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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피 (토론 | 기여)님의 2026년 9월 22일 (화) 20:13 판
[ 세계관 설명 ]
먼동이 터오고 헤어질 시간이면
다시괴로워서
남몰래 흘린눈물이
뺨을적시네
샬라
"나오미의 꿈"은 "대한제국이 공화국이 되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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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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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개화기
대한제국
공화국기
한성정부
현대
대한국
[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2] 한사군은 조선사 포함 여부에 대해 논쟁이 있음
[3] 가야는 신라의 복속 이후에도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어 7세기 중엽까지 반독립적 상태로 존속했다는 학설도 있음
주요 민족: 한민족 (예맥 · 삼한)
대한국
관련 문서
대한제국
大韓帝國 | Empire of Korea

대한국
大韓國 | Empire of Dai Han
국기 (1897~1899년)
국기 (1899~1910년) 국장
광명천지
光明天地
상징
국가 애국가
국기가 국기가
국화 오얏꽃
위치

1897년 10월 12일 ~ 1919년 4월 10일
칭제건원 이전 멸망 이후
대조선국 한성정부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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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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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한반도 및 부속 도서[1]
수도 황성 한성부(皇城 漢城府)
면적 220,903km² (내수면 비율 2.8%)
접경국 • 청나라의 기 청나라
• 러시아의 기 러시아 제국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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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추산)
총인구
17,420,000명(1910년)
인구밀도
78명/km²
민족
한민족
공용어
근대 한국어, 한문
언어
한글, 한자[2]
종교
유교(성리학), 불교(대승 불교), 천도교, 가톨릭, 정교회, 개신교, 무속
민족
대한제국군
행정구역
1부 13도, 11부 316군 (1910년)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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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전제군주제[3]→준입헌군주제→전제군주제
국가원수 황제(대황제[4])
역대 황제
초대 고조 (1897년 ~ 1919)
국성 전주 이씨(全州 李氏)
정부수반 의정
행정부 의정부
입법부 중추원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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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화 냥 (1894~1902)
→ 원 (1902~1907) 대한은행 원 (1907~1919)
GDP 전체 GDP: $263억 (세계 26위)[5]
1인당 GDP: $1,523[6]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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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호 광무 (1897년 ~ 1919년)
시간대 UTC+08:30[7]
통행방향 우측통행[8]
도량형 SI 단위[9]
기타
현재 국가 • 대한국 (나오미)의 기 대한국

개요

대한제국(大韓帝國)은 1897년(광무 원년) 10월 12일 조선이 제국을 선포하여 세워진 한민족의 국가이자 전제군주제 국가로, 한국사에서 성립된 최초의 제국이다.

대조선국의 대군주인 고종이 건양 2년(1897년) 칭제건원하여 황제를 선포하고 국호를 대조선국에서 '대한제국'으로 개칭하였다. 아울러 광무개혁을 통하여 근대화를 추진하였다. 미국을 비롯한 수교국들의 공식 승인을 받았으며 서양에서 조선국을 부르던 Korea에서 따 와 국제적으로 Empire of Korea로 불렸다.[10] 과거 고려 왕조가 역성혁명으로 무너져 조선 왕조가 개국했던 것과 달리 대한제국의 국체는 조선에서 그대로 이어졌다.[11]

제국 선포 이후 구본신참을 표어로 내걸고 광무개혁을 시도하였으나, 황제권 강화에 치우친 태생적 한계와 일본의 침략 방해로 인해 실패하였다. 또한 일본 제국을 비롯한 열강으로부터 지속적인 간섭을 받았다.

이러한 상황은 한러일전쟁에서 의친왕을 위시한 독립협회 주도의 분조가 결성한 한러연합군이 승리하자 이후 고조의 실권이 위축되며 광무헌정이라고 불리는 준입헌군주제가 시행되었다.이를 시작으로 독립협회가 주도하는 각종 개혁이 시행되었으나, 러시아의 2월혁명을 목격하고 정치적 편집증이 격화된 고조의 친위쿠데타 무오정사로 일시적으로 전제정치가 시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조의 전제정은 미곡 가격 폭등에서 시작된 3.1혁명으로 종결되었다. 전국적으로 퍼진 반정부시위는 고조와 주요 종친들이 피신한 경운궁이 의문의 화재로 불타며 황족들이 일거에 사망하며 종결되고 임시정부가 구성되었다.

임시정부의 의정 이승만은 황실 유력인사의 부재를 틈타 공화정체를 근간으로 하는 신정부를 선언하고 일본과의 교섭으로 인천 앞바다에 일본 해군의 파병을 이끌어내고, 일본 해군의 무력시위를 통해 군부의 반발을 억눌렀다. 마침내 군부의 실세 조동윤 참모차장과 이승만이 교섭한 끝에 정동각서를 발표하며 군부가 공화국 선포에 동의하였고, 1919년 4월 10일에 한성정부가 선포됨으로써 대한제국은 기미국치로 멸망하였다.

국호

上曰: 我邦乃三韓之地, 而國初受命, 統合爲一。 今定有天下之號曰‘大韓’, 未爲不可。 且每嘗見各國文字, 不曰‘朝鮮’, 而曰韓者, 抑有符驗於前, 而有竢於今日, 無待聲明於天下, 而天下皆知大韓之號矣。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한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하여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나라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고조실록 고종 34년(광무 원년, 1897년) 양력 10월 11일 3번째 기사: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이하의 관리들을 인견하다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의 제문과 반조문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
《고조실록》, 1897년 10월 11일

정식 국호는 '대한국(大韓國)'으로, 대한은 삼한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기원전 9세기 주나라 선왕 시기에 추(追)와 맥(貊)을 복속해 북국을 다스렸다는 한(韓)후가 있고, 기원전 4세기 고조선의 군주가 한(韓) 씨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뺏긴 후 한지(韓地)의 군주가 될 때 한왕(韓王)을 자처하는 등 고조선의 군주를 뜻하는 말로 쓰인 한(韓)이 유래가 되었다. 이후 한(韓)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으로 불렸다. 마진변한이 사라진 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난 삼국시대 후반부 당시에는 의미가 변형, 확장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셋을 삼한이라고 불렀고,[12][13] 이것을 통일신라와 고려가 통일할 때 스스로 삼한일통이라 했기 때문에 '한'은 한민족의 영역 전체를 의미하는 별칭으로도 쓰이고 있었다. 삼한이 원래 삼국시대 초반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여러 나라들을 의미했다는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고증에 의해 밝혀졌지만, 관용적 용법은 계속 이어져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때까지 삼한이란 단어는 삼국=한국이란 의미였다. 의미 변화에 대해서는 삼한 문서 참조. 고종은 이 한(韓)을 정식 국호로 정한 것이다.

여러 별칭이 있는데, 대표적인 별칭으로는 '대한제국'이 있다. '대한국 국제'에서의 용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은 정식 국호라기보다는 제국으로서의 국체를 강조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약칭으로는 '대한'과 '한국'이 사용되었는데, 현대의 대한국 약칭이 같다. 나라 이름은 '대한'이고, '제국'은 각각 황제국이라는 국체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강점 이후 한성정부 대한제국을 부정적 의미로 구한(舊韓)이나 구한국(舊韓國)으로 지칭하였으며, 한성정부 공문 및 편찬 사서나 교과서에 구한말(舊韓末)이라고 지칭하였다. 이때의 용어가 관습화되어 대한제국을 구한국으로, 대한국을 신한국(新韓國)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현대의 교과서에서도 구한국과 신한국으로 지칭하고 있다.

영어명인 Empire of Dai Han은 대한제국 정부가 초기 내세웠던 명칭이었고 외국 공사관에 요청했지만 이미 Korea가 한국을 뜻하는 말이 된 지 수백 년이 지난 터라 바뀌지 않았다. 결국 Korea(프랑스어 Corée/러시아어 Корея)를 수용하여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명칭은 당시 발행한 여권이나 우표에도 반영되어 있다.

한성정부는 3.1 혁명 이후 대한 및 한국이라는 용어를 금지하는 한편, 한반도와 부속 도서에 대해 전 국호인 조선으로 통칭하고 고조를 폐주 이형으로 격하하는 한편, 황실을 이왕실로 폄훼하였다. 그 예로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로 ‘대한민보’는 ‘민보’로 ‘대한신문’은 ‘한양신문‘ 등으로 바꿔야 했고 바꾸지 않는 단체들은 전부 판매금지를 당했다.

한성정부기 대한과 한국이라는 국호는 철저하게 금지되었으나, 여러 복벽 세력에 의해 빈번하게 사용되었고, 6.10 궐기 후 다시금 대한이라는 명칭이 국호로 사용되게 된다.

둘러보기

  1. ↑ 간도 및 연해주 일대의 경우 고조 재위기 대한제국-청 국경 분쟁과 대한제국-러 국경 분쟁이 존재하고 있다.
  2. ↑ 갑오개혁을 계기로 국가 공문서에서 한문을 지양하게 되었으나 《조선왕조실록》 등 여러 국가 기록들이 여전히 한문으로 쓰였다. 한편 이 시기 한국어, 한문과 함께 문자 언어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던 이두는 한글 한국어의 확산으로 급격히 쇠퇴한다.
  3. ↑ 이전엔 갑오개혁과 독립협회에 의해 입헌군주제의 틀을 마련했었고, 형식상이긴 해도 전국자문회의 겸 행정심의회로서 중추원이 존재하였지만, 독립협회(중추원) 해산 후 대한제국에서 공인한 헌법은 황제의 무한한 군주권을 규정한 대한국 국제(1899년 제정) 밖에 남지 않았다.
  4. ↑ 대한국 국제나 수호 통상 조약 등에서 사용되는 표현.
  5. ↑ 의외로 경제 규모가 큰데, 이는 한반도 자체가 인구가 꽤 많은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인구가 곧 경제력이었던 전근대 사회 특성상 한민족 국가들은 어느 정도의 경제력은 가지고 있었다. 심지어 조선 초중기까지만 해도 경제 규모 10위권 이내에 들어간 적도 있었으니 대한제국은 오히려 하락한 것이다.
  6. ↑ 2025년 달러 기준. 원화로 환산하면 약 206만 원, 1900년 당시 달러 가치로는 약 40달러다.
  7. ↑ 1908년 관보 제3994호(칙령 제5호)에 따라 동경 127.5°를 기준으로 GMT+08:30 설정.
  8. ↑ 1906년 '우측통행령' 반포.
  9. ↑ 공식적으로는 1905년에 도량형법이 공포되었지만 민관에선 여전히 척관법이 혼용되었다.
  10. ↑ 조선이 Korea로 불린다는 사실은 전기 조선 시기부터 조정에서도 인지하고 있었는데 서양에서 조선을 자신들이 무너뜨린 고려라는 이름으로 부른다는 사실에 황당해 했다. 이는 사실 서양과 동양의 국호 관념이 다르기 때문으로, 동양의 국호는 곧 왕조와 같지만 서양에선 국호는 지역, 민족 느낌이 강하고 왕조와는 별개이다. 따라서 서양에선 왕조가 바뀐다고 지역이나 민족이 바뀐 건 아니니 과거에 그 지역의 이름이라고 각인된 '고려'로 조선을 계속 부른 것이다. 대한제국은 자국의 국호를 Empire of Dai Han으로 불러 줄 것을 각국에 요구했지만 당시 국제 사회에서는 과거부터 통용되던 국호인 Korea를 따와 Empire of Korea 또는 Korean Empire로 표기했다.
  11. ↑ 이로 인해 대한제국을 조선의 연속선상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하며, 한성정부에서는 아에 고조를 조선의 26대 군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12. ↑ 마진변한에 포함되지 않는 고구려인의 묘지명에서 스스로나 고구려인을 삼한이라고 부르는 금석문 자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변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진 묘지명, 고현 묘지명 등이 있다.
  13. ↑ 또한, 당대 중국(당)도 고구려 출신인 연남생에게 변국공(卞國公) 작위를 주었는데 이를 통해 확장/변주된 삼한론에서 마한→백제, 진한→신라, 그리고 가야의 멸망으로 인한 변한의 공백을 고구려에 대입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