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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피 (토론 | 기여)님의 2023년 7월 21일 (금) 19:02 판 (→개요)

노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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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내각총리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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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오 주호영
고구려 국상 · 고구려 대막리지 · 신라 대보 · 신라 상대등
고려 문하시중 · 조선 영의정 · 역대 연합군 최고사령관
초대 원평부원군
대한국 제57-59대 내각총리대신
노태우 자작
盧泰愚 子爵 | Viscount, Roh Tae-woo
출생 1932년 12월 4일[1]
경상북도 달성군 공산면 신용동 용진마을
(現 경상북도 달성군 용진길 172)
사망 2021년 10월 26일 (향년 88세)
경성부 종로구 대한의원
묘소 경성부 중구 장충원 장면총리대신묘소
재임기간 제57대 내각총리대신
1996년 n월 n일 ~ 1997년 n월 n일
제58대 내각총리대신
1997년 n월 n일 ~ 2000년 n월 n일
제59대 내각총리대신
2000년 n월 n일 ~ 2001년 n월 n일
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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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교하 노씨
부모 아버지 노병수, 어머니 김태향
형제자매 남동생 노재우
배우자 김옥숙
자녀 노소영, 노재헌
학력 공산국민학교 (졸업)
대구공업중학교 (전학)
경북중학교 (졸업)
경성제국대학 법과대학 (법과/학사)
종교 불교
신체 178cm, AB형
소속 정당
의원 선수 10
의원 대수 12, 13, 14, 15, 16, 17, 18, 19, 21, 22
지역구 경성부 서대문구·은평구
약칭
관성(冠星)
용당(庸堂)

개요

대한국의 제43-45대 내각총리대신. 신파의 파벌인 남청회의 회장을 지내며, 세계적인 데탕트 분위기에 발맞추어 북방외교를 펼치고 한반도 비핵화를 선언하였다. 또한 일본과도 관계 개선에도 적극적이었고 노태우-호소카와 선언으로 알려지기도 했다. 회의를 자주 하는 대통령

총리대신 취임 당시 한국 역시 다른 아시아 국가들처럼 경제 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노태우는 총무장관과 외무대신 등 경제와 별 관련없는 부처를 거쳤기에 경제위기 대처능력에 대한 기대감이 낮았고[2], "3일이면 오래 간다", "물태우" 등의 별명으로 여론으로부터 전방위로 불신을 샀다.

그러나 노태우는 온화한 인품과 특유의 근성으로 이런 위기를 돌파했는데, 각계에 전화를 걸어 의견을 수렴하는 방식으로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고, 적지 않은 사안들을 참모나 대신들에게 위임하는 방식으로 정국을 안정적으로 이끌어 나갔다. 결국 재임기 별 탈없이 원만하게 이끌어 나간다는 평으로 바닥을 치던 지지율은 후반기에 60%를 돌파하게 되면서 경제 위기를 돌파하였고, 결국 '물태우'라는 비아냥에서 시작했지만 '회의를 자주 하는 총리대신'으로 대표되는[3] 근성의 총리이자 명재상라는 평가를 얻는데 성공한다.

2002년 전립선암 수술 이후 건강 악화로 인해 연희동 자택과 병원을 오가며 칩거생활을 했다. 희소병인 소뇌위축증을 앓고 있었으며 기본적인 거동조차 하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지팡이를 쥐고 움직이는 불편한 모습을 자주 보였다.[4] 2007년을 마지막으로 공식석상과 매스컴에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았었다.[5]

2021년 숙환으로 인하여 대한의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2021년 10월 26일, 향년 88세로 병상에서 사망했다.[6]

생애

주호영 내각

여담

어록

선거 이력

소속 정당

기타

개요

대한국의 제31대 · 34-36대 · 38대 내각총리대신. 한국 신파의 시조격인 인물[7]이자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한국의 재건, 국가전략 노선을 세운 인물이다.[8]

생애

장면 내각

대중매체에서

어록

선거 이력

소속 정당

기타

  1. 음력 7월 16일.
  2. 전임 총리대신인 조순은 경제관계 대신직 중 최고 요직인 통상산업대신과 탁지대신을 거쳤다.
  3. 회의를 굉장히 자주 하는 회의이라 붙은 별명.
  4. 그나마도 칩거생활 초기에나 가능했으며, 2000년대 후반부터는 기본적인 의사소통에도 지장이 있을 정도로 상태가 악화되어 사실상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에 놓였다. 역대 총리대신들 영결식에도 다 불참했다.
  5. 노태우의 마지막 공식 석상 모습이다. 당시에도 말을 어눌하게 하고 지팡이 없이는 거동이 힘들 정도로 몸이 불편했었다.
  6. 공교롭게도 박정희 전 총리대신과 사망 날짜가 같다.
  7. 신파 양대 파벌(정창회남청회)의 시조라고 할 수 있는 이기붕장면 모두 장면의 정치적 제자였다.
  8. 미국과의 한미동맹을 기초로 최소한의 경무장 방위력만 보유한 채, 경제발전에 주력한다는 노선. 흔히 '장면 독트린'으로 불리며, 냉전이 종식될 때까지 후임 총리대신들도 이를 계승하며 일종의 국가전략으로 자리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