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역사 (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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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민주당의 역사.

탄생

1996년 출범한 구 민주당은 같은 해 치러진 중의원 선거에서 해산 이전과 동일한 52석을 얻으며 세력을 크게 늘리지는 못했으나 일부 지역에서 구 사회당 지지층을 흡수하며 어느 정도 기반을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 이후 1998년 1월 국민의 목소리, 신당우애, 태양당, 프롬 파이브, 민주개혁연합과 함께 원내회파 민주우애태양국민연합을 결성하고 이어 모든 정당이 해산하고 구 민주당에 합류하는 형태로 새로운 민주당을 결성하게 된다.

여러 야권을 규합해 출범한 정당인 만큼 내부 이념이 다양했는데, 보수중도를 내걸었던 구 민정당 세력과 민주 리버럴을 내걸었던 구 민주당계의 대립 사이에서 당의 기본 이념을 민주중도로 결정하게 된다. 이후 보수 성향의 자민당과 대립하며 흔히 리버럴로 분류되곤 했으나 여러 야권을 결합한 출범으로 인해 보수 본류 성향의 의원들이나 반공 성향의 의원들도 적지 않고, 2013년 오사카도 구상·부수도 추진에 오카다 가쓰야 내각이 동의하며 통합한 구 유신회 출신 의원들 또한 보수색을 띈다. 혁신 성향 의원들도 다수 포진해 2001년에는 당내 좌파 세력으로부터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가맹 요구가 있었으나 하토야마 대표가 거부하며 무산된 바 있다.

결성 이후 같은 해 치러진 제18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개선 의석 27석을 확보하며 10석을 늘리는 데 성공한다. 이를 토대로 야권의 협력을 얻어 간 나오토가 참의원에서 총리로 지명됐다. 다만 중의원의 결정이 우선이므로 중의원에서 지명된 오부치 게이조 자민당 총재가 총리로 선출됐다.

2000년 치러진 제42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크게 약진해 127석을 확보했다. 비록 여권의 안정다수 의석을 무너뜨리진 못 했으나 이 선거를 계기로 민주당은 야권 최대 정당으로 발돋움한다. 2001년 7월 치러진 제19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도 개선 의석 26석을 얻으며 참의원에서 4석을 추가하는 데 성공, 계속해서 세력을 키웠다.

민유합병 이후

2003년 중의원 선거를 앞두고 오자와가 이끌던 자유당과의 합당, 이른바 민유합병을 추진한다. 에다노 유키오를 비롯한 당내 반대 여론도 높았으나, 합당의 주도권을 민주당이 쥐는 것을 확정지으며 사실상 흡수합당 형태의 통합을 밀어붙여 중의원에서 137석, 참의원에서 67석을 확보해 덩치를 불린다.

민유합병 이후 치러진 제43회 중의원 의원 총선거에서는 정권교대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다. 선거 결과 공시 전보다 40석 더 많은 177석을 확보하며 선전한다. 비례대표 득표에서는 자민당을 앞서며 자민당과 견줄 수 있는 양대정당으로서 자리매김한다.

2004년 연금제도 개혁을 둘러싸고 논의가 이뤄지던 중 간 나오토 대표의 연금 미납 기록이 드러나며 대표직을 내려놓게 됐고, 이어 후임 대표로 내정된 오자와 이치로 마저 연금 미납 문제가 불거지자 대표 취임이 무산된다. 이로 인해 새로운 대표로서 오카다 가쓰야를 무투표로 선출하고 맞이한 제20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 개선 의석 50석을 확보하며 국정선거에서 처음으로 자민당에 승리를 거뒀다. 이로 인해 민주당이 본격적으로 정권교체를 노리게 됐었으나...

2005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우정 민영화에 대한 찬반을 물으며 중의원을 해산한다. 자민당은 우정 민영화에 반대한 의원들을 퇴출하고 그들과 대립하는 선거전을 치르게 되며 초기에는 정권교체에 대한 낙관론이 돌았으나, 고이즈미 총리의 우정 민영화 프레임에 대해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고 자민당과 차별점을 드러내는 데 실패했다. 결국 고이즈미 극장에 민주당의 모든 프레임이 매몰되어 해산 전 의석을 크게 잃은 113석 확보에 그치며 오카다 대표도 선거 당일 사임 의사를 표명한다. 이후 신임 대표 선출에서는 간 나오토마에하라 세이지가 경쟁, 탈노조 노선과 세대교체를 앞세우며 우경화 노선을 내비친 마에하라 세이지가 선출된다.

2006년 2월 민주당이 호리에 메일 문제와 관련한 잡음을 빚기 시작하며 결국 같은 해 3월 마에하라 세이지 대표가 퇴진하는 한편 민주당 또한 비판을 피하지 못했다. 마에하라 세이지의 후임으로는 오자와 이치로가 간 나오토를 이기며 대표에 취임한다. 오자와는 대표 선거 때 자신의 상대였던 간 나오토를 대표대행으로 지명하며 하토야마 유키오 간사장과 함께 트로이카 체제를 형성한다. 이 시기 오자와 대표는 본인의 신자유주의 이념을 숨기고 고이즈미식 개혁을 공격하는 차별화 전략을 세우는 한편 의원·후보 등 조직에 지역활동 활성화를 요구하는 등 민주당의 지역 기반 강화에 나선다.

오자와 대표의 노력이 빛을 봤는지, 2007년 실시된 제16회 통일지방선거에서는 도도부현의회 의석을 170석 이상 불리며 승리를 거두고, 이어 같은 해 실시된 제21회 참의원 의원 통상선거에서는 이른바 연금기록 문제를 힘입어 60석을 확보하며 압승해 정권교체에 한발짝 더 다가선다. 오자와 대표는 참의원 다수 의석을 확보하며 자민당을 상대로 대립각을 세우는 노선을 택하는 한편 같은 해 11월 후쿠다 야스오 총리에게 대연립을 제안하기도 했으나 민주당 내 반발로 오자와가 그리던 연립은 무산됐다.

2008년 휘발유 정국 등에서도 오자와가 이끄는 민주당은 자민당을 상대로 격렬히 대립각을 세우는 한편 여론의 지지를 얻으며 수도권 지지율에서는 자민당을 압도하는 구도가 나오기도 했다. 그런데 2009년 3월 헌금 문제로 오자와의 제1비서가 체포되며 민주당의 지지율이 하락한다. 이 때문에 사퇴로 기우는 듯 했으나, 3월 11일 오후 2시 46분, 열도가 흔들리기 시작하며 모든 정치적 이슈가 매몰된다.

동일본 대지진이 발생하자 민주당은 즉각 대립노선을 철회, 자민당 측에 국난극복을 위해 정쟁을 멈추고 재해 수습에 집중하자고 제안했으나 아소 다로 총리가 이를 묵살하는 한편 재해 수습이 계속해서 난항을 겪는다. 아소 다로 내각이 재해 수습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여론이 형성되던 중 아소 총리가 원전 폭발이 발생한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에 벙커버스터를 지시하고 시행되자 여론이 완전히 민주당을 향해 돌아선다. 민주당은 아소 총리를 상대로 공세에 나섰고, 아소 총리는 해산 요구를 무시하는 한편 오자와 대표를 향해 대연정을 제안하는 등 버티기와 회유를 시도했으나 먹히지 않자 결국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해산하게 된다.

집권기

아소 다로 총리가 중의원 해산 의사를 표명하고, 같은 달 실시된 NHK의 여론조사에서는 민주당과 자민당의 정당지지율이 15%P를 상회했다. 이어 중의원이 해산되며 선거전에 돌입하자 오자와 대표는 이를 정권교대 선거로 이름짓고 사민당, 국민신당과 함께 과반수 이상 확보를 노렸다. 여론조사에서는 계속해서 민주당의 우세가 유력했고, 선거 결과 예상대로 단독 절대안정다수 이상 의석을 확보하며 창당 11년 만의 정권교체에 성공한다.

오자와 내각

오자와 내각이 정식으로 발족하며 사민당·국민신당과의 연립정권이 출범한다. 70%의 높은 지지율을 얻으며 탄생한 오자와 내각은 CO2 삭감 목표 인상, 자위대 인도양 파견 철회, 공공사업 재검토 등 정책을 추진하는 한편, 직전 아소 정권이 방기한 재해 수습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의욕적으로 재난 수습에 나섰던 에다노 유키오 내각관방장관이 과로로 인한 심장마비로 사망하며 국민들을 다시 한 번 슬픔에 빠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적극적인 재해 수습과 지원이 이어지며 동일본 대지진으로 인한 피해는 서서히 수습 국면에 접어들었다.

다만 오자와 이치로 총리의 정치자금 문제 등이 다시 수면 위로 드러나며 오자와 정권은 위기를 겪게 된다. 오자와 총리에 대한 실제 기소는 이뤄지지 않았으나 도쿄검찰심사회에서 오자와 총리에 대해 기소가 적절하다고 의결하며 민주당과 내각의 지지율이 하락하게 된다. 여기에 더불어 오자와 총리가 소비세 인상을 공론화하자 역풍이 불며 제22회 참의원 통상선거에서 민주당과 국민신당이 대패해 본격적인 오자와 강판 여론이 당내에서 일기 시작한다.

오자와 이치로 총리가 강판을 거부하며 계속해 총리 임기를 이어가며 여론조사 지지율은 자민당에 역전되기까지 하지만, 민주당은 사퇴를 거부한 오자와에 대해 별다른 수를 쓰지 못했다. 그러나 2011년 자민당 이시바 시게루 총재와의 당수토론 중 오자와 총리가 갑작스럽게 난동을 부리는 최악의 추태가 벌어지자 인내하던 오자와파 의원들마저 이반하며 오자와를 끌어내리려는 쿠데타가 발발하기에 이른다. 결국 오자와 이치로가 백기를 들며 오자와 내각은 마무리된다.

오카다 가쓰야 내각

오자와 이치로의 사퇴로 치러진 대표 선거는 오카다 가쓰야에 대한 신임 투표로 진행됐다. 오자와파는 물론 오자와의 영향력을 받는 의원들도 사실상 후보 출마나 오자와파 후보 지지를 포기하고 오카다 가쓰야에 대한 신임을 보내며 무난하게 대표에 당선됐다. 지난 참의원 선거에서 대패하며 참의원 우위를 자민당에 내주긴 했으나 양원의 결정이 다를 경우 중의원의 선출을 우위로 보는 규정에 따라 무난히 총리가 될 것으로 보였고, 참의원에서 이시바 시게루 자민당 총재가 이기긴 했으나 이 규정에 따라 오카다 가쓰야 대표가 총리로 선출됐다.

노다 내각

오카다 가쓰야의 후임 대표로 선출된 노다 요시히코

모든 재앙의 시작

오카다 대표가 6년 이상의 장기집권을 마치고 차기 민주당 대표 선거 출마를 포기하자 민주당 대표 선거에는 노다 요시히코, 가이에다 반리, 마에하라 세이지, 가노 미치히코, 마부치 스미오 5명이 출마한다. 당초 오자와 전 총리 파벌이 지지하던 가이에다 반리가 앞서고 있었으나 1차 투표에서 143표를 얻고도 과반수 득표에 실패해 노다 요시히코와 가이에다 반리의 결선투표가 벌어지게 됐고, 결선투표에서 마에하라 세이지, 가노 미치히코의 지지를 얻은 노다 요시히코가 민주당 신임 당대표로 선출됐다.

당선되자마자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자민당에 소비세 증세를 골자로 하는 '소비세 인상을 포함한 사회보장과 세금의 일체개혁' 법안에 대한 처리와 중의원 정수 축소를 요구한다. 아베 신조 자민당 총재가 이를 두고 중의원 해산을 약속하라고 주장하자 이를 덥썩 문 노다가 정말로 해산하겠다고 선언해버린다.

문제의 해산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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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9월 10일 당수토론 (국가기본정책위원회 합동심사회)

○ 노다 요시히코 총리 "제가 아베 총재께 부탁드린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로 특례공채법안을 이번 주 안에 처리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대해선 긍정적 답변을 주신 것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두 번째는 한 표의 격차와 의원 정수 시정 문제입니다. 원래 민주당은 선거구 격차 시정을 우선하자는 입장이었습니다. (…) 우리는 끝까지 이 법안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결론도 없이 끝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협의를 계속 하고, 기한도 정해야 합니다. 만약 아베 총재께서 이 점을 약속해 주신다면 저는 오는 주말인 16일에 해산을 해도 좋다 생각합니다. 국민 앞에서 약속해 주십시오.".
○ 아베 신조 의원 "민주당은 정말 즉흥적 포퓰리즘 정당이란 생각을 다시 한 번 하게 됩니다. (…) 내년 정기국회에서 의원 정수 감축과 선거제도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것을 이미 총선 공약으로 국민께 약속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다시 한 번 그 약속을 분명히 하겠습니다."
(중략)
○ 아베 신조 의원 "이 논의를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있는 건 유감이지만 바로 노다 총리입니다. (…) 저는 바로 그 결단을 노다 총리에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 노다 요시히코 총리 "명확한 답변을 듣지 못 했습니다. (…)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기 위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기한을 정하겠습니다. 16일에 해산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봅시다."
○ 아베 신조 의원 "지금 총리, 16일에 선거를 하겠다. 그건 약속이시죠? 약속하신 거죠? 확실하십니까? 확실하신 거죠? (…)" (후략)

중의원 해산 이후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먼저 실시한 것은 당내 좌파 배제였다. 고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의 딸인 에다노 아오이 의원의 공인 거부를 시작으로 생추어리, 나라의 모습 연구회 등 당내 혁신 성향을 띄는 의원들 다수를 상대로 공인 거부를 통보한다. 노다 요시히코가 당내 좌파 숙청에 나서자 전임 총리 오카다 가쓰야가 이례적으로 공개 비판에 나서는 한편, 오자와 이치로는 반 오자와 성향 표를 모아 당선됐던 노다의 오자와계 배제를 우려해 집단 탈당, 자유당을 창당하기에 이른다. 공인 거부, 탈당 권고 등을 받은 의원들은 에다노 아오이를 포함한 소수를 제외하고 모두 사회민주당에 합류하며 선거를 앞두고 정계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민주당 의석이 100석 미만인 00석으로 추락한 반면 오자와 이치로가 이끈 자유당은 현상 유지에 성공, 배제된 혁신 성향 의원들을 받아들인 사민당은 00석을 얻으며 대약진, 민주당은 이후 후쿠시마 미즈호자민당과 손잡고 총리가 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제2차 자사연립 이후 민주당 출신 사민당 당선자들 일부가 민주당으로 돌아온 건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정권교체 이후

2017년

노다 요시히코 대표가 물러나고 급하게 치러진 대표 선거에서 가이에다 반리가 당대표로 추대됐다.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빼앗긴 6년, 그리고 재집권

2024년

2025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