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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민주당 | 自由民主黨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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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당일 | 1965년 9월 3일 |
당명 변경 | 1970년 7월 24일 (민주신당) |
후신 | |
주소 | 한성부 마포부 토정로 318 (용강방) |
대표최고위원 | 이윤영 (초대) 김준연 (제2대) 김도연 (제3대) 이철승 (제4대) |
민의원 의원 | 12석 / 575석 (2.08%) |
국제조직 | 자유주의 인터내셔널 |
개요
1964년에 창당된 자유주의 성향의 정당이다. 1942년 분당된 자유당과 민주당이 오직 反박정희 기조 하나로 뭉친 정당이며, 이로인해 박정희 의정부가 붕괴된지 6개월만에 자유당과 민주신당으로 다시 해체되었다.
상세
1965년 7월 14일 임시민의회에서 민주당과 자유당이 월남전 파병 동의안의 발의를 막지 못한 것을 문제삼아 양당 내 강경파들을 중심으로 한 자유당 재통합론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자유당과 민주당은 1942년 민정당 중심의 거국의정부 참여를 두고 자유당 내에서 갈등을 겪다 자유당 내 강경파로 불리던 소위 비타협 자유당 세력이 자유당을 탈당해 민주당을 창당한 이후 한번의 연대조차 한적이 없을정도로 서먹한 사이였다. 하지만 자유당과 민주당의 정책기조가 박정희 의정부와 번번히 충돌하자 양당의 지도부가 강경파들의 요구를 받아들임으로서 자유민주당을 창당하였다.
창당 이후 자유민주당은 박정희에 반대하기만 한다면 누구든지 연대한다라는 무조건적인 反박 기조아래 사회민주당부터 한화국민당까지 폭넓게 연대했으며, 간혹 이러한 성향으로 사회민주당보다 강경한 노선을 들어내기도 하였다. 1967년 총선에서는 그다지 의석을 늘리지는 못했지만, 사민당의 비롯한 야당들의 의석이 대거 줄어든 와중에 꽤나 선전했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1968년 제3차 자유투쟁이 일어났음에도 사회민주당과 대조되게 자제를 요청하고 중립을 선언하는등 이도저도 않는 조치를 취했고, 자유투쟁에 반대하던 민정당과 자유투쟁에 찬성하던 사회민주당에 비견되는 애매한 태도로 인해 같은해 열린 총선에서는 사민당보다 크게 패배했다.
이로인해 당이 다시 해체될 위기에 놓였으나, 당시 대표최고위원이던 김도연 왈 "박정희가 총리인 이상 자유민주당도 정당이다"라는 발언으로 다시 결집하였고, 결과적으로 1970년 총선이 야권의 승리로 끝나면서 목적을 달성했다. 하지만 승리 이후 국제 개헌에 관련해서 사민당안에 찬성하던 민주당계와 이에 반대하던 자유당계가 대립하면서 당내 갈등이 재점화되었고, 결국 1970년 7월 5일 자유당계 의원 36인이 탈당하면서 해체가 확정되었다. 이후 대표최고위원직은 이철승 의원이 이어받았고, 같은달 24일 당명을 민주신당으로 바꾸면서 자유민주당은 역사속으로 사라졌다.