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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da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4월 16일 (일) 22:39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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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관 민국 38 · 르메이 장군의 유산 · 황혼 · 카게사가시
영광이 다시 오길 · 빌레펠트
연습장 연습장 ( 1 · 2 · 3 · 4 ·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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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D-42

일본국 국회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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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제2차 개조 내각
(2029~)
연립여당

자유당
nn석 nnn석
야당

민주당
nn석 nnn석

일본사회당
nn석 nn석

공명당
nn석 nn석
무소속 n석 n석
재적 nnn석·nnn석 | 공석 0석·0석
※ 정당조성법상 정당 요건을 충족 못하는 정치단체는 무소속으로 분류
좌측은 참의원(상원) 의석 수, 우측은 중의원(하원) 의석 수
일본국의 자유주의·혁신정당
일본민주당 민주당 민주당
사회민주당
(당내 우파)
자유당
(개별 합류)
생활당
(오자와 그룹)
민주당 민주당 현재
생활당 새시대회
(오자와 그룹)
자유당
영문명 Democratic Party of Japan: DPJ
약칭 民主(민주), DJP
표어 恐れのない時代。
두려움 없는 시대.
법인번호 4010005002276
창당일 1996년 9월 28일
전신 일본민주당, 사회민주당(일부), 자유당(일부)
(1996년 9월 28일 신설합당)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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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토도 교토시 가미교구 이세야초 406번지
마쓰오빌딩 1층
대표 다마키 유이치로 / n선 (중, nn~nn대)
대표대행 나가츠마 아키라 / n선 (중, nn~nn대)
오시마 아쓰시 / n선 (중, nn~nn대)
부대표 신바 가즈야 / 4선 (참, 19·21·23·25대)
후루카와 모토히사 / n선 (중, nn~nn대)
간사장 오카다 가쓰야 / n선 (중, nn~nn대)
정무조사회장 에다 겐지 / n선 (중, nn~nn대)
국회대책위원장 나카무라 기시로 / n선 (중, nn~nn대)
선거대책위원장 와타나베 슈 / n선 (중, nn~nn대)
이념 자유주의 (일본)
스펙트럼 우익 빅 텐트 (중도 ~ 극우)

역사적[1] :
중도 ~ 우익 (1950 ~ 1990년대경)

참의원 23석[2] / 248석 (9.27%)
중의원 15석[3] / 465석 (3.26%)
도도부현의회 397석[4] / 1,888석 (21.02%)
시구정촌의회 568석[5] / 20,762석 (2.74%)
당 색 파란색 (#004EA2)[6]
하늘색 (#00A0E2)
파란색 (#254170)[7]
당원 수 294,401명 (2023년 기준)
당가 우리들 (1987 ~ )
국제조직 국제민주연합
공식 사이트
SNS | | | |
상징
심볼로고
2024년 1월 포스터 - 지키겠습니다. 자유일본국.[8]

개요

자유당은 일본국의 보수주의 정당으로 현재 일본국의 제3야당이자 제5당이다.

1950년 일본사회당과의 연립정권 수립에 반대하여 민주당에서 분당한 요시다 시게루의 '민주자유당'에서 아시다 히토시의 '민주당' 연립파 의원들이 당내 갈등으로 갈라져 나와 입당하여 창당된 정당되었다. 창당 직후에는 친미-자유보수주의 성향을 보이며 기시 노부스케 총리 재임기와 총리들이 당적을 가지지 않았던 쇼와 경찰막부 시기를 제외한다면 줄곧 여당으로 있어왔다.

1990년대 이후 하토야마 유키오 총재의 주도하에 강성우파 성향의 민주당이 좌경화 되고 사회당 탈당파들의 민생당과 합당하여 진보성향이 짙어지자 강성우익 성향의 인물들이 자유당으로 입당하기 시작하여 그 반대급부로 더욱 보수화 되었다. 2020년대 초반까지는 민주당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며 수권정당으로서 기능하였으나 통일교 게이트 이후 상당수의 인원들이 정의당으로 이탈하고 50대 중원선과 27대 참원선 등 이어지는 선거에서 모조리 참패하며 급속도로 붕괴되었다. 2023년 전당대회에서 변호사 출신의 야스다 히로시 총재에 당선되면서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1. 1.0 1.1 1990년대 하토야마 유키오의 민주당 총재 당선 이후 진보화 되는 민주당의 반대급부로 자유당이 보수화 되기 이전.
  2. 지역구 10석, 비례대표 13석
  3. 지역구 10석, 비례대표 15석
  4. 한국의 광역의회에 해당한다.
  5. 한국의 기초의회에 해당한다.
  6. 2017년 48회 중의원 총선 기간 이후로 주로 쓰이고 있다.
  7. 공식 당색이나, 2017년 48회 중원선 이후로는 가끔 선거 홍보용 홈페이지 등에서 쓰이고 있다.
  8. 포스터 속 인물은 자유당 총재이자 오사카부지사 후보 야스다 히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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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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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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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큐 입법원
원내 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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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

민주당
54석
야당

류큐 사회대중당
42석

사키시마 유신회
3석

류큐의 해방을 목표로 노동자당
1석
무소속 13석
재적 113석 | 공석 0석
류큐의 진보정당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사회대중당 현재
오키나와 인민당
오키나와 사회당
사회대중당[1]
社会大衆党 | Social Mass Party
약칭 社大党(사대당), SMP
표어 すべては琉球のために
모든 것은 류큐를 위해
未来へ一歩また一歩。
미래로 한걸음 또 한걸음.
창당일 1950년 10월 31일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1962년 5월 1일 (사회대중당)
전신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오키나와 인민당, 오키나와 사회당 (1962년 5월 1일 신설합당)
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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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하시 이즈미자키1-17-19
(사회대중당 중앙위원회)
중앙위원장 아라가키 구니오 / 3선 (입, 19-21대)
서기장 다카라 데츠미 / 3선 (입, 18·20·21대)
이념 진보주의
사회민주주의
류큐 민족주의
대중주의

내부 계파 :
민주사회주의
유럽공산주의
스펙트럼 중도좌파 ~ 좌익

내부 계파 :
극좌
입법원 n석[2] / n석 (nn.nn%)
자치단체장 n석 / n석 (00.00%)
당 색 초록색 (#009140)
국제조직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진보동맹
정당원 수 49,537명 (2024년 1월 기준)
학생 조직 류큐의 미래
청년 조직 청년사회대중당
여성 조직 사회대중당 여성위원회
정당 연합 올 류큐
당보 사회대중
공식 사이트
SNS |
2024년 1월 포스터 - 미래로 한걸음 또 한걸음.[3]

개요

사회대중당은 류큐의 진보정당으로 현재 류큐 입법원의 제1당이자 연립여당이다.

역사

사회대중당의 직접적인 전신은 1950년 미국 통치기에 창당되었던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이다.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친미와 보수를 표방하는 민주당에 대항하는 혁신세력의 주축이 되는 정당이었고 때문에 미군의 류큐 주둔에 반대하여 인민당, 사회당등의 기타 혁신정당 및 재야 세력과 함께 조국복귀운동(祖国復帰運動), 즉 일본국으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사회운동을 전개하였으나 1960년 제5회 입법원 의원 총선거를 앞둔 시점에서 일본국 전역에 국가비상사태와 계엄령이 선포되며 지지율이 크게 추락하는 악재를 겪게되었다. 또한 타 혁신정당과의 단일화까지 불발되면서 입법원 선거에 참패하게 되었고[4] 이에 류큐의 혁신세력들은 통합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다.

그렇게 1962년 5월, 11월의 입법원 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을 중심으로 오키나와 인민당, 오키나와 사회당의 3당 합당이 성사되며 혁신계 통합신당을 창당하니 그것이 현재의 사회대중당이다. 통합의 결과 사회대중당은 6회 입원선에서 9석을 차지하며 기존보다 의석을 늘리는 데에 성공했고 류큐 국민당 소속 오기미 아사토쿠(大宜味朝徳)[5]를 초대 직선제 행정주석으로 지지하여 민주당 소속 오타 세이사쿠(大田政作)[6] 전임 주석의 당선을 저지하는 쾌거를 이루어내기도 하였다.

이후 인니전(인도네시아 전쟁)으로 인해 미민정(美民政)에 대한 지지도가 바닥을 치자 1965년 7회 입법원 선거 당시 친미 민주당을 꺾고 입법원 내 1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하였으나 이듬해인 1966년 주석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마츠오카 세이호(松岡政保)[7]가 당선되며 위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또한 1968년 류큐 사회투쟁 당시 마츠오카 정부가 유연한 대처를 하고 미국과의 협상으로 국민정부의 수립과 5년 이내 독립을 확정시키면서 오히려 의석이 줄어드는 참사가 일어나게 되었다.

그나마 다행으로 인니전의 참상이 류큐로 전해지자 반미 기조가 강해지며 1970년 주석 선거에서 혁신계 단일후보 야라 조묘(屋良朝苗)[8] 후보가 당선되었고 코자 폭동으로 류큐내 반미정서가 폭발하자 미국 닉슨 행정부가 독립을 부채질하며 지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그 결과 1972년 치뤄진 초대 독립 류큐 입원선과 주석선에서 연이어 승리하며 다시금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고 야라 조묘는 76년 재선하여 1980년까지 집권하며 사회대중당 역시 여당의 지위를 지켰으나 지지부진한 미군기지 문제와 혁신 10년의 장기집권에 피로감을 느낀 국민여론으로 인하여 한때 자당 소속이던[9][10] 민주당 소속 니시메 준지(西銘順治)[11]에게 패배하였고 이후 주석, 입법원 의원 선거에서도 한때 자신들이 낙선시켰던 민주당 오타 세이사쿠에게 2연패하고 전체 입법원 의석 225석 중 8~90석대의 의석만을 차지하며 1996년까지 일명 잃어버린 16년을 겪게 되었다.

1995년 후텐마 기지에 주둔하던 미군에 의한 여학생 성폭행 사건이 일어나자 민주당의 지지도는 수직 하락했고 이듬해 선거에서 오타 마사히데(大田昌秀)[12] 후보가 당선되며 기사회생하였다. 그러나 당시 16년만에 집권한 사대당은 정무 감각이 부족했고 성급한 반미 정책은 오히려 1997년 아시아 경제위기 당시 미국의 지원 거부를 초래하며 대대적인 불경기를 초래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되었으며 자유당[13]과의 연대가 붕괴되며 결과적으로 2000년 선거에서 민주당 소속 이나미네 게이치(稲嶺惠一)[14]에게 패배하여 다시 야당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2008년 다시 한 번 미국발 경제위기가 일어나고 민주당의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류큐 경제가 큰 타격을 입고 민주당의 지지도가 폭락하자 당내 좌파로 강경한 반신자유주의자이던 데루야 간토쿠를 공천하여 69.3%의 득표율을 기록하였고 신생당과의 연대를 통하여 입법원 의석 113석 중 74석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재집권을 하게 되었다. 이후 2016년 민주당내 온건파[15]에 속하던 시모지 미키오가 당선되며 잠시 야당 생활을 하기도 하였으나 2019년 시모지 주석의 뇌물 스캔들로 인하여 민주당의 지지율이 폭락하자 2020년 선거에서 신생당 소속 다마키 데니 후보를 지지하였고 연립여당이자 입법원 내 제1당으로써 집권하게 되었다.


  1. 로고에는 류큐 사회대중당이라는 당명이 적혀있다.
  2. 지역구 n석, 비례대표 n석
  3. 포스터 속 인물은 사회대중당 중앙위원장 아라가키 구니오.
  4. 당시 전체의석 29석 중 혁신세력은 고작 6석 밖에 차지하지 못한 반면 민주당은 22석을 차지하는 대승을 거두었다.
  5. 류큐의 온건 반미·보수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미군정 시기 오키나와 민주동맹, 제1차 오키나와 사회당, 류큐 국민당 등을 이끌었으며 류큐 독립과 의회민주주의를 주장했다.
  6. 류큐의 친미·보수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미군정기 제3대 류큐 정부 행정주석을 지냈으나 당내 파벌경쟁으로 인해 사임하였다. 이후 제5·6대 독립 류큐국 주석을 지냈다.
  7. 류큐의 친미·보수 정치인이자 사업가로 제5대 류큐 정부 행정 주석을 지냈으며 미국 유학파로써 민주당내 미국통으로 이름이 높았다.
  8. 류큐의 혁신 정치인이자 교육자로 초대이자 마지막 류큐 국민정부 주석과 제1·2대 류큐국 주석을 지냈다.
  9. 정확히는 사회대중당의 전신 중 하나인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소속이었다.
  10. 창당 초기의 오키나와 사회대중당은 보수 성향의 인물들도 다수 포함되어 있었으나 1950년대 중반기를 뒤로하여 대부분 탈당하였다.
  11. 류큐의 정치가로 제18·19대 나하 시장, 제3·4대 류큐국 주석을 지냈다.
  12. 류큐의 혁신 정치가이자 사회학자로 제7대 류큐국 주석을 지냈다.
  13. 오기미 아사토쿠 전 류큐 정부 행정주석의 공화당이 민주당 탈당파인 신민당과 합당하여 만든 정당으로 2001년 신생당으로 당명을 개정하였다.
  14. 류큐의 보수 정치가이자 사업가로 제8·9대 류큐국 주석을 지냈다.
  15. 후텐마 기지의 이전이 아닌 점진적인 반환 혹은 적극적인 축소를 주장하는 계파.

50회 중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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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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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일본국의 주요 선거 (민국 38)

일본국 제50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
第50回衆議院議員総選挙
총무성 공식 선거 포스터[1][슬로건번역]
2021년 10월 31일
49회 중원선
(미래선택 총선)
2023년 1월 12일
50회 중원선
(정치리셋 총선)
2027년 이전
51회 중원선
(미정)
투표율 77.23% ▲ 21.30%p[3]
선거 결과

민주 · 사민 230석 (49.46%)
(35.48%) 165석 정의
정당 지역구 비례 총합 비율
민주당
사회민주당
158석 53석 230석 49.46%
4석 15석
정의당 93석 72석 165석 35.48%
공명당 12석 19석 31석 6.67%
자유당 10석 5석 15석 3.26%
새시대회 11석 1석 12석 2.58%
퓨처포워드 2석 5석 7석 1.50%
무소속 5석 - 5석 1.07%

개요


[총무성] 「좋아, 빠르게 가!」

2023년 1월 12일에 실시한 일본국의 중의원 의원 총선거.

당초 가미교구 정가는 2024년에서 25년 무렵 해산을 생각하고 있었으나 통일교 게이트 이후 내각 지지율의 폭락과 자유당의 붕괴로 인하여 국정동력을 상실한 기시다 후미오 총리가 2022년 12월 19일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예상보다 1~2년 더 빨리 총선거가 치뤄지게 되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는 중의원을 해산하면서 "지금까지의 낡은 정치를 리셋하는 선거"라고 했고, 그 이후 이번 총선의 별명은 정치리셋 총선이 되었다.

상세

2021년 아베 신조 전 총리의 뒤를 이어 자유당 총재에 선출 된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2020년 도쿄 올림픽의 성공과 같은 호재를 바탕으로 높은 인기를 구사하며 꽃길을 걷고 있었고 22년 7월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암살되자 오히려 동정론이 일어 지지율이 급상승해 64.81%에 달하는 지지율과 참의원 선거 압승을 바탕으로 차기총선에서의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통일교 게이트 이후 자유당이 공중분해 되고 내각 지지율이 한자릿 수 대에 도달하자 이에 버티지 못한 이시바 시게루 총리가 중의원을 해산하여 선거가 실시되었다.

기본적으로 자유당이 해산직전의 위기에 몰린상태에다가 통일교와 연루되어 있지 않은 당내 개혁파 인사들은 집단탈당하여 정의당을 창당한 상황에서 무조건적으로 민주당에 유리하다고 여겨지는 선거이나 민주당 역시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가 통일교에 연루되어 사임하고 오카다 가쓰야 대표대행 체제에서 치뤄지기에 제3세력의 급부상도 예측되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번 총선거에서의 주요의제는 통일교 게이트로 여론조사 결과 남일본 국민의 83.7% 가량이 이번 선거에 영향을 미친 사건이나 주제로 '통일교의 정치개입'을 뽑았으며 이외에는 여계 덴노 찬반논쟁, 가부키초 살인사건, 일본인민공화국과의 연방제 통일 등이 그 뒤를 이었다.

특이점으로는 기존 주요양당이 모두 대표 대행(총재 대행)체제로 선거를 치룬다는 사실인데 양당의 기존 대표인 기시다 후미오(자유당)과 다마키 유이치로(민주당) 모두가 통일교에 연루되어 각각 모테기 도시미쓰와 오카다 가쓰야 의원의 대행체제로 선거를 진행하데 되었다. 이같은 상황 덕분에 기성 정당이 아닌 비교적 개혁적인 성향의 새시대회, 혹은 야마모토 타로의 퓨처포워드가 선전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결과

정당 및 대표 지역구 비례대표 합계 비고
득표 의석 득표 의석 의석 증감
곤도 쇼이치 16,836,144
49.61% [▲ 13.55]
158석 13,339,183
38.54% [▲ 10.92]
53석 211석
45.4%
[▲ 69] 제1당
민주당
이시바 시게루 11,886,732
35.03% [▲ 35.03]
93석 14,291,248
41.29% [▲ 41.29]
72석 165석
35.5%
[▲ 73] 제2당
틀:정의당(일본국) (민국 38)
이시이 게이이치 1,404,425
4.14% [▲ 2.53]
12석 3,434,968
9.92% [▼ 2.99]
19석 31석
6.7%
[▼ 3] 제3당
공명당
고이케 아키라 390,118
1.15% [▲ 0.62]
4석 2,167,831
6.26% [▲ 3.74]
15석 19석
4.1%
[▲ 5] 제4당
사회민주당
기시다 후미오 1,027,877
3.03% [▼ 50.72]
10석 352,743
1.02% [▼ 54.62]
5석 15석
3.3%
[▼ 147] 제5당
자유당
오자와 이치로 1,394,248
4.11% [▲ 0.34]
11석 178,084
0.51% [▲ 0.02]
1석 12석
2.6%
[▲ 1] 제6당
새시대회
야마모토 타로 210,325
0.62% [▲ 0.39]
2석 825,351
2.38% [▲ 1.62]
5석 7석
1.5%
[▲ 5] 제7당
퓨쳐포워드
사쿠라이 마코토 7,392
0.02% [▲ 0.01]
0석 10,215
0.03% [▲ 0.01]
0석 0석 [-] 원외정당
일본제일당
오카와 류호 3,102
0.01% [-]
0석 6,945
0.02% [▼ 0.01]
0석 0석 [-] 원외정당
행복실현당
공동대표 3인[4] 1,751
0.01% [▲ 0.01]
0석 7,342
0.02% [▲ 0.02]
0석 0석 [-] 원외정당
녹색당 그린스 재팬
자이모토 세히가시 1,972
0.01% [-]
0석 1,121
0.00% [-]
0석 0석 [-] 원외정당
시코쿠의 미래당
무소속 773,452
2.28% [▼ 1.76]
5석 - - 5석
1.1%
[▼ 3]
합계 33,937,538 289석 34,615,031 176석 465석 원내 7당체제
의석 구성
연립여당[5] - 237석 (49.46%)
(50.54%) 228석 - 야당
정수:465석

주요 정치인 당락

민주당

사회민주당

정의당

공명당

자유당

새시대회

퓨처포워드

  • 야마모토 타로 (퓨처포워드 대표): - 당선(교토도 1구)
  • 다카이 다카시 (퓨처포워드 간사장, 제45·47·48대 중의원 의원): - 지역구 낙선(시가현 1구), 비례 당선(킨키)
  • 키라 요시코 (제49대 중의원 의원): - 당선(오사카부 6구)
  • 다가야 료 (제49대 중의원 의원): - 당선(도카이-미나미간토)

기타 정당

무소속


  1. 모델은 배우 후쿠모토 리코(福本莉子), 고이즈미 고타로(小泉孝太郎)
  2. 좋아, 빠르게 가!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어디에서든 행복한 일본을 향해.(よし、早く行け! 家でも、学校でも、職場でも、どこでも幸せな日本に向かっています。)
  3. 전후 최고 투표율
  4. 마츠모토 나미호, 하시모토 히사오, 나카야마 히토시
  5. 민주당, 사회민주당

위명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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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2025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까지 D-42
명국
明國 (míngguó) | 明國 (ㄇㄧㄥˊ ㄍㄨㄛˊ) | 明国 (めいくに)
State of Ming | Mingkuo
일본 제국의 괴뢰국
국기 국장
王道政治
왕도정치
1940년 ~ 1945년
성립 이전 멸망 이후
중화민국 임시정부 중화민국 국민정부
중화민국 유신정부
국가 정보
이칭 위명국, 위명정권
偽明國, 偽明政權[1]
국가 일심가
동아민족행진곡
국화 코스모스
위치 중국 동부 해안 일대
수도 경사[2][3]
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의원내각제, 왕도정치[4](명목상)

과두제, 일당제, 문민독재(사실상)
황제
(국가원수)
화영제(華瑛帝 (ㄏㄨㄚˊ ㄧㄥ ㄉㄧˋ))
정부수반 내각원장
역대 내각원장 량훙즈(梁鴻志)(제1대)
쑤시원(蘇錫文)(제2대)
쑹정밍(宋正明)(제3대 | 말대)
통치기관 내각원(명목상), 신민회(臣民會)(사실상)
연호 화영(華瑛 (ㄏㄨㄚˊ ㄧㄥ))
언어 중국어, 일본어
연호 한자, 가나 문자
종교 유교, 불교, 도교, 기독교
민족 한족
화폐 일본 엔, 중앙집행은행 폐(幣)[5]
현재 국가 중국 (민국 38)의 기 중국

개요

명국(明國) 또는 위명정권(偽明政權)은 상하이의 사업가이던 주융린이 일본군에 협력하여 1940년 중화민국 임시정부와 유신정부를 통합하여 만들어진 일본 제국의 괴뢰정권이다. 수도는 경사(난징시)였다. 주융린은 스스로 황제가 되어 일본 제국과의 화친과 반공, 왕도정치를 내세웠으나 전쟁에서 일본 제국이 불리해지자 자연스럽게 위명국 역시 쇠퇴하였고, 1945년 카보네이드 작전의 결과 일본군이 중국 전역에서 패배하자 그대로 해체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상세

푸젠성 출신의 사업가 주융린은 신해혁명 이전의 청소년기부터 반청복명적인 사상을 가지고 있었고 언젠가는 명황실이 복위되어 자신이 새로운 명나라의 황제가 되어야 한다는 소명을 가지고 있었다. 초기에 그는 푸젠과 장쑤성 일대에서 사업을 하며 반공주의와 한족 민족주의 성향이 있는 국민당을 지지하였으나 장제스가 선통제의 청나라 소조정을 복구시켜주자 분노하여 국민당과의 협력관계를 단절해 버렸다. 이후 일본군이 파죽지세로 중국 본토로 밀고 들어오자 국민정부가 얼마가지 못할 것이라고 판단한 주융린은 일제에 협력하며 이권을 챙기기 시작했다.

한간의 길을 걷게 된 주융린은 북양정부 당시 중의원 의원을 지냈던 아버지의 후광을 등에업고 정계에 입문하여 중화민국 유신정부의 국가총재직에 취임하였다. 그러나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고 평소부터 흠모하던 황제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했다.


  1. 한국을 제외한 한자문화권 국가에서는 할 위의 정자형이 이기에 가 아닌 라고 쓴다.
  2. 京師, 서울이나 교토와 마찬가지로 '수도'라는 뜻이며 발음은 징쉬.
  3. 현재의 난징.
  4. 명국 국제 1조:명국은 명국의 황제가 국가의 원수가 되어 통치하는 군주국이다. 명국의 황제는 신민에 대한 왕도정치를 기조로 하여 국가를 통치한다.
  5. 주로 엔화가 통용되었으며 이외에도 소량의 은화가 유통되었다고 하나 확실하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