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라하 창문투척 의거 (Sola f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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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es pečete hus, ale přijde labuť,
오늘 당신들은 한마리의 거위(Hus)를 태우지만,
kterou nebudete moci upéci.
당신들이 태우지 못할 거위(Hus) 하나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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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a fide 세계관 타임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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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1410 1378–1417 : 서방교회 대분열
1414–1418 : 콘스탄츠 공의회
1409 : 쿠트나호라 칙령
1410~1420 1412 : 교황 칙령 만물의 창조주이신 주님에 대하여
1415 : 얀 후스 순교
ᅠᅠᅠᅠ : 보헤미아 항의 연대서신 사건
1416 : 프라하의 제롬 순교
1419 : 프라하 창문투척 의거
1420 : 5차 원정 십자군 (Sola fide)
ᅠᅠᅠᅠ : 비트코프 언덕 전투
1420~1430 1421 : 제1차 플젠 전투
1426 : 우스티 전투
1431 : 도마즐리체 전투
1430~1440 1431 : 도마즐리체 전투
1431 : 바젤 공의회
1433 : 프라하 화약
ᅠᅠᅠᅠ: 리파니 전투
ᅠᅠᅠᅠ: 제2차 플젠 전투
1434 : 프라하 진리신조
ᅠᅠᅠᅠ : 얀 지슈카 사망
1435 : 플젠 숙청 사건
1435 : 고아들의 혁명
1437 : 제3차 플젠 전투
1435 : 마인츠 제국의회
1440~ 1444 : 슈파이어 제국의회
연도가 삽입되지 않은 사건은 가장 상단의 해와 같은 해에 이루어진 사건임.
프라하 창문투척 의거
Pražské defenestrace
Defenestratio Pragensis
발생일시 1419년 7월 30일
유형 의거
발생 위치 프라하 신시청사
사유 후스파 수감자들의 석방 거부
사건이 일어난 카렐광장의 신시청사(Novoměstská radnice)

개요

프라하 창문투척 의거, 또는 프라하 창문투척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은 프라하의 신시청사에서 수감된 후스파 동료들의 석방을 요구하였으나, 이를 시당국이 거부하자 이에 항의하여 시청을 점거, 거부한 판사와 시장, 시의회 의원 2명을 창밖으로 던진 사건으로 이 사건으로 가톨릭 교회와 후스파의 전쟁이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1419년 7월 30일, 프라하의 성모 설화성당 소속 후스파 사제 얀 젤리프스키는 군중을 이끌고 시청앞을 행진하며 석방을 요구했으나, 이를 거부당했고 이후 시청 창문에서 돌이 날아와 얀 젤리프스키를 가격했다고 전해진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시청을 점령 후 판사와 시장, 친 황제파 귀족인 시의원 2명을 창문으로 투척해 살해하였고, 제5차 원정 십자군이 소집되며 교황으로부터 성전을 선포받는다.

이 사건은 이후 후스파가 장악한 프라하에서 '사건(事件)'이 아닌 '의거(義擧)'로 여겨졌다.

이후

이후 몇백년이 지난 후에도 가톨릭 권력이 탄압을 가하려 할때마다 이 건물에서 제2차, 제3차 투척이 이루어지게 된다...

각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