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련의 집산회 계열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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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 | → | 대동아집산회 | → | 신사당(당명 변경) |
아시아사민당(개별 합류) |
大東亜集産会│대동아집산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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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문 명칭 | Collectivist Party of Greater East Asia |
창당 | 1955년 12월 31일 |
당명 변경 | 1989년 10월 1일 (신사당으로 개칭) |
이념 | 기타주의 (일본 파시즘) 순정사회주의 비동맹주의 동아시아 내셔널리즘 |
스펙트럼 | 혼합정치, 제3의 위치[1] |
회장 | 스즈키 모사부로 (창당 당시) 도이 다카코 (당명 변경 당시) |
중앙집행위원장 | 가지야마 세이로쿠 (당명 변경 당시) |
간사장 | 와타누키 다미스케 (당명 변경 당시) |
국회대책위원장 | 오우치 게이고 (당명 변경 당시) |
당색 | 빨간색 (#ED1C24) |
노동조합 |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 (총평) |
청년조직 | 사회주의청년동맹 (사청동) |
국제조직 | 무소속 |
정당원 수 | 7,780,548명 (1989년 7월 기준) |
개요
대동아집산회(일본어: 大東亜集産会 다이토아슈산카이[*])는 1955년부터 1989년까지 아련의 유일당이었던 정당이다. 34년간 아련의 유일 합법 정당으로 아련의 정치, 사회 전반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현대에도 일본, 대만, 만주, 조선의 정치를 구성하는 주요 정당인 일본 자유민주당, 대만 민중당, 협화당, 민자당 등의 모태가 되고 있어, 그 영향력은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역사
1955년, 스즈키 모사부로 국무경이 스즈키 개신을 단행하면서 소련의 공산당과 같은 정치 전반을 영도하는 전위적인 일당의 필요를 느껴 창당하였다. 1936년부터 1955년까지 일본에서는 정당 활동이 일채 금지되어있었고 사대당, 민정당, 정우회, 공산당 등 주요 정당이 전부 해체된 상태였다. 아련이 빠른 경제 성장을 통해 193-40년대의 불황을 극복한 후, 정치적 안정을 되찾자 보다 조직적으로 정치를 영도할 필요가 있었던 스즈키 국무경이 소련 공산당을 본뜬 유일당을 창당한 것이다. 이전까지 독립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3~40여개의 사회 단체들이 합병하여, 집산회가 창당되었다.
집산회는 외견상으로 정당이었으나 실질적으로는 유일당의 특성상, 정치 전반을 단일 의지로 영도하기 위한 정치결사에 더 가까웠다. 1965년 스즈키 내림으로 스즈키 국무경이 퇴진하고 보수파 니시오 스에히로가 집권한 이후에 유일당으로서의 기능은 상대적으로 약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무경이 당의 회장을 당연직으로 역임하며, 1989년까지 아련의 정치, 사회 전반에 있어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1989년 도이 다카코 국무경의 자유화 선언으로 다당제가 시행되면서, 유일당으로서의 지위를 잃게 되었다. 1990년 치러진 첫번째 자유선거를 몇달 앞두고 실질적으로 기능이 정지되었고, 89년 10월 신사당(新社党, New Socialist Party)으로 당명을 개칭하는 안건이 만장일치로 통과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일부 개혁파 의원들은 무라야마 도미이치를 중심으로 당에서 이탈, 아시아 사회민주당을 창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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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극좌와 극우를 오가는 정치 성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