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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계관의 모든 인물, 사건, 단체, 국가는 가상이며 현실의 어떠한 인물이나 단체도 찬양하거나 비하할 의도가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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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석주 郭石周 | Gwak Seok-ju | |||||||||||||||||||||||
출생 | 1969년 8월 15일 | ||||||||||||||||||||||
대구광역시 달성군 현풍읍 오산리 | |||||||||||||||||||||||
국적 | 대한민국 | ||||||||||||||||||||||
사망 | 2003년 2월 18일 (향년 34세) | ||||||||||||||||||||||
대구 도시철도 1호선 중앙로역 | |||||||||||||||||||||||
직업 | 소설가 | ||||||||||||||||||||||
서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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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괜찮습니다. 당신만한 돌고래가 이 세상에 또 어디있겠습니까. <흰 치마를 입은 그이에게 고함> |
곽석주는 대한민국의 소설가이다. 1살에 아버지를 잃고 고아로 자랐으며 학력도 중졸이지만 독학으로 글을 깨치고 21살에 첫번째 소설을 발표하고 두번째 소설인 가베가 대성공을 거두며 단숨에 인기 작가로 거듭났다. 허나 이후 통신 연재 소설 <정답이 희망에게>를 발표해 본인의 근칭상간 사실을 알리며 소설계를 발칵 뒤집은 뒤 은퇴를 선언했고 고향인 대구 달성군으로 가던 도중 대구 지하철 참사에 휘말려 34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생애
어린 시절
1969년 8월 15일 대구 달성의 한 서민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태어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가 임신 후유증으로 사망하고 아버지가 재혼을 한 뒤 훗날 애인이 되는 여동생 곽진주가 태어나지만 아버지는 동아시아 전쟁에 참전했다가 세상을 떠나고 새어머니 역시 심부전으로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아 순식간에 고아가 되어버린다. 결국 이 자매는 전주의 친가에서 거둬서 키웠지만 친가의 사정이 녹록치 않았다보니 그 역시 제대로 공부하기가 어려웠고 결국 중졸로 학업을 마쳤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글에 미련이 남아있었던 어린 곽석주는 하루에 자습과 일을 병행하면서 공부를 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부를 하던 도중 그가 가까운 도서관에서 여러 문학 작품을 접하면서 "나도 글을 쏘보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됐고 그 날 이후로 문학을 중점적으로 공부함과 동시에 여러 글을 쓰면서 소설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등단과 전성기
1991년, 21살이던 그는 자신의 단편소설 <칠전칠기>를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투고한다.
근친상간 발표와 은퇴
1999년 12월 24일, 돌연 그는 평소 자주 방문하던 천리안 문학소설동아리 게시판에 <정답이 희망에게>라는 단편작품을 투고한다. 워낙 메이저한 작가가 투고한 작품이다 보니 상당한 관심을 이끌었는데, 정작 이 소설의 내용은 사람들을 깜짝 놀래키기 충분했다. 해당 작품은 근친상간을 옹호함과 동시에 본인의 근친상간에 대해 밝히는 내용이기 때문이였다.
사실 그의 근친상간론은 오랫동안 지하세계에서 떠돌던 여러 루머 중 하나였다. 왜냐하면 그가 방송에 출연할때마다 "여동생을 출연시킬것"이라는 요구를 했었고 그가 민주자유당의 달성군 공천을 거부한 이유 역시 가족과 지낼 시간이 줄어든다는 이유였는데 그 시점에 그에게 실질적인 가족은 여동생뿐이기 때문이였다.
그가 근친상간을 한 이유에 대해서도 여러가지 의견이 있는데, 이중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어린 시절 문단에서 설명한 처참한 상황으로 인해 그의 절망은 정말 어렸을때부터 그와 함께 같은 생활을 해왔던 곽진주에 대한 애착이 되었다는것이다. 허나 문제는 이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사랑이라는 금단의 감정으로 변해버렸고, 또한 곽진주가 그의 사랑은 거부하지 않고이를 용인했다는 것 역시 문제가 되었다. 물론 굳이 따지자면 이복동생이기는 하나 근친상간이라는건 변함이 없기에 소설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우선 그의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TBS 드라마 <흰 치마를 입은 그이에게 고함>의 드라마 제작이 중단 되었고 당시 재방영되고 있던 KBS의 <가베> 역시 재방송 일정이 전부 변경되었다. 그가 속한 정당이자 그의 출마를 권유하기도 했던 민주자유당 역시 충격에 빠졌고 당시 민자당 소속의 한 전국구 의원은 익명 인터뷰에서 "너무 충격적이라 뭐라 할 말이 없다"라는 입장을 밝히기도 했었다.[2]
점차 문학계에서도 강경한 비판이 쏟아지자 그는 새해인 2000년 1월 1일 짧은 글을 발표하며 은퇴를 선언했다. 아래 글은 그 글의 전문이다.
술 한잔 마셨습니다... 제가 잘 안되도 좋습니다. 하지만 제 동생 하나만 기억해주세요 진심을 다해 전합니다. 제 글이 별로 일수있습니다 밤낮으로 고민하고 고민 했습니다 ...최선을 다했고 열심히 사랑했습니다 저의 진심이 느껴지길 바랍니다 고맙습니다... |
어째서 밝혔는가?
사망
내 돌고래, 그리울거야. 죽기 직전 애인이자 여동생 곽진주와의 통화에서 |
작품 특징
반 민주국민당
"파란옷의 살인귀에게 물리고 싶은가?" "아서라, 살인귀 잡으려면 걔네 집에 들어가야 합디다." <희망의 당에게> |
민족주의
작품 목록
여담
- 대구 달성에서 태어났지만 1살에 아버지를 잃고 전북 전주에서 자랐기 때문에 영남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가지면서도 애착은 진주 쪽에 더 있었던것으로 보인다. 죽기직전에 달성에 가보려고 한것을 제외하면 항상 진주에만 방문했다는것이 그 증거.
- 기본적으로 문학에 문외한인 한 사람이 뽕차서 만든 문서에 가깝다 보니 여러번 설정이 수정 될 가능성이 높다.
어록
그녀는 한동안 이 전화를 기대하고 있었지만, 진짜로 전화벨이 울렸을 때 그녀의 직감은 한 방 먹은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기대하지 않으면 배신당할일이 없다는게 딱 이런 때 쓰던 말임을 그녀가 알때까지 그랬습니다. <가베> |
그녀의 동그란 안경, 높은 콧대, 그리고 하얀 치마가 이상하리만치 그리운 날이였다. 이상하다. 어찌 그날만 안경의 섬세한 모습이, 높은 콧대의 아름다운 선이, 하얀치마의 비누냄새 하나하나가 기억났단 말인가. <흰 치마를 입은 그이에게 고함> |
다시 돌고래를 보았다. 아, 비누냄새가 난다. <흰 치마를 입은 그이에게 고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