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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국의 보수주의 정당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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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한독립당 | → | 현재 | |
대한독립당 大韓独立党 | Korea Independence Party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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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건 | 大韓獨立萬歲。 |
창당일 | 태시 1년(1949) 1월 22일 |
통합한 정당 | |
주소 | 경성부 용산구 두텁바위로 160 (후암동, 후암동 당사) |
이념 | 주류 이념 경제적 자유주의 신보수주의 사회보수주의 자유보수주의 가부장적 보수주의 |
비주류 이념 보수자유주의 협동조합주의 국수주의 | |
스펙트럼 | 우익 빅 텐트(중도우파 ~ 극우) |
총재 | 주호영 / 11선 (민, 19~29대) |
부총재 | 이명박 / 14선 (민, 16~29대) |
간사장 | / n선 (민, n대) |
국회대책위원장 | / n선 (민, n대) |
중추원 | 246석 / 400석 (61.5%) |
민의원 | 246석 / 400석 (61.5%) |
도도부평의회 | n석 |
부군면협의회 | n석 |
당색 | 암청색(#4c516d) |
국제조직 | 국제민주연합 |
후원회 | 한독당중앙당후원회 |
정당원 수 | 1,502,825명 (2019년 12월 31일 기준) |
책임당원 수 | 475,172명 (제1n차 전당대회 기준)[1] |
정당보조금 | 23,343,932,000원 (2019년 12월 31일 기준) |
당비 수입 | 41,234,565,352원 (2019년 12월 31일 기준) |
재산총액 | 25,048,078,454원 (2019년 12월 31일 기준) |
당가 | 대한독립당 당가 |
공식 사이트 | |
SNS | | | | | |
2023년 포스터 - 국민을 위해 일한다.[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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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태시 3년(1951) 대한독립당 창당대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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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화 3년(2021) 제n대 대한독립당 전당대회 |
대한독립당(大韓独立党)은 대한국의 보수정당으로 대한국의 집권 정당(여당)이자 우파 빅 텐트 성향의 정당이다.
약칭은 한독당[3](韓独党), 영어 약자는 KIP(Korea Independence Party), KI Praty.이다. 1949년 창당되었으며 창당한 이래로 현재까지 74년간 한국의 집권 정당으로서 자리매김 하고있다. 현 당수(총재)는 주호영이다.
성립
1949년 대한국민당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합당으로 이루어졌다. 이른바 태시 체제의 시작.
배경을 보자면 한국 정계는 크게 대한독립촉성국민회, 대한국민당, 사회당으로 나누어졌다. 그중 보수 우파 기믹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독촉)는 이승만과 김구를 중심으로, 중도 보수 혹은 보수 온건 기믹인 대한국민당(한민당)은 장면을 중심으로 창당되었다. 물론 이때는 전형적인 다당제의 모습을 보여서 사회당과 독촉이 연정을 구성하거나 반대로 한민당 일부 계파와 독촉계가 연합해서 사회당 내각을 불신임 시키는 등 이합집산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1948년 총선 이후 독촉이 원내 3당으로 추락하고, 한민당이 원내 2당이 되는 상황과 사회당과 독촉의 노선 차이로 인한 갈등이 극심해지고, 반대로 한민당이 사회당에 러브콜을 내밀자, 한민당이 사회당과 연합하는 연립정권이 탄생할까 불안했던[4] 독촉은 1940년대 말에 그 동안의 라이벌 관계를 청산하고 전격적으로 합당을 결의하게 되는데, 이렇게 탄생한 정당이 바로 한독당이다.
그리고 1949년 치러진 민의원 선거에서 한독당이 압승을 거두고 사회당의 지지율은 점차 침체되고, 전후 식량난과 토지개혁을 비롯한 각종 경제 개혁이 성공되며 경제가 성장하자, 양당의 격차가 더 벌어지자, 한독당은 사실상 정계의 핵심으로 부상한다.
장기집권
1949년부터 줄곧 집권 여당으로 군림하고 있는 최강의 정당. 캐나다 자유당, 인민행동당에 버금가는 장기 집권 정당이기도 하다. 실제 대한독립당이 만들어진 이래, 민의원 선거에서 원내 제1당 자리는 항상 한독당이 차지했고, 의석수 비율도 40%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다. 그 탓에 한독당 총재 선거는 항상 총리대신을 가리는 자리나 다름이 없었다.
이렇게 한독당이 너무나 오랜 세월을 지배해 왔기에 한국의 정치는 거의 정당 정치가 아닌 한독당 내의 파벌 정치나 다름없었으며, 이는 한국이 제도적 민주주의에 비해 실질적 민주주의는 허약하다는 비판을 받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한국은 한독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가 너무 오랫동안 공고히 유지되어 다른 당이 정권을 잡은 적이 49년 이후로 없고, 한독당 외 정당들은 집권 경험이 거의 없거나 전무하기 때문에 실제로 정권을 잡았을 때 경험 부족으로 굉장히 미숙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5] 그래도 한독당이 전체 의석의 2/3 이상은 차지하지 못해서 헌법 11조 등의 수정은 불가능했고, 21세기 들어 세가 크게 위축되었지만 한독당 내에서도 호헌파가 상당수 있다.
한독당의 장기 집권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는 태시 체제는, 정확히는 1.5정당(또는 1 1/2 정당) 체제를 의미한다. 무슨 말이냐면 제1야당으로서 한독당이 2/3 의석 확보를 저지하는 사회당이 부분적인 양당제를 유지시켜 주기 때문.
한독당 상당수 의원은 제국 시절 상류층으로부터 내려오는 인물이 많아 보수적 성격이 강하며, 이것이 21세기에도 일부 한독당 의원들의 국수주의에 대한 향수와 각종 논란이 끊이지 않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한다. 의원 세습 문제로 가면 더 심각해진다. 고정 지지층이던 농민들이 국민들의 식생활 변화 등으로 벼농사를 짓기 어려워 도시로 떠나자, 당 입장에선 고정 표밭을 잃을까봐 이촌향도 현상을 막기 위해 방파제나 둑, 도로 공사 등 대규모 토목 공사를 벌여 농촌 주민들을 지키고자 했다. 거기에 도시 사람들의 표를 얻고자 온갖 복지 혜택을 늘려 국가 부채를 쌓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그나마 정규군을 신설하자는 강경 우파 성향은 1960~70년대 안보투쟁 이후 경제 성장으 많이 잠잠해졌으나[6][7] 2000년대 이인제 집권 이후 이명박, 이재오등이 꾸준히 집권하며 다시 심화되고 있다. 그나마 최근 2021년에는 온건파인 신파에 속하는 주호영이 총재에 당선되면서 오랜만에 온건파 총리가 나왔으나 주호영도 이인제와 어느정도 사이가 깊었던 사람인지라 큰 변화를 보일 것 같지 않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다만 군비 증강에는 적극적이지만 헌법 개정은 서두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서 강경파와는 어느정도 거리를 두고 있다.
강령
희령 21년(2013) 발표한 한독당의 강령 전문이다.
우리 당은 국민의 행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이며 모든 정책의 입안과 실천에 있어 오로지 국민의 뜻에 따를 것임을 약속한다. 우리 국민은 주권예속의 아픔에서 벗어나 수 많은 대내외적 위협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겨내고 자랑스러운 대한국을 건국했음은 물론, 세계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내에 산업화와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완성시킨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룩해 냈다. 이 과정에서 우리 당은 한-미상호방위조약을 근간으로 하는 외교정책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그리고 법치주의라는 대한국의 국시와 한국적인 가치를 바탕으로, 끊임없는 혁신과 희생 그리고 책임정신을 통해 평화를 지키고, 국민과 함께 대한을 세계 제4위의 경제 대국으로 발전시켜왔다. 이와 같은 성과와 한국적인 미덕을 바탕으로 전후 60여년간 우리는 개국 이래 전례 없는 속도의 성장과 세계화를 통해 우리는 많은 성과를 이룩해온 반 우리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반복되는 경제위기와 정치군사적 분쟁으로 전 세계적 차원의 불확실성이 급속히 증대되고 있다. 대내적으로는 한국적인 정체성을 잃어가고 있으며, 경제 성장의 둔화와 재정 악화, 실업률의 증, 양극화와 불평등의 심화, 저출산ㆍ고령화의 가속화 등이 국가의 발전을 위협하고 있다. 우리는 이 나라의 주인이신 대황제 폐하께 한치의 누가 되지 않도록, 오늘의 평화로운 대한을 건설해왔다. 우리는 원래 근면을 미덕으로 알고 서로 상부상조하기를 자랑하는 국민이다. 노력하는 기회와 능력을 타고나지 못한 사람들을 따뜻하게 감싸는 가족과 지역 사회의 유대를 가진 국가이며, 가족, 지역 사회, 국가에 귀속 의식을 가지고 공공의 기여와 의무에 자부심을 가진 국민이기도 하다. 이는 우리의 전통적인 국민성으로써 이와 같은 올바른 전통을 보존하는 것은 또 다른 창당 목적중 하나인, "한국다운 한국의 확립"이다. 이제 우리당은 지난 과거를 반성하고 성찰함과 동시에 창당 이래 지켜 왔던 대한의 독립과 반공 · 반독재의 깃발 아래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만을 고치고, 유지해야 할 것을 지켜 안정 속에 번영을 추구하고, G7국가로써 가지는 의무를 이행하여 '세계속에 명예로운 지위’를 차지하고 한국적인 한국의 보수주의 정치 이념으로서 재출발하고 싶다. 우리는 개인의 이익을 넘어선 공공의 선이 존재하고, 자유는 공동체를 깨뜨리지 않는 범위에서 허용된다고 믿으며, 시장 원리주의와 무원칙한 정부 개입주의를 주장하지 않는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우리가 이룩한 자유가 자유로운 각인이 각각의 의무와 능동성과 자유로운 선택권, 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의 정신으로 이루어진 자유임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는 전 국민의 노력으로 탄생한 국민 총생산을 여당만의 독선적인 판단으로 국민 생활에 재분배해, 결과적으로 국민의 자립심을 해치는 부당한 사회주의적 간섭과 통제를 받지 않을 때 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와 함께 소수의 의견을 무시하고 여당만의 판단을 독선적으로 강요하는 사회주의적 통치와도 단호한 대치해야 한다고 믿는다. 또한 한국의 주권을 저해하며 "한국적인 한국'을 해치는 정책에 대해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우리 당은 국민 모두를 위한 정당으로서 내일의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새로운 한국'을 목표로 새로운 한독당으로써 국민과 함께 안정감 있는 정치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안심할 수 있는 사회로 만들고 싶다. |
당명
- 영어: Korea Independence Party
당색 및 로고
한독당의 로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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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독당 로고 |
대한국민당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합당 당시 장면 총재가 제시한 당명인 '대한독립당'은 대한국민당의 대한과, 대한독립촉성국민회의 독립에서 각각 한 글자씩 따온 당명이다. 다만 '대한독립'이라는 명사가 독촉의 공식당명에 그대로 포함되어 한민당에서 반발한 바 있고, 이를 잠재우기 위해 독촉에서 약칭을 한민당과 유사한 어감을 주는 한독당으로 제안하였고, 이에 한민당이 동의하며 약칭은 명사의 첫 글자들로 구성된 대독당이 아니라, 한독당으로 정해졌디.
당가
한독당 당가
한독당 당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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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
중앙당사
경성부 용산구에 소재한 중앙당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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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도당사
역사
2020년 이전
2020년
2021년
2022년
2023년
비판 및 논란
소속 인원
중추원 의원
민의원 의원
계파
의 파벌 분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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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현재 당내의 주류 계파들은
지지 기반
다른 정당과의 관계
역대 전당대회
역대 지도부
총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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틀:대한독립당 간사장 (충신불사이군) 틀:대한독립당 지도부 (충신불사이군)
출신 총리대신
여담
관련문서
관련문서
- ↑ 실제 전체 책임당원 수는 이보다 많을 수 있다.
- ↑ 사진 속 인물은 한독당 총재인 주호영.
- ↑ 언론에선 해당 약칭으로 더 많이 불린다.
- ↑ 어떻게 보면 이념상 불가능할 거 같지만 이미 1948년 자신들과 사회당이 잠깐 연립 정부를 구성해 집권했던 선례가 있었던 데다가 독촉 내부에서는 진짜로 한민당이 사회당과 연합하면 독촉이 더 이상 집권을 할 수 없다는 불안감에 휩쌓여 있었디.
- ↑ 동아시아 정치를 연구해 온 미국의 정치학자 T.J. Pempel은 한국 정치를 가리켜 'uncommon democracy'라고 칭하기도.
- ↑ 현행 헌법에서 한국은 군대 미 보유를 규정하고 있으므로 군대 대신 방위대를 보유하고 있다. 다만 대한국 헌법에선 자위권이나 국가교전권을 부인한 바는 없으므로, 이 국가교전권과 자위권을 행사하는데 동원되는 무력인 방위대 역시 보유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까지 한국 정부는 위와 같은 헌법 해석을 정부 공식 입장으로 채택하고 있다. 다만 방위대가 헌법 조항에 직접적으로 명기되어 있지 않고 헌법 해석으로만 존재 근거를 가지는 것에 대해 논란이 있고 이러한 논란을 해결하기 위한 개헌 움직임이 지속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 ↑ 한독당도 이런 일부 강경파들 덕에 1950년대엔 자주 헌법을 마련해야 한다며 개헌에 집착했으나, 헌법이 정착된 1960년대 이후엔 개헌에 딱히 신경쓰지 않는 의원들이 주류가 되어 20세기 말까지 이어졌다.
- ↑ 물론 구자체를 고집하는 소수의 보수파 일본인을 제외하고는 이런 표기는 안 쓴다고 봐도 무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