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국민당의 계파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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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우파 國民右派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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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 | 1970년대 후반[1] |
수장 | 시진핑[2] |
정치적 이념 |
사회보수주의 |
경제적 이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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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정치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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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중국국민당 내의 강경우파 성향의 파벌이다.
역사
2010년대 이전
일반적으로 국민우파의 형성은 1970년대 후반, 즉 장제스 총통의 사망 이후 중국공산당이 집권하고 중국이 민주화 되어가던 시점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국민당은 장제스의 아들인 장징궈 주석의 지도하에 탈 권위주의 기조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저우언라이 총통을 필두로 한 공산당과의 합작인 일명 제3차 국공합작을 표방하며 공산당과의 협력을 통한 거국정부 구성 및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당시 장징궈 주석의 국공합작 정책에 반대한 국민당 골수 보수파들을 중심으로 기존 국민당의 강경한 보수주의 성향을 수호하려는 이른바 원류(源流) 운동이 당내에서 벌어졌고 이 운동이 현재 국민우파의 시조격으로 여겨진다.
국민우파라는 명칭이 공식적으로 사용된 것은 기록상 1989년이다. 당시 중국국민당은 첸치천 주석의 지도하에 롄잔, 쑹추위, 장쩌민 등의 인물들을 앞세워 개혁행보를 이어나가고 있었고 기존 개혁을 이끌던 장징궈 전 주석이 사망한 이후 더욱 강도높은 개혁과 중국공산당에 타협적인 모습이 이어지자 린양강과 하오보춘을 필두로 한 원류파들이 첸지천 주석에 반대하며 정치투쟁인 일명 2월 정쟁(二月政争)을 벌이고 있었다. 이때 린양강 당시 국민당 중앙위원회 상무위원이 기자회견에서 개혁파의 "수구파"라는 비판에 대해 스스로를 진정한 국민의 우파이자 국민당의 우파(真正的國民的右派,國民黨的右派)로 지칭하였고 여러 언론에서 줄여서 국민우파라고 보도하며 국민우파라는 명칭이 확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