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중국-하이난 관계

Curio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1월 23일 (월) 18:16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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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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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난뉴어크 평화조약 당시부터 동중국의 영향력 하에 두기로 되어있었던 지라 하이난 공동군정은 동중국이 추천한 인물인 리제이싱을 하이난의 초대 주석으로 내세웠다. 이후 리제이싱은 난징의 지시에 따라 충실히 친동중국, 반서중국 정책을 폈고 동중국도 하이난에 경제적, 군사적 지원을 제공했다. 당시 동중국은 하이난을 외국이 아닌 동중국 내의 자치령 정도로 여겼고 하이난 측도 동중국의 이러한 태도에 불만을 표하지 않았다. 양측의 이러한 관계는 1980년대까지 계속되었다.

1980년대 중반 들어 동중국에서는 개헉파 리덩후이 총통의 주도로 국가 전반에 걸친 자유주의적 개혁이 실시되었다. 선명 야당이 허용되고 사회 통제 조치가 완화되는 등 동중국에 개혁의 바람이 불고 있을 때, 하이난은 기존의 권위주의적 정책을 고수했다. 이에 난징은 하이난에 개혁을 지시하였으나 하이난은 이를 거부했다. 이 때까지 하이난이 난징의 지시를 거부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난징은 당황했다. 하이난은 한 술 더 떠 난징을 비난했고 동중국과 하이난의 관계는 냉랭해졌다. 이후 하이난 보안성 요원들이 난징 시청에서 폭탄테를 저지르면서 양측의 관계는 파국을 맞았다.[1]

  1. 폭탄의 폭발력이 매우 약해 인명피해는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