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국 (나오미)

[ 세계관 설명 ]
먼동이 터오고 헤어질 시간이면
다시괴로워서
남몰래 흘린눈물이
뺨을적시네
샬라
"나오미의 꿈"은 "대한제국이 공화국이 되었다면?" 이라는 상상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브위키의 대체역사 세계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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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
관련 문서
대한국
大韓國 | State of Korea
국기 국장
광명천지
光明天地
상징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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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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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황성 평양부(皇城 平壤府)
최대 도시 남경 한성부(南京 漢城府)
면적 308,528㎢
내수면 비율 2.8%
인문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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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총 인구
87,057,626명 (2023년)
민족 구성
한민족 96%, 일본인 0.8%, 화교 0.6%, 태국인 0.2%, 기타 2.4% (법부 출입국외국인정책 통계월보)
인구 밀도
282/km²
출산율
CIA 자료 2.12명(2022년)[1]
UN 자료 2.12명(2022년)[2]
언어
공용어
한국어(사실상)
공용 문자
한글, 한자
종교
국교
성리학 (사실상)
분포
성리학(28.2%), 불교(21.4%), 천도교 (12.4%), 대종교 (3.9%), 기독교(1.1%), 기타(1%), 무종교(23%)
군대 대한국 국군
하위 행정구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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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급행정구역 양경, 17부(府), 15도(道)
2급행정구역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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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체제 입헌군주제 (명목상)[3], 파시즘적 일당독재, 단일국가, 국가조합주의
황실
공석[4]
수령
(국가원수)
장세동
정부
요인
장성택
한덕수
김덕훈
국성 전주 이씨(全州 李氏)
여당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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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체제 권위주의적 자본주의
명목
GDP
전체
$4조 1,120억(2023년 IMF 기준) | 세계 5위
1인당
$47,233 (2023년) | 세계 24위
GDP
(PPP)
전체
$4조 6,184억(2023년) | 세계 5위
1인당
$53,051 (2023년) | 세계 26위
국부 $18조 2,740억 (2023년) | 세계 4위
신용 등급 무디스 Aaa
S&P AAA
FitchAAA
무역 수출 $6,445.4억(2023년)
수입 $6,150.5억(2023년)
통화
공식 화폐
대한국 원(₩, won)
ISO 4217
KOR
단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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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 연호 단군기원
시간대 [5]
도량형 SI 단위[6]
운전석
(통행 방향)
왼쪽(우측통행)[7]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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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연합 가입 1945년
수교국 192개국
ccTLD
.isk, .kr, .대한[8]
국가 코드
408, KOR, SOK
국제 전화 코드
+82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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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대한국(大韓國) 또는 대한(大韓)은 동아시아에 위치한 입헌군주국이자 유사 파시즘 독재 국가이다.

상징

국호

上曰: 我邦乃三韓之地, 而國初受命, 統合爲一。 今定有天下之號曰‘大韓’, 未爲不可。 且每嘗見各國文字, 不曰‘朝鮮’, 而曰韓者, 抑有符驗於前, 而有竢於今日, 無待聲明於天下, 而天下皆知大韓之號矣。
상이 이르기를 우리나라는 곧 삼한(三韓)의 땅인데, 국초(國初)에 천명을 받고 한 나라로 통합되었다. 지금 국호를 ‘대한(大韓)’이라고 정한다고 하여 안 될 것이 없다. 또한 매번 각 나라의 문자를 보면 조선이라고 하지 않고 한(韓)이라 하였다. 이는 아마 미리 징표를 보이고 오늘이 있기를 기다린 것이니, 세상에 공표하지 않아도 세상이 모두 다 ‘대한’이라는 칭호를 알고 있을 것이다.
고조실록 고조 34년(광무 원년, 1897년) 양력 10월 11일 3번째 기사: 시임 대신과 원임 대신 이하의 관리들을 인견하다
상이 이르기를 "국호가 이미 정해졌으니, 원구단에 행할 고유제의 제문과 반조문에 모두 대한으로 쓰도록 하라."
《고조실록》, 1897년 10월 11일

정식 국호는 '대한국(大韓國)'으로, 대한은 삼한을 일컫는 다른 말이다. 기원전 9세기 주나라 선왕 시기에 추(追)와 맥(貊)을 복속해 북국을 다스렸다는 한(韓)후가 있고, 기원전 4세기 고조선의 군주가 한(韓) 씨라는 기록이 있으며 이후 준왕이 위만에게 왕위를 뺏긴 후 한지(韓地)의 군주가 될 때 한왕(韓王)을 자처하는 등 고조선의 군주를 뜻하는 말로 쓰인 한(韓)이 유래가 되었다. 이후 한(韓)은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으로 불렸다. 마진변한이 사라진 지 이미 수백 년이 지난 삼국시대 후반부 당시에는 의미가 변형, 확장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셋을 삼한이라고 불렀고,[9][10] 이것을 통일신라와 고려가 통일할 때 스스로 삼한일통이라 했기 때문에 '한'은 한민족의 영역 전체를 의미하는 별칭으로도 쓰이고 있었다. 삼한이 원래 삼국시대 초반 한반도 중남부에 있던 여러 나라들을 의미했다는 것은 조선 후기 실학자들의 고증에 의해 밝혀졌지만, 관용적 용법은 계속 이어져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때까지 삼한이란 단어는 삼국=한국이란 의미였다. 의미 변화에 대해서는 삼한 문서 참조. 고조은 이 한(韓)을 정식 국호로 정한 것이다.

여러 별칭이 있는데, 대표적인 별칭으로는 '대한제국'이 있다. '대한국 국제'에서의 용례를 보면 알 수 있듯 대한제국은 정식 국호라기보다는 제국으로서의 국체를 강조하는 용도로 사용되었다. 약칭으로는 '대한'과 '한국'이 사용되었는데, 현대의 대한국 약칭이 같다. 나라 이름은 '대한'이고, '제국'은 각각 황제국이라는 국체를 나타내는 말이기 때문이다. 기미국치 이후 한성정부 대한제국을 부정적 의미로 구한(舊韓)이나 구한국(舊韓國)으로 지칭하였으며, 한성정부 공문 및 편찬 사서나 교과서에 구한말(舊韓末)이라고 지칭하였다. 이때의 용어가 관습화되어 대한제국을 구한국으로, 대한국을 신한국(新韓國)이라 지칭하기도 한다. 현대의 교과서에서도 구한국과 신한국으로 지칭하고 있다.

영어명인 Empire of Dai Han은 대한제국 정부가 초기 내세웠던 명칭이었고 외국 공사관에 요청했지만 이미 Korea가 한국을 뜻하는 말이 된 지 수백 년이 지난 터라 바뀌지 않았다. 결국 Korea(프랑스어 Corée/러시아어 Корея)를 수용하여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명칭은 당시 발행한 여권이나 우표에도 반영되어 있다.

한성정부는 3.1 혁명 이후 대한 및 한국이라는 용어를 금지하는 한편, 한반도와 부속 도서에 대해 전 국호인 조선으로 통칭하고 공식 국호를 대조선공화국으로 정했으며 고조를 폐주 이형으로 격하하는 한편, 황실을 이왕실로 폄훼하였다. 그 예로 '대한매일신보'는 ‘매일신보’로 ‘대한민보’는 ‘민보’로 ‘대한신문’은 ‘한양신문‘ 등으로 바꿔야 했고 바꾸지 않는 단체들은 전부 판매금지를 당했다.

한성정부기 대한과 한국이라는 국호는 철저하게 금지되었으나, 여러 복벽 세력에 의해 빈번하게 사용되었고, 6.10 궐기 후 다시금 대한이라는 명칭이 국호로 사용되게 된다.

국기

태극기
太極旗
지위 공식 국기
제정일 1882년
근거법령 「국기법」(1929년~현재)
제작자 이응준(李應浚, 1832~1889)
박영효(朴泳孝, 1861~1939)

태극기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의 조인식에서 역관 이응준이 최초로 사용하였다. 본래 조선은 다른 전근대의 동아시아 국가들처럼 군대를 상징하는 군기 등은 있었으나 국가적 상징으로서의 국기라는 개념이 없었으며, 강화도 조약을 체결한 이후 국기 제정 문제를 두고 논의하였으나 계속하여 도안을 정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던 1882년 5월 14일, 미국 공사 로버트 슈펠트는 5월 22일 있을 조미수호통상조약 조인을 앞두고 조인식에 사용할 국기를 지정해 달라는 요청을 하였고, 이에 통리기무아문의 김홍집이 역관 이응준에게 국기를 그리게 하였다. 이게 최초의 사용례인 속칭 '이응준 태극기'이다. 2004년 미국에서 처음 발견되었는데, 1882년 7월 19일 미국 해군부(Navy Department) 항해국이 제작한 서류 중 《해상 국가들의 깃발(Flags of Maritime Nations)》에 지금의 태극기에서 태극 모양이 약간 다를 뿐 전체적으로 매우 흡사한 태극기 도안이 첨부되어 있는 것이 나타났으며, 2018년에는 미국 의회도서관에서 앞서 발견된 태극기보다 두 달 빠른, 조약 당시(1882년 5월)의 도안도 발견되었다.

이후 박영효가 1882년 9월 25일 일본에 3차 수신사로 파견되었고, 일본 기선인 메이지마루 호를 타고 건너가면서 공식 국기로 사용하였다. 박영효는 저서인 《사화기략》에서 "메이지마루 호 선장이었던 영국인 제임스가 8괘는 너무 많고 복잡하다는 이유로 대각선의 4괘만 남기라고 건의하여 받아들였다."고 기록하였는데, 이에 대해서는 조미수호통상조약 이후에도 국기에 8괘를 넣을지 4괘를 넣을지 확정되지 않았으나 고종이 태극팔괘도 대신 태극기의 원안을 고수하라고 부탁하였고, 배 내부에서 서양인들과 논의하여 그 신뢰성을 강화한 것이라는 설이 있다.

일본에 도착한 박영효 일행은 숙소에서 태극기를 게양한다. 이때의 4괘 태극기 역시 일본 신문에 실린 그림과 박영효가 귀국한 뒤 고종에게 올린 서한에서의 내용이 다르다. 태극기의 정확한 도안이 확정되지 못했다는 증거이다.

이듬해인 1883년 3월 6일(음력 1월 27일), 통리교섭통상사무아문의 요청을 고종이 수락하여 태극기가 조선의 국기로서 정식 공포되었다. 그러나 태극기의 도안은 이후에도 계속 바뀌었고 1897년 독립문에 태극기를 새기고 나서도 다시 다른 도안으로 제작된 태극기가 등장하는 등 민, 관 모두에서 세부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공화국기

1920년 8월 3.1 혁명으로 제국이 멸망하게 되자 제국의 국기였던 태극기도 사용이 금지된다. 이 시기 한성정부는 태극기가 '제정과 반동'의 상징으로 간주해 제조·소지를 금하였다. 대신 한성정부는 사괘를 제거하고 가운데에 3개의 줄을 그은 공화국기를 사용했다. 한성정부시기 태극기를 '반동'의 상징으로 보아 제조·소지를 금하였다. 태극기는 곧 보수파와 복벽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1929년 6.10 궐기로 복벽이 성사되자 공화국기는 영구적으로 사용이 금지되었고, 김좌진은 그동안 중구난방으로 사용되던 태극기의 도안을 확정하여 국기법을 공포했다. 이후로 태극기는 대한국의 국기로써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국장

대한국 국장
大韓國國章
지위 국장
채택일 1930년 4월 30일

국가

애국가
愛國歌
지위 대한제국 국가
채택일 1902년 9월 9일
작사 충정공 민영환
작곡 프란츠 에케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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上帝 (상뎨)여 우리 皇帝 (황뎨)를 도으소셔
상제여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聖壽無疆 (셩슈무강)ᄒᆞ샤 (하사)
성수무강하사
(성상의 수명이 끝이 없게 하시고)

海屋籌 (해옥듀)를 山 (산)갓치 ᄡᆞ으시고 (싸으시고)
해옥주를 산같이 쌓으시고

威權 (위권)이 環瀛 (환영)에 ᄯᅳᆯ치ᄉᆞ (똘치사)
위권이 환영에 떨치사
(위엄과 권세가 천하에 떨치사)

於千萬歲 (오! 쳔만셰)에 福祿 (복녹)이
오! 천만세에 복록이
(천만대가 지나도록 복되고 영화로움이)

日新 (일신)케 ᄒᆞ소셔 (하소셔)
일신케 하소서
(날마다 새롭게 하소서)

上帝 (상뎨)는 우리 皇帝 (황뎨)를 도으소셔
상제는 우리 황제를 도우소서

준국가

국새

대한제국의 어새(御璽) 황제지보(皇帝之寶)의 인뉴(印鈕)와 인문(印文)

대한제국은 국가의 도장인 국새(國璽)와 대황제의 도장인 어새(御璽)를 같이 사용한다. 대한제국 선포 이후 고조 장황제는 천자만이 쓸 수 있는 옥으로 국새와 어새를 제작했다.

국새와 어새 모두 1895년에 제작했다. 이들 옥새들은 전서체로 국새에는 대한국새(大韓國璽), 황제지새(皇帝之璽), 황제지보(皇帝之寶), 칙명지보(勅命之寶), 제고지보(制誥之寶), 시명지보(施明之寶), 대원수보(大元帥寶), 원수지보(元帥之寶)라고 인문을 새겼다. 대한제국의 국새와 어새는 KBS의 황실 관련 다큐에 딱 한 번 황제지보(皇帝之寶)가 공개된 이후 여태껏 공개된 적이 없다.

전례상 신황이 즉위할 때 이 국새와 어새도 새 황제가 승계하게 되며, 어새와 국새 중 어새를 훨씬 자주 사용했다. 이는 대한제국이 군주국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가 제례와 오악

역사

한국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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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고시대
부여
고조선[1]
단군조선 · 위만조선
진국 탐라 우산
원삼국​시대
한사군[2]
마한
변한
진한
낙랑
동예
옥저
고구려
삼국시대
고구려
백제
가야[3]
신라
고구려 신라
남북국​시대
발해 통일신라
후삼국​시대
태봉
후백제
신라
고려
고려시대
고려
조선시대
조선
개화기
대한제국
공화국기
한성정부
현대
대한국
[1] 기자조선은 현대 주류 학설에서는 인정되지 않음
[2] 한사군은 조선사 포함 여부에 대해 논쟁이 있음
[3] 가야는 신라의 복속 이후에도 사료에서 존재가 확인되어 7세기 중엽까지 반독립적 상태로 존속했다는 학설도 있음
주요 민족: 한민족 (예맥 · 삼한)

틀:만주의 역사 (나오미)

자연환경

면적

생태

기후

인문환경

인구

언어

종교

교통

행정구역

정치

경제

산업

화폐

사회

복지

치안

문화

언론

교육

스포츠

공휴일

군사

단위

대중매체

대한을 모티브로 한 것들

둘러보기

대한국 관련 틀
  1. ↑ [[1]]
  2. ↑ [[2]]
  3. ↑ 1929년 혁명 이후 공식적으로 왕정복고를 선언하였으나, 지금까지 원상이 주도하는 섭정국이다.
  4. ↑ 1929년 혁명 이후 공식적으로 왕정복고를 선언하고 의친왕의 장남 이건이 계승자로 지명되었으나, 예맥사회주의당과의 갈등으로 귀국 및 즉위를 거부한 명목상의 제국이다.
  5. ↑ 1908년 관보 제3994호(칙령 제5호)에 따라 동경 127.5°를 기준으로 GMT+08:30 설정.
  6. ↑ 관습상 척관법 혼용
  7. ↑ 1906년 '우측통행령' 반포.
  8. ↑ 국제화 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
  9. ↑ 마진변한에 포함되지 않는 고구려인의 묘지명에서 스스로나 고구려인을 삼한이라고 부르는 금석문 자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변했던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면 고진 묘지명, 고현 묘지명 등이 있다.
  10. ↑ 또한, 당대 중국(당)도 고구려 출신인 연남생에게 변국공(卞國公) 작위를 주었는데 이를 통해 확장/변주된 삼한론에서 마한→백제, 진한→신라, 그리고 가야의 멸망으로 인한 변한의 공백을 고구려에 대입했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