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스파 (Sola f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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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nes pečete hus, ale přijde labuť,
오늘 당신들은 한마리의 거위(Hus)를 태우지만,
kterou nebudete moci upéci.
당신들이 태우지 못할 거위(Hus) 하나가 나타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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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스파 / 양형영성체파
Husité | Kališníci
깃발 상징
종류 아브라함 계통 종교, 기독교, 개신교
형성 보헤미아(프라하)
교조 얀 후스
정치체제 울트라퀴스테파 (온건파) : 감독제
타보르파 (급진파) : 회중교회[1]
지도자 얀 후스
, 이외 다양함.

개요

후스파, 양형영성체파는 얀 후스 화형으로 본격적으로 촉발된 후스의 주장과 그의 신학을 따르는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역의 지역적 교회개혁 운동중 하나로, 존 위클리프의 사상에서 영향, 교황이 2명 이상 세워졌던 서방교회 대분열로 인하여 성경의 원천적 권위, 성도들의 성체와 성혈 모두를 취할것을 요하는 양형영성체, 예배에서의 지역어 사용 등을 주장했던 종파로, 주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에서 활동하였다. 역사적으로 그들의 공통된 신학은 프라하 4개조 강령으로 요약되며, 그들의 신앙고백은 현재 논란이 있으나 프라하 진리신조가 있다.

후스파는 얀 후스의 죽음 이후 지역에 근거한 여러 군사집단의 운동으로 일어났으며, 이는 중세 후기의 지역적 민족주의와 연관되어 보헤미아, 특히 프라하의 귀족들이 주축이 되었다. 기존의 감독제와 유아세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교회전통(7성사, 성인공경 등.)을 옹호하는 울트라퀴스테파라 불리는 온건파와 성경의 축자영감을 믿으며 기존의 교회와 사회질서에서 탈피하여 모든 사유재산의 포기와 공동체생활, 군사국가적인 모습을 보이던 급진파인 타보르파, 그들의 지도자인 얀 지슈카의 사망 이후 더욱 급진적이게 되며 타교파에 대한 증오심(특히 로마 가톨릭에 대한 증오적 공격), 묵시록적 환상과 강력한 종말론이 특징적이게 된다.

이후, 강력한 타보르파의 지도자 얀 지슈카의 사망 이후 초급진파인 고아파의 고립과 자멸, 타보르파 공동체의 축소와 소멸로 결과적으로 온건파는 1435년의 마인츠 제국의회에서 갈등을 봉합하며 정치적으로 다시 보헤미아와 모라비아는 제국권역에 속했으며, 1444년 슈파이어 제국의회의 결과로 선교의 금지가 내려지며 지역적인 교회로 남게 되었다.

역사

조직

주류 감독제

소수 회중제

각주

  1. 지역마다 정치형태는 서로 달랐으나, 감독제를 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