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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의 국가유공자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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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군왕비 겸 진주백 전하 하월령 河月齡 | Ha Wol-ryeong | |
출생 | 1896년 12월 25일 |
청나라 상하이 와이탄 (現 중화인민공화국 상하이시 황푸구 와이탄) | |
사망 | 1930년 9월 13일 (향년 34세) |
영국 잉글랜드 런던 웨스트민스터 | |
묘소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면 자모리 913 |
국적 | 대한제국 |
작위 | 백작[1] |
직업 | 시인, 교육가, 사회운동가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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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내 대지 위의 질주, 글로써 세상을 광명케하리라." 하월령이 생전 품에 지니고 다닌 수첩의 첫 장에 수록된 문구 |
영통시대에 활동한 시인이자 교육가, 사회운동가. 20세기 초반 국문학과 여성문학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한국 근대 문학의 상징이다.
상세
생애
출생과 가문
청나라 상하이에서 유복한 귀족 가문으로 태어났다. 본가는 진주부 진주군 진주면 평안동(현 경상남도 진주시 평안동)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외교관인 진주백(晉州伯) 하선진과 어머니 서희수 사이의 3녀 중 차녀였다.
그녀의 부친은 당시 엄격하고 보수적인 귀족 가문의 일원이었음에도 신교육의 영향으로 "조국을 빛내는 신여성이 되려면 머리를 키워야 한다"고 하면서 세 딸에게 학문을 독려했다. 하월령은 14살 때 언니와 동생과 함께 귀국하여 육영공원에 입학한 후, 영어에 소질을 보이면서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한 후 경성제국대학에서 영문학을 배웠다.
세광여자대학교 설립
비극적 죽음
사조
대표 작품
바람보다 먼저
바람보다 먼저 하월령
바람이 허락한다면 |
유명한 구절
우리가 사랑했던 겨울과 여름 사이, 나는 그 자취를 아직 잊을 수 없다. 《가을》 |
신음 없이 들어도 노을 너머 사라지는 수평선, 그 한 때의 아름다움. 《아나톨리를 위하여》 |
내분의 으악새 학의 몸을 빌려 날아가라. 《으악새》 |
작품
여담
- 2026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의 필적 확인 문구 "비에 젖지 않는 바다처럼"이 「바다의 편지」 속 시구의 일부이다.
- 2023학년도 9월 모의평가의 필적 확인 문구 "별과 함께 우리 월광으로 가자"가 「별과 함께하는 산책」 속 시구의 일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