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대신부

내대신부(内大臣府)은 천황을 보필하고 궁정의 문서사무 등를 관리, 담당하는 기관으로 궁내성의 외청이다. 궁내성법에 의거하여 내각에서 분리되어 독립된 행정기관으로 존재한다. 장관은 내대신이다.

개요

메이지유신 이후 내각제도가 실시될 적에, 내각을 구성하여 국정을 돌보는 국무대신과는 별도로, 궁중 내의 대신으로써 내대신 직이 부활하였다.
내대신의 부활과 동시에 그 사무를 돌보는 조직으로서 궁내성 내부에 내대신부를 신설하였다.
약칭은 内府(나이후)인데, 유신 이전의 내대신을 内府[1]라고 불린 것과, 내각 내의 내무대신(내상, 나이쇼)와 구별하기 위해 이렇게 약칭을 정했다.

역사

메이지정부에서 내대신은 친임관인 궁내대신과 시종장과 함께 언제나 천황의 곁에서 보좌하는 관직이었다. 구체적으로 어새·국새와 같은 옥새를 보관하고, 조칙과 칙서 및 기타 궁정 문서에 관련한 사무를 소관으로 하였다. 또한 국민이 천황에 올리는 청원 등을 받아, 이를 처리하는 등 측근으로써 중요한 역할을 행하였다.

초대 내대신은 산죠 사네토미였는데 이는 당시 태정관 제도 상, 최고 관직인 태정대신에서 물러나는 그를 대우하기 위해 만들어진 명예직이나 다름없었다. 이로 인해 내대신의 직무와 권한, 조언 범위가 명확히 정의되지 못했고, 매우 애매하고 추상적이었다. 이는 천황이 취임한 인물과 신뢰관계로만 성립되는 것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로 인해 초기 내대신은 서열 상 내각총리대신보다 더 우위에 있었다.

이후, 산죠 사네토미는 내각총리대신을 겸임하기도 했으며, 그의 사후에는 시종장이던 토쿠다이지 사네츠네가 메이지천황의 붕어 때까지 내대신 직을 겸무하였다.

타이쇼 천황의 등극과 함께 총리 경험자였던 카츠라 타로가 내대신 겸 시종장으로 있다가, 황족인 후시노미야 사다나루 친왕이 대리하여 집무하였다. 이후에는 원로나 그에 준하는 급의 정치가가 기용되었다.

쇼와 시대에는 궁중 업무 경험을 가진 관료출신자가 등용되었는데, 궁내대신을 지내다 내대신이 된 마키노 노부아키나 유아사 쿠라헤이, 궁내성 종질료 총재 및 내대신 비서관장을 역임한 키도 코이치가 유명하다. 이로 인해 내대신은 원로의 존재감이 사라졌고, 내각 총사직 후에 발생하는 대명강하에 있어서 후임자를 추천하는 중신회의를 주재하기도 하였다. 이로 인해 중신 간의 의견 절충이나 의견 청위를 행하고, 심지어는 군의 통수권에 해당하는 사항에 있어서도 천황을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등, 궁중 뿐만아니라 국무에도 큰 영향력을 가지게 되었다.

헌법 개정 이후에는, 오로지 옥새의 보관과 조칙, 칙서 등 궁중 문서 사무으로만 국한되었으며, 천황에 대한 조언과 청원 사무는 추밀원으로 이관되었다. 그리고 내대신에는 타이쇼 시대와 같이, 원로 급의 인사가 임명되었으며, 대부분 내각과 협조하기 위해 좌우를 가리지 않고 지명하였다.

소관업무

  • 어새 및 국새 등 옥새의 보관
  • 조칙·칙서 및 기타 궁중 문서 사무

조직

내대신부는 궁내성의 외청이라는 점에서, 특이하게 인원이 적다. 또한 내대신이 내대신부를 통할하는 것으로 직제상으로 되어 있으나, 직원에 있어 서훈이나 임면에 있어서는 관련 사항을 궁내대신에 이첩할 것이 강제되었다.

  • 내대신 - 1인

내대신부를 통할하고 천황를 보좌하며 그 책임을 진다. 직급은 친임관. 궐위시에는 추밀원 의장이 임시대리로 직무를 행한다.

  • 비서관장 - 1인

궁중 문서를 관장한다. 직급은 칙임관

  • 비서관 - 3인

문서의 관리 및 서무를 분장한다. 직급은 주임관

  • 서무관 - 7인

서무 담당, 직급은 판임관

  1. 발음은 다이후로 다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