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A. 월리스 (프런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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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합중국 제11대 농무장관
헨리 아거드 월리스
Henry Agard Wallace
출생 1888년 10월 7일
미국 아이오와주 오리엔트
사망 1965년 11월 18일 (향년 77세)
미국 코네티컷주 댄버리
국적 미국의 기 미국
정당 공화당 (1909-1924)
진보당 (1912)
진보당 (1924-1932)
민주당 (1936-1947,1964-1965)
진보당 (1947-1950)
서명
재임기간 초대 총통
1933년 3월 4일 ~ 1941년 1월 20일
학력 아이오와 주립대학교
종교 성공회
부모 아버지 헨리 C. 월리스
배우자 일로 브라운 월리스

개요

미국의 정치인으로 제11대 농무장관이다.

생애

당대 미국에서 진보주의 정치인으로 유명했지만 정치활동은 공화당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공화당원이라고 해도 진보적인 스탠스에 있었고 특히 농업 관련 입법에서 맥너리-호겐 농장구호법(McNary–Haugen Farm Relief Bill)에 거부권을 행사한 캘빈 쿨리지 대통령을 비판했다. 이미 1924년 대선에서 로버트 M. 라폴레트를 따라 진보당에 입당한 상황이었고, 1928년 대선에서 이 이유 때문에 앨 스미스를 지지했으며, 1932년 대선에서도 마찬가지로 프랭클린 D. 루스벨트를 지지하고 여러 진보적인 정책 입안에 참여했다.

프랭클린 D. 루스벨트가 대통령일 때 농무장관을 지내며 미국 농업을 그야말로 되살려내는 업적을 세웠다. 1940년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월러스는 루스벨트의 후계자를 자처하며 1940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당내 주류는 월러스의 급진적 진보 성향과 친소련 노선을 경계했으며, 결국 기업인 출신의 웬델 윌키가 민주당 후보로 지명되었다. 월러스는 이에 강하게 반발했으나 당론에 따라 윌키를 지지했다.

1940년 대선에서 윌키가 게리 쿠퍼에게 압도적으로 패배하자[1], 월러스는 민주당 내 진보파를 규합하며 차기 대선을 준비했다. 1944년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마침내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었으나, 부통령 후보로 자신의 오랜 동지인 클로드 페퍼를 지명한 것이 결정적인 자충수가 되었다. 페퍼의 친소련 색채가 전시 분위기에서 치명적으로 작용하면서 쿠퍼에게 61.9% 대 37.4%라는 역대급 참패를 당했다. 당내에서는 "월러스 본인의 친소련 성향도 문제였지만 페퍼 지명으로 그것을 두 배로 확인사살했다"는 혹독한 비판이 쏟아졌다.

두 번의 참패로 민주당 내 입지가 사실상 사라진 월러스는 민주당에 잔류하다가, 1948년 민주당 후보로 스트롬 서먼드가 선출되자 민주당을 탈당해 진보당을 창당했다. 1948년 대선에서 진보당 후보로 출마해 13.92%를 득표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민주당 후보로 나섰을 때인 1944년보다 진보당 후보로 나섰을 때 더 나은 성적을 거뒀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선거인단 수) 당선 여부 비고
1944 미국 대통령 선거 미합중국 민주당 17,936,585 (37.39%, 33명) 낙선 (2위)
1948 미국 대통령 선거 미합중국 진보당 6,792,981 (13.92%, 0명) 낙선 (3위)
  1. 38.7% 득표, 선거인단 79인 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