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자치구 (민국 38)

Sindan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7월 8일 (토) 09:50 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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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관 설명 ]
[ 세계관 설명 ]
중국이 제국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망국의 인간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공산주의에 의해서 망한다면
중국인은 노예로도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민국 38(民國三十八)은 가장 대표적인 대체역사 소재 중 하나인 중화민국국공내전 승리를 가정한 세계관 입니다.
민국 38년(1949년) 중화민국의 국공내전 승리 이후 중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을 중심으로 변화한 여러 정치, 사회, 문화, 역사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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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징 국명 · 국기 · 국장 · 국가 · 소욤보 · 몽골야생말
역사 역사 전반 · 카마그 몽골 · 몽골 제국 · 북원 · 준가르 · 복드 칸국 · 몽골 인민 공화국
정치 정치 전반 · 대칸 · 정부주석 · 행정부
행정구역 행정구역 전반 · 후레시 · · · 소목
경제 경제 전반 · 몽골 투그릭
국방 몽골 자치구 자위대
외교 외교 전반 · 몽골 여권
사회 사회 전반 · 인문환경
문화 문화 전반 · 요리 · 아이락 · 몽골 영화 · 공휴일/몽골 · 게르 · 델(의복) · 마두금 · 텁쇼르 · 야특 · 알타이 야특 · 에웨르 부레 · 샨즈 · 대마두금 · 몽골 축구 국가대표팀 · 오르팅 도 · 호치르 · 이킬
지리 몽골 고원 · 고비 사막 · 외몽골 · 훕스굴 호
기후 조드
언어 몽골 문자 · 몽골어 · 카자흐어 · 키르기스어 · 에벤키어 · 러시아어 · 몽골어족
관광 관광 전반 · 후레시 · 수흐바타르 광장 · 간등 사원 · 복드 칸 겨울궁전 · 칭기즈 칸 궁전 · 고비 사막 · 카라코룸 · 보르항 산 · 훕스굴 호
민족 몽골인 · 몽골계 러시아인 · 몽골계 미국인 · 몽골계 한국인 · 몽골계 인물
인물 주요 군주: 칭기즈 칸 · 복드 칸 · 린포체 칸 · 뱌쿠렌 칸
주요 정치 지도자: 담딘 수흐바타르 · 허를러깅 처이발상 · 욤자깅 체뎅발 · 잠빙 바트뭉흐 · 푼살마깅 오치르바트 · 차히아깅 엘벡도르지
동물 몽골야생말 · 쿨란

몽골민주공화국 국장.svg 몽골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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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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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흉노 동호
선비 · 오환
철륵 선비
유연 북위 서위 · 동위
돌궐 제국 북주 · 북제
동돌궐
당의 기미지배
돌궐 제2제국
위구르 카간국 실위 거란
중세 요나라
서요 나이만 케레이트 메르키트 타타르 카마그 몽골 금나라
몽골 제국
킵차크 칸국 | 오고타이 칸국 | 일 칸국 | 차가타이 칸국 원나라
오이라트 | 티무르 제국 | 모굴리스탄 칸국 | 잘라이르 왕조 | 추판 왕조 북원
준가르 칸국 | 크림 칸국 청나라 치하 몽골
청나라
청나라 치하 몽골
근현대 러시아 제국 복드 칸국 중화민국
중화민국 외몽골 점령
탄누투바 복드 칸국
투바 인민공화국 몽골 인민공화국 중화민국
투바 자치주
투바 ASSR 중화민국 몽강연합자치정부
내몽골 인민공화국
소련
러시아 SFSR
투바 ASSR | 부랴티아 ASSR
중화민국
몽골 자치구 | 내몽골성

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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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중국[1] 일본국[2] 일본인민공화국[3]
홍콩 마카오 몽골 [4] 류큐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영토의 일부가 중앙아시아, 남아시아, 동남아시아, 북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함
  2. 영토의 일부가 미크로네시아로 분류되기도 함
  3. 영토의 일부가 북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함
  4. 중앙아시아, 북아시아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함

중앙아시아의 국가 및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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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1] 카자흐스탄 [2] 우즈베키스탄 투르크메니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아프가니스탄[3] 몽골 [2]
[ 각주 펼치기 · 접기 ]
  1. 소련은 유라시아 전역에 영토가 걸쳐있으며 일반적인 경우 중앙아시아 국가로 분류되지 않음
  2. 2.0 2.1 동아시아, 북아시아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함
  3. 서아시아, 남아시아의 일부로 분류되기도 함


난징 조약 기구
[ 회원국 목록 ]
[ 협력국 목록 ]

대몽골국
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 | Mongolia
몽골민주공화국 국기.svg 몽골민주공화국 국장.svg
국기 국장
ᠵᠢᠪᠬᠤᠯᠠᠩᠲᠤ ᠮᠠᠨᠠᠶ ᠤᠷᠤᠨ ᠮᠠᠨᠳᠤᠲᠤᠭᠠᠢ᠅
우리의 장엄한 조국이여 영원하라
상징
국가 백냥의 노새의 걸음
국화 연꽃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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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 1911년 12월 29일
• 몽골 인민공화국 수립 1924년 11월 26일
• 몽골 내전 1950년 6월 25일
• 대몽골국 수립 1954년 3월 1일
• 헌법 개정 1992년 2월 12일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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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니슬렐 후레
북위 47°55′00″ 동경 106°55′00″
최대 도시
면적 1,564,116km2 | 세계 19위
내수면 비율 0.6%
접경국 중국 (민국 38)의 기 중국
소련 (민국 38)의 기 소련
인문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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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인구 3,331,932명(2029년) | 세계 132위
인구 밀도 2.13명/km2
민족 구성 몽골인 (92.3%)
오이라트인 (3.9%), 카자흐인 (3.8%)
출산율 2.78명 (2028년)
기대수명 71.65세 (2028년)
언어 공용어 몽골어
지역어 카자흐어, 중국어, 러시아어
공용문자 몽골 문자
종교 국교 티베트 불교[1]
분포 티베트 불교 85.7%
이슬람교 3.2%
정교회 1.9%
무종교 및 무신론 9.2%
군대 몽골군
인간개발지수 0.737(2028년) | high | 세계 99위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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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급행정구 1개 수도시, 21개 아이막
하급행정구 315개 솜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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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단일국가, 의원내각제, 입헌군주제, 단원제, 대륙법계
민주주의 지수 6.42점, 결함있는 민주주의 (2021년)
(167개국 중 62위, 아시아 18위)
대칸
(국가원수)
뱌쿠렌량화 칸
정부
요인
총리
(정부수반)
할트마긴 바트톨가
국가대회의
의장
멘드사이하니 엥흐사이한
여당 민주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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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자본주의시장 경제
GDP
(PPP)
$470억 9,750만(2029년 IMF 기준) | 세계 108위
1인당 $14,135(2029년 IMF 기준) | 세계 90위
GDP
(명목)
$173억 4,603만(2029년 IMF 기준) | 세계 115위
1인당 $5,206(2029년 IMF 기준) | 세계 100위
국부 $670억 6,390만(2028년) | 세계 95위
무역 수출 $847억 1,800만(2028년)
수입 $576억 3,700만(2028년)
외환보유액 $620억 9,100만(2028년)
신용 등급 무디스 Caa1
S&P B
Fitch B
화폐 공식 화폐 몽골 투그릭(₮, Төгрөг)
ISO 4217 MNT
국가
예산
1년 세입 $117억 2,510만(2028년)
1년 세출 $92억 6,327만(2028년)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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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연호 백련 (ᠴᠠᠭᠠᠨ ᠪᠠᠳᠮᠠᠯᠢᠩᠬᠤ᠎ᠠ, 白蓮)[2]
시간대 UTC+7 (서부 시간대)
UTC+8 (후레 시간대)
도량형 SI 단위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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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수교현황 1958년 3월 26일
유엔 가입 1961년 10월 27일
무비자입국 양측 모두 90일
주한몽골대사관 서울특별시 용산구 독서당로 95
ccTLD
.mn
국가 코드
496, MNG, MN
국제전화코드
+976
차량 통행 방향
오른쪽
몽골민주공화국 국장.svg
위치
몽골 판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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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8K로 촬영된 몽골의 모습

대몽골국(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ᠦᠯᠦᠰ, Mongolia), 몽골(ᠮᠣᠩᠭᠣᠯ)은 동아시아의 내륙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다. 일부 경우 중앙아시아로 분류되기도 하며 수도는 울란바토르이다.

1911년 신해혁명 이후 청나라로 부터 독립하여 복드 칸국을 수립하였으나 북양정부의 재점령과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등의 준동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었고​ 1921년 담딘 수흐바타르가 이끄는 적군에 의해 공산화되어 1922년 세계 2번째의 정식 공산국가 몽골인민공화국이 수립되었다.

공산화 이후 소련의 지원을 받는 위성국으로써 존속하였으나 소련 정부가 몽골의 민족주의 지도자 허를러깅 처이발상을 암살하고 중국의 내몽골과 외몽골(몽골인민공화국)을 통합시켜 장기적으로는 '몽골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소련에 병합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는 것에 불안감을 느낀 장제스 총통이 몽골 내 군부 세력과 불교 세력을 지원하여 내전이 발발하였다.

약 1년 간의[3] 내전 끝에 중국의 지원을 받는 몽골 구국정부(ᠮᠣᠩᠭᠣᠯ ᠤᠨ ᠠᠪᠤᠷᠠᠯ ᠤᠨ ᠵᠠᠰᠠᠭ ᠤᠨ ᠭᠠᠵᠠᠷ)가 승리하여 국체를 대몽골국으로 변경하였고[4] 이후 중국국민당의 자매정당인 몽골 민족당의 일당독재가 이어졌다. 1978년 장제스의 사망 이후 중국이 민주화되자 수세에 몰린 의회당 정부는 1980년대 점진적인 민주화를 추진하기 시작하였으나 진척없는 민주화에 불만을 가진 국민들의 시위로 기존 정부가 물러나고 헌법이 개정되어 민주화가 이루어졌다.

상징

국명

언어별 명칭
영어 Mongolia
몽골어 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ᠦᠯᠦᠰ (Ix Mongol Uls)
ᠮᠣᠩᠭᠣᠯ (Mongol)
한국어 대몽골국
몽골
표준중국어 () (Meng) () (guó)
(Meng) ()
일본어 (だい)モンゴル (こく)
モンゴル
프랑스어 Mongolie
러시아어 Монголия
스페인어 Mongolia
아랍어 منغوليا
[ 그 외 언어 ]
독일어 Mongolei
포르투갈어 Mongólia
이탈리아어 Mongolia
튀르키예어 Moğolistan
루마니아어 Mongoliă
만주어 ᠮᠣᠩᡤᠣ
힌디어 मंगोलिया

정식 국명은 대몽골국(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ᠦᠯᠦᠰ)으로, 몽골어 발음은 이흐 몽골 올스(Ix Mongol uls)이다. 몽골이라는 국명은 몽골족이라는 민족명에서 비롯된 것으로 몽골어로 "용감한"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몽골이라는 명칭이 사서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중국 당나라 시대로, 실위의 부족 중 하나인 몽올(蒙兀)이라는 명칭으로 기록되었다. 이후 북송 시대부터는 몽고(蒙古)라는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현재까지도 중국에서는 몽골을 몽고라고 표기한다.

그러나 어릴 몽(蒙)자가 어리석다는 뜻으로 많이 쓰이고 옛 고(古)자도 낡았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대다수의 몽골인들은 이 표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실제로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자신들 기준에서 "오랑캐"로 분류되는 민족들의 언어를 음차할 때 일부러 좋지 못한 뜻을 지닌 글자를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했기에[5] 중국에서 오랑캐니까 일부러 안 좋은 뜻의 글자를 썼다고 받아 들여지기도 한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몽고라고 해왔으나 1991년 외래어 심의를 통해 몽골 또한 복수 표준어가 되었으며 현대에는 대부분 몽골로 표기한다. 하지만 몽고라는 표기가 워낙 오래된 표기이다 보니 지금도 "몽고 반점"등 일부 고유명사나 조금 오래된 문헌에는 몽고라고 표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국기

삼색기
ᠭᠤᠷᠪᠠᠨ ᠥᠩᠭᠡ ᠶᠢᠨ
몽골민주공화국 국기.svg
지위 몽골의 국기
채택일 1954년 3월 1일
근거법령 몽골 헌법 제1장 제12조 5항
비율 2:1
직사각형의 국기는 청색, 백색, 적색으로 삼등분되어 있다. 상단의 청색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푸른 하늘을 상징하며 중앙의 백색은 주권과 정의를, 하단의 적색은 전진과 번영을 상징한다. 국기봉 가까이의 청색조에는 백색 소욤보가 그려져 있다. 국기의 가로 세로의 비율은 2대1이다.
몽골 헌법 제1장 제12조 5항

몽골의 국기는 삼색기이며 몽골 국기제정위원회에 의하여 제작되었다. 1954년 3월 1일 제헌헌법 비준과 동시에 공식적인 국기로 채택되었다.

상단의 파란색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푸른 하늘을, 흰색은 주권과 정의를, 빨간색은 전진과 번영을 상징한다. 삼색기의 원형은 몽골 내전당시 몽골 구국정부의 깃발로 당시 구국정부의 공식 깃발은 청색 바탕 가운데에 흰색 소욤보가 있고 소욤보 양쪽에 "몽골 구국정부"라고 적혀 있으며 빨간색 테두리가 있는 깃발이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서 테두리와 글씨가 생략된 채 푸른 바탕에 흰색 소욤보가 그려진 형태로 쓰였으며 이후 몽골 민족주의와 반공주의를 상징하는 깃발이 되었다.

전후 국기를 제정하는 과정에 있어서 청색 바탕에 흰색 소욤보를 넣은 형태의 깃발를 사용하려 했으나 일각에서 중국국민당의 당기와 배색이 유사하다는 비판과 더불어 불교계에서 적색과 백색을 넣어야 한다는 요구가 들어갔고 이에 여러 도안중 현 국기의 도안이 채택되어 국기로 지정되었다.

국장

몽골의 국장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 ᠤᠨ ᠲᠥᠷᠥ ᠶᠢᠨ ᠰᠦᠯᠳᠡ
몽골민주공화국 국장.svg
지위 몽골의 국장
채택일 1954년 3월 1일
근거법령 몽골 헌법 제1장 제12조 3항
사용처 국가기관
국가문서
여권
훈장
해외공관
국장은 원형으로 되어 있으며, 흰색 연꽃이 받침을 이루고 가장자리는 영원한 투멘나산형으로 되어 있다. 바탕색은 푸른색이며, 이는 영원히 변하지 않는 하늘 즉 몽골 전래의 신성성을 상징한다. 국장의 중앙에는 보석말과 흰색 소욤보 문양이 새겨져 있으며 이는 독립과 주권 그리고 몽골의 정신을 나타낸다. 상단의 찬드미니 문양은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상징한다. 경의와 존경을 나타내는 비단현장 하다그를 휘감은 수레문양이 하단을 장식하고 있는 데 이는 영원한 번영을 상징한다. 국장은 모토를 상징하는 언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몽골 헌법 제1장 제12조 3항

몽골의 국장은 국기와 마찬가지로 1954년 3월 1일에 제정되었다.

국장 가운데에는 파란색 바탕에 몽골의 전통적인 문양인 소욤보로 장식된 말이 달리고 있는 형상의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국장 위쪽에는 찬드마니 문양이 그려져 있다. 파란색은 하늘을, 소욤보 문양과 말은 몽골의 독립, 주권, 정신을 의미하며 찬드마니는 불교에서 언급하는 세 개의 보물과 몽골의 과거, 현재, 미래 그리고 몽골의 전통 문화의 계승을 의미한다. 말 문양 아래에는 초록색 산맥이 그려져 있으며 산맥 가운데에는 운명의 수레바퀴가 그려져 있다. 국장 아래쪽에는 몽골의 전통 의식에서 사용되는 스카프인 카다그가 장식되어 있다.

국가

백냥의 노새의 걸음
ᠵᠠᠭᠤᠨ ᠯᠠᠩ ᠤᠨ ᠵᠢᠷᠤᠭ᠎ᠠ ᠯᠠᠭᠤᠰᠠ

지위 몽골의 국가
채택일 1915년 (복드 칸국)
1954년 3월 1일 (대몽골국)
작사 불명[6]
작곡 안드레이 뱌체슬라보비치 카들렉
[ 가사 ]
백냥의 노새의 행렬이
ᠵᠠᠭᠤᠨ ᠯᠠᠩ ᠤᠨ ᠵᠢᠷᠤᠭ᠎ᠠ ᠯᠠᠤᠰ ᠢ
가마를 짊어지고
ᠵᠢᠤᠵᠠᠨ ᠳᠤᠮᠳᠠ ᠪᠠᠨ ᠬᠥᠯᠭᠡᠯᠡᠪᠡ ᠡ ᠬᠥ
고승은 수세기에 걸쳐
ᠵᠤᠤᠭ᠎ᠠ ᠠᠴᠠ ᠵᠠᠯᠠᠭᠰᠠᠨ ᠪᠣᠭᠳᠠ ᠯᠠᠮ᠎ᠠ ᠶᠢ ᠪᠠᠨ
총카파[7]의 옥좌에 앉는다.
ᠵᠣᠩᠬᠣᠪ ᠤᠨ ᠰᠢᠷᠡᠭᠡᠨ ᠳᠦ ᠵᠠᠯᠠᠪᠠ ᠠ ᠬᠥ
은으로 된 입을 가진 비쉬구르[8]
ᠮᠥᠩᠭᠥᠨ ᠠᠮᠠ ᠲᠠᠢ ᠪᠦᠷᠢᠶ᠎ᠡ ᠪᠢᠰᠬᠢᠭᠦᠷ ᠢ
대하(大河) 위에 울려 퍼지고
ᠮᠥᠷᠡᠨ ᠳᠤᠮᠳᠠ ᠪᠠᠨ ᠬᠠᠩᠭᠢᠨᠠᠭᠤᠯᠪᠠ ᠠ ᠬᠥ
고승은 오랜 세월에 걸쳐
ᠮᠥᠩᠬᠡ ᠨᠠᠰᠤ ᠲᠠᠢ ᠪᠣᠭᠳᠠ ᠯᠠᠮ᠎ᠠ ᠶᠢ ᠪᠠᠨ
부처의 옥좌에 앉는다.
ᠮᠥᠷᠭᠥᠯ ᠦᠨ ᠢᠶᠡᠨ ᠰᠢᠷᠡᠭᠡᠨ ᠳᠦ ᠵᠠᠯᠠᠪᠠ ᠠ ᠬᠥ
금색의 구금이[9]
ᠠᠯᠲᠠᠨ ᠠᠮᠠ ᠲᠠᠢ ᠪᠦᠷᠢᠶ᠎ᠡ ᠪᠢᠰᠬᠢᠭᠦᠷ ᠢᠶᠡᠨ
대하 구석구석에 울려 퍼지고
ᠠᠷᠤ ᠮᠥᠷᠦᠨ ᠳᠦ ᠪᠡᠨ ᠬᠠᠩᠭᠢᠨᠠᠭᠤᠯᠪᠠ ᠠ ᠬᠥ
존경받는 고승은
ᠠᠴᠢᠯᠠᠯ ᠪᠣᠯᠤᠭᠰᠠᠨ ᠪᠣᠭᠳᠠ ᠯᠠᠮ᠎ᠠ ᠶᠢ ᠪᠠᠨ
구원의 옥좌에 앉는다.
ᠠᠪᠤᠷᠠᠯ ᠤᠨ ᠰᠢᠷᠡᠭᠡᠨ ᠳᠦ ᠵᠠᠯᠠᠪᠠ ᠠ ᠬᠥ

몽골의 국가는 "백냥의 노새의 걸음"으로 노새를 신의 수레로 여기고 그 노새가 백냥의 가치가 있는 특별한 수레라는 생각에서 유래되었다.

이 노래가 국가로 채택된 것은 복드 칸국 시기로 당시 복드 칸국의 총리였던 퇴그스오치린 남난쉬렌(Tögs-Ochiryn Namnansüren)이 군사 문제에 대해 회담을 위해 러시아를 방문했을 때 러시아 군악대의 기념 공연을 보고 러시아 대사에게 국가를 만들도록 요청하였다. 이에 안드레이 뱌체슬라보비치 카들렉(Andrey Vyacheslavovich Kadlec)라는 작곡가가 국가의 작곡을 의뢰받아 당시 러시아 과학 아카데미 동양학 연구소에서 선율을 작곡했고, 민요이자 종교 음악이던 "백냥의 노새의 걸음"이라는 가사를 붙여 1915년 복드 칸국의 국가로 제정되었다.

1914년부터 1924년까지 국가는 종교 및 국가 의식에서 불려졌으나 1921년 몽골 혁명 이후 1924년 몽골 인민 공화국이 수립되면서 폐지되었다. 인민공화국 시기에는 "몽골 인터내셔널"[10]과 "몽골 국가"[11]가 국가로 사용되었으나 몽골 내전 이후 백냥의 노새의 걸음이 다시 국가로 사용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중국의 "중화민국 국가"와 마찬가지로 현재 몽골에서 쓰이지 않는 문법들과 표현들, 그리고 불교 세계관에 유래를 둔 표현들로 인해 해외에서 번역과 해석을 하기 여려운 난해한 국가로 분류되기도 한다.

또한 몽골의 국가원수인 대칸은 국가를 부르지 않는데 이는 대칸이 종교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를 겸임하는 상황에서 젭춘담바 후툭투의 환생을 묘사한 국가를 부른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기소개를 하는 모양새를 띄기 때문이라고 한다.

역사

몽골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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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흉노 동호
선비 · 오환
철륵 선비
유연 북위 서위 · 동위
돌궐 제국 북주 · 북제
동돌궐
당의 기미지배
돌궐 제2제국
위구르 카간국 실위 거란
중세 요나라
서요 나이만 케레이트 메르키트 타타르 카마그 몽골 금나라
몽골 제국
킵차크 칸국 | 오고타이 칸국 | 일 칸국 | 차가타이 칸국 원나라
오이라트 | 티무르 제국 | 모굴리스탄 칸국 | 잘라이르 왕조 | 추판 왕조 북원
준가르 칸국 | 크림 칸국 청나라 치하 몽골
청나라
청나라 치하 몽골
근현대 러시아 제국 복드 칸국 중화민국
중화민국 외몽골 점령
탄누투바 복드 칸국
투바 인민공화국 몽골 인민공화국 중화민국
투바 자치주
투바 ASSR 중화민국 몽강연합자치정부
내몽골 인민공화국
소련
러시아 SFSR
투바 ASSR | 부랴티아 ASSR
중화민국
몽골 자치구 | 내몽골성

전근대 몽골

몽골 제국의 최대 강역

칭기즈 칸 이전의 몽골은 여느 유목 부족들과 마찬가지로 명확하게 혈통으로 구분하기 어려운 다수의 민족이 뒤섞여 있었다. 때문에 몽골 민족의 기원은 현재까지도 불명확한 상황이며 그나마 남아있는 정보라고 한다면 당나라 시기 이후 등장한 "몽올실위"라는 부족명 정도이다. 현재 사학계에서는 만주 일대의 농경 민족이 모종의 이유로 현재의 내몽골 일대로 흘러들어가 유목민 집단을 형성하였고 이 집단이 외몽골의 흉노족과 결합하여 현재 몽골 민족의 기원이 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흉노의 쇠퇴 이후 현재의 몽골 일대에는 선비족, 돌궐족이 번성하였으며 중세시대 이후부터는 요나라(거란)의 지배를 받게되었다. 요나라가 금나라(여진)에 의하여 멸망할 당시 몽골족은 요나라에게서 독립하여 금나라에 대항하였으나 타타르와 동맹을 맺은 금나라의 토벌로 인해 잠시동안 쇠퇴기를 겪어야 했다. 그러나 칭기즈 칸이 등장하여 흩어져 있던 몽골 부족들을 통합하여 동쪽으로는 중국, 서쪽으로는 모스크바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하며 몽골 역사 최대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칭기즈 칸의 사망 이후 몽골 제국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사후 분열된 몽골 제국 중 원나라를 제외한 나머지 칸국들은 점차 현지화 되어 이란, 중앙아시아, 캅카스, 러시아 등의 역사로 편입되었고 원나라 역시도 강경한 통치에 반발한 한족들의 반란과 내부 부패로 인해 점차 몰락해갔으며 결국 주원장이 이끄는 홍건적에 의해 만리장성 북방으로 밀려나게 되었는데 이시기의 원나라를 북원이라고 부른다.

북원 정권은 17세기, 후금에 복속되기까지 존속하였으며 17세기 이후에는 북원을 포함하여 준가르 등의 몽골계 민족들까지도 청나라에 복속되게 되었다. 청나라 통치기에 몽골 대칸의 작위는 청나라 황제가 세습하였으며 티베트 불교가 들어오며 젭춘담바 후툭투가 종교 지도자로 존경받기 시작하였다.

독립과 공산정권

몽골 내전 당시 미군 장비를 착용한 구국군

1911년 신해혁명으로 인해 청나라가 멸망하고 몽골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상실되자 몽골의 왕공족들은 복드 칸(젭춘담바 후툭투 8세)를 중심으로 복드 칸국을 건국해 독립을 선포하였다. 복드 칸국은 1915년 캬흐타 협정의 결과 자치권을 보장받았으나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 뒷배이던 러시아 제국이 붕괴되자 1919년 중국 안휘군벌의 쉬수정이 외몽골 출병을 단행하여 몽골의 자치권을 취소하여 학정을 일삼있다. 1921년 로만 폰 운게른슈테른베르크 휘하의 러시아 백군 세력이 몽골을 점령하고 이들의 지지로 잠시 복드 칸이 복위하였으나 소련의 지원을 받은 몽골 인민당의 혁명으로 인해 공산화되었다.

1924년 복드 칸이 서거한 이후 복드 칸국은 공식적으로 해체되었으며 몽골 인민 공화국이 건국되었으나 몽골 혁명의 주도자였던 담딘 수흐바타르는 이미 1년 전에 사망하였기에 그의 동료였던 허를러깅 처이발상이 정권을 잡았다. 그는 폭압적인 독재정치를 펼쳐 수많은 승려들과 지식인들을 숙청했으며 몽골의 국교였던 티베트 불교를 탄압했고 몽골 문자를 폐지하고 자신과 수흐바타르에 대한 우상숭배 역시도 실행하였다. 그러나 그의 집권기 동안 몽골은 근대화되어 전국 곳곳에 포장도로가 깔리고 통신선이 개통되었으며 현재까지도 몽골을 먹여 살리는 광공업의 발전이 이루어졌다. 또한 의무 교육 도입으로 문맹률도 낮아졌고 변발같은 구시대적 관습도 자취를 감추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몽골과 소련의 관계가 악화되자 1949년, 소련 측은 몽골의 독재자 처이발상을 암살하였다. 이는 당시 소련 측이 내외몽골의 통일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지 않자 처이발상이 표명한 불만에 대한 화답이었으며 유럽에서의 서방의 세력 확대[12]에 대한 스탈린의 편집증의 일부이기도 했다. 이후 소련 측은 노골적인 친소파 지도자이자 몽소병합에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던 욤자깅 체뎅발을 몽골의 국가원수로 세웠고 이는 몽골과 접경한 중국의 심기를 불편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중국 정부는 몽골 인민혁명당 내부의 민족주의자들과 군부, 불교계 인사들을 포섭하여 무기와 자금을 지원하였고 1950년 6월 25일, 몽골 구국군이 궐기하면서 몽골 내전이 시작되었다. 대다수의 몽골인들은 처이발상 정권의 폭압정치에 피로감을 느낌과 동시에 체뎅발 정권의 노골적인 친소 행보에 분노했고 이는 구국군이 몽골인들의 지지를 받는데에 큰 영향을 미쳤다. 대세를 파악한 몽골 인민당 인사들은 기회가 되는 족족 구국군 측으로 전향하였고 전쟁 발발 3달만인 1950년 9월 15일 울란바토르(현 니슬렐 후레)가 구국군에 의해 해방되었다.

이에 소련 정부는 그해 11월 내전 개입을 선언하였으나 이미 몽골 국토 대부분이 구국군에 의해 통제되고 국민 대다수가 구국군을 지지하는 상황에서 소련군이 개입해 봤자 민심을 얻지 못한 채 중국의 물량 공세에 휘말려 손해는 손해대로 보고 승리는 장담하지 못할 것이 확실했기에 소련군은 소규모 폭격을 진행한 것 이외에는 별다른 개입을 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1951년 대부분의 전투가 종결된 이후 1953년 스탈린의 사망으로 인해 정전협정이 체결되면서 몽골 내전은 구국군의 승리로 끝이나게 되었다.

군부독재와 민주화

1990년 몽골 혁명 당시 칭기즈 칸 광장의 시위대

구국군의 정권장악 이후 국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구 체제 출신이 다수있던 혁명 세력 내부에서는 다시 공화제를 채택하자는 의견이 나왔으나 이들의 지지층 중 상당수를 차지하던 불교 보수주의 세력이 군주제의 복귀를 요구하면서 결과적으로 왕정복고가 결정되었다. 군주의 후보자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여러 논의가 있었으나 결과적으로 이전의 복드 칸국과 마찬가지로 종교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를 몽골의 대칸으로 옹립하는 것이 가장 많은 지지를 얻어 통과되었다.

몽골 신정부는 당시 중국 티베트에 달라이 라마 14세의 보호하에 머무르고 있던 젭춘담바 후툭투 9세를 몽골으로 초청하여 대칸으로 옹립하였고 1954년 3월 1일 대몽골국 정부가 수립되었다. 초대 총리로는 군부와 몽골 민족당의 지도자이던 다르자빈 에르데네트가 선출되었는데 그는 강력한 개발독재 정책을 펼쳤다. 기존 공산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여 광공업에 집중적인 투자를 하였으며 불교 윤리에 기반한 복지정책을 펼쳤다. 그러나 경공업 개발정책이 대실패로 끝난 이후 후임인 발링긴 졸타르갈에게 권좌를 넘겨주고 하야하였다.

에르데네트 이후 집권한 발링긴 졸타르갈은 경공업 개발 정책을 포기하고 중공업과 광공업, 특히 광공업에 올인하는 정책을 펼쳤으며 이는 당시 몽골 경제에 대하여 괄목할 만한 발전을 이루어내게 하였다. 그러나 그는 말년에 이르러서 점차 편집증적으로 변했고[13] 결국 중국의 권유(사실상의 압박)으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했다.

마지막 군부출신 총리이던 곤치깅 을지바타르 이후 최초의 문민출신 총리인 잠빙 바트뭉흐가 집권하였다. 그는 국제사회의 권유를 받아들여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해 나갔으며 소련과의 관계 회복에도 어느정도 노력을 기울여 이후 몽소 재수교의 발판을 마련하기도 했다. 1990년 조지 H.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몽골 방문으로 촉발된 몽골 혁명에 있어서 그는 군 강경파의 요구를 물리치고 시위대의 요구를 수용하였다. 1992년 몽골 최초의 자유선거가 치뤄지고 헌법이 개정되며 몽골은 동시기의 동남아 국가들과는 달리 평화롭게 민주화되었다.

정치혼란과 신시대의 개막, 그리고 현재

새로운 연호인 백련을 발표하는 자르갈톨깅 에르데네바트 당시 부총리, 몽골의 21세기를 상징하는 장면이다

민주화 이후 초대 총선에서 여당이던 민족당이 만주화 세력들에 대하여 신승을 거두고 푼살마깅 오치르바트가 총리로 취임하였다. 그는 민주화 이후의 혼란기를 순조롭게 넘기며 독재 국가였던 몽골을 별 탈 없이 민주 국가로 개혁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오치르바트 총리 이후의 몽골 정치는 혼란의 연속이었다. 그 신호탄을 쏜것은 산자수레깅 조릭 총리의 암살로 민주화의 대부였던 그의 암살은 몽골 정치를 혼란에 빠트렸으며 후임인 차히아깅 엘벡도르지 총리의 미숙한 경제정책 추진으로 인하여 다시 4년만에 민족당이 재집권하게 되었다.

나차깅 바가반디 총리의 민족당 내각은 초기에는 그럭저럭 잘 운영되나 싶었지만 당시 달라이 라마 14세와 더불어 티베트 불교 개혁[14]을 추진하던 린포체 칸이 암살당하고 당시 개혁에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던 민족당 측이 암살을 사주했다는 음모론이 퍼지며 지지도에 치명타를 입혔고 그의 뒤를 이은 남바링 엥흐바야르 총리 역시 차기 대칸이자 젭춘담바 후툭투로 지명된 히지리슬릉 뱌쿠렌량화(뱌쿠렌량화 칸)의 성별을 문제삼은 당내 보수파 의원 일부가 탈당하여 새살림을 차리면서 불안정한 정권 운영을 이어 나갈 수 밖에 없었다.

결과적으로 4년만에 다시 정권이 교체되어 전임 총리였던 차히아깅 엘벡도르지가 재집권하게 되었다. 그의 집권기 동안 몽골은 상당히 안정된 시기를 보냈다. 위에 언급된 린포체 칸 암살 사건과 민주당 지지층의 결집으로 인해 민족당의 지지도는 바닥을 쳤으며 연 10%대에 달하는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내부적으로 쌓여가는 빈부격차와 부정부패가 사회문제로 떠오르기 시작하였으며 결과적으로 2012년 이후 세계 경제가 하락세를 보이고 2015년 이후 원자제 가격이 하락하며 경제성장률이 0.4%로 폭락하게 되었다.

그 결과 2016년 총선에서 민주당은 76석 중 9석만 챙기는 참패를 기록하며 민족당이 재집권했으나 나아진 것은 없었고 오히려 미예곰빈 엔흐볼드 총리가 IMF 구제금융을 신청하면서 나빠진 국내 사정을 온세계에 공개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며 때문에 2019년에 있었던 뱌쿠렌량화 칸의 즉위식도 축소하여 진행해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내분으로 인해 민족당의 오흐나깅 후렐수흐가 총리로 집권하였다. 그러나 2022년 연말 중국과 연계된 2조 5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석탄 비리사건이 일어나며 국민여론이 폭발하였고 국가궁 점거가 시도되는 등 국가혼란이 심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결국 2024년 총선에서 극단주의 정당인 통합몽골의 대약진과 동시에 민족당은 정권을 잃게 되었다.

2024년 총선에서 집권한 민주당은 스포츠 선수 출신의 할트마긴 바트톨가를 총리로 선출하였다. 그는 파키스탄의 임란 칸 전 총리와 마찬가지로 기존의 인지도를 바탕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으며 기존 정치권과 다른 청렴한 이미지를 통해 높은 지지율을 구사하였다. 또한 코로나 19 종식 이후 호황기의 총리라는 이점이 더해지며 2028년 총선에서 가볍게 승리하여 재집권 하는데 성공하였다. 또한 2028년 광석병 사태에 대하여 강경 대처를 주도하면서 국내의 지지율이 크게 꺾이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자연환경

몽골 초원의 풍경

대표적인 내륙국이자 고지대 국가로 몽골의 자연환경은 "서늘한 초원"이라는 말 하나로 대변된다. 내륙국 특성상 대부분의 계절이 건조하며 대체로 남부로 갈수록 더 건조해지는 경향이 있다. 또한 고지대 국가이기에 서늘하면서도 연교차가 매우 심한데 여름철에는 평균기온 20℃ 정도의 따뜻한 날시가 이어지다가도 겨울이 되면 조드(ᠵᠤᠳ) 라고 하는 혹한이 찾아와 -20℃에서 -30℃까지 기온이 떨어지며 심한경우 -50℃ 밑으로 떨어져 수많은 가축들이 동사하기도 한다.

지형의 경우 동고서저인 대한민국과는 달리 서고동저, 정확히는 서북고동저의 고도가 나타난다. 이는 몽골 서북부 지역에 알타이 산맥이 위치해 있고 남부 지역에는 황사의 발원지로 알려진 고비 사막이 위치한 까닭이다. 또한 국토 곳곳에 큰 호수가 위치해있는데 몽골 북부에 위치한 훕스굴 호(ᠬᠥᠪᠰᠦᠭᠦᠯ ᠨᠠᠭᠤᠷ)가 유명하다. 여담으로 구 몽골 해군은 몽골이 바다가 없는 내륙국인 까닭에 훕스굴 호에 주둔했으나 1993년 해산되었다.

인문환경

전통의상을 입은 몽골인 가족

영토면에서는 세계 19위의 크기를 자랑하는 대국이지만 정작 인구는 한국의 절반도 되지않는, 1km2당 인구밀도가 2.13명이라는 다른 의미로 극악의 인구 밀도를 자랑하는 국가이다. 출산율은 3명에 가까운 2.78명이라는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으나 정작 대부분의 인구가 도시, 특히 수도인 니슬렐 후레에 모여사는 덕분에[15] 시골에서 체감되는 인구는 훨신 낮다. 때문에 최근 몽골 정부는 한국의 세종시, 단군시와 마찬가지로 행정복합도시 건설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 대부분은 몽골인(몽골족)이며 그중에서도 할하인[16]이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외에도 카자흐인, 오이라트인 및 기타 튀르크계 민족들과 소수의 러시아인이나 중국인(주로 한족이나 만주족)이 존재하나 이들을 다 합쳐도 10% 미만이기에 실질적으로 단일민족 국가로 분류된다. 근대에는 사회의 주류를 차지하는 할하 몽골인들과 카자흐, 오이라트, 칼미크, 부랴트 등의 기타 튀르크계 민족 및 내몽골의 주류를 차지하는 차하르인들과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이었고 종종 소요사태도 발생하였으나 현재는 미미한 수준이다.

민족 구성 자체는 복잡한 편이지만 대부분의 몽골 인구는 국어인 몽골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 있는데 2020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전 인구의 97.3% 가량이 모국어 혹은 모국어 수준으로 유창하게 몽골어를 구사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다. 몽골어는 몽골 문자로 표기되는데 세로쓰기가 원칙이나 온라인 환경에서의 불편함으로 인해 가로쓰기 역시 대중화 되어 있다. 몽골 문자의 복잡함과 불편함으로 인해 공산정권 시절에는 키릴 문자 표기로 몽골어를 표기하였으나 왕정복고 이후 폐지되었다. 현재 몽골어는 몽골 문자와 라틴 문자 표기를 병기하며 몽골어 이외의 소수민족의 언어는 주로 라틴 문자로 표기한다.

몽골의 주류 종교이자 국교는 티베트 불교이다. 몽골에서 인구 대비 티베트 불교도의 비율은 중국의 티베트 자치성을 제외하고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편이며(85.7%) 독립국 중에서는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티베트 불교 다음으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는 이슬람교 (3.2%)로 대부분은 카자흐인이다. 젊은층 사이에서는 기존 티베트 불교의 보수성으로 인하여 무종교인이 늘어나는 추세였으나 뱌쿠렌량화 칸의 즉위 이후에는 그녀의 개인기와 개혁정책의 영향을 받아 무종교인의 증가세는 정체되어 있다.

행정구역

몽골 자치구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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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행정구
없음
현급행정구
현급시 1, 현 20, 자치현 1
자치구직관
현급행정구
후레시
성도 庫倫市
트브현
中央縣
헨티현
肯特縣
더르너드현
東方縣
더르너고비현
東戈壁縣
고비알타이현
戈壁阿爾泰縣
오브스현
烏布蘇縣
볼간현
布爾干縣
동드고비현
中戈壁縣
아르항가이현
後杭愛縣
다르항올현
達爾汗烏拉縣
바잉헝거르현
巴彥洪戈爾縣
으브르항가이현
前杭愛縣
오르홍현
鄂爾渾縣
셀렝게이현
色楞格縣
자브항현
扎布汗縣
오므느고비현
南戈壁縣
흐브스글현
庫蘇古爾縣
허브드현
科布多縣
바론오르트현
西烏爾特縣
고비숨베르현
戈壁蘇木貝爾縣
바잉을기 카자흐족 자치현
巴彥烏列蓋哈薩克族自治縣
부지급행정구 부지급시

몽골의 행정구역은 2개의 단계로 나뉘어진다. 상급행정구은 총 22개로 수도 후레[17]와 21개의 아이막(ᠠᠶᠢᠮᠠᠭ, aimag)[18]으로 구성된다. 상급행정구 산하에는 하급행정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총 315개의 솜(ᠰᠤᠮᠤ, soum)[19]으로 구성되어 있다. 솜 하위에는 하위엔 박(ᠪᠠᠭ, bag)이 있으나 이는 정식 행정구역이 아니며 한국으로 따지면 마을과 같은[20] 개념이다.

다른 국가와 비교했을때 행정구역이 많이 간소한데 그 이유는 몽골의 총 인구가 현재도 천만명은 고사하고 오백만도 안되는 수준이며 행정구역이 구체화 되던 공산정권 시절에는 지금보다도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었기에 복잡한 행정구역을 만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치

대칸과 젭춘담바 후툭투


몽골 대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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젭춘담바 후툭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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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대 대칸이자 제10대 젭춘담바 후툭투인 뱌쿠렌량화 칸

대칸(ᠬᠠᠭᠠᠨ, Khagan) 혹은 카간은 몽골의 군주이자 국민통합의 상징으로 몽골의 상징적 국가원수이다.

일반적으로 혈통으로 세습되는 다른 군주들과는 달리 종교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로 확인된 인물이 대칸으로 임명되는 구조이며 때문에 아래 설명될 젭춘담바 후툭투와 혼동되기도 하나 법적으로 몽골의 국가원수는 젭춘담바 후툭투가 아닌 대칸이다.

대칸은 몽골의 국가원수로서 여러 권한을 가지고 있다. 법률 및 헌법의 제개정 및 폐기에 대한 동의권 및 거부권, 면세권, 군경에 대한 통수권, 총리 이하 각료 및 공무원들에 대한 임면권, 의회 해산권, 사면권 등이 있다. 또한 칙령을 발표하여 헌법에 준하는 조치를 내릴수도 있으며 실정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이기에 사법적 제재를 받지 않는다. 또한 모든 여권이 대칸의 신하인 외무대신의 허가를 받아 발급되기에 여권을 발급받지 않으며 비상대권을 소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위의 권한중 상당부분은 형식적인 권한으로 실질적으로 국가를 통치하는 것은 아래 설명될 총리와 내각이다.


젭춘담바 후툭투(ᠵᠠᠪᠵᠠᠩᠳᠠᠮᠪᠠ ᠬᠤᠲᠤᠭᠲᠤ, Jebtsundamba Khutuktu)는 몽골 티베트 불교 겔룩파 활불이자 종교 지도자이다. 복드 게겐이나 복드 라마라고 부르기도 한다.

티베트 불교의 다른 활불들인 달라이 라마와 판첸 라마와 마찬가지로 혈통이 아닌 영혼으로 계승되는데 불교의 윤회설과 결합하여 선대 젭춘담바 후툭투가 사망하면 윤회에 의거하여 젭춘담바 후툭투의 의식이 다른 아이의 몸으로 환생한다고 믿는다.

때문에 젭춘담바 후툭투가 승하하면 그 뒤를 이을 계승자가 될 아이를 고승들과 섭정이 찾는다. 고위 라마들이 후대 젭춘담바 후툭투와 관련된 꿈을 꾸거나 화장된 시신의 연기의 방향 등을 후보자 선별의 지표로 삼는다고 한다. 계승자를 찾으면 적법한 심사를 거친다. 처음 후보자를 가려낼 경우, 환생 후보자의 집에 선대 젭춘담바 후툭투의 유물과 유물이 아닌 것들을 들고간다고 한다. 여기서, 환생 후보자는 선대 젭춘담바 후툭투의 유물에 유독 집착한다고 한다.

이후 세 가지 시험을 거쳐 통과한다면, 즉 환생자로 판명되면 즉시 달라이 라마에 의해 후대 젭춘담바 후툭투로 선출된다. 젭춘담바 후툭투는 티베트 불교 지도자인 따라나타의 화신으로 몽골의 모든 중생들과 살아있는 모든 것들을 열반으로 이끌기 위해 몇 번이고 다시금 태어난다는 것이다.

이렇게 선출된 경우 보통 아주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젭춘담바 후툭투들의 치세는 대단히 길게 이어진다. 현재의 젭춘담바 후툭투도 어릴 적에 선출되어 현재까지 지위를 이어오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16~20세에 정식으로 즉위하지 않는 이상 대부분의 권한은 정부와 섭정에게 있다. 섭정은 고위 승려 1명, 속인(세속의 인간) 1명으로 이루어지며, 젭춘담바 후툭투가 정식 즉위하기 전까지 젭춘담바 후툭투의 공무 전반을 관리한다.[주의]

몽골 국가원수=젭춘담바 후툭투?

흔히들 몽골의 국가원수를 호칭 할 때 대칸과 젭춘담바 후툭투라는 용어가 혼용되어 사용되기에 몽골 국가원수의 정식 명칭을 젭춘담바 후툭투로 착각하거나 젭춘담바 후툭투를 대칸의 동의어로 아는 이들이 많으나 엄밀히 말하자면 이 두 직위는 서로 분리된 존재로 각각 세속국가 몽골과 몽골의 종교(티베트 불교)를 대표하는 직책이다.

즉 이슬람권으로 비유하자면 대칸은 술탄 혹은 국왕, 젭춘담바 후툭투는 칼리프에 해당되는 직위로 법적으로는 마치 과거 오스만 제국에서 세속지도자인 술탄이 종교지도자인 칼리프를 겸한 것과 마찬가지로 세속지도자인 대칸이 종교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를 겸하는 형태이며 이때 오스만의 국가원수가 칼리프가 아닌 술탄이듯 몽골의 국가원수도 젭춘담바 후툭투가 아닌 대칸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오스만과는 달리 이 둘이 서로 혼동되는 이유는 권력의 승계과정에서 정통성의 주체의 차이 때문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오스만의 술탄은 혈통으로 세습되지만 종교 지도자인 칼리프는 이슬람 부족장들과 이맘들이 명목상 선출하는 칭호였던지라 일단 세속지도자인 술탄 칭호를 "혈통"을 통하여 세습받은 뒤에 거수기인 이맘들의 지지를 통하여 종교지도자인 칼리프직에 선출되면 되는 일이었다. 즉 정치적 정통성인 혈통이 종교적인 정통성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몽골의 경우는 사정이 달랐다. 과거 몽골을 통치했던 칭기즈 칸의 보르지긴 가문은 씨가 마른 상황이었기에 정치 종교적 정통성을 위하여 종교지도자인 젭춘담바 후툭투를 국가원수인 대칸으로 추대했는데 문제는 젭춘담바 후툭투는 혈통에 따라 세습되는 직이 아니라는 것이다. 젭춘담바 후툭투는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처럼 선대 젭춘담바 후툭투가 승하하면 그 영혼이 후대 젭춘담바 후툭투로 환생한다고 믿었기에 혈통이 아닌 젭춘담바 후툭투의 영혼, 즉 "젭춘담바 후툭투라는 직책 그 자체"가 정통성을 부여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스만 제국과 같이 일단 술탄으로 추대한 뒤 칼리프로 선출한다는 것, 즉 혈통으로 세속적 정통성을 얻은 인물에게 종교적 정통성을 부여한다는 것이 불가능했다는 것이다. 애초에 대칸으로 선출된 이유(세속적 정통성을 부여받은 이유)가 환생으로 선출되는 젭춘담바 후툭투라는 직책 때문인데 "전대 젭춘담바 후툭투의 환생자가 아니한 인물"이 대칸이 된다는 것은 젭춘담바 후툭투라는 종교적 정통성을 부정함과 동시에 종교적 정통성에 기반을 둔 대칸의 세속적 정통성을 파괴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정리하자면 오스만의 경우는 세속적 정통성에 의해 종교적 정통성이 부여받는 구조였기에 권력의 주체는 "세속적 정통성인 술탄"에 있으며 "종교적 정통성인 칼리프"에 대해 세속적 정통성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었고 오스만 헌법에도 국가원수가 술탄이라고 명시되었기에 누가 국가원수인지에 대하여 혼동이 없지만 몽골의 경우는 종교적 정통성에 의해 세속적 정통성이 부여받는 구조였기에 권력의 주체는 "종교적 정통성인 젭춘담바 후툭투에"에 있으며 "세속적 정통성인 대칸"이기에 종교적 정통성을 받을 수 있는것이 아니라 종교적 정통성을 가지고 있기에 세속적 정통성을 받는 구조, 즉 종교적 정통성에 세속적 정통성이 끌려오는 구조였기에 종교적 정통성이 세속적 정통성에 대해 우위에 있으나 헌법에 명시된 국가원수(세속 권력)은 대칸이기에 혼동이 생긴다는 것이다.

총리와 내각


대몽골국 총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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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임 총리인 할트마긴 바트톨가

대몽골국 총리(ᠶᠡᠬᠡ 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 ᠤᠨ ᠶᠡᠷᠦᠩᠬᠡᠢ ᠰᠠᠶᠢᠳ, Prime Minister of Mongolia)는 몽골의 정부수반이자 정치적 실권을 지닌 실질적인 국가 지도자이다.

몽골이 입헌군주국인 만큼 법적으로 몽골 총리의 임명권은 국가원수, 즉 군주인 대칸에게 있다. 그러나 이는 형식적인 것으로 실질적으로는 국가대후랄 선거를 통해 새로운 국가대후랄 의원들이 선출되면 그 의원들중 대칸이 총리를 지명하는 방식이며 이때 다수당의 당수를 총리 후보로 지명하는 게 관례이다. 최종적으로 이렇게 지명된 총리 후보를 국가대후랄의 신임투표를 거쳐 총리로 선출하며, 전체 의석 중 과반의 신임을 얻으면 총리가 된다. 만약 과반을 얻지 못한다면 2차 투표에 들어가는데 이 때는 전체 의석의 중 1/3의 신임을 얻으면 총리가 된다. 그러나 아직까지 2차 투표가 실행된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몽골의 총리는 몽골 행정부(내각)의 수장으로 일반적으로 타국의 대통령, 주석, 의원내각제 총리 등과 동격으로 간주된다. 총리의 주요 권한으로는 법률에 대한 제출권, 각료들에 대한 임면권, 실질적인 의회해산권 및 군경에 대한 통수권[22] 등이 있다. 특이한 점은 다른 내각제 국가의 정부수반들에게는 없는 상급행정구역 수반[23]들에 대한 임면권이 몽골 총리에게는 존재한다는 것인데 이는 위의 인문환경과 행정구역 문단에서 설명하였듯이 몽골의 인구가 영토에 대비하여 몹시 적기 때문에 지방자치제를 시행하여도 비용에 비해 실효성이 마이너스 수준이기 때문이다.

여태 내각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총리의 임기는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러나 불신임이나 자진 사퇴가 없다는 가정하에 의회의 임기가 총리의 임기와 동일시되는 내각제 국가의 특성상 실질적으로 의회인 국가대후랄의 임기가 총리의 임기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역대 총리 가운데 불신임을 당한 총리는 없으며 4년 미만의 임기를 지낸 총리는 신헌법이 재정되어 재총선을 진행해야 했던 잠빙 바트뭉흐 총리(2기), 암살당한 산자수레깅 조릭 총리, 린포체 칸 암살사건으로 인해 사임한 나차깅 바가반디 총리와 계임총리였던 차히아깅 엘벡도르지 총리(1기), 남바링 엥흐바야르 총리 외에는 없다. 때문에 몽골 총리들의 평균 임기는 타 내각제 국가들과 비교해서 긴편이다.

몽골 내각은 몽골의 행정권을 행사하는 최고기관으로 총리를 수반으로 한다. 총리 선거를 통해 총리가 선출되면 총리가 내각을 구성하는데 이때 총리가 내각 명단을 제청하면 그 명단에 따라 대칸이 각료를 암명하는 방식으로 내각이 구성된다. 내각이 구성 될 때 대부분의 각료들은 국가대후랄 의원들로 채워지며 1992년 개정 헌법에 의거하여 총리와 마찬가지로 각료들 또한 모두 문민이여야 한다. 특이점이라고 한다면 군사정권 시절의 영향으로 관료출신 각료, 즉 비의원 출신 각료가 타국에 비해 많다는 점이 있다.

역대 총리

대몽골국 총리
이름 임기 국가대후랄
선거
정당
시작일 종료일
1

다르자빈 에르데네트
ᠳᠠᠷᠵᠠᠪᠢᠨ ᠡᠷᠳᠡᠨᠢᠲᠦ
(1886 ~ 1971)
1 1954년 3월 1일 1958년 2월 28일 1회 [24]
2 1958년 3월 1일 1962년 2월 28일 2회
3 1962년 3월 1일 1966년 2월 28일 3회
2

발링긴 졸타르갈
ᠪᠠᠯᠢᠩ ᠤᠨ ᠵᠣᠯᠲᠠᠷᠭᠠᠯ
(1904 ~ 1993)
4 1966년 3월 1일 1970년 2월 28일 4회 [25]
5 1970년 3월 1일 1974년 2월 28일 5회
6 1974년 3월 1일 1978년 2월 28일 6회
7 1978년 3월 1일 1982년 2월 28일 7회
3

곤치깅 을지바타르
ᠵᠠᠩᠪᠠ ᠶᠢᠨ ᠪᠠᠲᠤᠮᠥᠶᠢᠩᠬᠡ
(1909 ~ 1991)
8 1982년 3월 1일 1986년 2월 28일 8회 [26]
4

잠빙 바트뭉흐
ᠵᠠᠩᠪᠠ ᠶᠢᠨ ᠪᠠᠲᠤᠮᠥᠶᠢᠩᠬᠡ
(1926 ~ 1997)
9 1986년 3월 1일 1990년 2월 28일 9회 [27]
10 1990년 3월 1일 1992년 2월 12일 10회
5

폰살마깅 오치르바트
ᠫᠦᠩᠰᠠᠯᠮ᠎ᠠ ᠶᠢᠨ ᠸᠴᠢᠷᠪᠠᠲᠤ
(1942 ~ )
11 1992년 2월 12일 1996년 2월 11일 11회 [28]
6

산자수레깅 조릭
ᠰᠠᠩᠵᠢᠶᠠᠰᠦ᠋ᠷᠦᠩ ᠦᠨ ᠵᠣᠷᠢᠭ
(1962 ~ 1998)
12 1996년 2월 12일 1998년 10월 2일 12회 [29]
7

차히아깅 엘벡도르지
ᠴᠠᠬᠢᠭ᠎ᠠ ᠶᠢᠨ ᠡᠯᠪᠡᠭᠳᠣᠷᠵᠢ
(1963 ~ )
13 1998년 10월 2일 2000년 2월 11일 [30]
8

나차깅 바가반디
ᠨᠠᠴᠤᠭ ᠤᠨ ᠪᠠᠭᠠᠪᠠᠨᠳᠢ
(1950 ~ )
14 2000년 2월 12일 2001년 10월 28일 13회 [31]
9

남바링 엥흐바야르
ᠨᠠᠮᠪᠠᠷ ᠤᠨ ᠡᠩᠬᠡᠪᠠᠶᠠᠷ
(1958 ~ )
15 2001년 10월 28일 2004년 2월 11일 [32]
10

차히아깅 엘벡도르지
ᠴᠠᠬᠢᠭ᠎ᠠ ᠶᠢᠨ ᠡᠯᠪᠡᠭᠳᠣᠷᠵᠢ
(1963 ~ )
16 2004년 2월 12일 2008년 2월 11일 14회 [33]
17 2008년 2월 12일 2012년 2월 11일 15회
18 2012년 2월 12일 2016년 2월 11일 16회
11

미예곰빈 엔흐볼드
ᠮᠡᠶ᠎ᠡᠣᠮᠪᠣ ᠶᠢᠨ ᠡᠩᠬᠡᠪᠣᠯᠤᠳ
(1964 ~ )
19 2016년 2월 12일 2020년 2월 11일 17회 [34]
12

오흐나깅 후렐수흐
ᠤᠬᠤᠨᠠᠭ᠎ᠠ ᠶᠢᠨ ᠬᠦᠷᠦᠯᠰᠦ᠋ᠬᠡ
(1968 ~ )
20 2020년 2월 12일 2024년 2월 11일 18회 [35]
13

할트마긴 바트톨가
ᠬᠠᠯᠲᠠᠮ᠎ᠠ ᠶᠢᠨ ᠪᠠᠲᠤᠲᠤᠯᠭ᠎ᠠ
(1963 ~ )
21 2024년 2월 12일 2028년 2월 11일 14회 [36]
22 2028년 2월 12일 2032년 2월 11일
(예정)
15회

국가대후랄

몽골 국가대후랄
원내 구성
[ 펼치기 · 접기 ]
할트마긴 바트톨가 내각
(2024~)
여당
민주당
39석
야당
몽골 민족당
25석
통합몽골
6석
녹색시민당
3석
무소속 3석
재적 76석 | 공석 0석
국가궁 내부의 국가대후랄 회의장

국가대후랄(ᠤᠯᠤᠰ ᠤᠨ ᠶᠡᠬᠡ ᠬᠤᠷᠠᠯ, State Great Khural)은 몽골의 입법부로 단원제를 채택하고 있다. 국가대의회(國家大議會)로 번역되기도 한다.

의원의 임기는 대한민국 민의원과 마찬가지로 4년이나 민의원 해산이 비교적 빈번히 일어나서 대부분의 경우 4년간의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는 민의원 의원들과는 달리 몽골에서는 의회 해산이나 내각불신임이 사실상 일어나지 않는 관계로 몽골 국가대후랄 의원들은 4년의 임기를 보장받는다. 따라서 국가대후랄 선거는 4년마다 치뤄지며 원래는 월드컵이 있는 해마다 치뤄졌으나 1992년 조기총선 이후부터는 하계올림픽이 있는 해와 동일한 해에 치른다.

국가대후랄의 정원은 76명이며 의원 선출방식은 복수형 다수대표제(Plurality-at-large voting)[37]를 채택하고 있다. 2004년까지는 일반적인 소선거구제를 택하였으나 민심의 변화로 인한 극단적인 수준의 의석 수 변동을 우려하여 2008년 총선부터 복수형 다수대표제를 채택하였다. 2012년에는 잠시 구속명부식 비례대표제와 병행하기도 했고 2016년에는 소선거구제로 복귀하기도 하였으나 2020년에 복수형 다수대표제로 복귀하였다.

국가대후랄은 타국의 입법부와 마찬가지로 법률을 심사하고 제정하며 예산안과 결산을 심사한다. 또한 몽골 행정부의 수반인 총리를 선출하고 불신임하는 권한을 가짐으로써 행정부를 견제한다.

주요 정당

  • 민주당: 경제적 자유주의와 사회자유주의를 표방하는 우익정당이다. 1980년대 후반 몽골의 민주화를 이끌어냈던 민주화 운동가들의 주도로 창당되었다. 경제적으로는 우익에 해당하지만 보혁구도에서는 진보를 맡고있다. 민족당에 비하면 집권경험이 부족하고 경제정책에 있어서도 미숙함이 보이기에 수권정당으로서는 부족하다는 평이 있다.
  • 몽골 민족당: 사회민주주의와 보수주의를 표방하는 좌익정당이다. 1954년 몽골내전 이후 몽골 구국정부를 주도했던 이들에 의해 창당되었다. 현존하는 정당들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4번째로 오래된 정당으로[38] 1992년 민주화 이전까지 권위주의를 표방하는 사회민주주의 체제를 내세우며 일당독재 체제로 몽골을 통치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당론으로 내세우고 있으나 보혁구도에서는 보수를 맡고 있다. 튀르키예의 공화인민당과 자주 비교된다.
  • 통합몽골: 민족당의 온건화에 반대한 극단주의 성향의 당원들이 탈당해 창당하였다. 강경보수주의, 불교근본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으며 일부에서는 극단적인 할하 몽골인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몽골 사회의 분열을 야기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있다. 또한 현재 제위중인 뱌쿠렌량화 칸에 대하여 가장 적대적인 정당으로 현재 몽골 법무부의 사찰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
  • 녹색시민당: 환경주의와 녹색자유주의, 직접민주주의 성향을 보이는 진보정당이다. 동아시아 최초로 원내진출에 성공한 녹색당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현재 민족당과 민주당에 대한 젊은층의 반감을 양분삼아 빠르게 당세를 확장하고 있다.

외교

한몽관계

한동훈 법무부 차관과 롭상남스랭 어용에르덴 몽골 부총리

역사적으로 볼때 한국인들의 몽골에 대한 감정은 그다지 좋은편이 아니었다. 고려 말기의 원나라 침공(대몽항쟁기)와 원 간섭기를 거치며 몽골에 대한 감정이 1차적으로 악화되었고 조선 시대에는 중화사상에 입각하여 중국 이외의 민족들을 "오랑캐"로 보는 시선이 강했으며 이후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당시 몽골인 기병들이 조선 침공에 동참하면서 다시 한번 악화되었다. 그러나 20세기 초반의 격량기에 이르러서는 한국은 일본에 강제병합 되었고 몽골은 독립→멸망→백군의 점령→다시 독립→공산화라는 과정을 거치며 고된 나날을 보내고 있었기에 서로에게 관심을 쓸 틈이 없었고 이런 과정에서 한국인들의 몽골에 대한 악감정이 누그러지게 되었다.

1954년 몽골에 반공 군사정권이 들어서고 상호안보협력기구가 설립되자 한몽 양국은 창립국으로써 군사적인 동맹을 맺게되었다. 구냉전기에는 한국의 기술자들과 노동자들이 몽골에 파견되는 일이 일부 있었으나 대부분의 파견 노동자들은 서독이나 아랍 등의 부유한 지역으로 파견되었기에 당시에도 별 접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21세기에 이르러서는 몽골 출신의 노동자들 다수가 한국에서 취업 비자를 받고 취업을 한 상태이며 많은 한국 기업들이 몽골에 진출해 있기에 양국간의 관계는 점점 긴밀해지고 있다.

여담으로 2002년 경주 양동마을에서 현존하는 유일한 원대 법전인 지정조격(至正條格)이 발견되자 2010년 남바링 엥흐바야르 전 총리를 필두로 한 방문단이 방한하여 지정조격을 관람하기도 하였다.[1]

중몽관계

오흐나깅 후렐수흐 몽골 총리와 왕이 중국 외교부장

역사적으로 중국의 입장에서 볼때 몽골은 자신들 보다 문화적으로 열등한 유목민족이자 두려운 침략자 였으며 몽골의 입장에서 중국은 거만한 지배자였고 신해혁명 이후 독립한 몽골에 대하여 중화민국이 재병합 시도를 하는 등 양국관계는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었다. 때문에 양국 국민의 서로를 바라보는 시선은 그다지 곱지는 않은 편으로 몽골 내에서는 중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혐오범죄가 다수 발생하고 있으며 중국에서는 몽골 유학생들이 차별을 받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러나 위와 같은 국민감정과는 별개로 정부 간의 관계는 꽤나 좋은 편이며 양국의 경제는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는 몽골 수입의 40%, 수출의 89% 가량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으며 국토가 척박한 몽골이 곡물 등의 식량 자원을 대부분 중국에서 수입하는 처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몽골 정부는 자국의 식량 및 경제 안보와 항구 및 철도 이용을 위하여 중국에 우호적인 정책을 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2020년대 이후 시진핑 등 중국 내 강성 우파들을 필두로 몽골의 국민영웅 칭기즈 칸과 쿠빌라이 칸등의 혈통이 중국 내몽골의 차하르족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그들을 중국인이라고 억지를 부리자[39] 몽골인들의 대중 감정이 크게 악화되었으며 2022년 연말 중국과 연계된 대규모의 비리 사건인 일명 "석탄 게이트"가 드러나며 몽골 국민들의 반중 정서가 격화된 상태이다. 때문에 중국 정부는 몽골에 대한 관세를 크게 낮추고 경제 지원을 강화하거나 항구 이용료를 깎는 등의 방법으로 호감도를 늘리려는 시도를 지속하고 있다.

몽소관계

블라디미르 푸틴 소련 주석과 오흐나깅 후렐수흐 몽골 총리

1920년대 소련의 지원을 받아 성립된 공산정권인 몽골 인민 공화국이 존속하던 당시에는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몽골 내전 이후 현재 체제가 들어서면서 양국 관계는 파국을 맞이하게 되었다. 몽골 군사정부의 수뇌부는 몽골 민족주의 성향과 더불어 강경한 반공주의 성향을 가지고 있었고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지정한 신생 정부에게 있어서 베리야 주석의 소련 정부가 벌이던 문화대혁명과 종교 탄압[40]은 가히 지옥도를 연상하게 만들 정도의 잔악한 행위였다.

때문에 구냉전기 내내 몽골은 소련과 대립하였으며 중국에 위치한 반소 망명 러시아인들의 단체인 자유 러시아 임시정부를 지원하여 소련 정부의 혈압을 올리는데에 일조하기도 하였다. 구냉전의 종식 이후에는 몽골의 대중 관계가 악화되며 오히려 러시아와 가까워 지려는 행보를 보이기도 하였으나 푸틴 주석의 취임 이후 소련내 불교 탄압이 다시금 거세지고 소련이 폴란드를 침공하며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경제

몽골 최대의 구리 광산인 오유톨고이 광산

다수의 한국인들이 몽골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유목국이라는 이미지 때문에 몽골 경제에 관련하여 축산업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다는 오해를 하기도 하나 실제 몽골 경제에서 중심을 차지하는 산업은 광산업이다. 비율상으로는 서비스업이 50% 이상을 차지하지만 주요 수출품의 82% 이상이 석탄, 구리 등의 광물이다.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 부국에 속하는 국가로 세계 4위의 석탄 매장량과 12위의 구리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세계 3위 규모의 형석과 인, 5위 규모의 텅스텐, 14위 규모의 우라늄과 7위 규모의 몰리브데넘 또한 매장되어 있다.

때문에 몽골 경제는 원자재 광물 수출 산업이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이외에는 귀금속 및 섬유 수출 산업이 그 뒤를 잇고 있으나 원자재 수출에 비하면 그 규모는 미약한 수준이며 2010년대 이후로 몽골 정부가 중점적으로 규모를 키우고 있는 건설 시장 역시 93% 가량을 몽골 국내업체가 점유하고 있기에 몽골 국가 전체를 광산업이 먹여살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현재 시점에도 몽골 국민들의 소득은 많이 낮은 편이다. 일단 인구가 적어서 내수 시장이 빈약하고 대부분의 광물이 중국으로 수출되기 때문에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아 중국 경제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또한 몽골 정부와 국민 모두가 해외 기업에 대하여 극도로 배타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에 광산업 발전에 필수적인 외국 기업들의 투자를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2012년 이후로 세계적인 불경기와 더불어 원자재 가격 하락까지 겹치면서 몽골의 경제성장률이 10%대에서 0.4%까지 폭락하였고 이런 와중에도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와 심각한 수준의 정관계 비리로 인해여 결국 IMF 구제금융과 더불어 타국의 경제 원조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2022년 연말에는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더불어서 전현직 총리들이 연루되었다는 의혹을 가진 2조 5천억원 규모의 대규모 석탄 비리사건이 일어나며 국민여론이 폭발하였고 여러 부패 정치인들이 구속되면서 경제체질 변화의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회

수도 후레의 야경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자체는 국교인 티베트 불교와 군사정권 시절의 영향을 받아 보수적인 편이다. 낙태는 극히 일부 경우를 제외하면 전면적으로 불법화 되어 있으며 간통 역시도 불법으로 간주된다. 또한 사회 전반에 군대식 위계질서와 성차별적인 풍조가 남아있다. 민주화 이후에는 사회적으로 개방주의적인 풍조가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티베트 불교의 수장인 달라이 라마 14세와 젭춘담바 후툭투 9세의 주도로 비구니계를 받아들이고 불교 개혁에 착수하면서 몽골의 젊은 층들은 개방적이고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지게 되었으나 이로인하여 보수적인 가치관을 가진 기성세대와의 충돌이 심해지며 세대갈등이 사회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복지정책의 경우 대부분의 복지는 민간이 아닌 국가주도로 이루어진다. 이는 군사정권 시절의 영향으로 몽골의 군사정권은 불교 윤리와 장제스의 국가대가정론(國家大家庭論)에 영향을 받아 인민에 대한 사회보장을 중요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몽골의 경제사정은 절대적으로 좋은 상황이 아니지만 기본적인 사회복지 정책은 잘 지켜지는 편이다. 그러나 2010년대 경제불황 이후부터는 국가 제정이 악화되면서 민간주도의 복지사업이 확대되는 추세이다.

넓은 국토와 적은 인구를 가지고 있으나 치안 자체는 양호한 편으로 소매치기 등의 경범죄를 제외한다면 특별한 강력범죄는 잘 일어나지 않는 편이다. 또한 인구가 적기 때문에 규모있는 폭력조직이 성장하기 어렵다는 점 또한 치안 안정에 플러스 요소로 들어가고 있다. 그러나 외국인에 대해서는 배타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주로 중국인들을 상대로한 혐오범죄가 일부 네오나치 조직에 의해 벌어지고 있다.

국토의 크기에 걸맞지 않게 교통 인프라가 빈약한 편으로 국내 포장도로 비율은 전체의 7%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수도 후레와 지방을 잇는 도로는 포장되어 있는 경우가 많지만 교통표지판은 없는 수준에 국토 자체가 넓어서 길을 찾기도 쉽지 않고 고속도로는 존재하지도 않는다. 철도 역시도 몽골 종단철도가 전부인 수준이고 전 국민의 절반 가량이 거주하는 니슬렐 후레조차도 지하철이 존재하지 않는 등 교통 인프라에 대한 투자가 시급한 수준이다. 그나마 국내선 항공노선이 발달해 있으나 국제선은 칭기즈 칸 국제공항 외에는 없는 수준이다.

문화

몽골 전통축제 나담

나담(ᠨᠠᠭᠠᠳᠤᠮ)이라고 불리는 축제가 유명하다. 나담은 몽골어로 축제라는 뜻으로 몽골 현지에서는 국가 공휴일 축제(ᠦᠨᠳᠦᠰᠦᠨ ᠶᠡᠬᠡ ᠪᠠᠶᠠᠷ ᠨᠠᠭᠠᠳᠤᠮ)라고 불리며 2010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본래는 가축들의 성장과 풍요를 기원하는 종교적 의미와, 힘과 기술을 겨루는 경기를 통해 병사를 모집하고 훈련시키는 군사적 의미를 지닌 행사였으나 오늘날에는 몽골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되새기고 스포츠 경기로 전 국민을 단결시킨다는 정치적 의미가 강조된 행사로 그 성격이 변했다.

몽골 민주기념일[41]인 6월 29일에 시작하여 며칠간 치뤄진다. 몽골 기마병과 전통 복식을 갖춰 입은 주민들의 행진으로 시작되며, 화려한 복장과 공연을 볼 수 있다. 스포츠 경기 이외에도 몽골 전통 음악 공연, 아이락이나 호쇼르 같은 몽골 요리와 공예품 판매 등이 함께 이루어져 몽골의 전통과 문화가 집약된 축제라고 할 수 있다. 경기는 승마, 활 쏘기, 부흐(몽골식 씨름) 대회 등이 열린다.

유목 전통의 유산

위에 설명된 나담과 마찬가지로 몽골의 문화는 천 년 이상 이어진 유목 전통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전통의상인 델의 경우 중국 만주족의 치파오와 마찬가지로 말을 타기 편하도록 옆트임이 길게 나있으며 초원의 매서운 추위를 막을 수 있도록 두꺼운 원단을 사용하여 좁은 소매 구조로 만들어졌다.

식문화 또한 오랜 세월에 걸쳐 유목 국가이자 내륙 국가로 지내온 역사 탓으로 인해 육류와 유제품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어찌보면 기형적인 식문화를 가지고 있으며 붉은 음식, 하얀 음식(ᠤᠯᠠᠭᠠᠨ ᠢᠳᠡᠭᠡ᠂ ᠴᠠᠭᠠᠨ ᠢᠳᠡᠭᠡ, 올랑 이떼, 차강 이떼)라는 표현이 이런 식문화를 대변하고 있다. 허르헉[42], 보즈[43], 골야쉬[44]등의 고기 요리와 야롤 등의 치즈, 타락과 허르먹 같은 요구르트, 즉 유제품이 주요 음식이며 이외에도 아이막으로 대표되는 음주문화 역시 발달되어 있다.

스포츠 역시도 세계구 급으로 인기가 있는 축구나 야구는 굉장히 마이너한 편이며 유목민 특유의 피지컬로 직접 승부를 보는 실내 스포츠인 농구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도, 스모, 레슬링등의 개인 격투종목에 엄청난 강세를 보이며 남일본의 스모 선수 상당수가 몽골 출신이다. 또한 몽골식 씨름으로 알려진 부흐(ᠪᠥᠬᠡ)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데 위에서 언급된 나담에서 우승한 부흐 선수는 아와르가(ᠠᠪᠤᠷᠭᠤ)라고 불리우며 부와 명예를 누린다.

군사

소총을 든 몽골 육군 장병들

몽골군(ᠮᠣᠩᠭᠣᠯ ᠤᠯᠤᠰ ᠤᠨ ᠵᠡᠪᠰᠡᠭᠲᠦ ᠬᠦᠴᠦᠨ)은 몽골의 군대로 육군, 공군, 국경경비대, 내무보안군으로 이루어져 있다. 내륙국 특성상 해군은 존재하지 않는데 1993년까지는 위의 자연환경 문단에서 언급되듯 훕스굴 호에 주둔하였으나 1993년 해산되었다. 인구가 적고 경제 사정도 좋지 않은 국가 특성상 군대의 질이 그다지 좋지는 않은편이며 북으로는 세계 2위의 군사력을 자랑하는 소련이, 남으로는 3위인 중국이 위치해 있기 때문에 별로 눈에 띄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부분의 개도국 군대와 마찬가지로 육군이 병력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공군은 매우 빈약한 수준이다. 국경경비대의 경우 구냉전 시기에는 소련 내무군과의 무력 충돌이 일부 있어왔으나 예나 지금이나 주요 업무는 국경을 넘은 가축들을 되찾아오는 것이라고 한다. 내무보안군은 군사정권 시절 국가중앙근위대의 후신으로 본래는 민주화 이후에 폐지될 예정이었으나 정치혼란이 거세지면서 내무보안군으로 이름을 바꾸어 존속중에 있다.

최근 소련 시위의 영향으로 몽골과 인접한 투바와 부랴티아 일대에 무장단체가 준동하여 군이 준비태세에 돌입하였다.

단위

몽골은 여타 동아시아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SI 단위를 사용하며 이는 1920년대 중반 공산정권이 수립된 이후부터 적용되었다. 공산 정권 이전에는 몽골 단위계가 사용되기도 하였으나 공산정권 이후 극히 일부분을 제외하고는 사용이 중단되었고 일상생활에서도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동아시아권의 왕정국가인 만큼 일본국과 마찬가지로 공식적으로는[45] 서력이 아닌 연호를 사용한다. 연호는 몽골의 군주인 대칸이 새로 즉위 할 때 마다 바뀌며 현재까지 두 개의 연호가 사용되었다. 첫번째 연호는 해선(諧鮮, ᠡᠪᠯᠡᠷᠡᠭᠰᠡᠨ ᠦᠵᠡᠰᠬᠦᠯᠡᠩ ᠲᠡᠢ)으로 몽골식으로는 "엘레르센 우제스겔렌테이"이다. 초대 대칸인 린포체 칸의 치세인 1954년 3월 1일부터 사용되었으며 린포체 칸이 피살당한 이후에도 현임 대칸인 뱌쿠렌량화 칸이 즉위하기 전인 2019년 12월 17일까지 사용되었다. 현재 사용되는 연호는 백련(白蓮, ᠴᠠᠭᠠᠨ ᠪᠠᠳᠮᠠᠯᠢᠩᠬᠤ᠎ᠠ)으로 몽골식으로는 "자간 바담량화"이며 2019년 12월 18일, 뱌쿠렌량화 칸의 즉위 이후부터 사용되고 있다.

창작물

대부분의 창작물에서 다뤄지는 몽골의 모습은 원나라 이전, 즉 중국화 되기 이전의 유목제국으로서의 몽골의 모습이다. 이는 몽골 제국이 원나라 이후에는 마르코 폴로를 제외한다면 서방과 큰 교역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중국 한족에 상당히 동화된 모습을 보였기 때문에 이왕이면 더 잘 알려진 청나라를 묘사하길 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서양을 막론하고 몽골을 묘사한 영화, 만화, 드라마 등은 칭기즈 칸을 필두로 한 몽골 제국을 주로 묘사하고 있으며 이는 문명 시리즈 등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나마 근현대의 몽골을 묘사한 게임은 하츠 오브 아이언 시리즈나 슈퍼파워 시리즈가 있는데 몽골 자체가 원나라 이후 크게 쇠퇴한 관계로 약소국으로 등장하는 것이 전부이다.


  1. 몽골 헌법 제9조 1항(티베트 불교는 몽골 사회의 주도적 종교이며 정부는 티베트 불교의 특수한 지위를 인정한다)에 의하여 국교로 지정, 단 불교신앙을 강제하진 않음.
  2. 몽골식으로는 "자간 바담량화"이다.
  3. 내전 발발 3개월 만에 울란바토르(현 니슬렐 후레)가 함락되고 1년만에 인민공화국이 사실상 멸망하였으나 종전 협상이 늦어진 탓에 공식적인 종전은 1953년이다.
  4. 본래 장제스는 중국 외몽골성으로 병합하려 했으나 소련의 견제로 인해 포기했다고 전해진다.
  5. 예를 들자면 군주의 칭호인 칸(ᠬᠠᠨ)의 음차어 汗(한)은 땀을 의미하는 한자이다.
  6. 원래는 민요로 구전되었던 곡이기에 작사가는 불명이다.
  7. 티베트의 고승이자 철학자, 티베트 불교 겔룩파의 창시자.
  8. 태평소와 비슷한 몽골 전통 악기.
  9. 口琴, 아시아∙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쓰이는, 소형의 원시적인 악기.(= 주프하프)
  10. 흔히들 인터내셔널가의 몽골어판으로 오해 받고는 하나 실상은 전혀 다른 노래이다.
  11. 그냥 제목이 "몽골 국가"였다.
  12. 오스트리아-슬로베니아 병합,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독립 등
  13.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민주화로 인하여 권력에 대한 편집증적인 집착이 생겼다고 주장하기도 하나 확인된 사실은 없다.
  14. 비구니계 수용 등
  15. 니슬렐 후레의 인구는 약 150만 명으로 전체 몽골 인구의 거의 절반에 가까운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다.
  16. 중국 내몽골의 차하르인들과는 구분된다.
  17. 니슬렐 후레(ᠨᠡᠶᠢᠰᠯᠡᠯ ᠬᠦᠷᠢᠶ᠎ᠡ)의 니슬렐(ᠨᠡᠶᠢᠰᠯᠡᠯ)은 사실 고유명사가 아닌 수도라는 뜻의 일반명사로 몽골어를 직역하면 "수도 후레"이다. 즉 말레이시아의 쿠알라룸푸르 연방직할구(Wilayah Persekutuan Kuala Lumpur)를 "윌라야 퍼세쿠투안 쿠알라룸푸르" 로 번역하는 격이다.
  18. 영어로는 Province로, 중국어로는 省(성)으로 번역된다.
  19. 영어로는 District로 번역되며 한국의 군에 해당된다.
  20. 예를 들어 문재인 전 총리의 출생지는 함흥 솔안마을이지만 법적으로는 솔안마을이 아닌 당시기준 함경남도 함흥군 흥남읍 운성리인 것 처럼 그냥 관습적으로 사용될 뿐 실제 행정구역은 아닌 것이다.
  21. 상단에 언급된 내용들 중 젭춘담바 후툭투의 정의와 "세 가지 시험"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달라이 라마의 환생을 사실상 복붙하여 서술되었다. 이는 필자가 젭춘담바 후툭투의 환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정보를 찾지 못했기 때문으로 위에 나열된 정보는 현실과 무관하다.
  22. 여타 입헌군주제-내각제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의회해산권과 통수권은 명목상 국가원수인 대칸의 권한이다.
  23. 한국의 광역자치단체장에 해당한다.
  24. 몽골 민족당 (1954. 3. 1. ~ 1966. 2. 28.).
  25. 몽골 민족당 (1966. 3. 1. ~ 1982. 2. 28.).
  26. 몽골 민족당 (1982. 3. 1. ~ 1986. 2. 28.).
  27. 몽골 민족당 (1990. 3. 1. ~ 1992. 2. 12.).
  28. 몽골 민족당 (1992. 2. 12. ~ 1996. 2. 11.).
  29. 민주당 (1996. 2. 12. ~ 1998. 10. 2.).
  30. 민주당 (1998. 10. 2. ~ 2000. 2. 11.).
  31. 몽골 민족당 (2000. 2. 12. ~ 2001. 10. 28.).
  32. 몽골 민족당 (2001. 10. 28. ~ 2004. 2. 11.).
  33. 민주당 (2004. 2. 12. ~ 2016. 2. 11.).
  34. 몽골 민족당 (2016. 2. 12. ~ 2020. 2. 11.).
  35. 몽골 민족당 (2020. 2. 12. ~ 2024. 2. 11.).
  36. 민주당 (2024. 2. 12. ~ 현재).
  37. 예를 들면 정원이 3명인 선거구에 각 당이 최대 3명의 후보자를 내며 유권자들이 각각 3표를 다른 후보에게 행사 한 뒤 최다 득표자 3명이 의원으로 선출되는 방식이다.
  38. 1위는 중국국민당, 2위는 한국독립당, 3위는 일본 자유당으로 일본 민주당보다는 5달 먼저 창당되었다.
  39. 단 이러한 주장은 중국 주류 사학계와 민간 모두에게서 무시와 비판을 동시에 받는 주장이다.
  40. 소련 내에도 투바, 부랴티아, 칼미크 같은 지역에서는 티베트 불교가 주류 종교로 자리잡아 있다.
  41. 1990년 최초의 자유 총선거를 기념하는 날이다.
  42. 양을 통째로 잡아다가 뜨겁게 달군 차돌로 익혀 만드는 잔치용 음식.
  43. 양고기로 가득 찬 만두.
  44. 헝가리의 대표적인 스튜 굴라쉬의 몽골어식 표현으로 대부분 소가 아닌 양으로 만들어진다.
  45. 일상생활에서는 서력이 병기되나 아직까지는 연호의 사용 범위가 훨씬 넓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