문은 규슈의 서쪽을 지배하던 다이묘로 본래 몽골의 침략으로부터 도망친 남 김씨 왕조의 방계 혈통이었다. 아키츠라는 삼한반도를 정벌한 후 반란을 일으켜 다른 다이묘들과 일본군을 몰아낸 후 신라의 재건을 선언하며 신 금씨왕조가 성립하였다.
그러나 아키츠라(신라 세조)는 명분을 대기 위해 자신의 혈통을 빌려 신라의 재건을 선언한 것이지, 신라인으로써의 정체성도 없었고, 삼한어도 할 줄 몰랐다. 그의 불안정한 치세 동안 다시 자나라가 남진해 평양을 빼앗기고, 민심은 흉흉하였다. 이에 아키츠라의 아들 나가요시는(신라 태종)[6]아버지를 폐위시키고 왕위에 올랐다. 그는 삼한인들의 종교 삼한제교를 받아들였으며, 정부 조직 등을 삼한식으로 바꾸었다. 또한 에도 막부와 관계를 회복하고, 후금과 힘을 합쳐 자나라를 멸망시키고 속국인 관북 왕국을 세워 세자가 운영하게 하였다. 이후 만주는 후금이, 삼한반도와 연변 지역은 신라가 차지하며 청(후금)과도 관계를 두터이 하였다.
태종이 정국을 안정시킨 이후 신라는 급속히 발전하였다. 규슈의 다이묘이자 본래 가톨릭교도였던 신금씨왕조는 서양 문물에 개방적 태도를 취했고, 김포와 나주에 교역소를 만들어 주었다. 이를 통해 북경과 서양 사이에서 중계 무역으로 상당한 이윤을 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