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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민국의 여당이자, 보수주의 정당이다. 자유당과 보수당과 공화당이 합당하여 설립된 정당이다.
역사
제 5대 대선 이전
제5대 대선 이전, 박근혜가 당대표로 있던 자유당, 태영호가 당대표로 있던 보수당, 김종필이 당대표로 있던 공화당이 3당 합당을 하게 되었다. 이로 인하여 제4대 총선 공천 파동 사태가 나름대로 잘 봉합되고 보수의 통합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는 공천파동이 없도록 자유당, 보수당, 공화당의 지분 및 지역강세 지역 등을 철저히 파악하여 전략공천을 하거나, 아니면 당원 직접 공천을 시키는 등 당시로서는 꽤 신선한 민주정치 방식을 채택하였다.나중에는 민주정치를 말아먹었다 게다가 당시에 김대중 정부가 김문수 정부에 이어 계속된 친미를 하지만, 이에 대한 반응은 오히려 냉소적인 반응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국민들이 반서방적인 기조가 강해지고 있었다. 마침 박근혜 예비후보 측에서 반미 정책, 고려인 이주 정책과 같은 굉장히 국민들에게 다가갈 만한 정책을 내세우자 당원들의 인기가 폭발, 결과적으로 73.5%의 득표를 얻으며 1위로 후보에 당선됐다. 그리고, 반정부 기조가 강한 대선 속에서 박근혜는 김대중을 무난하게 꺾고 제 5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제 5대 대선 이후
제 5대 대선 이후, 박근혜의 선전과 함께 성공적인 전략공천과 반김대중, 반좌익, 반서방 바람으로 당시 통합 대한민국은 역대 대한민국 역사상 최대의 의석인 479석을 얻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되자, 친박계가 매우 득세하게 되는데, 대표적으로는 김무성, 유승민 등이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사당화가 된 것은 아니다. 친김종필파와 친태영호파가 여전히 100석을 차지해 개헌 저지선을 넘으려면 이들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제 6대 대선 이전
박근혜 정부의 지속적인 반서방 기조 정책으로 인하여, 서방들이 하나 둘 등돌리는 듯 하였으나, 결국 한국의 석유 및 자원에 굴복하게 되면서 오히려 반미정책의 우월성을 보여주게 된다. 이로 인하여 박근혜 정부는 지지율이 70% 이상을 내내 유지해왔으며, 이번 선거에서도 무난히 이길 것이라고 예상하여 박근혜 이외 후보들이 무슨 목소리를 내는 지는 무시한 채 당원들은 무조건 박근혜를 밀어주고 95.9%로 당선되게 된다. 게다가, 이번 선거에서는 친태영호계, 친김종필계가 비박적인 모습을 보이게 되면 세력이 종말할 수 있기 때문에 비박이었던 두 계파도 친박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박근혜의 동생인 박근령, 그의 사위인 신동욱 역시 정계 입문을 하게 되면서 박근혜 정부에 대한 힘이 더 실릴 전망이다.
제 6대 대선 이후
박근혜는 대선에서 무려 71.3%를 득표하면서 이번 정부에도 굉장한 힘이 실릴 전망이다. 그리고 총선에서도 매우 압승을 하게 되었는데 "친박" 단독으로 개헌저지선을 넘게 되고, 야당들의 총 의석 수를 합쳐봐도 비박계 의원의 의석 수보다 적을 만큼 여당이 이번에 독점을 한 모습이다. 여당은 이번에 502석을 얻으며 대통령의 힘을 매우 실어줄 전망이다.
개헌 사태 이후
친박계 의원+비박계 일부가 단독으로 3선 개헌을 통과시켜버리자, 이에 반발한 대다수의 비박계 의원들의 탈당러쉬가 일어나게 되었고, 이 비박계 의원들은 훗날 국민전선을 창당하게 된다. 그리고, 국민전선과 친박 여당과의 갈등은 더욱 더 심화되었다.
제 7대 대선 이전
하지만, 3선 개헌의 여파를 상쇄하기 위해 한국과 만주의 갈등을 이용하는 전략이 먹히게 되면서 지지율은 오히려 80%대로 오르게 되었다. 무난히 대선 후보는 통과하게 되었고, 이번에는 우리나라에 있는 거대 기득 자본에게 과세를 매기겠다는 것을 공약으로 내세워 서민층의 굉장한 지지를 받게 되었다.
제 7대 대선 이후
박근혜는 저번 보다는 득표율이 약 4% 떨어진 67.8%를 얻었으나, 그래도 국민전선과의 갈등이 있었음에도 이러한 성적을 얻은 것은 매우 선전했다고 봐야한다. 그리고, 비박계와 친박계가 동시 공천되는 곳이 있음에도 불구, 대부분의 경우에는 친박이 비박을 찍어누르고 당선되게 되지만, 가끔씩은 비박이 당선되거나, 민주당이 당선되는 경우도 꽤 있었다. 그래서 약 480석을 당선시키게 되는데, 단일계파로는 최대의 의석 수이다. 그러자 결국 국민전선은 사망선고를 받게 되고, 여당은 승리를 맛보게 된다.
제 8대 대선 이전
한만 전쟁 때 꽤나 큰 졸전과 우한에서 터진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정부심판론이 거세지기 시작하자, 국민전선+공산당+민주당 지지율이 여당을 10% 압도하게 된다. 그러자, 박근혜 정부에서 중국 입국자 통제, 마스크 5부제,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매우 강력한 조치를 취하게 되고, 이것이 효과로서 증명되자, 격차가 희미하게 좁혀지긴 했다. 하지만, 막말 몇 번으로 과반이 깨질 수 있는 상황이었기에 당시 이정현 당대표는 사실상 막말 금지령을 내리게 되었다. 3선 개헌 비판 역시 계속적으로 수용하면서도 박근혜 정부가 부국강병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말로 계속해서 유권자들에게 어필을 하고 있다. 그리고, 2020년 한국 단독으로 성장률이 플러스가 나온다고 OECD 자료에서 발표가 나오자, 박근혜 정부에 대한 지지율이 갑작스럽게 상승, 이로 인해서 노동당 및 야당 세력들은 맥을 못 추리다가 결국 망해버렸다.
제 8대 대선 이후
코로나 사태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 경제적인 방책 대비, 사회 혼란 축소 등으로 인하여 박근혜 후보는 선거에서 54.3%를 얻는 선전을 보였고, 총선에서도 367석을 얻는 등 아주 큰 선전을 하였다. 박근혜 대통령이 반도체 육성 AI 산업 육성에 자금을 지원하겠다는 정책을 보이자. 당 내에서도 찬성파 반대파로 나뉘어 또 싸움질이 일어나고 있다. 2차 분당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우려했던 것과 달리 1년 만에 갈등은 봉합되며 찬성으로 정리되고, 2년 동안 실제로 AI, IT 덕분에 연평균 10% 넘는 성장을 하고 있다. 덕분에, 친박들은 분열되지 않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