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도국 (브레이브 히어로 유니버스)/성씨

틀:브레이브 히어로 유니버스


목록

성씨 한자 본관 시조
강씨 강주 강양웅(姜陽熊)[1]
강씨 강평 강인지(姜仁知)
강씨 능주 강구재(康求才)[2]
강씨 란주 강유(康兪)[3]
고씨 강주 고유해(高流海)
고씨 란주 고연(高連)
고씨 평성(평주) 고승장(高昇臧)[4]
골씨 골산 골거걸(骨巨乞)
나씨 나성 나안규(羅安規)
나씨 낙단 나비류(羅沸流)
단씨 목단 단승연(丹昇連)[5]
달씨 달원 달기(達企)[6]
동씨 진양 동승경(東承景)
라씨 란주 라경위(羅京衛)
란씨 란주 란탁(丹卓)[7][8][9]
란씨 파천 란의구(丹宜龜)[10]
모씨 능강 모지안(慕地安)[11][12]
모씨 모혜 모강우(慕康優)[13]
서씨 낙양 서여장(徐餘章)[14]
세씨 안강 세마지(世馬知)[15][16]
순씨 라란 순탁(順卓)[17][18][19]
유씨 란주 유단(劉旦)[20][21][22]
이리씨 伊梨 영천 이리가류비(伊梨柯流沘)[23]
진씨 평서 진항성(陳港成)
최씨 남양 최승무(崔昇武)
홍씨 저도 홍길동(洪吉童)

각주

  1. 강평 강씨에서 나왔으며 시조 강양웅은 강평 강씨의 시조인 강인지의 현손이다.
  2. 모강우(강우)의 본래 성본이 능주 강씨이다.
  3. 의공태자 란승유의 호위대장이다.
  4. 장왕의 부왕인 고왕이다
  5. 라란국 말왕의 왕제인 란주유의 장남이자 의공태자의 사촌 란승연이다.
  6. 다루왕 다루기(多婁王 多婁企)
  7. 이전 이름은 란순탁(丹順卓), 순탁(順卓), 동탁(東卓), 란탁(丹卓), 탁(卓)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8. 본래 란주 란씨 족보에는 란동(丹東)으로 기록되어 있었으나 여러 사서에 본래 이름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들에 한 개를 제외하고는 공통적으로 탁(卓)자가 들어가있으며 란주 란씨에서 갈라져 나온 라란 순씨 족보에도 이름이 탁(卓)으로 기록되어 있으므로 서체가 뭉개져 동(東)으로 잘못 보았다고 판단하고 탁(卓)으로 수정하였다.
  9. 란탁이 라란국 국왕인지는 기록이 되어 있지 않아 알지 못한다. 다만 라란인들의 통치자였음은 어느정도 맞는듯 보인다.
  10. 란탁의 11대손이다.
  11. 발해 유민 출신으로 말갈족이다.
  12. 모강우의 친모인 모혜연(慕慧聯)이 능강 모씨이다.
  13. 능주 강씨 종친들과의 갈등으로 인해 개성하였다.
  14. 여장 부여씨(餘章 扶餘氏), 부여 풍의 서자로 기록되어 있다. 다만 부여씨의 다른 표기인 여(餘)가 이름인 것으로 보아 후대에 창작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성씨인 부여 서씨도 부여씨의 후손이 아니라는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데 낙양 서씨라고 진짜 부여씨의 후손이라고 보긴 힘들 것이다.
  15. 모신나강의 아들이다.
  16. 성씨인 모신(慕新)씨를 단성으로 표기한 신(新)의 다른 음차표기로 추정되는 세(世)를 성씨로 삼은듯하다.
  17. 란탁의 개명 전 이름으로 기록된 이름 중 하나로 신동국기에는 란동(丹東, 란탁(丹卓)의 오기)은 본래 이름이 동탁이었다. 동탁은 란(丹)씨로 성씨를 삼았으나 차남 희고(姬高)가 성씨를 순(順)으로 하고 아버지인 란동의 보명을 순탁으로 기록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라란군기에는 란동은 이름이 본래 순탁인데 차남 희고가 자신의 성씨를 순으로 복성하고 아버지 란동을 시조로 하였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18. 라란잡록에 따르면 인용한 여러 사서들을 살펴보니 이름에 공통적으로 탁(卓)이 들어가니 아마도 란주란시세보에 동(東)으로 오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라고 기록되어 있다.
  19. 란주잡록에서는 탁(卓)을 높은 사람에게 주는 칭호로 보았으며 이름을 란동(丹東)으로 기록해놓았다. 다만 중국에는 그런 사례가 전혀 없어서 탁(卓)을 칭호로 볼 수가 없다.
  20. 본명이 아니고 개명했다고 한다.
  21. 단승연의 난이 일어날 때 중국에서 군대를 이끌고 와서 지원하라는 반란군은 지원하지 않고 란나라를 건국했다가 망하고 란주에 정착했다고 하는데 중국 역사서에는 그에 대한 언급은 없고 라란에 군대를 보냈다고만 기록되어 있다.
  22. 유단이 자칭 촉한 황실의 후손이라고 하지만 신뢰가 떨어진다.
  23. 이리거세사의 아들이 왜국으로 탈출하였다가 라란국으로 망명하였다고 영천 이리씨 족보에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