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사카도 (개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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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시치노카리.svg 일본국
도도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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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 지방
関西 地方
도(都) 부(府) 현 (県)
오사카도
大阪都
교토부
京都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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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에현
三重県
시가현
滋賀県
와카야마현
和歌山県
효고현
兵庫県
* 는 도 행정구역을, 는 부 행정구역을, 은 현 행정구역을 일컫는다.
* 나고야시의 영향력에 따라 미에현주부 지방에 포함시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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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사이_지방_지도_(개신).svg
일본의 도(都)
大阪都
오사카도
Osaka Metropo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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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청 소재지 주오구 오테마에2초메 1-22
하위 행정구역 4특별구 32시 9정 1촌[1]
면적 1,905.14km²
인구 8,820,914명(2019)
인구밀도 4,622명/km²
GDP(명목) 약 $3,778억(2019)
1인당 GDP $42,824(2019)
도지사 개신당_워드마크_흰색.svg 사토 일레이나 (초선)
부의회
(88석)
일본의_미래당_로고_흰색.svg 32석
개신당_워드마크_흰색.svg 46석
무소속 5석
중의원
(19/465석)
개신당_워드마크_흰색.svg 9석
일본의_미래당_로고_흰색.svg 10석
참의원
(8/245석)
일본의_미래당_로고_흰색.svg 8석
상징 도화 매실꽃 / 앵초
도목 은행나무
도조 때까치
ISO 3166-2 JP-27
도메인 .osaka(.lg).jp,[2] .osaka[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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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4K로 촬영된 오사카도

오사카도(大阪都, Osaka-to)는 일본 혼슈 중서부에 위치한 (都)이다. 간사이의 중심이자 일본 제2의 도시이다. 도쿄도와는 직석으로 약 400km, 철도로는 약 550km 떨어져 있다.

보통 오사카라고 하면 舊오사카시 지역인4특별구가 아닌 오사카도(都)를 가리킨다. 큰 행정구역이 오사카도 안에 4특별구가 있는 구조이다. 오사카도의 중심지는 물론 오사카 4구지만 오사카도 내에는 오사카 4구 외에도 사카이시 등 많은 도시가 있다. 오사카 4구의 인구는 약 275만, 오사카도의 전체 인구는 약 800만 명이다. 참고로 고베시[4], 교토시[5], 나라시[6]는 오사카부와는 다른 행정구역이다. 오사카도를 중심으로 한 오사카 광역권인 간사이지역은 인구가 2,200만여 명에 달할 정도로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도시 광역권이다.

2020년 기준으로 오사카의 인구는 도도부현 중 인구 3위이다. 참고로 도도부현 인구 2위는 가나가와현이다. 현재 오사카도, 교토부, 효고현의 간사이 권역의 인구는 수도권으로의 인구집중으로 매년 감소 추세인 반면, 도쿄도, 가나가와현, 사이타마현 등 수도권인 관동지역의 인구는 증가 추세이다. 2019년 기준으로 오사카부의 연간 총생산은 도쿄도에 이어서 2위[7].

오사카 하면 오사카도와 오사카 4구 중 어느 지역을 지칭하는가 하는 질문도 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본에서는 오사카 하면 오사카를 가리킨다. 오사카 4구는 오사카 내에 있는 여러 행정구역 중 한 곳으로 여겨진다. 오사카 4구가 아닌 오사카부 일부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도 일본 모든 언론에서는 오사카에서 일어난 사건이라 보도하며, 오사카의 도시 행정 정책은 오사카도지사가 최종적으로 결정하고 공식 발표한다. 오사카시는 서울의 사대문안과 같은 개념으로서 오사카의 핵심 지역이자 도심으로 보는 게 낫다.[8]

오사카도 내 인구 270만 명에 불과한 오사카 4구만을 보더라도 지역 내 총생산이 요코하마시를 가뿐히 제치며 사이타마현, 효고현, 홋카이도 등 몇몇 도도부현보다도 크다. 오사카도 전체의 총생산은 사우디아라비아아르헨티나보다도 크고, 또한 오사카를 중심으로 한 게이한신 도시권은 2012년 기준 세계 7위의 경제권을 형성할 만큼 규모가 매우 크다. 이렇기 때문에 평일에는 고베, 교토, 나라 등 주변 지역에서 오사카로 출퇴근하는 인원이 많으며[9], 교토나 고베로 가는 전철이 모인 오사카·우메다[10]·쿄바시역의 러시아워 인파는 도쿄의 시나가와역을 아득히 뛰어넘는다.

오사카는 국제무역항, 국제공항, 철도 등의 교통을 통한 국내외적 물류의 압도적인 강점과 고베-오사카-교토로 연결된 지리적 우위뿐만 아니라 와카야마현, 나라현, 시가현 등을 포함한 중심에 있으며 생산량 면에 있어서도 간사이권역 경제의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렇다고 간사이권 경제는 오사카가 독보적인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에 일부 경제권을 흡수하긴 하지만 애초에 일본 제2의 항구도시인 고베를 끼고 있는 효고현이나 경공업 라인이 잘 갖춰진 교토부는 각각의 독립적인 경제권역을 가지고 있다. 특히 효고현은 인구는 거의 반 조금 넘는 수준밖에 안되는데 현내 총생산은 많을 때는 오사카부의 2/3수준으로, 1인당 총생산량으로 보면 오사카랑 맞먹을 정도. 효고나 교토의 경제권을 강제로 오사카에 묶어 속단하는 것은 오사카 지역사람이 아닌 문화적, 역사적으로 애향심이 센 해당 지역사람들에게 큰 실례일 수도 있다.[11] 가령 효고현에는 가와사키 중공업과 UCC, 고베제강 등의 본사 등이 있고, 교토부에는 닌텐도, 교세라, 시마즈 제작소 등의 본사가 있어 자신의 지역에 있는 기업에 대한 자부심도 강한 편이다.

오사카라는 지명이 생겨난 것은 15세기 말의 일로 그 이전에는 나니와[12]라는 명칭으로 불렸다. 그래서 지금도 오사카의 지명 중에는 난바[13]라는 곳이 있다. 오사카 시내의 번화가로는 우메다, 난바[14], 텐노지, 쿄바시 등이 있으며, 오사카 4구 바깥에는 센리 뉴타운, 센보쿠 뉴타운 등이 있다.

역사

17세기 도쿄에 에도 막부가 설치되기 전까지 일본은 나라, 교토, 오사카 등이 위치한 긴키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舊 오사카시는 예로부터 천황이 있는 천년 수도 교토의 외항으로 성장하여 오랫동안 일본의 상업 중심지 구실을 했다. 오사카 4구 바로 남부에 위치한 사카이시 역시 오사카, 등과 경쟁하던 긴키의 주요 외항이었으며 닌토쿠 덴노의 능으로 알려진 다이센 고분이 위치해 있는 등 상고~고대 시대에는 정치적으로도 중요한 도시였다.

과거 율령국 기준으로는 셋쓰노쿠니(摂津国)의 동부, 가와치노쿠니(河内国), 이즈미노쿠니(和泉国)에 해당하는 지역으로 고대에는 소가씨와 대립했던 유력 호족 가문인 모노노베씨의 근거지(가와치)이기도 했으며, 헤이안 시대에는 세이와 겐지의 미나모토노 요리미쓰[15]와 그 동생 요리노부가 각각 셋쓰와 가와치 일대를 거점으로 삼았는데 가마쿠라 막부를 세운 미나모토노 요리토모, 무로마치 막부를 세운 아시카가 다카우지 등은 요리노부의 후손들인 가와치 겐지 출신의 인물들이다.[16] 그 외에도 남북조시대의 유명한 무장 구스노기 마사시게도 가와치 일대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등 유력한 무장과의 연관이 많은 땅이었다.

무로마치 막부 이후로는 호소카와, 하타케야마의 양대 간레이 가문이 이 지역을 다스렸으나 오닌의 난을 전후해 양 가문 모두 치열한 가독 분쟁으로 인한 혼란에 휩싸였고 이 과정에서 사카이의 부유층 세력이 자치도시를 형성하고 대표적인 무역도시로 성장하기도 했다. 또한 이 시기 정토종의 중흥조로 알려진 렌뇨(蓮如)가 오늘날의 오사카성 일대에 이시야마 혼간지를 건설하고 세력을 확장했는데 오사카라는 지명이 최초로 등장한 것은 바로 이 렌뇨의 기록이 최초이며, 혼간지의 세력 확장과 함께 점차 오사카라는 이름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혼간지는 이후 11대 종주인 겐뇨의 대까지 이 지역에서 굳건한 세력을 보유했으나 오다 노부나가와의 대립 끝에 결국 항복하고 이후 교토로 근거지를 옮긴다.

16세기 후반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1583년 거대한 오사카성[17]을 쌓고 이곳에 머무르면서 정치적 중심지의 역할까지 겸하며 짧게나마 명실상부한 일본의 중심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히데요시 사후 정권을 잡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허허벌판이었던 에도(지금의 도쿄)에 막부를 설치하게 되면서 오사카가 정치 중심지로서 누리는 영광은 오래가지 못하고 끝났다. 에도 시대에도 오사카는 상업도시로서 일본에서 에도 다음가는 중심지였으나 에도가 번영하면서 대체로 중요성이 조금씩 준 편이다. 게다가 1869년 대정봉환 이후 에도를 도쿄로 개칭하고 천황이 교토에서 도쿄로 옮겨가 그곳이 제국의 수도로 발전하며 긴키 지역의 위상은 더욱 축소되었다.

행정구역

오사카도 내의 행정구역 일람

오사카부_휘장_White.svg 오사카도 / 大阪都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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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카도 구부 (통칭 오사카4구 또는 오사카특별구)

틀:오사카도의 특별 (개신)

시 (32시)

사카이시
오사카부_휘장_White.svg 오사카도 / 大阪都
행정구역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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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정 1촌

틀:오사카도의 정과 (개신)

인구 추이

지리

기후

경제

정치

부의회

문화

교육

교통

기타

사건사고

출신자

관련 기업

관련 문서

여담

행정구역별 인구 상위 10위권 순위
2024년 12월
사카이시 827,709명
기타구 781,078명
쥬오구 726,816명
텐노지구 640,892명
요도가와구 602,026명
히가시오사카시 487,999명
토요나카시 399,790명
히라카타시 394,320명
스이타시 391,069명
타카츠키시 350,222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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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촌(町村) 위로 3군이 있지만 실생활에선 쓰지 않는다.
  2. 일본의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ccTLD)인 .jp 도메인은 구조가 복잡하다. 오사카도 정부의 도메인은 metro.osaka(.lg).jp(lg는 local government이다), 오사카도 산하 시와 구는 city.이름.tokyo(.lg).jp, 정(町)은 town.이름.tokyo(.lg).jp, 촌(村)은 vill.이름.tokyo(.lg).jp(vill은 village이다.) 형태의 도메인을 쓴다. 단 사카이시는 정령지정도시라 소속 도도부현을 도메인에 쓰지 않는 특권이 부여돼 있어서 각각 city.sakai(.lg).jp 도메인이 할당돼 있다. 이런 복잡한 형태의 도메인을 할당하는 것은 미국의 .us 도메인과 유사하다.
  3. 신규 최상위 도메인.
  4. 효고현
  5. 교토부
  6. 나라현
  7. 국가 내 2위의 경제권이라는 점, 수도권 집중 현상 때문에 인구가 감소 추세라는 점은 우리나라 부울경과 같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인구 면에서는 아직까지는 부산광역시인천광역시를 앞서고 있고(일본은 이미 오래 전에 가나가와현이 오사카부를, 요코하마시가 舊오사카시를 앞섰다.), 반대로 지역 내 총생산에서는 인천광역시가 부산광역시를 추월했다는 점에서 약간 다르다.
  8. 오사카 4구의 면적은 225.21km²로 대한민국 특,광역시 중 가장 면적이 좁은 광주광역시(면적 501.1km²)의 반이 채 못 되며, 대한민국 특,광역시 중 면적이 가장 넓은 인천광역시(면적 1,066.5km²)의 1/4에 못 미친다. 오사카도의 면적은 1,905.14km²로, 대한민국 기초자치단체들 중 가장 넓은 강원도 홍천군(면적 1,820.34km²)보다 약간 더 넓다.
  9. 간사이 경제권역인 만큼 그 반대 방향으로 출퇴근하는 사람도 당연히 많다
  10. 오사카역 바로 옆이 우메다역이고, 우메다역은 오사카우메다(한큐, 한신), 우메다(미도스지선), 히가시우메다(타니마치선), 니시우메다(요츠바시선)으로 나뉘어 있다. 참고로 메트로의 우메다 3역은 서로 간접환승이니 주의. 승차권은 녹색 개찰구에 넣어야 간접환승이 인정된다.
  11. 한국으로 치면 부울경 경제권이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고 싸잡아서 부산이라고 하면 울산이나 경남 사는 사람들이 기분 나빠 하는 거랑 같은 원리이고 논리적으로도 안 맞는다.
  12. 難波, 浪華, 浪花, 浪速. 자동차 번호판에는 なにわ라고 쓰여 있다.
  13. 難波. 난바로도 나니와로도 읽을 수 있다.
  14. 도톤보리나 신사이바시가 같이 포함된다.
  15. 슈텐도지를 토벌한 설화로 유명한 미나모토노 라이코가 바로 이 사람이다.
  16. 에도 막부를 세운 도쿠가와 이에야스도 마쓰다이라-도쿠가와 가문이 가와치 겐지의 일파 중 하나였던 닛타 겐지의 방계 세라다 가문의 후손임을 주장하여 정이대장군에 오르긴 했지만 이쪽은 뚜렷한 증거가 없어 사실상 자칭으로 여겨지고 있다. 어쨌든 쇼군에 취임하기 위해 세이와 겐지 중에서도 무가 최고의 가문으로 꼽히는 가와치 겐지의 권위를 빌렸다는 점은 과거의 막부 정권들의 사례와 일맥상통한다.
  17. 현재 남은 오사카성도 크지만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지은 오사카성은 이보다 훨씬 큰 규모의 성이었다. 후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오사카성 전투에서 승리한 후 성의 규모를 대폭 축소하였고,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대파하면서 현대식으로 재건하여 오늘날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