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진시대 (리좀)

공산1968 리조니 Arrondissments 레스 어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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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 지배 없이 근대화에 성공해 이원집정부 체제를 받아들인 "동방의 불란서", 대한공화국의 여정을 다루는 대체역사·정치 세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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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화국의 단일쟁점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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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산당
(개별 합류)
여진민족회의 여진시대
대한공산당
노동자혁명당
여진민족회의 여진시대 현재
한인사회당
(개별 합류)
여진시대 로고.png
여진시대
약칭 여시
슬로건 여진족은 핫바지가 아니에요!
만주어 명칭 ᠵᡠᡧᡝᠨ ᡠᡵᠰᡝ ᠠᠴᠠᠨ[1]
영문 명칭 Yeojin People's Party; YPP
창당 1978년 5월 16일 (여진민족회의)
당명변경 2000년 3월 1일 (여진시대)
상임대표 황훙흥 / 재선 (, 32~33대)
사무총장 이눌닐
이념 여진족 권익
여진족 민족주의
청나라 복고주의
사회민주주의
사회보수주의

과거:
스펙트럼 단일쟁점정당
경제: 중도 ~ 중도좌파
사회: 우익
참사원 의석 0석 / 348석 (0.0%)
국민원 의석 0석 / 577석 (0.0%)
광역자치단체장 0석 / 27석 (0.0%)
기초자치단체장 2석[2] / n석 (0.0%)
광역자치의회 4석 / 2298석 (0.2%)
당색 빨간색 (#E64632)
황금색 (#FFC224)
당기 대한공산당 당기.png
정책연구소 여진족 민속연구소
정당후원회 여진시대 중앙당 후원회
당원 감소 6,000명
(2023년 1월 추산)
국제 조직 무소속
선거연합 범진보선거연대
청년조직 여진족 청년결사
당가 공금구
이제는 여진시대
공식 사이트 여진시대 로고.png
공식 유튜브 채널
SNS | |

개요

대한공화국의 소수민족 정당이다. 대한공화국 제2의 민족인 여진족의 권익을 대변하고 있으며, 소수 민족 정당 및 원외정당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크고 조직력이 탄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여진족은 일반적으로 대한공산당을 지지하는 경우가 많지만, 1960년대 공산당이 여진족의 권리 문제에 소홀하다는 비판이 대두되었고 이에 마오쩌둥주의를 따르는 몇몇 당원들이 공산당을 탈당하고 바스크의 ETA를 본딴 급진 마오주의 무장독립단체를 창단하였으니 이것이 여진시대의 시초이다. 이에 따라 오랜 기간동안 선거에 참여하지 않고 중국공산당과 소련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무장 독립단체로 명맥을 이어가고 있었으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및 대한수교, 그리고 소련붕괴는 여진족의 독립 가능성을 크게 저하시켰다.

결국 1992년과 1999년 두차례의 강령 개정을 통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인정, 대한공화국 내에서 여진족의 권익 확대 등을 목표로 하는 대중정당이 창립되어 현재의 여진시대가 출범하게 되었다.

상징

당명

당색 및 로고

당가

여진시대 선거 로고송
이제는 여진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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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내민족 네민족 여진족 안심해
권리길 자치길 더불어 살리길
우리는 투표를 여진족 실현을
X월 XX일에 우리는 투표를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이제는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연변도 여진족 백산도 여진족
은평도 여진족 기호X번 여진족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여진시대
청나라 복원하자
이제는 여진시대

금나라 복원하자 이제는 여진시대
청나라 복원하자 이제는 여진시대

강령

여진시대 로고.png 강령 전문
여진족은 핫바지가 아니에요!


조국을 송나라·명나라 제국주의로부터 해방시키고 광명을 가져다 준 금태조 완안 아골타와 청태종 아이신교로 홍타이지의 민족해방정신에 입각하여 대한공화국 대전환을 시작한다.

현재 대한공화국 여진족의 현실은 비참하기 이를 데 없다. 중원을 재패하고 대륙의 지배자로 거듭났던 금나라·청나라 시대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으며 이제 여진족은 어디에서나 쇠사슬에 묶인 신세로 전락하였다. 이에 우리 여진시대는 민족을 해방시켜 나라를 다시 세운 누르하치의정신으로 대한공화국의 성장동력을 이루어내고 여진족의 권익을 향상시키고자 한다.

우리 여진시대는
1. 일방적 지역 행정을 극복하고 대한의 여진족을 하나로 묶어내는 “여진족 대통합의 시대”를 선도하겠다.
2. 몰락한 여진족 귀족의 권위를 복원하고 여진족 서민을 대변하는 “생활밀착형정치”를 구현하겠다.
3. “범 민족적 도덕성 회복운동”과 함께, 여진족이 잃어가고 있는 유목정신·티베트 불교 복원을 위한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

이에 우리는 분열과 대립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가중심, 사회중심, 국민의 중심의 새로운 통합의 시대를 선도하고자 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에 따라 국민과의 공감과 소통,참여와 협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개인과 집단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약자의 인권존중과 공정한 법집행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하고자 한다.

공정과 포용, 배려와 연대의 가치를 바탕으로 상생과 협력의 대한공화국을 만들고자 한다.

창의적이고 역동적인 대한공화국을 건설하며 여진족의 민족적 발전의제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위해 공론의 장을 만들고자 한다.

한민족 내셔널리즘의 볼모가 되어버린 국가권력과 무능한 정부에 대한 민족적 분노, 저성장과 한민족·중국인들의 대여진족 혐오범죄, 불확실한 경제성, 사회·민족계층간에 불공정, 불평등 이로 인한 차별과 격차의 심각성, 중산층은 사라지고 서민경제는 더욱 더 힘든 상황으로 도달했으며 이로 인한 개인과 사회·민족 공동체 모두가 불안을 이겨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여진족 권리 향상은 드문 드문 이루어지고 있으나 여전히 2등신민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 여진족의 상태이다.

이어 우리 여진시대는 굳건하고 건강하게 한반도·만주 평화를 관리하고 송나라 제국주의를 무찌른 금나라의 “정강의 변”, 명나라 제국주의를 무찌른 홍타이지의 “병자 남한산성 대혁명” 등을 이어받아 만주를 수복하고 다시 중원의 한족 오랑캐들을 굴복시킬 것이다.

국토를 유린하고 민중의 삶을 어렵게 한 영국 왕실에 아편전쟁과 의화단전쟁의 책임을 묻고, 영불제국주의의 야욕으로부터 여진족의 권리를 지키는 자주적 외교를 실현시킬 것이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정신처럼 여진 민족과 소통하고 함께 참여하는 협치를 구현하고자 한다. 강희·건륭황제가 그러셨듯 약자를 보살피고 공정한 법집행으로 정의사회를 실현하고자 한다.

상생과 협력을 통한 안전하고 보호받을 수 있는 건전한 사회, 대한공화국 여진족이라면 생명보호와 안전보장을 받을 수 있게 국가의 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고자 한다.

이같은 사회적 위험에 대해 능동적이고 예방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사회보호체계를 구축하는데 앞장설 것이다.

바람은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극복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우리 여진시대는 여진족을 향한차별을 딛어내고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는 대한공화국을 만들어나갈 것이다.

10대 정책

  • 여진족을 제2의 민족으로 명시하고 이에 따른 합당한 대우를 보장하는 "여진족 특별법" 입법
  • 헌법 전문에 "민족해방자 홍타이지" 정신 및 "정묘·병자해방전쟁" 정신 추가
  • 연변과 백산, 은평을 아우르는 "통합 여진족 민족자치특별도" 설치
  • 여진족 기본소득제, 기본기마소유제 실시
  • <최종병기 활>, <남한산성> 등 여진족에 대한 악의적 역사왜곡 미디어물 시청금지법 제정
  • 프랑스, 영국 정부 상대로 아편전쟁·의화단 전쟁 배상금 144조 4천억원 청구
  • 일주일 5시수로 여진족 한정 "활쏘기" 및 "기마" 과목 개설
  • 여진족의 정신적 통합을 이끌 아이신기오로씨 청나라 황실 복원[3]
  • 청나라 8대 성씨(하라) 및 완안씨[4]에 특별 권한 부여
  • 중원 수복

당사

은평 여진족 특별자치구 북악산자락에 위치한 여진시대 중앙당사[5]
개마고원의 여진족 거주지 "부야(ᠪᡠᠶᠠ)" 위치한 여진시대 지방분국

역사

여진 사람들은 핫바지라고 그럽디다.
그러니까 아무렇게나 취급해도 입 다물고 있는 사람들,
이런 뜻으로 그 사람들이 우리를 평한 겁니다.

비판 및 논란

역사관 논란

아골티, 누르하치, 홍타이지, 도르곤 등 한국의 입장에서 좋게 생각할 수 없는 인물들을 "민족의 해방을 이끌려고 했던 위대한 혁명가"로 숭상하고 있고, 더 나아가 병자호란정묘호란정묘·병자 민족해방전쟁이라 부르고 있어, 일반적인 한국인의 역사 인식에 역행한다는 비판이 있다. 이러한 역사관이 논란이 되자 논란 당시 당수였던 박융록 의원은 명나라 제국주의의 폭거로부터 조선을 해방시킨 것이라는 궤변을 하여 논란을 일으켰다.

계파

지지기반

주요 지지 기반은 4~60대 여진족으로, 여진족의 권익 향상에 긍정적이지만 공산당에는 부정적인 보수적인 여진족 유권자들로부터 표를 얻고 있다. 특히 백산 지역에서는 지방선거, 총선 때마다 꾸준히 여진시대 소속 후보자가 30% 이상의 표를 얻고 있으며, 몇차례 국회의원직을 배출한 바 있다.

아이신기오로, 완안 일가 우대를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양쪽 가문 모두 여진시대에 큰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이며, 아이신기오로 가문은 선거 때마다 공산당을 지지하고 있기 때문에[6] 일방적인 짝사랑에 가깝다. 금나라의 국성이었던 완안 일가는 "금나라가 망한지 몇백년은 됐는데 왜 아직도 금나라 타령이냐"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다.

다른 정당과의 관계

대한공산당

대한공산당과는 여진족이라는 집단을 두고 경쟁을 하고 있다. 보다 대한공화국에 긍정적이며, 여진족의 경제적 권리 향상을 지지하는 젊은 여진족들은 공산당을 지지하지만, 일상 속에서 여진족이 받는 차별에 반대하며 보수적인 여진족의 민속을 지키고자 하는 보수적인 장년층 여진족들은 여진시대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 두 정당의 목표 지향점과 정책이 서로 상이하고, 또 같은 지역과 민족을 두고 경쟁하는 처지인지라 사이가 그렇게 좋지는 않지만, 여진족의 권익을 위할 때에는 한목소리를 낸다.

한인사회당, 대동사회

공산당을 제외한 여타 좌익 정당과의 관계는 상당히 우호적이며, 전국 단위의 선거에서 연대하는 경우가 잦다. 특히 사회당과 대동사회의 조직력이 부족한 백산 지역에서는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해 두 당이 여진시대의 후보자와 단일화하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기타 소수민족 정당

회교권리당과는 직접적 연관이 없으나, 남포, 함흥, 통천 등 공단 밀집 지역에서 선거연대를 자주 맺는다. 반면, 대한화교동맹과는 사이가 매우 나쁘며, 여진시대의 지지자들은 청나라는 여진족의 역사인데 왜 자꾸 중국 역사라고 우기냐며 허구한 날 화교동맹 중앙당사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그 외의 소수민족 정당과는 별다른 관계를 맺지 않고 있다.

여타 정당

새정치당, 민주당, 공화당 등의 정당은 여진시대를 장난정당 취급하고 있으며, 국민의힘과는 사이가 매우 나빠 잊을때만 되면 연변, 은평, 백산 등의 지역에서 지지자들끼리 서로 패싸움을 벌여 논란이 되곤 한다.

신당대지, 오키나와 사회대중당, 카탈루냐 공화좌파당, 바스크 국민당, 스코틀랜드 국민당, 플라이드 컴리, 퀘벡연대 등 해외의 소수민족 자치 및 독립 정당과 교류가 있다. 우크라이나 내 소수민족인 러시아인들의 분리독립을 지지하고 있으나,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자체에는 반대하며 또 체첸, 투바의 독립도 지지하고 있다.

역대 당대회

여진시대 로고.png 역대 당대회
제1차 (1978년) 제2차 (1983년) 제3차 (1988년) 제4차 (2000년) 제5차 (미정)
제1차 당대회중 모두발언 장면

여진시대의 당대회는 총 4차례 있었다. 초대 당대회는 창당때 개최한 대회로, 당시엔 여진족들이 모두 돈을 모아 겨우 마련한 자리였기에 사진기도 없었으므로 그림으로 그 당시 장면을 담았다. 모두발언 장면에서 단상에 꿇어앉아 연설하는 사람은 초대 당대표 완석열(完析裂), 여진족 전통 이름으로는 완안 쌍련롬(完顔 䨇輦㖈) 이다. 료양 완씨로 당시 여진족의 수장이라 불릴만큼 많은 여진족의 존경을 받은 인물이었다.[7] 그는 이 대회에서 여진족의 조선정벌을 천명하고, 다시금 고향인 하얼빈으로 돌아갈것임을 선언하였었다. 초대 당대회는 남한산성[8] 어딘가에서 했었는데, 지금은 재개발이 되어 찾을 수 없다.

제2차는 10년만에 열린 대회로 그 기록을 만주어로 기록해 남겼었다. 당시 당대표는 채후의(蔡㷞燱)로 여진족 전통 이름으로는 아슬루 갈간타(亞膝壘 葛干陀) 이다. 이때는 그림기록도 없으나 대신 음성기록이 남아있는데, 모두발언의 전문이 남았다. 당시 기록으로는 여진족의 조선정벌을 다시한번 천명하고, 당사를 은평으로 옮기는 안을 논한것으로 보인다. 이때 나온 발언이 "우리 여진족의 숨통 문제로 불장난 하면, 반드시 타 죽을것. 내가 화염병 든다." 이다.

제3차는 의외로 5년뒤에 열렸는데, 개회한 이유가 국문과 만주어로 남아있다. 당시 채후의가 술이 마시고 싶은데, 돈이 나올 구석이 없으니 몰래 당비를 빼돌려 술사먹는데 쓰다가 걸려서 열린 대회였다. 이때 당대표 채후의는 변명이랍시고 집이 좀 엉망인 것은 견딜 수 있다. 의복이 낡은 것도 견딜 수 있다. 그러나 술은 좀 마실 수 있지 않은가? 라고 말했고, 결국 당원들에게 곤장을 20대 맞고선 사임했다. 그렇게 채후의는 갈간타란 이름 대신 오걸매(吳乞買) 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다.


제4차 당대회중 도촬 사진

이후 돈이 없어서 당대회를 열지 못하다가 2000년에 당명 변경을 위한 투표를 열기 위해 당대회를 개최하였다. 이때 전통대로 모두발언을 위해 당대표였던 황훙흥 (黃薨興)의 아버지 황병병 (黃陃炳)이 꿇어앉자 엉덩이에서 허벅지 뼈가 탈골되어 싣려가는 일이 있었다. 또한 이때가 되면 여진족 전통이름을 더이상 짓지 않게 되었고,[9] 산속에서 하는것이 아닌 술을 까고 산책로를 점거한채로 진행되었다. 이때 여진민족회의에서 여진시대로 이름을 변경하고 더이상 돈없고 빽없고 자존심만 있는 군소정당이 아닌 적극적 정계개입을 하는 정당으로 변모하기로 결정하였다.

제4차 당대회때는 개고기와 소주, 막걸리를 먹어서 역대 당대회중 가장 돈이 많이 깨졌지만 그만큼 여진족이 사회화되면서 생활수준이 올라가 재정부담이 그렇게 심하지 않게 되었다.[10]

역대 지도부

산하 기관

역대 선거

지지도

  • 만주어를 공용어 수준으로 격상시키는데 어느정도 공로가 있다는 점에서, 여진족 사회에서 지지를 얻고있다. 한 세집건너면 반드시 여진시대 당원이 있을 정도까지는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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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화국(리좀) 국기.svg 대한공화국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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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Jušen urse acan (유선 우르서 아차)
  2. 무송군, 정우군
  3. 명시적인 법은 없지만, 뉴질랜드 정부에 의해 대우받으며 마오리 족의 대변자 역할을 하는 마오리 왕처럼 여진족의 명목상 지도자로 청나라 황실을 복원하0자는 주장이다.
  4. 금나라의 국성.
  5. 사실은 당대표 황훙흥의 자택이기도 하다. 불법건축물로 신고됬다가 공무원에게 뒷돈을 줘선 오히려 주소까지 받았다. 도로명 주소는 부여될 수 없었는데, 주변에 도로가 없다. 구 주소는 "은평 여진족 자치구 북악산 514-1 여진시대당사", 514-1에서 514는 주변에 심겨진 GPS 신호기 번호 이름이다.
  6. 청나라의 마지막 황제인 아이신기오로 푸이가 일본에 부역하며 온갖 전쟁범죄에 가담하며 아이신기오로 가문 전체의 이미지를 망친 전력이 있어, 대한공화국의 아이신기오로 가문은 이에 대한 반성으로 최대한 우익과 얽히지 않으려 하는 경향이 강하다.
  7. 현상수배가 걸려있었다.
  8. 삼궤두고두례를 시킬려고 지나가던 행인을 납치해 완석열을 향해 절을 시킨것으로 인해 경찰이 뜨기도 했었다.
  9. 이는 여진족 전통이 많이 사라지고 한화(韓化)되었음을 의미한다.
  10. 이때 개고기를 먹은 사실이 알려져 동물보호단체들의 항의를 받았으나, 당시 당대표인 황병병은 요즘 길가다 보면 듬직한 개들이 많은데, 침이 고인다. 라며 발언해 충격과 공포를 주었다. 실제로 황병병은 길가다 차에 치인 고라니, 심지어 남의 개까지 가져다가 사골육수를 내 먹어 재판에 간적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