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 연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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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무 시대 建武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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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막 | 1972년 1월 1일 | |
종막 | 1972년 11월 28일 | |
황제 | 소황제 | |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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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 건무(建武) |
개요
1928년부터 1971년까지 쓰인 대한제국의 연호.
소황제가 세조 광무제가 왕망을 꺾고 한나라를 재조한 것처럼 장차 자신이 장성하여 대한을 제조하겠다는 포부를 담아 광무제의 연호를 본따 선정했다.
그러나 소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고 즉위한 고조가 이 연호를 무효화하여 이 시기의 연도를 이전의 연호인 연경(年景)으로 표기하도록 했고[1] 그 다음 해인 1973년부터 성녕의 연호를 쓰게 하였다.
현대 대한에서 건무라는 연호는 사용된 시기가 1년이 채 안된다는 점과, 고조의 습용 정책으로 의하여 역사책에 한두번 등장하는 것 외에는 사실상 사용되지 않는다.
사건
기타
- ↑ 이에 따르면 1972년은 연경 45년이 된다. 이렇게 정통성 문제로 새 연호를 쓰지 않으려는 차원에서, 개원이나 황제의 붕어 등으로 대체된 기존 연호를 일부러 계속 쓰는 것을 전문 용어로 '습용'(襲用)이라고 한다. 다른 예시를 들자면, 삼국지에서 연초에 조조가 죽고 몇 달 뒤 한-위 선양이 일어난 220년에 건안 연호가 폐기되었는데, 촉한ㆍ동오는 220년에 연호를 바로 바꾸지 않고 습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