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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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盛大國 전세계근로자들은 단결하라![1] | |||||||
상징 | |||||||
국가 | 애국가 | ||||||
국화 | 무궁화 | ||||||
역사 | |||||||
지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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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cTLD | |||||||
.kp, .조선 | |||||||
국가 코드 | |||||||
405, PRK, KP | |||||||
전화 코드 | |||||||
+850 | |||||||
위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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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 약칭 조선(朝鮮)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반도인 조선 반도와 만주 일부에 걸쳐서 위치한 사회주의 공화국이다.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일으킨 전쟁을 통해 조선 반도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조선 반도에서 2개월 만에 몰아내어 적화통일을 달성하였다. 이 전쟁을 통해 내각 수상 김일성은 '조국통일의 영웅' 칭호까지 받게 되나 이후 남조선 점령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봉기와 이후 이어진 여러 경제적 실책으로 인해 그 입지가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으며 결국 제1차 거제도 상륙작전의 대실패로 인해 이에 대한 책임을 물어 실각, 이후 수십 년 간 박헌영을 중심으로 한 집단지도체제가 이어졌고 그가 사망한 80년대 후반엔 중국의 뒤를 이은 대대적 개혁개방을 진행하여 현재의 중견국 조선에 이르고 있다.
상징
국호
언어별 명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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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 Democratic People's Republic of Korea (DPRK) |
조선말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조선 |
한국어 | |
중국어 | |
일본어 | |
러시아어 | Корейская Народно-Демократическая Республика КНДР |
베트남어 | nước cộng hòa dân chủ nhân dân Triều Tiên Triều Tiên |
우리 나라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제1장 1조[1] |
조선의 공식 국호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朝鮮民主主義人民共和國)이며 중국의 요동 반도와 조선 반도 북부, 만주 남부에 걸쳐서 위치해 있던 조선 민족 최초의 국가인 조선(朝鮮)에서 국명이 유래됐다.
국명 제정과 관련해서 재미있는 일화가 존재한다. 조선의 국명은 보통 사회주의 국가가 사용하는 인민공화국이나 민주공화국과는 달리 국명이 어딘가 이상하단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조선로동당 내부에서 일어난 국명 갈등의 타협물이다. 조선의 내각 수상을 지냈던 박헌영은 과거 1945년에 선포되고 일찍 단명한 공화국인 조선인민공화국을 선호했으며, 로동당 내부 당원들은 중국의 초대 주석이었던 마오쩌둥의 신민주주의 이론을 내포한 조선민주공화국을 선호했으나 초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지낸 김두봉이 이 둘을 섞어놓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제안하고 김일성과 소련이 위 명칭을 승인하면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공식 국명으로 굳어지게 되었다.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에서는 고려에서 유래된 코리아(영어: Korea)나 북한(영어: North Korea)이나 고조선에서 유래된 조선(영어: Joson)과 같은 명칭을 주로 사용하며 일부 국가에서는 붉은 한국(영어: Red Korea)과 같은 이념적 의미를 담은 명칭을 사용하기도 한다.
국기
SINCE 1948 | |||
람홍색공화국기 藍紅色共和國旗 | |||
[ 국기 정보 ]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기는 기발의 가운데에 넓은 붉은 폭이 있고 그 아래우에 가는 흰 폭이 있으며 그 다음에 푸른 폭이 있고 붉은 폭의 기대달린쪽 흰 동그라미안에 붉은 오각별이 있다. 기발의 세로와 가로의 비는 1:2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중[2] |
1948년 7월 10일 지정된 람홍색공화국기(藍紅色共和國旗)[3]는 조선 헌법으로 제정된 공식적인 조선의 국기이다.
과거에는 제주과 같이 태극기를 사용했으나 여러가지 이유[4]로 인해 사용이 금지되며 7월 10일에 현재의 람홍색공화국기가 제정되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법'[3]에 따르면 각 색과 오각별 등의 의미는 아래와 같다.
- 청색(#024FA2)은 평화에 대한 염원과 인민들의 희망을 상징한다.
- 홍색(#ED1C27)은 공산주의와 혁명을 상징한다.
- 백색(#FFFFFF)은 광명과 동양의 음양사상을 상징한다.
- 오각별[5]은 공산주의의 건설을 상징한다.
현재 조선 반도 전체를 점유 중인 조선 정부를 불법 정부라고 주장하는 제주의 경우 람홍색오각별기를 조선 반도를 대표하는 공식 국기로 인정하지 않으며[6] 제주 내에선 람홍색오각별기를 소지하는 것 만으로도 처벌하고 있다.
국가
SINCE 1947 | |||||||
애국가 愛國歌 | |||||||
[ 국가 정보 ] | |||||||
[ 가사 정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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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가는 《애국가》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헌법 중[4] |
1947년 6월 29일 제정된 애국가(愛國歌)는 조선의 국가로 북조선인민위원회 시절 제정되었다.
과거 조선도 현재 제주가 사용하는 국가인 애국가를 사용했다.[7] 그러나 북조선인민위원회는 기존의 애국가를 폐지하고 현재의 애국가를 지정했다. 완성 초기에는 현재의 단독 정부가 수립될 줄 몰랐기 때문에 곡은 완성했으나 곡을 민간에 보급하지는 않았다.[8] 이 곡이 본격적으로 민간에 배급된 시기는 1948년 8월 15일 제주 정부가 수립된 이후 부터였다.
역사
조선의 역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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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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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8월 15일 일본은 지난 8월 6일과 8월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총 두 곳에 떨어진 두 개의 강력한 원자폭탄으로 인해 무조건 항복을 선언하게 된다. 한편 원자폭탄이 투하되고 일본이 항복하기 직전인 8월 초중반부터 소련군은 청진에 도착하여 점점 조선 반도 북부에서부터 남부로 내려오기 시작했으며 8월 26일에는 평양까지 돌입하게 된다. 더 이상은 이후 들어오게 된 미군의 저지로 인해 남하하지 못하게 됐으나 결국 조선 반도에는 미국과 소련 양 측의 군대가 주둔하게 된다.
소련군의 주둔 1년 후인 1946년 2월 8일 '조선 각 정당·사회단체·각 행정국 및 각 도·시·군 인민위원회 대표 확대협의회'의 개최를 통해 군정은 종료되고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9]가 수립되어 본격적으로 독자적 정부 수립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위원회 수립 이후 동년 3월 8일부터는 토지 개혁을 통해 지주들의 토지를 몰수하고 주요 기업을 국유화해 사회주의 정책을 펼쳤으며 동년 11월 3일엔 인민위원회 선거를 진행해 인민위원회를 조직한다. 2년 후인 1948년 2월 8일엔 조선인민군을 창설하고 동년 7월 10일엔 현재 조선의 국기인 람홍색공화국기가 지정되었다. 8월 25일엔 최고회의 선거를 진행해 최고회의를 조직하고 마침내 1948년 9월 9일, 김두봉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으로 하고 김일성을 내각 수상으로 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출범하게 된다.
통일과 김일성의 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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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정부 수립 이후인 1950년 6월 25일, 조선 정부는 자신들의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기습적 전쟁을 시행하고 전쟁을 일으킨 지 무려 2개월 만에 적화통일을 이뤄내어 조선 반도 남부에 있던 대한민국 정부를 제주도로 몰아냈다.
통일 직후 전쟁을 이끌었던 김일성 내각 수상은 조국의 통일을 이끌어 낸 '조국통일의 영웅' 칭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할 줄 알았으나 전쟁 전 박헌영 외무상이 말했던 '남조선으로 밀고 들어가면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던 남한 인민들이 자신들의 정부에 대항하여 대대적으로 봉기를 일으킨 뒤 우리에게 협조할 것이다.'라는 말과 달리 오히려 전쟁 당시 인민군이 포로에게 대한 무자비한 태도[10]와 점령지에서 저지른 여러 삽질 등으로 인해 박헌영이 말했던 것과 달리 오히려 남조선의 인민들은 자신들을 해방시켜준 북조선에 대항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발발한 경인봉기는 일찍 진압되었지만 이 사건을 잘 이용해먹은 박헌영의 선동으로 오히려 김일성의 입지가 점점 좁아졌으며 김일성이 직접 지휘한 중공업 중심 경제 개발이 딱히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않자, 결국 김일성은 1953년 자신이 직접 지휘한 제1차 거제도 상륙작전에서의 패배에 책임을 물어 실각하게 되었으며 당시 부수상이었던 박헌영이 그의 뒤를 이어 내각 수상 직에 오르게 된다.
박헌영과 박헌영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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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영이 내각 수상의 직에 오르게 된 이후 기존의 중공업 우선주의적 정책 대신 인민생활의 향상을 목표로 하는 경공업 위주의 경제 개발이 진행되었다. 이러한 경제 개발 와중에 박헌영은 소련의 리베르만 논쟁[12]의 영향으로 자본주의적 요인 일부를 도입하는데 이를 박헌영이 창시한 이념이라 하여 '박헌영주의'[13]라고 한다.
박헌영주의는 소련의 현실사회주의와 동유럽 사회주의등이 혼합된 체제이다. 기존 김일성 시절의 중공업 중심의 경제 체제에서 벗어난 농업과 경공업까지 어우러진 균형잡힌 경제 개발을 지향하기 시작했으며 한편으로는 김일성 (당신들의 조선)|김일성 시절부터 이어진 권위주의적 통치를 그대로 이어가며 박헌영 시절의 조선은 연간 6%의 고도 경제 성장을 달성하게 되었다. 외교 방면으로 가보면 집권 초기에는 기존의 친소적 외교정책을 유지하고 제2차 거제도 상륙작전, 추자도 상륙작전과 같은 대서방 강경정책을 이어나갔으나 집권 중반기를 기점으로 중-소 관계의 악화로 인한 등거리 외교 노선으로 선회한다. 이러한 등거리 외교와 데탕트 시대의 시작을 기점으로 유고슬라비아와 같은 제3세계 국가와 미국과 같은 제1세계 국가와도 조금씩 교류하며 서방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다. 정치적으로는 김일성 (당신들의 조선)|김일성이 주축이었던 만주파와 그 만주파와 협력하던 갑산파와 같은 친(親)김일성 (당신들의 조선)|김일성 종파를 숙청하고[14] 연안파와 협력을 이어나가며 정치적 안정화를 달성한다.
이후 점점 고령의 나이가 되어가며 정치 생활을 이어가기에 힘들어진 박헌영은 당 중앙위원회 위원장 직책에서 내려와 평안한 노후를 보내는 등 사실상 정계를 완전히 은퇴하게 되고[15] 이후 권력은 남로당파의 떠오르던 초신성, 강성산에게 넘어가게 된다.
개혁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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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성산은 기존 박헌영 시절에 서방 세계와 교류했던 수준이 아닌, 훨신 더 활발한 교류를 원했다. 이미 그가 내각 수상 직에 오른 1980년에는 소련의 위상은 과거와 달리 상당히 하락한 상태였고 조선의 이웃 국가였던 중국은 이미 덩샤오핑의 주도 하에 선전, 주하이, 산터우, 샤먼 등을 개방하여 크나큰 성공을 거두었다. 이에 강성산은 박헌영의 정계 은퇴 이후 주춤했던 경제 성장률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 1983년, 국가의 문(門)을 연다(開)는 뜻의 일명 '개문(開門)정책'의 시행을 통해 공식적으로 중국의 뒤를 이은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게 된다.
개문정책의 일환으로 강성산 내각은 남포, 부산, 인천. 총 3곳에 '인민경제지대'라는 명칭을 부여해 이 3곳을 시범적으로 개항하였고 이 지역들은 연간 8%의 미칠듯한 성장을 보여주며 한마디로 대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러한 성공을 확인한 강성산은 인민경제지대의 성공을 극찬하며 함흥, 청진, 신의주, 평양, 심지어 수도인 서울까지 개방하였으며 이 지역들은 기존의 인민경제지대보다 더 높은 경제 성장 수치인 11% 이상의 성장률을 보여주었다.
현재
현재의 조선은 주변국보단 덜하지만 여당인 로동당부터 정치개혁을 진행시켜 점차 민주주의를 이식해 나가고 있다. 같은 사회주의 공화국이자 주변국가인 베트남의 사례를 참고해 지난 2010년부터는 사실상 조선의 권력 서열 1위인 내각 수상을 투표를 통해 복수의 후보 중 한 명을 선출하기로 결정했으며 내각과 최고인민회의의 상호 간 견제는 베트남 만큼이나 잘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공산당은 여전히 공산당일까, 현재까지도 내각의 부패를 비판하는 민중들의 목소리를 막는 등 정부에 대한 비판은 가차없이 제재하며 몇몇 급진적인 야당 인사들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기 때문에 조선의 민주화를 보기 위해선 아직도 갈 길은 먼 듯 하다.
지리
조선 반도의 동쪽엔 백두산, 금강산 등 높고 험준한 산이 많이 분포해있다. 서쪽엔 재령 평야, 연백 평야, 호남 평야 등 넓은 평야가 위치해 있으며 이런 동고서저의 지형 탓인지 조선의 수도인 서울을 비롯한 주요 대도시들은 대부분 서쪽의 넓은 평야에 분포해있다.
북쪽은 춥디 추운 시베리아, 남쪽은 뜨거운 태평양이 위치해있기 때문에 어떨 땐 영상 40도를 넘기기도, 어떨 땐 영하 23도까지 내려가기도 할 만큼 기온 차가 매우 크다. 아래 표는 수도인 서울의 연간 기후표이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가 확연히 차이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조선의 수도, 서울시의 기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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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년 |
최고기온기록 (°C) | 14.4 | 18.7 | 23.8 | 29.8 | 34.4 | 37.2 | 38.4 | 39.6 | 35.1 | 30.1 | 25.9 | 17.7 | 39.6 |
평균최고기온 (°C) | 2.1 | 5.1 | 11.0 | 17.9 | 23.6 | 27.6 | 29.0 | 30.0 | 26.2 | 20.2 | 11.9 | 4.2 | 17.4 |
일평균기온 (°C) | -1.9 | 0.7 | 6.1 | 12.6 | 18.2 | 22.7 | 25.3 | 26.1 | 21.6 | 15.0 | 7.5 | 0.2 | 12.8 |
평균최저기온 (°C) | -5.5 | -3.2 | 1.9 | 8.0 | 13.5 | 18.7 | 22.3 | 22.9 | 17.7 | 10.6 | 3.5 | -3.4 | 8.9 |
최저기온기록 (°C) | -22.5 | -19.6 | -14.1 | -4.3 | 2.4 | 8.8 | 12.9 | 13.5 | 3.2 | -5.1 | -11.9 | -23.1 | -23.1 |
평균 강수량 (mm) | 16.8 | 28.2 | 36.9 | 72.9 | 103.6 | 129.5 | 414.4 | 348.2 | 141.5 | 52.2 | 51.1 | 22.6 | 1,417.9 |
조선의 최대 도시는 인구 900만의 서울시이며 인구 500만의 평양시가 그 뒤를 잇는다. 이 외에도 인구 300만의 부산시, 인천시, 인구 200만의 남포시 등이 존재한다.
행정구역
틀:조선의 광역행정구역 (당신들의 조선) 조선은 18개[16]의 도(道)와 10개의 직할시(直轄市)[17]로 나뉘어져있다.
도와 직할시 산하에는 시(市), 군(郡), 지구(地區), 구역(區域)이 위치해 있으며 또 그 아래에는 읍(邑), 동(洞), 리(里), 로동자구(勞動者區)로 나뉘어져 있으며 가장 아래에는 인민반(人民班)이 존재한다.
정치
조선은 공산주의와 민주집중제, 인민민주주의를 바탕으로 둔 민주국가를 제창하고 있으나, 사실상 조선로동당 일당 독재국가이다. 최고인민회의
최고인민회의(最高人民會議)는 조선의 최고 주권기관으로 조선의 입법 업무를 담당하는 입법기관이다. 현재 최고인민회의 의장은 박록 조선로동당 제1비서이다. 1948년 8월 25일 총선을 통해 처음 조직되었으며 정부 수립 하루 전에 채택된 조선 헌법에 의거하여 설치되었다. 4년의 임기[18]를 가진 최고인민회의는 총 1738석의 의석으로 구성되어있으며 그 중 1738석 중 무려 1521석, 과반을 한참 넘긴 87.5%를 조선로동당이 차지하고 있으며 나머지 131석, 7.5%는 조선사회민주당이, 나머지 74석, 4.3%는 국민당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그 나머지를 차지한 조선사회민주당과 국민당 마저도 조선로동당의 통제를 받고 있는 관제 야당이기에 최고인민회의는 사실상 조선로동당 일당 체제로 돌아가고 있다.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는 최고인민회의 휴회 기간 동안의 최고 주권기관으로 그 상임위원회를 지휘하는 수장은 최고인민회의 간선 투표를 통해 선출되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最高人民會議 常任委員長)이라고 조선 헌법에 규정되어있다. 현재 조선의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은 최룡해 전 내각 수상이다. 상임위원장은 조선의 국가 원수로서 최고인민회의를 소집하고, 헌법 및 법령의 실시에 대한 감독과 현행 법령의 해석 및 정령을 공포하며 헌법 및 법령에 저촉되는 내각의 결정·지시의 폐지, 최고인민회의가 채택한 법령의 공포, 최고인민회의 휴회 중 수상의 제의에 의한 상의 임면 및 이에 대한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의 승인의 요구, 훈장 또는 명예칭호의 수여, 외국과의 조약의 비준 및 폐기, 외국에 주재하는 대사·공사의 임명 및 소환, 외국사신의 신임장 및 해임장 접수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명목상 조선의 국가 원수로서 대외적으로 조선을 대표하는 인물이지만 사실상의 모든 내부 국정은 상임위원장 본인이 임명하는[19] 내각 수상이 도맡아 지휘하고 진행하기 때문에 사실상의 국가 최고 권력직인 조선로동당의 총비서 직을 역임하지 않는 이상 국가의 얼굴마담 그 이상 이하도 아닌 상태이다. 내각
내각(內閣)은 조선의 최고 집행기관으로 조선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이다. 25개의 성급 행정조직[20]과 그 성급 조직의 아래에 있는 15개의 하위 부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각의 수반인 내각 수상이 지휘한다. 내각은 대외관계에 있어서의 전반적 지도 및 외국과의 조약체결과 대외무역의 관리, 지방주권기관의 지도, 화폐 및 신용제도의 조직, 유일국가예산의 편성 및 국가예산과 지방예산에 들어오는 조세와 수입의 편성, 국가산업·상업기관·농촌경리기관 및 국가운수· 체신기관의 지도, 사회질서의 유지, 국가의 이익보호 및 공민의 권리보장에 관한 대책의 수립, 토지·부원·산림 및 하해의 리용에 관한 기본원칙의 수립, 교육·문화·과학·예술 및 보건에 관한 지도, 인민의 경제 및 문화생활의 수준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대책의 수립, 조선인민군 편성에 관한 지도, 조선인민군 고급장관의 임면, 부상, 주요산업기관의 책임자 및 대학총장의 임면 등의 업무를 담당한다. 내각 성원틀:조선 내각 성원 (당신들의 조선) 각 부서의 명칭과 각 부서의 관장 업무는 아래와 같다.
이 외에도 통화정책 관련 사무를 관장하는 중앙은행과 과학자 양성, 기초과학기술 연구 등을 관장하는 국가과학원이 존재한다. 내각 수상
내각 수상(內閣首相)은 조선의 최고 집행기관인 내각의 수반으로 조선의 행정 업무를 담당하며 내각 전체를 지휘한다. 현재 조선의 내각 수상은 양도아 전 청년동맹 위원장이다. 내각 수상은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이후 본회의에서 의결을 통해 선출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내각 총리를 임명하는 방식으로 결정된다. 그러나 사실상의 일당제 국가인 조선의 특성상 거의 무조건적으로 조선로동당의 당적을 지닌 인물이 내각 수상 직에 오르게 된다.[21] 정당
조선은 명목상으론 다당제 민주국가를 표방하고 있지만 사실상 조선로동당 하나만이 실질적인 당 노릇을 하는 일당제 국가이며 이 외 정당은 자유조선과 같이 불법 정당으로 규정되어 국가의 제재를 받거나 조선사회민주당, 국민당과 같이 국가의 허가를 받아 국가의 뜻대로 움직이는 관제 야당, 일명 우당(友黨)이 될 수 밖에 없다. 현 조선의 여당은 1521석의 압도적인 의석 비율을 자랑하는 조선로동당이다. 선거
조선은 선거를 통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구성한다고 헌법으로 규정되어 있다.[22] 가장 최근에 치뤄진 선거는 2022년 8월 25일에 실시한 제20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이다. 외교남북관계
조중관계
조러관계조미관계조일관계경제
초기 조선의 경제는 여타 공산주의 국가와 다를 바 없는 계획경제 체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하지만 박헌영 체제 초중반, 소련의 리베르만 논쟁[12]에 영향을 받은 박헌영주의의 시행을 통해 60~70년대 시범적으로 자본주의 체제를 일부 도입했고 80년대 후반엔 강성산이 추진한 개혁개방 정책인 개문정책을 통해 사회주의 시장경제를 실시함에 따라 해외 기업들을 유치하며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끌어냈다. 현재 조선은 2021년 기준 7,874억 달러의 국내 총생산을 달성하고 있으며 이는 전 세계 21위에 해당하는 규모이다.[24] 조선은 현재 헌법을 통해 민간 기업의 설립을 보장하고 있으며[25] 이 덕에 조선 내에는 여러가지 기업들이 활동하고 있지만 대부분 정부가 운영하는 공기업, 국영기업이거나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현재 조선의 대표 기업은 IT 및 통신 기업인 하늘상자, 전자제품 제조 및 판매 기업인 삼성, 자동차 생산 및 판매 기업인 승련 등이 존재한다. 군사 자세한 내용은 조선인민군 (당신들의 조선)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조선인민군(朝鮮人民軍)은 조선의 국방을 담당하는 조선로동당 소속의 당군이다.[26] 사회민족종교
조선의 인민들은 헌법으로 보증된 종교와 신앙의 자유, 종교의식거행의 자유를 가지고 있다.[27] 그러나 건국 초기엔 종교는 인민의 아편과 같다고 탄압받고 배척당했으며 이는 개문정책 시행 직전까지 계속되었다.[28] 이러한 과거 때문인지 현재 조선의 무신론자 비율은 무려 62.2%로 이는 이웃 국가이자 같은 무신론 국가인 중국의 61%보다 1.1% 더 높은 수치이다.[18] 교육
언어문화언론
명목상 조선은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2022년 기준 조선의 언론자유지수는 75.87점으로 175위[29]를 기록하고 있을 만큼 실질적인 언론의 자유가 보장되고 있지 못하는 상태이다. 대표적인 방송국[30]으론 국영 방송국인 조선중앙방송이 존재하며 조선로동당의 당보인 로동신문이 조선의 종이 신문을 대표한다. 이 외에도 반정부적 성향의 지하언론인 조선문화언론이 존재하며 이런 반정부적 성향의 지하언론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언론사가 국가, 당 소유인지라 기사 내용의 대부분이 친정부적이라는 흠이 있긴 하지만 전반적인 기사 내용은 옆나라보단 훨신 수준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스포츠영화만화음악복식음식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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