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에 대해 알아보자 <1> 공자 맹자 순자의 선진유학
시대적 배경
상나라와 하나라 시대를 거쳐 주나라 시대가 꽃을 피웠다. 주나라는 봉건제도를 시행해 황제의 친척과 가족들에게 영지를 나누어주고 이를 다스리게 했다. 하지만 시대가 지나면서 세대도 바뀌었고 점점 황제와 연관이 없어지는 먼 황족이 생겨났다. 결국 분열이 불가피했고 이를 춘추전국시대라 한다. 춘추전국시대의 도래로 중국 대륙은 전쟁터로 변하며 인륜과 도덕이 없는 약육강식의 시대가 펼쳐진다. 이러한 배경 하에서 끔찍한 현실을 강력한 사회 규범을 통해 뜯어고쳐야한다는 사상이 등장하는데 이를 선진유학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선진유학이라 하면 공자, 맹자, 순자를 포함하며 이 외에도 이들의 제자였던 자로나 안회 등을 포함시키기도 한다. 이들의 특징은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살 것을 강조한 도가나, 정치와 법을 통해 인간을 강하게 통제해아한다고 본 법가와 대치되게 우리의 내면 속에 있는 도덕감을 통해 인간을 교화시켜 인간다운 존재로 만들자고 주장했다는 점에 있다.
공자
선진유학가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있으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공자이다. 공자의 사상은 인(仁)으로서 정리될 수 있는데, 인이라는 것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는 내면적인 도덕감을 의미한다. 이는 선을 좋아하고 악을 싫어하는 사랑의 감정이라고도 표현할 수 있다. 이제 한동훈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는거다. "어차피 인간은 다 예비 범죄자니까 검찰공화국 해도 괜찮지 않음?" 그런데 공자는 이에 대해 검찰공화국과 같은 외적인 수단으로는 인간을 교화시킬 수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모두 내면에서 꿈틀거리는 도덕감이 있고 이를 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이 인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발견된다. 예를 들어 가족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하는 감정에서도 인이 발견된다. 공자는 이를 토대로 하여 도덕감을 회복하고 궁극적으로 사회를 정의로 되돌려야한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문에 공자의 인은 근본적으로 별애(別愛), 즉 차별적인 사랑을 전제한다. 이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같은 사랑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차별이란 선과 악을 차별짓고 나와 남을 차별짓는 것이다. 남을 나보다 우선시하는 사랑이 있을 수 없고 일단은 내 안에 있는 도덕감부터 살펴야할게 아닌다. 일단 내 안에 있는 선을 알고 나면 그 다음에 가족, 친구, 스승 단위로 인이 확장되고 궁극적으로 국가와 사회 수준으로까지 인이 확충되는 것이다. 또한 차별을 짓는다는 것은 나쁜 것과 좋은 것을 구분지어 좋은 것을 취사선택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공자는 공부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은 어찌 될지 몰라 나쁜것을 선택할 수도 있는데 이걸 막기 위해 공부를 하여 좋은 것을 알아내고 마음을 갈고 닦는다.
사회와 국가 수준으로 뻗어나가는 인을 예(禮)라고 한다. 예는 인에서 비롯되는 것이지만 동시에 인의 필수 조건이기도 하다. 이는 인간이 서로의 분수를 지키고 선을 넘지 않는걸 의미한다. 즉, 군군신신 부부자자, 임금이면 임금다워야하고 아비면 아비다워야한다. 그것이 그들 속에 있는 인을 충실하게 따르는 것이고 이로 인하여 예가 생겨나는 것이다. 이를 정명(正名)이라 한다. 이를 위해 공자는 효제충서(孝悌忠恕)를 제안한다. 효제는 가족에게 잘하는 것을 의미하고 충서는 마음을 바로 잡는 것이다. 충서에서 충이란 적극적인 인으로, 자신의 마음에 거짓이 없이 언제나 열심히 사는 것이다. 서는 소극적인 인으로 남의 감정에 공감하고 같이 기뻐해주고 같이 슬퍼해준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을 통해 공자는 자기 내면 속에 있는 인을 공부를 통해 실천하고 확장하며 예의가 넘치는 사회가 달성될 수 있다고 보았다.
맹자의 성선설
공자 이후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인(仁)이 도대체 그 성격이 무엇인지에 대해 의견이 갈린 것은 당연하였다. 공자 사후 떠오른 두 유학자는 맹자와 순자인데 이들은 인에 대해 서로 상반된 주장을 펼쳤다.
우선 맹자는 성선설의 입장을 취했다. 맹자는 여기서 불인인지심(不忍人之心)이라는 개념을 꺼내든다. 이건 타인의 고통을 그대로 보아 넘기지 못한다는 뜻이다. 아기가 우물로 들어가면 구하고 싶어지고 자동차에 치인 행인을 그대로 보지 못하고 119를 부르는 등의 선행을 하는데 이건 내 의지에서 비롯되는게 아니라 본성에서 비롯된다는게 맹자의 논리다. 아무리 인격이 파탄난 사람일지라도 인생에 한번쯤은 사람을 돕는 선행을 한다. 이게 맹자가 말한 인간 본성의 근원이다.
물론 맹자가 나이브하게 인간은 언제나 따뜻하고 착하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어도 공자가 말한 인이 실현된다고 한 것은 아니다. 만약 이랬다면 중요한 제자백가 사상가라고 배우지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인간은 자연스러운 경향성이 있어서, 따뜻한 방 안에서 치킨 뜯고싶은 욕망을 다들 가지고 있다. 이걸 객관적인 명이라고 부른다. 이런걸 보면 인간과 동물은 차이가 없는데, 자기에 좋은 것을 취하다보니 좋은걸 다 잃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동시에 선천적인 능력이 있다. 아무리 먹고 마시고 즐겨도 노인이 폐지 줍는걸 보면 가슴이 여려오는게 바로 맹자가 말하는 인간의 선천적인 능력이다. 그걸 보고 자기의 현실을 지각하고 남을 돕기 위해 나서는데, 그래서 맹자는 인간이 욕망을 추구하는 경향성은 있을지언정 이를 인간의 마음, 즉 "하늘의 당위적인 명"이라는 것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본다. 맹자에 따르면, 인간은 선천적으로 도덕을 자각할 수 있는 양지(良知)와 그것을 실천하는 능력(良能)을 가지고 욕망에 의해 감추어지게 되는 욕망을 극복한다.
맹자가 말하는 군자와 소인의 차이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맹자는 군자와 소인의 도덕적인 양지 양능은 거의 같다고 본다. 그런데 소인은 양식이 없어서 신나게 치킨 뜯고 넷플릭스 본다. 반면 군자는 열심히 공부하고 양심을 갈고 닦는다. 이 둘의 차이가 있다면, 소인은 자신의 경향성에 휩쓸려 본성을 잃고 말았다는 점이지만 군자는 내 마음에 있는 양심을 보존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핵심적인 것은 맹자는 인간의 본성이 선하지만 동시에 욕망에 쉽게 휩쓸린다고 보았다는 점이다. 이 이유 때문에, 맹자에게 있어 본성이란 강한 선이 아니라 연약한 선이고 그래서 인간이 해야하는 것은 철저한 공부를 통해 연약한 선을 강한 선으로 만드는 것이다. 이를 존심양성이라고 표현한다. 존심양성을 통해 자신의 선한 본성을 극대화한 사람은 호연지기, 즉 지극히 크고 굳센 도덕감을 갖추게 된 인물이다.
이에 맞춘 맹자의 사회 이론은 왕도의 정치로서 요약된다. 왕도 정치란 패도 정치와 다르다. 패도 정치는 윤두창처럼 검찰 대리고 막 압수수색하는걸 의미하며, 왕도정치는 이와 달리 국민에게 먹을 것도 주고 같이 즐거워하고 같이 슬퍼할 줄 아는 정치를 의미한다. 이 때문에 나오는 개념이 무항산 무항심이다. 지도자가 야박해서 복지도 안해주고 레이건식 신자유주의 논리로 DIY하면 인간이 인을 행할 수가 없다는거다(다만 여기서 선비는 제외된다. 무항산 무항심은 백성 전용). 당장 내 먹고 살길도 바쁜데 자연의 경향성을 따라야지 누가 군자가 되려고 하냐. 그래서 맹자는 민생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지도자의 핵심 역할이며 이걸 못하는 군주는 역성혁명으로 바꿔버려야한다고 본다.
순자의 성악설
그런데 순자가 보기에 이게 좀 말이 안되는거다. 인간이 선천적으로 경향성을 가져서 선이 뭐인지 알고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헛짓거리하면 그게 본성이 아니고 뭐냐는게 순자의 논리. 순자 입장에서 봤을 때 인간은 다 쓰레기다. 대표적으로 지금 용산에 앉아있는 대통령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또 펨코나 실베에 들어가봐도 알 수 있다. 그런 곳에서 인의예지는 찾을 수 없으며 춘추전국시대의 혼란도 그보다는 덜하다는 생각이 들게 된다. 그런데 맹자는 여기에서 나이브하게 "어차피 인간은 선을 알 수 있으므로 노오력만 하면 극복된다" 이런 말도안되는 소리를 하고 있다고 순자는 비판을 하는 것이다. 펨붕이 야붕이들의 본성이 선하다는 것 자체가 오류이고 그래서 순자는 인간 본성이 다 끔찍하다고 본다.
물론 인간은 선악을 구분짓는 능력 정도는 있다. 즉, 도덕적 옳음을 배울 잠재력 정도는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왜냐하면 인간 감정은 실시간베스트갤러리와 같아서, 매우 혼란스럽기 그지 없으며 이를 강력하게 교정해야하기 때문이다. 순자는 여기에서 공자의 예를 다르게 해석한다. 공자는 인이 사회적 규범으로 실현된 상태를 예라고 보았는데 순자는 여기에서 외면적 규범이라는 측면을 강조하여 예를 고대의 현명한 지도자들이 만든 외적인 사회 규범이라고 해석했다. 이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에 반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감정을 순수하게 만든다. 더 나아가 순자는 이를 토대로 지위와 재화를 차등 분배해야한다고 본다. 쉽게 말하자면 김유식이 실베를 저렇게 방치하고 있는 막장 상황과 달리, 순자는 실베충 새끼들을 전부 다 잡아다가 도덕공부를 시키고 여기서 도덕적인 순서에 따라 잘 대해 준다는 뜻이다.
순자는 철저한 현실주의자이다. 그는 하늘이 초월적인 존재로서 존재한다는 맹자의 주장에도 반기를 든다. 맹자는 천인합일이라고 하여 하늘이 인간의 본성과 도덕의 근원감이라고 봤다. 순자는 맹자 보고 그렇게 계속 하늘에 기도해봤자 실베와 펨코가 날뛰는걸 해결할 수 없다고 보는거다. 일단 순자도 하늘이 존재하고 그게 인간의 운명을 결정짓는거 거기까지는 역할을 한다고 보는데 그렇다고 인간이 하늘에 따라야할건 아니라고 본다. 하늘이 주파딱하냐 인간이 주파딱 하는거지. 이런 이유 때문에 순자는 하늘에 따르는걸 중시한 맹자와 대비되게 하늘이 아니라 성인을 따라야하며 인간은 인간 사회의 통치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본다.
여기에서 순자가 한비자와 같은 진시황식 법가 사상과 다른게 뭐냐고 반문할 수 있다. 이는 강조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있다. 한비자나 상앙 같은 법가 애들은 일단 예보다 현실 정치와 법을 더더욱이 중시한다. 반면에 순자에게 있어 그러한 법과 정치의 설립 근원이 예이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핵심적인 주안점은 예에 있다고 보아야한다. 즉, 인과 예를 통해 법을 세워서 이를 토대로 인간을 교정하는 것이 순자의 주장이고 이는 인 예 그딴거 필요 없고 무한정 엄벌주의 원툴 하자고 주장한 법가와 차이가 있다. 차가운 엄벌주의 같은 소리하는 법가와 달리 순자도 일단 따뜻한 인의예지는 주장한다.
"유교를 지켜주십시오... 유교가 이 나라의 중심을 지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