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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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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인사변 庚寅事變 | Korea War | |
기간 | |
1950년 6월 25일 4시 20분경 ~ 1950년 12월 25일 12시경 | |
장소 | |
한반도 본토 및 연안과 부속도서 일부 | |
원인 | |
박헌영과 조선로동당의 한반도 적화통일 야욕 | |
교전국 및 교전세력 | |
유엔군 | 공산군 |
대한제국 미국 영국 호주 네덜란드 캐나다 자치령 프랑스 뉴질랜드 필리핀 튀르키예 태국 남아프리카 연방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소련 |
지원국 | |
스웨덴 인도 |
중화인민공화국 북베트남 |
지휘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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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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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00+명 1,000명 |
피해 | |
민간인 포함 약 n여명 | |
결과 | |
대한제국의 승리 | |
영향 | |
대한제국의 한반도 북부 영유권 확보 조선 망명정부 수립 중국 - 만주 관계의 악화 한미상호방위조약의 체결 |
개요
공비가 침범해 왔다. 이보다 먼저 공비 수장 박헌영이 수상이 되어 의정원 의원 총선거를 거부하고 북부를 병탄하여 그 잔포가 날로 심했다. 그는 제국을 공산화 하기 위한 흑심을 품고 일찍이 소련과 내통하는 등 침략 준비를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비상대비태세를 해제하자 적은 드디어 괴뢰군을 총동원하여 대대적으로 침입해왔다. 『열조개수실록』 창명 25년(1950) 6월 25일 신묘 1번째 기사. |
경인사변은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새벽 4시에 북한군이 암호명 '폭풍 224'라는 사전 계획에 따라 북위 38도선 전역에 걸쳐 대한제국을 선전포고 없이 기습 남침하여 발발한 전쟁이다.
명칭
전쟁에서 승리한 대한제국은 전쟁직후 6.25사변, 6.25전쟁, 한국내전등 다양한 명칭으로 불리었다. 그러다 1972년 열조 붕어 이후 열조실록이 편찬되자 실록에 적힌 명칭인 경인사변으로 굳혀지게 되었다. 본래 사변(事變)의 기본 의미는 '사람의 힘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천재(天災)나 그 밖의 중대한 사건.'이다. 그러나 '사변'이라는 명칭이 붙은 여러 사건에 의해, 무력을 사용하게 되는 난리 또는 상대국에 선전포고도 없이 침입하는 일을 뜻하게 되었다. 경인사변이라는 명칭의 해석은 '경인년에 공비[1]가 쳐들어온 일'이다.
영어로는 The Korean War라고 부르며 보통 동양에서는 한국전쟁(韓國戰爭)이라 부른다.
배경
전개
결과
주변국에 끼친 영향
기타
각종 매체에서
어록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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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조개수실록』 창명 25년(1950) 6월 25일 신묘 1번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